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놈펜에서 13킬로 떨어진 청아익(choeung ek)은 원래 롱간나무가 자라던 아주 외지고 평화롭던 들판이면서 중국인들의 공동묘지였던 곳이란다. 묘지의 흔적이 아직도 군데군데 남아있다.


하지만 1975년부터 시작된 크메르 루즈 (Khmer Rouge)정권 시절엔 프놈펜의 토울슬랭 감옥(Toul Sleng Prison)에 감금된 채 잔인한 고문에 시달리던 죄없는 캄보디아 국민들을 밤마다 트럭에 실어 나른 다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잔인한 방법으로 집단학살을 하고 매몰한 장소로 바뀐 곳이기도 하다.

남자, 여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무차별하게 벌어지던 살육은 1979년까지 이어졌고 그 때문에 목숨을 잃은 숫자는 이 곳에서만 17000명에 달했으며 지구상에서 가장 잔인한 킬링필드의 현장이 되었단다. 현재는 그들을 추모하는 기념관으로 남아 사람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나는 호텔에 부탁해 택시드라이버를 소개 받고는 그와 함께 청아익으로 가기로 했다. 복잡한 도시를 빠져나오자 길은 곧바로 어지럽고 먼지 날리는 외곽으로 바뀐다. 햇볕이 내리쬐는 좁은 도로 양쪽으로는 허접한 가게들이 즐비하고 자동차와 오토바이들이 뒤엉켜 무법천지같은 장면이 펼쳐진다.

그리곤 푸르른 들판이 나오고 제법 커다란 맥주공장이 보이더니 차는 왼쪽의 샛 길로 턴을 한다. 거의 다 와간다는 운전수 양반은 폴포트가 3년동안 셀수도 없이 많은 무고한 양민들을 학살했다며 힘 없이 이야기를 해준다.



청아익 집단학살 기념관은 어찌나 조용하고 평화로운지 이 넓은 들판에 내딛는 발걸음조차 조심스러워진다. 입구에서 표를 사면 각나라 언어로 된 녹음기를 빌려주는데 이어폰을 꽂고 설명을 듣다보면 저절로 숙연해져서 아무런 말도 나오질 않는다.

앉거나 걷거나 혹은 제자리에 서서 담담하게 흘러나오는 증언과 설명을 들으며 당시의 아픔을 상상해 볼뿐이다. 가끔씩 들리는건 오직 새의 지저귀는 소리뿐.




450명의 시신이 묻혔었다는 한 웅덩이에서는 아직도 유골 조각이 나오고 있기에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지않도록 대나무 기둥으로 빙 둘러서 잘 보존해 놓았다. 그런데 당시에 발굴된 유골을 모아놓은 사진 판넬 위로 도마뱀 한마리가 꼼작않고 한참을 붙어있다. 쉽게 떠나지 못하는걸 보니 혹시 사진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는 망자의 혼이라도 되는걸까? 정말 그런걸까? 괜한 상상력이 발동을 건다.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자들은 아무 말이 없는데 세월은 이만큼 흘러 모든것을 지나간 과거로 남겨놓아 버렸다. 이제는 대나무 기둥 하나하나마다 색색의 실을 묶어놓아 아무 죄없이 사라져 가야했던 이들의 명복을 비는 모습이 그저 안타깝다. 하지만 축축한 웅덩이 옆에서도 푸르른 풀은 희망이 되어 새롭게 자라나고 이름모를 여행자들이 남기고간 색 실과 노잣돈이 다시는 그런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기원하는듯 보인다.


한쪽에는 엄청 커다란 보리수나무가 보인다. 이름하여 마술의 나무(magic tree)! 어떤 마술인가하면 음악소리가 크게 나는 스피커를 매달아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며 절규하던 소리가 주변 마을로 퍼져나가지 않도록 만든 것이란다.

지금은 전세계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이 평화롭기 그지없는 벌판에서 이어폰을 통해 나오는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진심으로 그들의 명복을 빌어준다.


하지만 집단 매몰이 이루어졌던 웅덩이는 발굴작업도 마쳤고 모든것이 끝나 보이지만 아직도 비만 오면 진흙더미 속에서 새로운 뼛조각들이 새롭게 나오고 있단다. 얼마나 많으면 이렇게 끝이없이 나온단 말인가? 하여 그런 조각들만 담아두는 투명상자가 있다. 망자 모두가 지금 캄보디아인들의 가족이요 친구였을테니 당연히 세심한 관리를 하겠지? 아주 작은 조각 하나도 얼마나 소중한 것일까?

발굴된 유골을 보관하기 위해 지었다는 스투파 안에는 나이와 성별에 따라 분류된 유골들이 하나 가득이다. 그런데 어쩌면 유골 하나하나의 모습이 저리도 소박하면서도 얌전한지 망자들의 선한 기운이 그대로 전달되는 듯하다. 먹먹했던 자신들의 주검을 이렇게나마 표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듯한 겸손함.



지금은 한가하게 해먹에서 낮잠을 청하고 어린아이가 풍선을 가지고 놀고있는 이 곳은 대체 어디란 말이가?


돌아오는 길에 보이던 제법 멀쩡한 맥주공장은 캄보디아 자체로 만든 것이란다. 그건 마치 이제 캄보디아는 스스로 일어서고 있다는걸 말하는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헬멧도 안 쓰고 오토바이를 타도 아무 상관없고 오히려 경찰에게 걸리면 1~2달러로 무사 통과할 정도로 뇌물이 성하니 지금의 정권도 아직 갈 길이 멀단다. 나같은 여행자에게 차분하고 솔직하게 이야기 하는 캄보디아 운전수 양반이 웬지 맘에 든다. 그에게 내일도 호텔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한다.

때때로 이런 역사의 현장을 직접 다녀온 다음엔 아직 모르고있는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 것같은 생각때문에 내가 보고 들은 것에 대해 마치 보고서라도 작성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게 된다. 다시는 이런 바보같고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