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손의 사명
오래 전에 평소 궁금하던 후배의 연락을 받았다. 과거 육사에서 직접 훈육을 했는데 그 당시에도 언행이 방정하고 매우 똑똑하여 이후 관심을 가지고 지냈다. 다만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총명한 인상이 강열하게 각인되어 있던 차였다.
더구나 그의 선친께서는 역시 군 출신으로 남해에서 여러 차례 국회의원을 하셨고, 특히 그의 조부는 4.3 제주 항쟁의 중심에 섰던 「박 진경」 대령이었다. 3 대에 걸쳐서 국가방위의 최선봉에서 복무했으니 그 빛나는 명예심과 위국헌신의 표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어 이를 높이 평가하였다. 덕분에 다른 사람들에 비해 비교적 일찍 비극적인 이 사건의 경과에 대한 관심을 갖고 지냈다.
당시 제주도에서 발생했던 4.3 사건은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을 위한 5.10 선거에 반대하는 남로당 세력에 의한 조직적인 반발로 발생했다. 이들이 동시다발로 폭동을 일으켜 경찰지서를 습격하고 양민들을 살해함에 따라 미군정의 통제로 진압작전을 펼쳤다. 또한 이를 진압하기 위해 출동한 연대장을 남로당과 연계된 내부 반란 세력이 암살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이유야 어찌 되었든지 다수의 주민들이 희생된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아직도 이에 대한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는데, 다양하고 복잡한 당시의 국내외적인 종합적인 분석을 통해 모두가 인정하는 진실이 규명되길 바란다. 이는 그 과정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영령들의 영혼을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군에서 장군으로 복무했던 그 후배가 이번에 매우 소중한 책을 출간하였다.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 관련 자료를 섭렵하여 바로 그의 조부이신 「박 진경 대령」의 해원(解寃)을 풀어낸 내용이다. 바로 『제주 4.3 사건과 박진경 대령』 이라는 책이다. 진즉 집필 소식을 듣고 있었는데 완성 소식을 접하였다. 어느 누구도 침묵하고 있는 시점에서 자칫 그냥 대중의 머릿속에 왜곡된 진실이 각인될 절체절명의 순간에 값진 기록을 남긴 것이다.
당시의 시대 상황에 대한 명확한 근거가 부족한 상태에서 「박 진경」대령은 철저히 악인으로 매도되었다. 객관적인 여러 사실들이 이를 증명하고도 남는다. 부임한 지 겨우 43일 만에 암살되었는데 어찌 그토록 수많은 양민 학살의 책임을 몽땅 그에게 전가시킬 수 있겠는가? 많은 사상자의 발생은 그의 사망 이후 상당 기간이 지난 후에 일어난 일이었다. 기초적인 사실 관계에 대한 평가 없이 일방적으로 부정적인 측면이 부각된 것이다. 무고한 양민을 보호하라는 선무작전지침은 나중에 월남전에서도 이를 활용했다는 「채 명신」 장군의 생생한 증언이 있다.
인간의 소박한 소망은 그의 후손이 번성하길 바란다. 단순한 논리로 후대의 기억에 남아 선양(宣揚)하길 바란다. 그러다보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후대를 잇기 위한 노력을 했는지 모른다. 물론 지금은 그런 생각들이 많이 퇴색하긴 했지만 유교적인 가부장 사회였던 우리는 아직도 그런 인식이 강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번 경우처럼 선대가 불명예스런 멍에를 안은 채 큰 오해를 받고 있는 쇠사슬을 끊어내는 노력을 한 경우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가문의 영광이기도 하지만 올바른 사회정의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사실 그대로를 바로 평가하지 않고 진실을 왜곡하여 확대하는 일은 절대 발생해서는 곤란하다. 적어도 지성인 이라면 이런 과정을 거쳐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사실을 밝혀야 한다. 어떤 특정한 편향된 시각은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는 독초와도 같은 것이다.
종종 역사적인 실체는 하나일진데 이의 해석은 다른 의견이 상존한다. 특히 당시 관련된 자료가 부족하거나 그 기록 자체의 왜곡이 빚은 결과이다. 더구나 단편적인 기록을 마치 전체의 상황을 그려낸 것으로 오해하도록 만드는 경우가 다수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안네의 일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으로 매우 좁은 시야에서 본 감상문이다. 이 자료가 당시의 나찌 치하의 절망적인 환경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참고자료는 될지언정 사료적 가치는 별개의 문제이다. 누란의 위기에 직면하여 적국과 대치한 최전선에서 최고 지휘관으로서 직면한 다양한 난관을 극복하려는 이 순신장군의 『난중일기』와는 그 역사적 가치가 다르다는 말이다.
이 책에서 제시한 자료에는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큰 다수의 증언이 있어 불필요한 오해를 불식시키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한 인사는 자신의 최초와는 다른 진술로 박 대령의 실상을 곡해하여 마치 강경 진압으로 사태가 악화된 것으로 인식토록 만들었다. 만시지탄이나 이번에 이를 바로 잡게 된 점은 천만다행이다.
간혹 견강부회(牽强附會)의 주장을 보면 안타깝다. 어떤 일에는 원인의 제공과 결과가 있는데 지엽적인 결과에 초점을 맞춰 본말을 전도하는 경우이다. 최초 일을 시작하게 만든 원인에 대한 규명은 뒤로 한 채 명령을 받고 시행한 지휘관에게 그 책임을 묻는 것은 곤란하다.
이 책은 다년 간 진상규명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여 매우 객관적인 시각에서 자료를 분석하고 오류를 제시하였다. 진즉 이런 활동이 있었다면 엉뚱한 누명을 쓴 채 가족들의 가슴을 멍들게 했던 세월도 없었을 것이다.
고인이 생존했더라면 이후 한국동란 중에 큰 공을 세우고 국가의 큰 재목이 되었을 것이다. 부분적으로 그의 죽음이 군 내의 공산세력의 척결에 기여한 점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모든 책임을 명을 받고 출동했던 지휘관에게 돌리는 것은 격동의 세월이었음을 감안하더라도 비겁하고 사리에 어긋나는 일이다.
재삼 진실 규명으로 선대의 명예를 회복하는 길을 밝히고, 새삼 자손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저자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다수가 후손의 무지로 자료가 사장되고 본의마저 전혀 상반된 기록으로 변질되는 일은 매우 우려스런 일이다. 우리 모두 현재의 첨예한 시각으로 과거사를 조명하는 좁은 시야의 판단을 지양하고 역사 앞에 진솔한 양심고백을 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일이 ‘후손의 사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 날 갈수록 선대의 공과를 바르게 조망하는 일에 무관심한 자손이 새겨야 할 일이다.
(2024.8.13.작성/10.2.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