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고등학교까지 선생님과 부모님으로부텨 격려를 받아본 적이 거의 없어요. 늘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들었고 그걸 채우려고 애를 썼어요." 오늘 수업에서 한 학생이 이 말을 하자 다른 학생들도 모두 공감했다.
"저는 정답이 없는 우리 수업이 너무 좋아요. 학교 다닐때는 언제나 틀리면 안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정답을 찾아야만 하는 분위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격려도 중요하지만 실패나 틀려도 괜찮다는 분위기가 필요하다며 또다른 학생이 한 말이다. 모두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왜 우리는 공교육에서 학생들의 주체적인 학습을 지켜볼 수 없을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학생들에게 말하지만 실상은 성공할때를 국한해서 실패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아닐까? 공교육의 목표가 대학 입시가 아니라 사고와 성찰을 하고 창의적인 활동이나 비판적 사고, 논리적 사고 등을 키우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실제 교육은 그와 정반대 위치에 있음을 예전에 만난 20대도 느꼈고 지금 만난 20대도 느낀다.
모두가 동일한 것을 배우고 동일한 시기에 동일하게 평가받는 것을 정의롭고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한 우리 교육은 개선되기 어려울 것이다. 앞으로도 해마다 외신 기자들이 수능날만 되면 하늘길이 일시적으로 멈춘다는 기사를 쓸 것이다. 전국 각지에서 경찰들이 아침에 수험생들을 실어나른다는 기사를 쓸 것이다.
누군가는 이런 현상이 자랑은 아니지만 굳이 창피한 일도 아니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나는 창피하고 부끄럽다. 대학 입시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이런 문화를 나는 싫어한다. 대학에 안 가는 사람들을 투명 인간 취급하는 이런 문화를 나는 거부한다.
공교육은 시민 교육이다. 학생들이 다양하고 창의적인 생각을 하길 원한다면 교육에서 그들의 다양한 사고와 논의를 인정하면 좋겠다. 교과서 지식과 진도에 아이들을 맞추지 말고 그들의 엉뚱함과 재치를 지켜볼 수 있는 인내심을 갖길 바란다. 넘어지고 좌절하는 아이를 닥달하고 채근하는 대신 따뜻한 손을 내밀고 그들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주는 어른과 사회이길 바란다.
실패하거나 틀려도 주눅들지 않는 교실을 경험해야 사회에서도 주눅들지 않을 수 있다. 대학에서 오랫동안 강의를 하다보니 예전보다 요즘 20대들 중에 공황장애나 우울증을 겪고 있는 학생들이 의외로 많음을 깨닫게 된다.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개인의 나약함이라며 이들을 비난하고 싶은가?
"저는 화학 전공자인 ○○님의 교실에서 학생들이 주기율표에 나오는 원소들과 함께 즐겁게 놀아보길 바랍니다. 1번부터 20번까지 원소 기호를 정확히 외우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그냥 원소들을 써보기도 하고 이리저리 묶어보기고 하고 원소 기호들이 이상하게 생겼다고 생각해보기도 하면서 원소들과 친해지면 좋겠어요.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20개 모두를 기억할 것이고 누군가는 일부만 기억할 수 있겠지요. 지금 수업에서는 일부만 기억하더라도 화학을 싫어하거나 포기하지 않으면 조금씩 더 원소를 알고 싶거나 기억하려고 노력할 수 있을 거예요. 설사 20개를 모르면 또 어떤가요? 화학이나 관련 전공을 공부할 것도 아니라면 말이죠."
화학 전공자인 학생의 수업 개발안에 대한 내 피드백이다. 고등학교 시절 이과반이었던 나는 화학II까지 공부하면서 주기율표를 달달 외웠지만 성인이 되면서 한번도 주기율표를 떠올려 본 적이 없다. 평생 몰라도 상관없는 내용들을 배우느라 아이들은 학업 스트레스에 치여 12년을 살고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생각은 일절 하지 못하게 한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