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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과
성령을 받기위한 조건
오늘날 대부분 교회마다 영적인 결핍을 느끼지 않는 곳은 없을 것이다. 영적인 결핍은 바로 성령의 결핍이라 할 수 있다.
성령의 침례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성령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 성령의 침례가 결핍된 곳에는 어떤 증상들이 나타나게될까?
“성령의 필요가 중요한 문제로 여김을 받지 않는 곳은 어디서든지 영적 결핍, 영적 암흑, 영적 타락과 죽음이 보인다.”(사도행적, 52)
증인의 사명을 완수하기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성령의 침례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의 침례이다. 성령의 침례가 없이는 주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직후에 제자들이 복음을 전파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그 이상으로 우리들은 세상에 나가 외치기에 더욱 합당치 못하다. ”(1기별, 411)
성령의 침례없이는 복음을 전파할 준비가 되지않는다는 것이다. 복음을 전파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바로 성령의 침례라는 것이다.
복음 전파와 성령과는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인가?
“성령께서 진리로 깊이 감명시키지 않으면 반석 위에 떨어져 깨어질 심령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교육이나 유리한 지위가 아무리 위대하다 하여도 하나님의 성령과 협력함이 없이는 아무도 빛의 통로가 될 수 없다. 씨가 하늘의 이슬로 말미암아 생명으로 약동하기 전에는 복음의 씨뿌림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소망, 671)
성령과 협력함이 없이는 결코 사람의 심령에 심겨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리는 반드시 성령의 감화감동하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가르치는 모든 교사들과 전도자들과 설교자들이 먼저 성령의 침례를 통해 성령과 협력함으로 진리가 영혼들에게 전해져야한다는 것이다. 진리의 씨앗은 성령이라는 하늘의 이슬로 적셔질 때 생명으로 약동한다는 것이다. 진리는 반드시 성령의 협력으로 사람의 심령을 깨뜨리고 심겨질 것이다.
교회를 이끌어가는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안식일학교의 크나큰 결핍은 조직의 결핍이 아니라 영적 사물에 대한 지식의 결핍에 있다. 일꾼들이 하나님을 위한 참된 선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성령의 침례가 매우 필요하다. ”(안교, 155)
교회 선교부나 안식일학교를 운영하는데 있어서 어떻게 반을 조직할까? 어떤 순서, 어떤 프로그램을 기획할까에 많은 에너지를 소비할 것이다. 그런데 교회 선교사업을 이끌어가기위해 필요한 것은 성령의 침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성령의 침례가 결핍될때 영적 결핍으로 연결며 선교의 결핍으로, 영적 결핍으로 이어질 것이다.
교회가 선교기관으로써 사명을 완수하기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은 바로 성령의 침례라는 것이다.
성령의 도우심과 성령의 임재가 없이는 말씀전파는 실패하고말 것이다.
“ 성령의 계속적인 임재와 도움이 없이는 말씀의 전파가 전혀 소용이 없을 것이다. 이분만이 거룩한 진리를 효과적으로 가르치는 교사이시다. 진리가 성령으로 더불어 마음에 동반될 때에만 양심을 일깨우거나 생애를 변화시킬 것이다. ”(소망, 671)
말씀의 대가이셨던 예수님도 성령이 필요하셨기에 하나님께서 성령을 허락하여주셨던 것이다.
(마 12:18) 『보라 내가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내가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영을 그에게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우리의 선교사역은 어떻게 시작되어야하겠는가? 예수님의 사역은 성령께서 협력하신 사역이셨음을 말해주고 있다. 예수님의 사역처럼 우리의 사역도 역시 성령과 협력하는 사역이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성령과 함께하는 사역을 위해 예수님께서 날마다 성령의 침례를 받으신 후 말씀을 전하셨다.
“ 그가 사시고, 생각하시고, 기도하신 것은 자신을 위함이 아니요 남을 위함이었다. 그는 매일 아침 여러 시간 동안 아버지와 교통하심으로 하늘의 빛을 사람에게 나누어 줄 준비를 하셨다. 그는 날마다 성령의 새로운 침례를 받으셨다. 주님께서는 매일 아침 이른 시간에 일어나셔서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기 위하여 자기의 심령과 입술에 은혜의 기름을 바르셨다.”(실물, 139)
예수님께서는 말씀에 능통하셨지만 성령을 의지하시고 이른 시간에 여러 시간동안 은혜의 기름으로 성령의 침례를 받으셨다. 말씀이 성령의 감화를 통해 사람들의 심령에 역사하도록 예수님께서도 날마다 성령과 협력하셨다. 말씀에 정통하셨던 예수님께서 본을 보여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권능을 통해 이루어지는 사역임을 기억해야할 것이다.
말씀을 전파하며 영혼을 구원하는 일은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권능으로 되는 것이다.
(슥 4:6)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문제는 성령이 결핍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성령을 구하지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능력을 받을 수 있는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성령의 선물에 주리고 목말라 하지 않는가? 왜 우리는 그것에 대하여 말하고, 그것을 위해 기도하고, 그것에 관해 설교하지 않는가? 주께서는 부모가 자식에게 좋은 선물을 주는 것 이상으로 우리에게 성령을 주고자 하신다. 성령의 침례를 위하여 모든 교역자는 하나님께 탄원해야 한다.”(8증언, 22)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요 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우리가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성령을 구하는 일이다. 예수님께서 주신다고 했기 때문에 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하는 이에게 주신다고 말씀하셨다.
(눅 11:9-13) 『[9]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10]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11]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12]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보혜사 성령이 행하시는 일은 무엇일까?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일을 하신다.
(요 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성령께서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진리의 말씀이 생각나게 해주신다.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모든 것들을 생각나게 하”시는 이 일은 오늘날에도 성령께서 우리들에게 행하시는 일이다.
부활하신 후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 다시한번 성령이 임하실 것에 대하여 약속하신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이 임할 때 제자들에게 권능을 받고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신다.
증인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성령의 침례가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는 아직도 큰 성 바벨론에 하나님의 백성이 많기 때문이다.
“ 타락한 교회 안에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백성들이 많이 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 나의 백성아 그 가운데서 나오라”는 기별을 전할 책임을 우리에게 맡기지 않으셨을 것이다.”(전도, 558)
많은 증인이 필요한 것은 이 큰 성 바벨론 안에서 나와야할 하나님의 백성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증인이 되기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성령의 권능이었다.
그렇다면 성령의 권능이 임하기 전 제자들은 무엇을 하였는가?
(행 1:13-14) 『[13] 들어가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14]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제자들은 이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히 확신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들의 믿음은 흐려지지 않았으며, 성령의 침례를 받기까지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마음을 겸비하게 함으로 자신을 준비하였다.”(목사, 65)
그럼 제자들이 증인이 되기 전 마가의 다락방에서 어떤 기도를 하였을까?
첫째, 회개와 불신을 자복하는 기도를 하였다.
“제자들은 약속이 성취되기를 기다리면서, 참된 회개로 그들의 마음을 겸비하게 하고 그들의 불신을 자복하였다. ”(행적, 36)
“ 우리는 죄를 자백하고 기도함으로써 왕의 왕께서 행차하실 대로를 준비하여야 한다. 이와 같이 할 때에, 우리에게는 성령의 권능이 임하게 된다. 우리에게는 오순절에 내렸던 능력이 필요하다. 이 능력은 반드시 임할 것이다. ”(복음사역자, 307)
제자들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참된 회개를 하며 자복하는 기도를 하였던 것이다.
증인이 되기위해 먼저 준비되어야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 준비이다. 회개와 자복을 통한 마음의 겸비이다.
“죄를 진정으로 슬퍼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의 결과이다.”(소망, 300)
죄를 짓고도 죄를 깨닫지 못함으로 안타까운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죄를 짓고도 창피하거나 수치스럽게 여기거나 죄를 짓고도 슬퍼하는 마음이 없을 때 마음은 점점 무디어져갈 것이다. 죄에 대하여 슬퍼하는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성령이 역사하는 결과이다.
(요 16: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이런 마음의 변화는 기도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성령이 역사하시고 계셨다는 증거이다.
둘째, 전도하는데 적합한 자가 되도록 기도하였다.
“제자들은 사람들을 만나기에 적합하게 되도록 그리고 매일의 교제에서 죄인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할 수 있는 말을 할 수 있도록 매우 열렬히 기도하였다.”(행적, 36-37)
제자들은 증인이 되기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았다. 그래서 증인이 되기에 적합한 자가 되도록 기도하였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도 증인이 되기위해 이 기도를 해야할 것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이 준비의 날들은 깊이 마음을 살피는 날들이었다. 제자들은 영적인 필요를 느끼고서 저희를 영혼 구원 사업에 적합하게 해 줄 거룩한 정열을 달라고 주께 부르짖었다.”(행적, 37)
제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영혼 구원 사업에 적합하게 해 줄 거룩한 정열이었다. 복음을 전하고자하는 열정이다. 복음을 전하고자하는 열정이 없기에 복음이 전파되지못하고 성도들 안에 갖혀있고 교회 안에 갖혀있는 것이다. 초대교회 제자들처럼 우리들도 복음을 전하기위해, 증인이 되기위해 거룩한 열정을 달라고 기도해야할 것이다.
셋째, 약속하신 성령의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였다.
“그들은 단순히 자신을 위한 축복을 구하지 않았다. 그들은 영혼 구원에 대한 부담에 눌려 있었다. 그들은 복음이 세상에 전파되어야 할 것을 깨닫고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능력을 간구하였다. ”(행적, 37)
제자들이 기도한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바로 능력이었는데 그것은 바로 성령의 권능이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성령의 권능이었고 그들이 받은 것은 바로 성령의 권능이었다. 우리가 기도해야할 것도 바로 이 성령의 권능이 우리에게 임하도록 기도해야할 것이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처럼 초대교회가 오순절 성령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비결은 바로 기도때문이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셨지만 그들이 받고자 기도하지않고 준비하지않았다면 부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초대교회가 부흥할 수 있었던 비결도 바로 이 기도였음을 알 수 있다. 증인의 삶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 반드시 빠져서는 안되는 것이 바로 기도라는 사실이다.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기도라는 사실이다.
오늘날 우리들이 성령을 받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면 첫째, 기도이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던 제자들처럼 열렬하게 기도에 힘써야 한다. 그들은 전혀 기도에 힘썼다. 우리들이 얼마나 기도에 힘써야하는지를 가르쳐 준다. 제자들처럼 전혀 사명에 사로잡혀 전혀 기도에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할 것이다.
둘째, 성령을 받기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바로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이다. 말씀을 가까이 해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유일한 통로는 오직 진리뿐이다. ”(2기별, 49)
“하나님의 말씀 곧 진리는 주께서 당신의 성령과 능력을 나타내시는 통로이다.”(행적, 520)
“성령께서는 성경 말씀을 통하여 마음에 말씀하시며 진리를 심령에 깊이 새기신다.”(소망, 671)
성령은 바로 진리를 통해 역사하신다는 것이다. 진리는 성령이 역사하는 통로라는 것이다. 성령께서 진리를 통해 역사하시며 진리를 통하여 깨우쳐주시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 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성령께서는 진리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깨우쳐주시고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기 때문에 날마다 성경 말씀을 가까이해야할 것이다. 그래서 말씀에 전혀 힘쓰는 자들이 초대교회 성도들이었다.
(행 2: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말씀은 성령이 역사하는 통로가 되었고 성도들 간의 교제의 통로가 되었다. 성경말씀을 가까이 함이 또한 성령이 역사하게하시는 통로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매일 말씀의 공급을 받아야할 것이다. 매일 말씀의 공급 가운데 권능과 능력을 받게되는 것이다. 진리의 성령이 역사하는 통로임을 기억해야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은혜의 공급을 받는 사람만이 매일의 필요에 알맞는 권능과 그 권능을 사용할 능력을 받을 것이다. ”(행적, 55)
우리가 말씀을 찾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의 영적 생명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육체의 생명이 음식에 의하여 유지되는 것처럼 우리의 영적 생명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유지된다. 그리고 사람마다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생명을 얻어야 한다. 자양분을 위하여 스스로 먹지 않으면 안되는 것처럼 우리도 그 말씀을 우리 각자를 위하여 받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단지 다른 사람의 지식을 중개로 하여서만 말씀을 얻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깊은 주의를 가지고 성경을 연구하여야 한다. 우리는 한 구절을 취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그 구절 가운데 넣어 주신 사상을 확인하는 일에 정신을 집중시켜야 한다. 우리는 그 사상이 우리의 것이 되어 주께서 말씀하신 바를 알 때까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소망, 390)
우리는 성경을 연구하는 동시에 반드시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 바로 기도이다.
“우리는 나다나엘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스스로 연구하고 성령의 깨우쳐 주심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무화과나무 아래 있던 나다나엘을 보신 분은 은밀한 곳에서 기도하고 있는 우리도 보실 것이다. 빛의 세계에서 내려온 천사들은 겸손하게 하늘의 지도를 구하는 자들 가까이에 있다.”(소망, 141)
우리는 성령께서 말씀을 깨우쳐주시기를 기도해야 한다. 씨앗은 수분이 공급될 때에 싹이 나기 시작한다. 우리의 마음 밭에 떨어진 진리의 씨가 싹이 나기위해서는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한다. 성령의 역사가 있을 때 메마른 씨에 싹이 나는 변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듯이 성령께서 관여하실 때에 비로서 진리가 심겨지고 싹이 나게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께서 깨우쳐주시기를 기도해야한다. 진리의 씨앗에 성령이 함께할 때 싹이 나고 그 싹이 자라 꽃이 피고 결국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된다. 이 변화는 성령의 역사의 결과인 것이다. 이 변화는 메마른 땅에는 결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심겨진 진리의 씨앗에 성령의 단비가 내릴 때 역사하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마음에 역사하신다.
“성령께서는 보혜사로 심령에 임하신다.”(소망, 391)
“성령은 사람의 마음과 정신 속에 역사하시어 그의 최고의 힘을 발휘하신다. ”(소망, 827)
“오직 성령께서만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지 못하”는 하나님의 깊은 것을 우리에게 계시하실 수 있으시다.”(소망, 412)
성령께서는 진리의 씨앗이 심겨진 마음에 역사한다. 우리의 눈으로 보아도 깨닫지 못하고 귀로 들어도 듣지 못하는 것을 마음으로 깨우쳐주시는 분은 바로 성령이시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에 역사하시고 마음을 통하여 진리를 깨닫게 해주신다고 하였다. 진리를 더욱 완전히 깨닫기위해 우리가 해야할 일이 있다면 어떤 일일까?
“우리가 진리를 더욱 완전히 깨달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의 성령으로 마음을 부드럽게 유지하고 성령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 허영과 교만으로부터 영혼을 깨끗하게 하고, 영혼을 사로잡고 있던 모든 것을 제거해야 하며 그리스도께서 그 속에 좌정하시도록 해야 한다. ”(소망, 494)
진리를 더욱 완전히 깨달을 수 있게하기이해 우리가 할 일은 바로 계속해서 성령으로 마음을 부드럽게하고 성령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성령이 떠나지않도록 성령의 은혜의 단비가 내려 계속해서 촉촉하도록 유지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성령께서 계속해서 역사할 수 있도록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성령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은 성령의 깨우쳐주시고 생각나게하시고 가르치시는 성령의 역사를 간구하는 것이다.
우리 마음의 성전에 더럽거나 버려져야할 것이나 세속적인 것들로 가득 채워져있다면 그것들을 버리고 깨끗하게 정리해야할 것이다.
왜 그런가? 세속적인 정신이 가득한 곳에는 성령이 임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령의 역사는 어떤 변화들을 가져오는가?
“하나님의 성령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때 생애가 변화된다. 죄악적인 생각은 사라지고 악한 행위와는 인연을 끊게 된다. 사랑과 겸손과 화평이 분노와 시기와 분쟁을 대신한다. 기쁨이 슬픔을 대신하고 용모는 하늘의 빛을 반사한다. ”(소망, 172)
성령의 역사는 우리 스스로 할 수 없는 변화들을 가져온다.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던 죄악적인 생각을 사라지게해주시고 악한 행위와는 인연을 끊을 수 있게해준다. 그리고 세속적인 정신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그리고 마음의 변화 곧 품성의 변화, 언행일치의 생애로 변화된다. 성령의 임재를 통해 일어나는 변화들이다.
“ 한 영혼이 회개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기를 배우는 때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겔 36:26)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에 일어나는 변화, 곧 인간의 품성의 변화는 살아 계신 구주께서 영혼을 구하시려고 역사하고 계심을 보여 주는 기적이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언행일치의 생애는 하나의 큰 이적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함에 있어서 지금 그리고 항상 나타내야 할 표적은 듣는 자들에게 그 말씀이 개심시키는 능력이 되게 하는 성령의 임재하심이다. ”(소망, 407)
말씀이 한 영혼의 심령에 들어갈 때 그것은 누룩이 되어서 이곳 저곳에 변화를 일으킨다. 그 변화는 마음의 변화, 곧 품성과 언행일치의 생애로의 변화이다. 이 모든 일은 성령이 함께한 결과이다. 이러한 변화들이 교회들마다 성도들마다 누룩처럼 퍼져나가야할 것이다.
또한 성령의 역사는 사람들에게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가?
예수님을 만났던 삭개오의 삶에 어떤 변화들이 일어났는가?
(눅 19: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삭개오는 성령의 깨우치심에 복종하였으며 우리들과 또 고대 이스라엘을 위하여 기록하신 말씀의 가르침을 지키기 시작하였다.”(소망, 555)
성령의 임재는 성령의 음성에 대한 복종으로 이어진다. 삭개오는 지체하지않고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다고 예수님께 고백을 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삭개오의 첫 응답은 가난하고 고통당하는 자들을 동정하는 데서 나타났다. 세리들 사이에는 공모가 되어 있어서 저들은 백성들을 압박할 수 있었고 사기 행위를 하는 데 있어서 공조 체제를 갖고 있었다. 토색하는 일에 있어서 그들은 거의 일반화된 관습을 따르고 있는 것 뿐이었다. 심지어 세리들을 경멸하는 제사장들과 랍비들까지도 신성한 사명을 받았다는 구실하에 부정직한 행동으로 치부한 죄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삭개오는 성령의 감화에 복종하자마자 성실에 위배되는 모든 행위를 버렸다. 개혁이 따르지 않는 회개는 참된 회개가 아니다. ”(소망, 555)
삭개오는 성령의 감화에 복종하고 회개하였다. 성령의 역사의 결과이다. 성령의 역사는 복종으로 이어졌고 변화와 개혁, 회개를 낳게 되었다. 만약 성령의 음성을 거절한다면 어떻게 될까? 예수님을 문밖에 두거나, 성령의 역사를 거절한다면, 씨앗을 심지않으면 아무런 결과는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아무런 변화는 일어나지않을 것이다. 교회 안에 그토록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이유때문일 것이다. 성령의 역사에 반응하게되면 말씀의 씨앗은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나와서 맺히게되는 변화가 따를 것이다. 교회마다 성도들마다 이러한 변화들이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가 있기를 축원한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은 그분의 성령을 계속적으로 받아들여 그분에게 봉사하는 일에 전적으로 복종하는 생애를 의미한다.”(소망, 676)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우리가 성령의 은혜를 계속해서 유지하고 성령의 지배를 받는다면 변화는 반드시 일어나게될 것이다. 아스팔트 사이에서도 그 씨앗은 싹을 튀울 것이다.
오순절 성령의 부으심은 오늘날에도 유효한가?
“성령의 약속은 어떤 시대나 어떤 족속에게 제한되어 있지 않다.”(행적, 49)
늦은비 성령의 역사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욜 2:23)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
“사도 시대에 성령을 부어 주심은 이른비, 혹은 먼저의 비의 시작이었고 그 결과는 영광스러웠다. 종말에도 성령의 임재가 참 교회와 함께 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추수의 끝이 가까울 때에, 인자의 오심을 맞기 위해 교회를 준비시키고자 하시는 영적인 은혜의 특별한 부어 주심이 약속되어 있다.”(행적, 54-55)
“성령은 오순절 이래로 감소되지 않았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그것을 찾는 모든 영혼들에게 주어질 것이다. ”(1설교, 393)
“오순절에 부어 주신 성령은 이른비였다. 그러나 늦은비는 더욱 풍성할 것이다. ”(실물, 121)
“사도들이 성령을 받은 후 오순절 날에 일어났던 회심자의 수와 맞먹는 회심자들이 하루에 일어날 때가 다가오고 있다.― 리뷰 앤 헤랄드, 1905년 6월 29일”(전도, 692)
“간절한 마음으로 오순절 날의 사건이 그때보다 더 큰 능력으로 반복될 때를 기다려야 한다.”(리뷰앤헤럴드, 1886.7.20.)
“우리의 마음과 생애에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하심이 필요되는 바가 일찍이 있었다면, 그 때는 바로 지금이다.”(음식, 58)
(눅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우리가 구해야할 것은 바로 성령의 임재요 늦은비 성령의 충만이다. 그러므로 날마다 성령이 임하기를 구함으로 사명을 완수하는 남은 무리가 되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