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11
노인 지하철 無賃乘車가 불공정한 이유
● 홍준표 입장에 동의는 안 하지만…
● 무임승차에 따른 손실 2784억 원
● 한정된 자원 덜 절실한 이에게 분배
● 대도시 惠澤, 시군구 읍면동 排除
● 복지가치(福祉價値)와 시장질서(市場秩序) 사이에서
“복지는 손익 차원에서 따질 문제가 아니지요. 그건 지방 사정마다 다르니 지방정부의 재량에 맡기는 게 옳지 않습니까?”
2월 6일 홍준표 대구시장이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의 한 문장이다. 홍준표는 2월 2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대구 거주 70세 이상 노인에게 지하철뿐 아니라 시내버스도 무상 이용할 수 있도록 하되, 도시철도 역시 현재 65세 이상에서 70세로 상향 조정할 예정임을 밝혔다. 그의 취지는 분명하다. 중앙정부의 정책이나 방침을 눈치 볼 것 없이, 대구 자체적인 노인 무임승차 기준을 정하고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홍준표와 대구의 입장은 이렇다. 첫째, 노인 무임승차는 복지의 영역이다. 복지는 각 지자체의 관할이므로 대구는 중앙정부와 다른 접근을 취할 권리가 있다. 둘째, 노인 교통복지 측면에서 버스는 지하철보다 중요할 수 있다. 구석구석 집 근처까지 다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버스도 무임승차에 포함해야 한다. 셋째, 현재 법은 ‘65세 이상’에 지하철을 무임승차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따라서 65세보다 많은 70세를 기준으로 삼는다 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
이러한 논리 하에 “대구시에서는 전국 최초로 지난해 연말 조례로 시내버스 무상이용 어르신 연령을 5년 높여 70세 이상으로 정했고 70세 이상 되는 어르신은 올해 6월 28일부터 시내버스 무상이용을 할 수 있게” 하고자 했다. 각 지자체에 따라 입장이 다른 관계로 대구의 논의가 전국적 차원으로 당장 확산되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개인적인 의견을 먼저 밝히자면 필자는 대구의 정책과 홍준표의 입장에 동의하기 어렵다. 지하철뿐 아니라 사실상 준공영제로 운영되는 버스 회사에 무한정 적자 운영을 강요하는 것은 대중교통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근시안적 포퓰리즘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또한 이 문제는 ‘몇 살부터 노인으로 보아야 하는가’ ‘우리 사회는 고령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같은 본질적인 문제와 맞닿아 있다. 개별 지자체의 복지 관점으로 바라보면 온 나라의 정책이 꼬이고 만다.
하지만 대구에서 제시하고 있는 논점에는 귀를 기울일만한 대목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하철 무임승차 연령 조정 논란은 단지 ‘지하철’ 문제로만 바라볼 일이 아니다. 좀 더 시야를 넓혀서 바라보지 않으면 우리는 각 광역시의 도시철도뿐 아니라 우리가 앞으로 맞닥뜨리게 될 거대한 침체에 대해서도 올바로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미 많이 늦었기에 더는 미룰 수 없는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다.
1984년에 만들어진 이벤트성 행사
▲ 서울 지하철 신사역 역사 안에서 한 시민이 신분당선 노선도를 보고 있다. / 송은석 동아일보 기자
대한민국이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속도로 고령화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2022년 현재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901만8000명, 전체 인구의 17.5%에 달한다. 물론 이 모든 사람들이 매일 지하철을 이용하는 건 아니지만, 지하철에 주는 부담은 그보다 더 크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2021년 당기순손실 9644억 원 중 무임승차에 따른 손실은 2784억 원으로, 적자의 30% 가량이 노인 무임승차에서 나오고 있다. 향후 인구 변화 추세를 놓고 볼 때 이 제도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한 일이다.
65세 이상 지하철 무임승차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제도다.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65세 혹은 특정 연령을 기준으로 지하철 탑승료를 할인해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전액 무료로 지하철을 타게 해주는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다. 원죄는 12‧12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정권에 있다. 집권 정당성이 취약했던 탓에 전두환의 제5공화국은 다양한 대중영합적 정책을 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65세 이상 지하철 무임승차였다. 1984년의 일이다.
여기서 1984년이라는 시점에 주목해 보자. 지하철 2호선이 완전 개통한 것 역시 1984년. 즉, 65세 이상 지하철 무임승차란 서울을 순환하는 2호선의 완전개통과 맥락을 함께 하는 일종의 홍보성 이벤트의 성격도 지니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의 8%에 지나지 않았다. 서울에 살고 있으며 고작 1호선과 2호선밖에 없던 지하철을 이용할 사람은 더욱 적었다. 게다가 마침 순환선인 2호선이 완전 개통했다. ‘경로 우대’ ‘전통의 효 사상’ 등을 앞세워 65세 이상 지하철 무료 이용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어느 관점에서 보더라도 이벤트성 행사였다. 교통약자를 배려하는 진지한 대중교통 정책이라고 볼 수 없었다.
그 후 현실이 달라졌다. 1980년대 이전부터 시작된 산아조절 정책이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빛을 보기 시작했다. 의학이 발전하고 생활 여건이 개선되면서 평균 수명도 급격히 늘었다. 태어나는 아기는 줄고 노인들은 이전보다 오래도록 건강을 유지하며 살다보니 인구 피라미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오늘날의 사회 통념상 65세를 노인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서울뿐 아니라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광역시에 두루 설치된 지하철 역시 이제는 어엿한 ‘서민의 발’ 노릇을 한다. 1984년에 이벤트성으로 시작된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는 오늘날의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 제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장 높은 순위의 교통 약자는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는 큰 적자를 낳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이 문제의 전부가 아니다. 설령 적자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는 ‘나쁜’ 제도다. 노인 혹은 교통약자에 대한 재정적 지원이라는 자원은 한정돼 있는데, 그것을 상대적으로 가장 덜 절실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공정하지 못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는 서울 혹은 광역시 거주 노인들 모두가 부유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서울 혹은 광역시의 평균 소득과 자산 등을 놓고 본다면, 지하철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 사는 이들보다는 윤택한 생활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지하철 무임승차를 일상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교통 복지’ 대상자에서 순위가 높지 않아야 상식에 부합한다.
현실은 정 반대다. 시군구 읍면동 단위에 거주하고 있으며, 하루에 고작 몇 번 오는 버스를 타지 못하면 광역시로 나갈 수 없는 노인들이야말로 복지 차원에서 고려해야 할 가장 높은 순위의 교통 약자다. 그럼에도 그들은 지하철 무임승차의 대상이 원래 아니었고, 그 연령을 높이건 낮추건 앞으로도 혜택을 볼 가능성이 희박하다. 가난한 자들에게 가야 할 교통복지 예산이 덜 가난한 이들에게 쓰이고 있는 셈이다. 역진적이고, 불공정하다.
이는 오래 전부터 알려진 문제다. 2014년 발표된 보고서 ‘교통부문 복지정책 효과분석: 지하철 경로무임승차제를 중심으로’에 따르면, 한국교통연구원은 “실질적으로 이 제도를 이용할 수 있는 계층이 일부 노인들에게 편향돼 있다는 한계”를 잘 인지하고 있었다. “지하철이 운영되는 수도권을 비롯한 부산·광주·대구·대전의 광역시에 거주하는 노인만이 노인 무임승차제도가 제공하는 권리를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초 국토교통부가 ‘무임수송제도 점검 및 제도진단 연구 용역’을 발주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용역의 골자는 무임승차를 폐지하고 대신 개인별로 교통비를 지급하는 ‘교통복지카드’를 발급하는 것이다. 지하철이 없는 지역에 사는 노인, 혹은 운행되는 버스의 편수마저 부족하지만 승용차가 없어 부득이하게 택시를 자주 이용할 수밖에 없는 노인들이, 주어진 액수 안에서 사용할 수 있는 교통비를 지급하는 방안이다. 올해 중으로 논의의 가닥이 잡힐 것으로 전망된다.
‘무료’라는 사실 자체가 문제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는 대도시 거주민에게만 혜택이 간다는 점 외에 또 다른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무료’라는 사실 자체다. 앞서도 언급했듯 세상 그 어느 나라도 완전히 무료로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게 하지는 않는다. 50% 내지는 일정 비율 할인해주는 선에서 멈춘다.
이는 매우 크고 중요한 차이를 낳는다. 지하철 무임승차는 경제학 교과서에서 말하는 ‘가격의 기능’을 망가뜨리기 때문이다. 시장 가격은 경제 활동의 지표 역할을 한다. 무언가가 비싸면 생산이 증가하고 소비가 줄어들고, 반대로 저렴하면 생산이 줄어들고 소비가 상승한다. 이렇게 정보가 교환되면서 우리가 아는 시장경제 질서가 유지된다.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는 그런 면에서 근본적인 결함을 지니고 있다. 65세를 기준으로 하건 70세를 기준으로 하건 마찬가지다. 특정 연령을 넘는 이들이 무언가를 무료로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은 해당 상품이 지니는 시장성을 근본적으로 망가뜨리고 부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일각에서는 “복지는 손익 차원에서 따질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할 것이다. 원론적으로 보면 맞는 말이지만, 오직 그런 원칙만을 따라 기간시설을 운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복지가 현실적으로 지속 가능하려면 시장 질서를 한없이 거스를 수는 없다는 점 역시 원론적으로 옳은 주장이다. 두 개의 원론이 충돌할 때 오직 하나만이 옳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오히려 교통복지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려면 돈을 받아야 한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펴냈던 책 ‘안철수의 생각’의 초반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를 떠올려 보자. 의대생들이 의료봉사를 갔는데 무료로 약을 나눠주자 사람들이 약을 받아가도 잘 먹지 않았다. 하루 이틀 먹고 당장 낫지 않으면 다른 의료봉사자에게 공짜 약을 받으러 갔다. 해법은 아주 소액의 약값을 받는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자기 돈을 내자 아까워하는 마음이 생겼고, 약을 끝까지 다 먹었고, 병도 나았다.
지하철, 대중교통을 둘러싼 우리의 논의도 마찬가지다. 노인뿐 아니라 아직 젊은 사람들 역시 대중교통을 ‘한정된 재화’로 바라보는 데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무임승차는 바로 그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 집권 정당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었던 군사정권의 포퓰리즘을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민주화의 첩경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노인, 장애인, 교통약자를 배려하는 교통정책은 복지의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 고령화 사회에 맞춰 노인의 노동력을 십분 활용해야 할 우리의 현실을 놓고 볼 때 노인의 교통 접근성 강화는 결국 사회 전체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복지는 손익 차원에서 따질 문제가 아니”라는 홍준표의 관점은 그런 면에서 귀 기울일만하다.
하지만 복지가 뭔가를 공짜로 나눠주는 행위와 같은 뜻은 아니다. 뭔가를 무상으로 분배하는 것은 시장의 정상적 작동을 방해하며 결국 복지를 강화하기 위한 원동력을 갉아먹는다. 이번 논란이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고 좀 더 거시적인 차원으로 승화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노정태 /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신동아 2023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