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도 청조산악회 해외원정산행 -키나발루산-동행기
2009년 청조산악회 집행부가 야심차게 결단을 내린 키나발루 산행에 참석하여
성공적으로 정상을 등정하고 돌아 왔는데 아래는 그 기록들을 정리한 것이다.
먼저 우리가 그동안 소홀하게 대했던 보르네오섬과 키나발루산이 있는 말레지아
사바주 그리고 코타키나발루라는 도시에 대해서 인터넷으로 조사한 정보들을 정리하고
키나발루산에 대한 정보도 사전에 알아 두는 것이 이해에 도움이 될것이다.
코타키나발루 [Kota Kinabalu, 제셀톤]
옛 이름은 Jesselton. 동말레이시아 보르네오 섬 북서 해안에 있는 사바 주의 주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완전히 파괴되었으나 남중국해 연안의
가야 만에 심해 정박지가 있다는 이유로 1946년 영국령 북보르네오 주(후에 사바 주가 됨)의
새 주도로 선정되어 가야 만 갯벌간척사업을 비롯한 재건 및 확장 공사가 이루어졌다.
오늘날에는 한줄로 길게 늘어선 앞바다의 산호섬들과 크로커 산맥 사이의 좁고 길쭉한 땅에
주거 및 상업용 건물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인근 가야 섬에 있던 원래의 거주지는 1897년 반영(反英) 이슬람 폭도인 마트 살레의
방화로 불타버렸는데, 이 사건 이후 현지에서는 이곳을 아피아피('불의 장소'라는 뜻)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 이름 외에 이 지역에서 발견되는 홍수림 수종과 관련된 이름도 있다.
기후적으로는 열대우림지역이지만 지진도 없고 태풍도 없는 안정된 지역이다.
그후 영국령 북보르네오회사의 사장인 찰스 제슬 경의 이름을 따서 1899년 현재의 장소에
제슬턴이라는 지명으로 재건되었고,
1968년에는 코타키나발루('키나발루 산의 요새'라는 뜻)로 이름이 다시 바뀌었다.
주로 중국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으며, 불규칙하게 외곽으로 뻗은 시가지를 중심으로
주요활동인 행정업무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북쪽의 테놈에서 뻗은 철도가
가야 만 항구를 지나며, 이 철도를 통해 운반되는 해안지방에서 생산되는 고무는
가야 만 항구에서 중형 선박들을 통해 수출된다.
경공업 부문에서는 제분업, 목공업, 가구·비누·플라스틱 제조업이 발달했다.
또 보르네오 섬에서 도로망이 가장 잘 갖추어진 교통 중추 도시이며, 국제공항도 있다.
교육·문화 시설로는 역사박물관과 교사양성기관인 가야대학(1963)이 있고,
북쪽 투아란에는 켄트사범대학이 있다. 위성도시 캄풍탄종아루는 해변휴양지이다.
인구 305,382(2000).
▼ 보르네오 섬에서 키나발루산의 위치
사바주는 말레지아의 한 주로 되어 있으나 넓이는 남한과 비슷하고(74,500 sq. km)
해안선의 길이도 비슷하나(1,440km) 인구는 200만명인데
30여 종족에 80여개의 다른 언어가 사용되고 있다. 각기 고유의 풍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를 상호 이해하고 인정하면서 평화롭게 살고 있다.
이런 다양성이 존재하지만 사바주 총리를 중심으로 독자적인 행정을 펴서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있다. 과감하게 자본을 끌어들여 세계적인
휴양관광지로 만들어 세계인을 불러 들이고 있으며 원주민 우대정책으로
그 관광수입만으로도 원주민들이 편안히 살아갈 수 있게 만들었다.
인구 보다 더 많은 관광객이 몰려 옴으로써 원주민들의 일자리가 충분히 확보되고
열대우림 이외에는 자원이 빈약한 땅을 자연보호의 기치아래 더 안정되고
안락한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만든 것이다.
더우기 중앙부에 4,000m가 넘는 거대한 산을 중심으로 큰 산맥이 남서쪽으로
뻗어 내린 가장자리에 있으므로 넓은 농토도 없어서 산간 오지나 다름 없던
이곳을 관광휴양의 낙원으로 만든 지도자의 안목이 돋보인다.
이러한 정책에 앞장선 총리는 개인으로도 굉장한 부자라는 가이드의 설명이 있었다.
국민을 착취하지 않고 세금을 가로채지 않는 총리의 부는 충분히 인정되고 있다고 보여진다.
▼ 현지 안내 책자의 사바주 지도.
- 키나발루는 753km²에 달하는 지역에 5000종 달하는 식목과 100여종의 포유류와
300여종의 조류가 분포되어 있어서 키나발루는 그 자체로서 하나의 거대한 공원이라고
말할수 있는 자연생태의 보고로 희귀한 동식물로 가득하다.
또한 표고 4,095m의 키나발루산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 키나발루산의 표고는 1997년 이전까지 4,101m로 측정되었으나 이후 위성등을 이용한
새로운 측정방법을 통해서 현재로는 그 높이가 4,095m로 조사되었다.
일출 맞는 키나발루산 정상
키나발루산
현지 안내 책자의 등산개념도
1. 산의형성
150만년 전, 수 백년 동안 지표 아래에 있던 대량의 화강암이 약한 암반 표면을
뚫고 위로 상승하기 시작했고 마지막 빙하기에 이동하는 얼음덩이에 깍인
키나발루산은 넓고 평탄한 형세를 띠면서 만들어 졌다
4,095.2m의 키나발루산은 매년 5mm씩 솟아오르고 있으며 비탈지의 산사태나
산 정상 아래의 암석파련이 아직도 계속되는 지각 운동을 뒷받침하고 있다.
2. 키나발루산의 유래
키나발루 국립공원 지역에 살고 있는 원주민 카다잔족의 전설에 의하면
키나발루를 산 이름은 카다잔족 의 언어로 ‘죽은 자들의 안식처’를 뜻하는
이끼나발루라는 말에서 파생되었다고 한다. 즉 산의 원주민 조상을 뜻하는
아키(AKI)와 산을 뜻하는 나발루(NABALU)에서 유래되었고
아키나발루(AKINABALU)는 '죽은 자를 숭배하는 장소'라는 뜻도 함께 한다.
[4,095.2M의 로스봉(LOW'S PEAK)으로 동남아 최고봉]
VICTORIA PEAK(4,094m) / ST. JOHNS PEAK(4,097m) /
KING EDWARD PEAK(4,086m) /ONKEY EARS PEAK(4,055m) /
UGLY SISTER PEAK(4,032m) / ALEXANDRA PEAK(4,003m)
SOUTH PEAK(3,933m) / TUNKU ABDUL RAHMAN(3,948m)
**총 면 적
1964년 사바주 정부는 자연경관 보호를 위해 약754㎢에 달하는 지역을 키나발루
국립공원으로 지정했으며 뒤이어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다.
(1) 계절구분 건기(2월~10월)와 우기(11월~다음해 2월)
(2) 강 우 량 키나발루산 해발 1588m = 3,000m 해발2,196m = 4,057mm
(3) 온 도 평균 최고 섭씨 20도~최저 섭씨 13도 해발 3,344m 섭씨 2~10도 이며 정상에는
가끔 얼음도 보이며, 기온차가 매우 심하며 체감온도는 영하 5~10의 기온을 느낀다.
**거주 종족
키나발루산에는 원주민 두슨족(DUSUNS)과 카다잔족(KADAZANS)이 살고 있으며
전통적인 방법을 이용 가파른 비탈에서 회전 농경식으로 쌀과 야채를 재배하며 생활하고 있다.
이들은 이 산이 고인들의 영혼을 위한 영원한 안식처라고 믿으며 신성시하고 있다.
(1) 첫 등반인 1851년에 라부안섬의 영국 식민지 관리였던 휴 로경이 키나발루산 첫 등정
(2) 첫 정상 정복인 1881년경 영국의 동물학자인 존 화이트헤드가 키나발루산 등정에 성공했다.
보르네오섬 [Borneo]
말레이 반도 남동쪽에 위치한 세계에서 가장 큰 섬 가운데 하나.
-그린랜드, 뉴기니 다음으로 큰 섬이다.
말레이 열도의 대(大)순다 열도에 속한다. 북서쪽으로 남중국해에 면해 있으며
시계바늘 방향으로 술루 해와 셀레베스 해, 마카사르 해협, 자바 해로 둘러싸여 있다.
정치적으로는 인도네시아령(領)·말레이시아령 보르네오와 브루나이로 나뉘는데,
이 가운데 1949년까지 네덜란드령이었던 인도네시아령 보르네오,
곧 칼리만탄이 가장 넓은 지역을 차지한다.
북서해안과 북쪽 끝을 따라 1963년 말레이시아 연방에 가입한 사라와크와
사바(옛 이름은 북보르네오)가 자리잡고 있으며, 그 사이에 브루나이 이슬람 술탄국이 있다.
섬의 인구는 1990년 현재 1,230만 5,000명으로 추정되는데 그중에서 칼리만탄이 891만 1,000명,
사바와 사라와크가 313만 5,000명, 브루나이가 25만 9,000명이다.
강낭콩과 비슷한 모양을 한 보르네오 섬은 산이 많으며
대부분 빽빽한 우림(雨林)으로 덮여 있다.
북동-남서 방향으로 길이 1,336㎞, 최대폭은 960㎞이며 인접한 섬들을 포함해
총면적은 약 75만 5,000㎢(한반도의 3.5배)이다. 말레이령인 사바주와 사라와크의 넓이가
한반도와 비슷하고 사바주는 제주도를 제외한 남한과 비슷한 넓이이다.
북동쪽 끝에는 키나발루 산(4,095m)을 최고봉으로 하는 이란산맥과 카푸아스산맥이
척추 모양으로 섬을 가로질러 1,000km이상의 긴 대간을 이루어 말레지아령과
인도네시아령과의 구분이 되고 있으며 크로케르, 니에우엔후이스, 물레르 산맥등이
지맥으로 발달해 있다.
보르네오의 킬리만탄 지역에는 항행이 가능한 강들이 흐르며, 무역과 경제활동의
대부분이 이들 강을 통해 이루어진다. 북쪽으로 갈수록 섬은 좁아지고 항행길이가
160㎞ 또는 그 정도도 안 되는 강들도 점차 드물어진다.
이런 환경 때문에 보르네오 북부내륙은 최근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덜 알려진 곳으로 남아 있다.
기후는 두 계절이 아주 확실히 구분되는 덥고 습한 적도성 기후로 10~3월은
몬순 기후(란다스)이며 나머지 기간은 비교적 건조하고 더운 날씨가 이어지는 여름(테도)이다.
연평균강우량은 3,800㎜이다.
보르네오의 식물과 동물 분포는 매우 다양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꽃인
라플레시아와 오랑우탄·긴팔원숭이·대만표범·코끼리·코뿔소 등이
대표적인 동·식물류이며 곤충류도 많이 있다.
인구밀도는 약 14명/㎢(1984)으로 아시아 평균에 비해 희박한 편이며
인구의 3/4이 인도네시아 영토에 거주하고 있다.
인종 구성은 다양해 비(非)이슬람교도인 다야크족, 이슬람말레이인,
중국인, 소수 유럽인 등을 포함한다.
상업성 있는 광물자원은 빈약하며 19세기초 이래 금·다이아몬드·안티몬·수은·
석고·철광석 등이 개인업자들에 의해 소량 생산되고 있다.
섬 북부해안 대륙붕에 12개 이상의 유전이 있으며,
브루나이의 탄중발릭파판에도 유전이 있다.
아타카 지역을 중심으로 동해안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아타카 남서쪽의
다투 곶 근방에서는 1958년 이래 보크사이트가 개발되고 있다.
섬 남서부에서는 석탄이 채광된다.
보르네오의 토양은 몇몇 비옥한 화산지역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척박한 편이다.
주식인 쌀의 부족을 옥수수·카사바·오이·호박으로 보충한다. 고무가 원주민들의
소규모 농장에서 생산되며 후추는 중국인 거주자들에 의해 대규모로 재배된다.
최근에는 사리수 종자와 치클이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해안지역에서는 사고야자·코프라·커치(맹그로브 나무껍질에서 추출되는 염료)·
해산물 등을 수출한다. 담배가 고지대에서 재배되어 저지대로 거래되며
커피·코코아·삼의 실험재배도 이루어진다.
보르네오는 150년경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학 안내 Guide to Geography〉에
처음으로 언급되었다. 로마인들과 거래할 때 썼던 구슬과 인도 자바인들의
선사시대 유물들이 발견됨으로써 BC 2~3세기경 이 지역에 찬란한 문명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쿠타이에서 발견된 5세기 초기의 것으로 보이는
3개의 거친 머릿돌에는 브라만 사제에게 주었던 선물이 기록되어 있어
칼리만탄 동부에 힌두 왕국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굽타 양식의 브라만 상(像)과 불상이 카푸아스와 칼리만탄 서부의 강유역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그뒤 자바 동부 마자파히트 제국(1293경~1520)의 봉건제후들이 칼리만탄을
통치했으며 16세기초에는 이슬람교가 유입되면서 반자르마신·삼바스·수카다나·란다크를
비롯하여 많은 이슬람 왕국이 세워졌다. 수카다나의 통치자들은
자바의 이슬람 마타람 왕국에 충성을 바쳤다.
보르네오는 14세기 동남 아시아를 지나간 여행자들에 의해 유럽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최초의 유럽인 방문객으로 기록되어 있는 인물은 프란체스코회 수사인 오도릭 다 포르데노네로서 1330년 인도에서 중국으로 가는 도중에 탈라마심을 방문했다.
스페인인들에 이어 포르투갈인들이 16세기초 무역연락소를 세워 무역을
독점했으나 17세기초 마타람 왕국을 대신해 이슬람 왕국들의 내정을 간섭하기
시작한 네덜란드의 개입으로 이들의 독점무역은 무너지게 되었다.
남중국해와 술루 해를 따라 필리핀 제도 쪽으로 나 있는 길고 좁은 해안은
종종 술루 해적들의 습격을 받았다. 영국의 세력이 커짐에 따라 네덜란드의
세력은 점점 줄어들었는데 이런 현상은 특히 북부와 서부 지방에서 심했다.
한때 섬 전체를 지배했던 브루나이 술탄국은 19세기경에는
북부와 북서 지역만을 통치하게 되었으며,
사라와크는 남서쪽에서 분리하여 독립왕국이 되었다가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북동쪽에서는 영국회사가 북보르네오(지금의 사바)를 차지하여 무역을 진전시키고
해적행위를 막고자 했으나 1912년까지는 명확히 경계를 나누지 못했다.
사라와크와 사바를 잃음으로써 브루나이는 매우 약화되어 마침내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중인 1941~42년 일본인들의 침략으로 이름뿐이던
영국·네덜란드 군대가 철수했으나 1945년 재탈환되었다.
1946년 7월 사라와크와 북보르네오가 영국 직할식민지로 되었으며,
네덜란드령 보르네오에서는 강한 민족주의가 대두해 인도네시아인들과
통치를 재개하려던 네덜란드군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게 되었다.
1949년 네덜란드령 보르네오의 주권이 인도네시아로 넘어갔고
다음해 새 헌법에 의해 인도네시아 공화국의 영토로 선언되었다.
사바와 사라와크는 영국정부가 주권행사를 포기한
1963년 곧 말레이시아 연방에 편입되었다. 이에 대한 인도네시아인들의 적대감이
국경을 넘나드는 게릴라 습격 형태로 표출되었으나
1966년 협정을 맺으면서 게릴라전은 종식되었다.
브루나이는 일본인들이 점령했던 기간을 제외하면 1888~1983년 영국의
보호 아래 있었으며 1984년 1월 완전히 독립했다.
1.등산준비
일반 아마츄어들이 키나발루산을 등산한다고 결심하는데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일본 북알프스(3,190m)나 후지산(3,776m) 대만 옥산(3,952m)을 등산한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높이가 4,095m로 4,000m가 넘는 높이에다가 입산조건이 까다로와서 아직은
일반인들게게 널리 알려지지 못한 점도 있고 거리도 멀어서 최소 5일의 여정을 잡아야
된다는 시간상의 부담도 있다. 따라서 여행 경비도 비싼 편이다.
그래도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제일 높은 산인데다가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라서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가보고 싶어하는 산임에는 틀림없다.
내가 등산팀에 합류하기로 최종 결심을 한 것이 5월초였는데 주위에서
모두가 우려를 한 것을 물리치고 어렵게 결심을 하였다.
결심을 하고는 훈련을 시작했는데 평소에 워낙 운동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해서
훈련을 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탄천변 걷기와 아파트 계단 오르기를 이틀에 한번 꼴로 실시했는데
사는 곳이 22층이라서 22층까지 한번에 두 계단씩 속보로 걸어 올라오다가
힘들면 한계단씩 걸어 올랐다.
7월 말쯤 해서 20층까지 두 계단으로 오르는데 무리가 없게 되어서 어느정도
자신감을 가질 수가 있었다. 아울러 오르고 난 뒤에 숨쉬기가 평상시로 돌아오는데
걸리는 시간도 짧아져서 심호흡 10번쯤 하고 나면 진정이 되었다.
다음으로 조사 한 것이 다녀온 사람들이 작성한 정보들이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잘 정리된 자료를 발견하여 그것을 근거로 준비물을 챙기게 되었다.
조사한 것을 근거로 이번 여정을 나누면 6단계의 구분이 만들어 졌다.
1> 집에서 코타키나발루 리조트까지
2> 리조트에서 키나발루산 베이스캠프인 산장까지
3> 산장에서 정상을 등정하고 산장으로 되돌아 오기까지
4> 산장에서 하산하여 리조트로 돌아오기까지
5> 섬에 가서 해수욕 하기
6> 해수욕후 귀국비행기타기
이렇게 6단계로 나누고 신발과 모자와 옷가지들과 배낭을 검토했는데
우선 배낭중 주배낭은 40L짜리 기존배낭이 있어 쉽게 결정이 됬는데
정상공격용 보조배낭이 문제였다.
크기는 15~20L정도 되는 것이 좋겠는데 마땅한 것이 없어 전문숍에 나가보니
구조가 좋은 것은 가격이 엄청 비싸다.
큰 배낭보다 더 비싸서 대안을 생각하던 중에 아이가 보이스카웃할 때
상으로 지급한 15L가필드배낭이 후보로 등장을 했는데 구조나 크기가
아주 이상적이라 보조배낭으로 확정을 하였다.
그 다음 비행기에 짐을 부칠때 스틱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아서
배낭안에 들어가는 4단 스틱을 한세트 새로 구입했다.
그리고 정상을 새벽 두시에 오르기 시작하기 때문에 헤드램프가 중요하여
믿을 수 있는 것으로 새로 구입을 하였고 등산 이외의 기간에 신을
다용도 샌들을 가볍고 편리한 것으로 구입하였다.
추가로 구입한 옷가지들은 여름용 긴팔기능성티 2벌, 여름용 생활방수
등산바지 하나, 여름용 조끼 하나, 비올때 사용할 예비모자 하나, 여름용장갑 하나,
울양말 두켤레, 우의 한벌, 여름용장갑 등이다.
등산바지는 오를때 하나, 정상공격과 내려올 때 하나 두벌이면 되겠는데
문제는 정상공격시 겨울에 준하는 옷차림이 필요하여 고심끝에 겨울등산용
기능성 내의를 준비했다. 겨울용티와 방풍잠바내피와 방풍잠바를 준비하여
추위에 대비했다.
아울러 간이 바라클라바와 얇은 울장갑을 준비하여 정상공격용 장비준비를 마쳤다.
장비준비가 끝났으니 이제는 행동에 수반되는 것들을 준비해야 되는데
이를 위한 몇가지 행동지침이 조사되었다.
1> 목마르기 전에 마시되 이온음료를 마셔라.
2> 허기지기 전에 먹되 행동식을 준비해라. 다른 사람들이 기다려 주지 않기 때문에
서서 간편하게 섭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배낭외부에 보관하여 손쉽게 꺼낼
수가 있어야 한다. 탈진하여 쓰러진 사람의 배낭안에 항상 먹을 것이 있었다는 통계가 있다.
3> 지치기 전에 쉬어라.
30분마다 쉬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숨이 턱에 차면 무조건 쉬어라.
4> 움직이면 옷을 벗고 정지하면 옷을 입어라.
- 한기를 느끼기 전에 옷을 입어야 하고 열기를 느끼기 전에 옷을 벗어라.
5> 보폭은 짧게하고 천천히 걸어라. 먼 길을 가려면 절대로 서둘면 안된다.
훈련은 보폭을 크게해서 하나 실제에는 보폭을 작게해야 쉽게 지치지를 않는다.
6> 우의는 필히 외부에 수납하여 입고 벗고 보관하기가 용이하게 해라.
-그래서 배낭의 구조가 중요하다.
7> 스틱은 반드시 두개를 사용한다.
양손으로 쥐고 네발로 걷는 기분으로 걸어야 안정되고 다리에 부담이 준다.
8> 방수등산화는 필수이고, 긴바지와 긴티를 입어라. 긴바지를 입어야 우중등산시에
등산화속으로 물이 들어가는 것을 방지할 수가 있다. 우중등산을 대비하여 목없는
등산화는 피해야 한다. 긴티를 입어야 팔이 보호되고 행동이 편하다.
위와 같은 지침에 의하여 준비를 하였는데 우선 이온음료는
포카리스웨트 분말을 1L용 5봉을 준비하였다.
첫날 2개, 정상공격시 하나, 하산시 두개로 정하고 500cc짜리 패트명을 두개 준비했다.
긴 코스는 두병 다 물을 채우고 짧은 코스는 한병만 물을 채우면 되므로
큰용기보다는 작은 용기 두개가 편리할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다음으로 행동식을 준비했는데 우선 마라톤선수들이 애용하는
짜서먹는 영양보충제를 5개를 샀다.
첫날 두개, 정상 공격시 두개, 하산시 하나를 기준했다.
이 외에 체력강화용 분말음료를 사서 첫날 4회 정상 공격시 2회 하산시 2회
먹을 것을 기준으로 준비하고 타는 전용용기도 하나 준비했다.
미수가루의 단점인 타기 어려운 점이 개선된 음료이다.
그리고 예비로 양갱을 5개 준비했는데 경험자들의 이야기가 쵸코렛보다
양갱이 더 효과적이라고 한다.
그 외에 종합비타민과 사탕을 약간 준비해서 먹는 것 준비를 마쳤다.
인터넷으로 모든 구매가 해결되니 참으로 편리한 세상이다.
높은 산들의 특징은 비가 수시로 내리는 것이므로 우의를 효과적으로
입고 벗는 연습이 필수이다. 배낭을 메고 그 위로 우의를 걸치는 연습을
몇 번하여 그런대로 익숙해 졌다. 배낭카바를 사용하고 우의를 별도로 입으면
등으로 비가 새어들어 배낭이 안에서 젖어든다.
그래서 많은 비가 내릴 때는 배낭을 메고 그 위로 우의를 씌우는 것이 유리하다.
우의 맨 위 단추만 채우고 소매는 입지말고 앞에서 묶으면 답답하지도 않고
아주 편하여 오래 빗속을 걸어도 불편함이나 답답함이 없다.
모든 준비를 갖추고 배낭을 싸기 시직했는데 모든 짐이 40L배낭에 모두 들어가야
추가 가방을 안가져 가도 되므로 크게 3종류로 분류하여 배낭을 꾸렸는데
등산화 들어갈 자리가 없다.
그래서 리조트 보관용과 산장까지의 등산용은 배낭에 넣고 정상공격용 옷들은
소형배낭에 넣어서 기내에 휴대하기로 하니 여유있게 해결되었다.
2. 여정의 시작
분당 미금역에서 7시 5분발 인천공항행 버스를 타고 공항에 내리니 8시 30분이다.
모두 만나서 수속을 마치고 인천공항을 11시에 떠나서 현지시간 15시 10분에
코타키나발루 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수속을 간단히 마치고 공항을 나오니
현란한 남국의 하늘이 가슴을 설레이게 만든다.
공항의 하늘
리조트 가는 길의 하늘
공항에서 버스로 30여분 달려서 수트라하버리조트에 도착하여
방을 배정받고 체크인을 하였다. 저녁식사까지 시간여유가 있어서 리조트를
한바퀴 돌아 보고 있는데 스콜이 쏟아진다. 서쪽 바다 위로 붉게 물든 구름사이로
석양이 넘어가고 있는데 리조트 근방에는 스콜이 내리고 있다.
테라스 지붕 밑에서 석양을 찍고 있으니 사진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든다.
오늘 따라 석양이 유난히 아름답다.
맑은 공기 적당히 피어 오르는 구름들과 남국의 바다가 어우러진 석양풍경은
이곳 수트라하버 리조트의 제 일경이라 할 것이다.
열심히 사진을 찍었는데 빗방울 흔적이나 지붕에서 떨어지는 낙수물 흔적이 같이
찍혀서 분위기를 모르는 사람이 보면 잘 못된 사진으로 오해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멋진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리조트석양
수트라하버 리조트는 코타키나발루의 대표적인 항구를 개발하여
그 주위에 조성된 리조트로 그 규모가 대단할 뿐더러 시설이 최고급으로
되어 있어며 특급호텔 보다도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무엇하나 불편함이 없게 작은 것에 까지 세심하게 준비하고 돌본 정성이 돋보인다.
위치도 편리한 곳이지만 운영 자체가 깔끔하고 매끄러우며 이곳 원주민 특유의
순박함까지 느낄 수가 있게 배려되어 있다.
그래서 머물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곳이고 다시 찾고 싶어지는 그런 곳이다.
세계 어디에 내어 놓아도 손색이 없는 완벽한 리조트라고 자신있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참으로 멋진 곳이다.
순수관광의 모토인 먹고, 놀고, 즐기고, 쉴 수 있는 곳을 만든다는 원칙에 충실한
그런 곳이 틀림없다. 순박미까지 느끼게 만드는 원주민 종업원들의 평화로운
근무태도는 모든 근심을 없애버리는 효과를 주어 안락함을 더욱 느끼게 만든다.
3. 등산 첫쨋날 - 리조트에서 산장까지
아침에 일어나서 식사를 하러 복도에 나가니 멀리 키나발루 산이 보인다고 소리친다.
카메라를 꺼내어 찍는데 벌써 구름에 가려지기 시작한다.
카메라 가지러 방에 갔다 오면 이미 구름속에 사라진 뒤라서 볼 수가 없을 정도로
잠깐만 그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식사는 최고수준이다. 야외에 까지 연결된 식당에서 충분한 식사를 하고
키나발루산으로 배낭을 메고 여분의 짐은 리조트에 맡기고 여권을 챙기고
버스에 오르니 7시 30분이다.
산길을 따라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키나발루국립공원 관리사무소가
있는곳에 도착하니 10시가 되었다.
직선 거리로는 55km이고, 도로거리로는 85km정도인데 2시간 반이 걸린 셈이다.
이곳의 고도가 1,564m인데 분위기가 상쾌하다.
이곳에서 입산을 위한 제반 수속을 밟는데 한시간 정도가 걸렸다.
주배낭을 포터에 맡기고 정상공격용 보조배낭에 필요한 것만 챙겨넣고 팀폰게이트로 향한다.
팀폰게이트로 가는 길 저 앞의 능선을 따라 오른다고 한다.
휴게소에서 보이는 키나발루산
11시 5분에 이곳에 비치된 전용차량 -25인승 버스 한대, 짚프차 한대- 을
이용하여 팀폰게이트로 이동하였다.
15분정도 걸려서 팀폰게이트에 도착하여 입산 수속을 밟고 개인별 허가명패를
나누어 주어 목에 걸고 11시 25분에 해발고도 1,866m에 있는 팀폰게이트를 통과하였다.
한 사람씩 명단을 체크해가면서 확인을 한다.
게이트를 나서자 마자 내리막길이 나타난다.
이 길은 카슨폭포가 있는 계곡까지 10분쯤 내려갔다가 본격적으로 오르막길이 나오고
다시는 내리막길이 없는 급경사의 등로가 연속된다.
여기서 베이스캠프인 산장까지는 거리로는 6.0km이고 고
도로는 3,323m까지 1,434m를 올라야 한다.
평균 1,000m고도를 오르는 길이 4.1km인 셈이다.
예정 시간이 6시간인데 중간에 식사를 하므로 조금은 유동적이다.
출발시간이 늦어진 관계로 어두워지기 전에 도착하려면 여유가 없다.
다행인 것은 산장까지 가는 중간중간에 7개의 쉼터가 30분 ~ 40분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어서 식수도 공급받고, 쉬어 갈 수도 있으며 화장실도 구비되어 있다.
무인 쉼터이지만 사용에 불편이 없을 정도로 잘 되어 있다.
제 2쉼터를 지나니 비가 내린다. 이 비는 산장에 거의 도착할때까지
5시간 정도 계속되어서 잠깐씩 그칠 때를 제외하면 완전한 우중등산이다.
빗줄기가 굵어서 완벽한 준비가 안되어 있으면 고생이 심할 수 밖에 없다.
처음에는 제 5쉼터에서 중식을 할 예정이었으나 시간이 너무 늦어 허기가
심해지므로 제 3쉼터에서 중식을 하였다.
쉼터 중에 제 5쉼터인 라양라양쉼터가 규모게 제일 커서 편리한데
제 3쉼터는 협소하여 교대로 먹어야 될 정도이다.
비가 계속 내리므로 쉼터 막사안에서 식사를 해야 되어서 더 붐빈다.
도시락은 그런대로 훌륭한 편이다.
중국이나 일본의 도시락에 비하면 먹기가 훤씬 좋다.
오르는 길은 숲속으로 난 돌길이나 계단 길을 한 줄로 계속 오르는 것이므로
전망도 없고 볼 것도 없고 한 눈을 팔 수도 없다.
더우기 비까지 계속 내리니 사진찍을 일도 없어서 열심히 그저 오르는 것만 계속된다.
쉼터가 없다면 아주 고생스러운 등로가 될 것이 틀림없다.
이렇게 적당한 간격으로 쉼터가 개설된 것은 영국인의 지혜일 것이라 짐작한다.
이 산을 처음으로 오르고 등로를 개척한 사람이 영국인이었으니 치밀한 준비는
그들의 특징이 되어 장점화한 것을 그들이 지배했던 곳곳에서 느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 등로의 가장 큰 특징은 계단과 계단의 높이가 높고(건물계단 두계단 높이),
돌과 돌 사이의 높이와 거리가 길어서 보폭이 크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경사길 대부분이 그런 길이라 쉽게 지치기 알맞은 등로이다.
아파트 두 계단씩 오르기 훈련이 빛을 발하는 그런 길이다.
그래서 키가 작은 사람은 상대적으로 더 빨리 지친다.
제1쉼터 도착이 11:50, 5분간 쉬고 출발하여 제2 쉼터에 도착하니 12시 30분이다.
중식을 제 3쉼터에서 하기로 하여 행동식을 간단히 하고 출발하였다.
제 3쉼터(2,225m)에 도착하니13시05분이다.
자리잡고 식사를 하고 13시 25분에 출발을 하였는데 비는 계속 내리는데
등로는 급경사의 연속이다.
식후의 등로로는 최악의 코스인듯하다.
힘들게 40분여를 올라 제 4쉼터(2,651m)에 도착하니 14시 05분이다.
잠간동안 숨을 돌리고 제 5쉼터로 향한다.
제 5쉼터(2,896m)에 도착하니 14시 50분인데 제 5쉼터는 산장급으로 규모가 상당히 크다.
여기서 행동식을 충분히 먹고 여유를 회복하여 제 6쉼터로 출발하였다.
도중에 메실라우게이트에서 올라오는 길과 합류되는 곳을 지났는데
기대와는 달리 좁고 험한 산길의 교차점일 뿐이었다.
키나발루산을 오르는 길은 팀폰게이트를 통하는 길과 메실라우게이트를 통하는 길
두 갈래가 있으나 메실라우게이트는 열대우림 트래킹을 위한 코스로 게이트 밑에 있는
메실라우 리조트에 숙박한 사람에 한해서 입산을 허락하기 때문에 다른 곳에 숙소를
정한 사람들은 입산이 불가능하다. 다만 하산은 가능하여 하산을 메실라우게이트로 하기도 한다.
그러나 메실라우 게이트에서 오르는 길은 열대우림 트래킹 목적으로 설치되어 있어서
출렁다리도 있고 계곡으로 내려갔다 오르기를 반복하기도 하여 2시간 정도 시간이
더 걸린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정상등산이 목적이라면 시간낭비가 될
가능성이 커서 피하는 것이 좋다.
제 6쉼터(2,950m)에 도착하니 5시 30분이다. 전망이 제법 트이고 지치기도 하여 20여분을 쉬고
제 7 쉼터로 출발 하였다.
마지막 쉼터인 제 7 쉼터( 3,100m)에 도착하니 16시 20분이다.
모두들 지친 모습이 역력해 진다.
나무들이 완전히 다른 모습들을 하고 있다. 10분을 휴식하고 마지막 구간을
오르기 시작하여 20여분을 힘들게 오르니 눈앞에 첫번째 산장이 보인다.
베이스캠프인 라반라따산장으로 계속 올라가니 더디어 눈앞이 환하게 터지면서
커다란 라반라따산장(3,273m)이 보인다.
산장 바로 밑에는 헬기장이 크게 조성되어 있어서 주위를 돌면서 키나발루딸기
사진도 찍고 산장 사진도 찍은 후에 17시경에 산장에 도착하니 식사부터 하란다.
이곳의 유일한 식당은 부페식으로 되어 있는데 식단은 아메리칸 브렉프스트부페와
비슷하여 부담없이 먹을 수가 있었다.
여기에 올라온 사람은 누구나 자유로이 식사를 할 수가 있다.
등산로입구에서 일일이 체크를 해서인지 아무런 제약이 없다.
그러므로 어떤 산장을 예약했던지 일단 이곳에 집결하여 저녁식사를 한 후에
자기가 머무는 곳으로 가야한다.
특히 단체인 경우는 필히 여기서 일단 모였다가 숙소를 배정받아야 불편함이 없다.
식사를 하고 맡겼던 배낭을 찾아 나오니 숙소는 여기서 10여분을 더 올라가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군팅산장이라고 가이드가 안내한다.
고도로 50여m를 오르는 것인데 경사가 심하여 무척 힘든다.
20여분이 걸려서 산장에 도착하여 방을 배정 받았는데 4인실로 2층침대로 되어있다.
먼저 들어간 관계로 1층침대에 자리를 선점하고 짐을 풀었는데
샤워시설이 되어 있다고 하여 간이 샤워장에 가서 샤워를 했는데
더운물이 거의 나오지를 않아서 추위에 온몸이 떨린다.
벗은 몸으로 방으로 뛰어오니 누군가가 용감하다고 소리친다.
방에 와서 정상공격용으로 준비해 간 내의를 입고 바지도 입고
잠바내피도 입으니 추위가 가신다.
담요가 있지만 난방이 안되는 곳이라 옷이라도 두둑이 입는 수 밖에 없다.
그래도 단독침대라서 모든 것이 편리하다. 한 수준 높은 산장시설이다.
4. 등산 두쨋날 - 산장에서 정상등정 후 하산하여 리조트 까지
서둘러 취침을 하였는데도 밤 9시가 넘었다.
새벽 한시에 일어나서 컵라면 먹고 2시반경 정상으로 출발한다고 한다.
자리에 누웠으나 깊은 잠이 들지를 않는다.
긴장탓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래도 곤하게 잘 것 같은 기분인데도 계속 깬다.
알람소리에 일어나니 2층에 자던 친구가 한시란다.
바로 일어나서 불을 켜고 라면을 준비하고 있는데 한국시간 한시라고 미안해 한다.
여기가 한시간이 늦으니 12시에 알람이 울린 것이다.
좀더 자기도 그렇고 하여 부엌으로 가니 전기렌지와 압력주전자가 잘 갖추어져 있다.
물을 끓여 사발라면을 먹고 나니 다른 사람들도 하나 둘 나오기 시작한다.
비행기에서 식사시에 준 김치를 가져와서 라면과 먹으니 맛이 어울린다.
산장에서 정상까지는 고도로 772m(라반라따산장에서는 822m),
거리로 2.7km를 올라야 한다.
3,300m 가 넘는 고도에서 급경사길을 772m높이나 올라야 되므로
단단히 각오를 하고 임해야 한다.
기온이 초겨울날씨처럼 싸늘하기 때문에 한기에 대비를 해야만 하는데
다행히 이날은 바람이 불지 않아서 방풍잠바는 배낭속에 넣고 출발할 수가 있어 좋았다.
더우기 3,668m지점에 있는 사얏사얏산장에만 물이 있고 그 위로는
물이 없는 바위산이기 때문에 식수도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1L용 포카리스웨트 분말을 500cc병 두개에 나누어 담고 하나에만 물을 채웠다.
나머지 하나는 사얏사얏 산장에 가서 물을 담기로 한다.
좀더 자기도 그렇고 하여 부엌으로 가니 전기렌지와 압력주전자가 잘 갖추어져 있다.
물을 끓여 사발라면을 먹고 나니 다른 사람들도 하나 둘 나오기 시작한다.
등산준비를 마치고 큰 배낭은 산장에 맡기고 2시 반쯤 밖으로 나오니
다른 숙소에 잤던 사람들이 우리 산장 밑에 도착하여 모이고 있다.
군팅산장이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고 이 산장 바로 옆으로 등로가 있어서
출발은 한결 편한 셈이다.
함께 모여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2시 40분경 산장을 출발하였다.
밝고 멀리 나가는 헤드랜턴이 기분을 좋게 한다.
등로는 시작부터 급경사 바위길 아니면 계단길이다.
사전에 알고는 있었지만 생각보다 훨씬 경사가 심하고 길게 연속되어
당황스럽기 까지 하였는데 힘든 것은 모두가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이런 길을 50여분 올라야 사얏사얏산장에 도착한다고 하니 모두들 숙연해진다.
어렵게 사얏사얏산장(해발 3,668m)에 3시 30분경 도착하니
게이트앞에 물이 나온다. 물병에 물을 채우고 게이트로 들어서니
명찰과 명단을 대비하며 한사람씩 확인을 한다.
여기서 부터 본격적인 바위릿지 길이 2시간여 계속된다니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는다.
다행인 것은 경사가 급경사는 아니고 바위도 전혀 미끄럽지가 않다.
물이 흐른 곳도 미끄럽지는 않아서 안심하고 걸을 수가 있다.
길 표시는 바닥에 밧줄을 매어두어 방향만 알 수 있게 해 두었다.
그 밧줄만 따라서 계속 오르다 보니 한없이 계속되는 바위길이 지치게 만든다.
숨도 자주 가파와서 멈추어 서서 쉬면서 숨을 고르고 있으면
원주민 가이드가 다가와서 묻는다. Are you OK?
멈출 때마다 묻는 것이 위안이 된다.
원주민 가이드의 이러한 밀착안내가 절실히 필요함을 느끼게 해 준다.
내 뒤로 5m정도 처져서 꾸준히 따라오는 가이드가 고맙게 느껴진다.
한 시간 쯤 지나니 발걸음이 무거워 지면서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한다.
그러자 가이드의 주문이 달라진다. Never give up~! 이 추가 되었다.
Are you OK? 와 Never give up~! 두 마디를 번갈아 들으며 오르는데도
힘도 더 들고 숨도 더 가파온다.
그러자 가이드가 자기를 따라 걸어 보란다.
직선으로 계속 올라가는 밧줄만 일직선으로 따라 가지 말고
지그재그로 걸어서 오르란다.
시키는 대로 하니 훨씬 쉬운 것도 같고 지루하지도 않다.
그렇게 열심히 2시간여를 쉬어가며 오르는데 가이드가 정상이 보인다고 한다.
헤드램프 빛만 따라 걸었으니 하늘이 보이는 지도 모르다가 고개를 들고 보니
저 멀리 급경사로 솟아 오른 산봉우리 정상에 불빛이 반짝인다.
반갑기도 하지만 그 경사진 정상을 보니 도저히 올라갈 자신이 없어진다.
그래도 언저리라도 가자는 마음으로 계속 오르니
어느듯 정상경사부의 시작부에 다달았다.
아예 정상에 오르지 말고 여기서 일출을 보고 가고픈 마음이 강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