돈테의 돈으로 세상 읽기 113
AI 문명은 어떻게 ‘도덕적 자본’으로 완성되는가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마라톤 대회가 지난 19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렸다. 하프 코스로 열린 이번 대회에서 중국의 ‘샨뎬’이라는 로봇이 48분 19초 만에 완주했다고 한다. 지난해보다 2시간 가까이 단축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최고 기록을 앞섰다.
정교한 관절과 평형감각을 갖춘 로봇이 인간 마라토너를 추월하는 모습은 경이롭다. 어떤 이들은 섬뜩했다고 한다. 인간의 능력을 보조하던 기계가 어느새 인간의 기록을 넘어서는 장면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기술의 진보가 만들어낸 놀라운 성취이면서도 동시에 인간이 자랑해 온 근육 에너지의 한계를 묻게 하는 상징적인 장면이기도 하다.
사실 기록 자체의 의미는 크지 않다. 머지않아 옷을 입고 자연스러운 몸동작으로 달릴 수 있는 로봇이 나올 것이다. 이 대회는 휴머노이드 로봇의 기술적 진보와 실제 환경 성능을 검증하고 로봇 산업의 경쟁력을 홍보하기 위한 이벤트일 뿐이다.
이 강철의 마라토너가 던진 질문은 두 가지다. 인공지능과 이를 탑재한 로봇은 미래 인류에게 어떤 편익을 줄 것인가. 다른 하나는 많은 이들이 염려하는 인공지능의 도덕적 규범이다.
인공지능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비약적으로 진화할 것이 분명하다. 과거의 기술 진보가 인간의 근력을 보조하는 기계적 확장이었다면 지금의 AI는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 믿었던 판단력과 추론 능력까지 스스로 학습하며 진화의 임계점을 돌파하고 있다. 어쩌면 지금은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이 말한 ‘기술적 특이점’에 근접했는지도 모른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 노동의 재편이다. 시장경제의 강력한 동력은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내는 효율성이다. 이에 따라 3D 업종은 가장 먼저 로봇의 몫이 될 것이다. 이는 자본의 투입이 인간의 존엄성을 높이는 도덕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비관론자들은 로봇의 등장이 대량 실업을 야기하고 인간의 일자리를 앗아갈 것이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문명의 발전사를 돌이켜 보면 이러한 공포는 언제나 기우에 불과했다. 19세기 영국에서 기계가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며 기계를 부수었던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기계화는 과거에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수많은 서비스업과 전문직을 새롭게 만들어냈다.
기술이 인간의 육체 노동을 대신해 준 덕에 인류는 생존을 위한 사투에서 벗어나 더 고차원적인 욕망에 눈을 뜨게 됐다. 앞으로 인류는 로봇이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인 예술과 문학 그리고 스포츠와 같은 정신적·육체적 유희에 더 큰 비중을 두게 될 것이다. 이는 경제학적으로 ‘가치 창출의 축’이 이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창의성과 감성이 핵심이 되는 이 영역들은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거대한 시장으로 성장할 것이며 인간은 비로소 ‘생계형 노동자’가 아닌 창조적 가치를 향유하는 주체로서의 삶에 매진하게 될 것이다.
기술의 진보가 장밋빛 미래만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공지능의 도덕성’이라는 무거운 과제와 직면한다. 자칫 AI가 인간을 차별하거나 부당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사실은 AI의 도덕성이 결코 추상적인 외계의 가치가 아니라는 점이다.
인공지능의 윤리적 기준은 결국 그 기술을 설계하고 운용하며 데이터를 입력하는 사회 전체의 도덕성으로 수렴한다. 즉 AI가 내리는 결정의 공정성과 정의로움은 우리 사회가 가진 도덕적 수준의 투영인 셈이다. 부패하고 불투명한 사회에서 탄생한 AI는 편향된 결과를 낳을 것이며 정직과 신뢰가 바탕이 된 사회의 AI는 공동체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할 것이다. 결국 기술을 통제하려는 인위적인 시도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의 도덕적 기초를 튼튼히 하는 것이다.
우리는 도덕과 경제를 무관한 것으로 착각할 때가 많다. 더러는 양심과 도덕에 충실하면 손해를 본다고 말한다. 하지만 시장경제에서 ‘도덕’은 단순히 개인의 양심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 ‘거래비용’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널드 코즈(Ronald Coase)가 지적했듯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거래에는 정보 탐색과 계약 체결 그리고 이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비용이 발생한다. 이러한 거래비용이 낮을수록 시장은 더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사회적 신뢰가 구축된 공동체에서는 이 거래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서로를 믿지 못해 작성하는 수만 페이지의 계약서와 끝없는 법적 소송은 경제의 혈관을 막는 혈전과 같다. 도덕적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풍부할 때 시장은 비로소 자연스러운 리듬 속에서 번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AI 시대로 갈수록 정보의 비대칭성은 줄어들겠지만 그 정보의 진실성을 담보하는 ‘도덕적 신뢰’의 가치는 더욱 희소해지고 귀해질 것이다. 정직한 사회가 가장 경쟁력 있는 시장이 된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다.
이러한 도덕적 가치의 수호는 공동체의 방향타를 쥔 지도자들에게 더욱 엄중하게 요구된다. 아무리 뛰어난 AI가 최적의 정책 대안을 내놓아도 그 정책을 실행에 옮기는 동기와 과정에서의 청렴함은 오직 인간 지도자의 도덕성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6·3 지방선거가 코앞이다. 선거에 나서는 출마자들의 도덕성 검증은 단순한 인물 평가나 흠결 찾기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앞으로 행정 방향과 정책 수준을 가늠하는 기준이며 결국 지역의 경제적 기초 체력을 결정하는 중차대한 일이다. 도덕성이 결여된 지도자가 이끄는 행정은 시장의 질서를 교란하고 특정한 이해관계에 복무하는 포퓰리즘을 양산하며 결국 공동체가 오랜 시간 쌓아 올린 신뢰라는 소중한 자본을 순식간에 탕진하게 만든다. 도덕이 자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