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자:2012년3월6일
2.산행지:동산 적성산(제천)
3.산행코스: 성내리==>무암사입구==>남근석==>성봉(825m)==>중봉(885m)==>
동산(896m) ==>새목재==>까치산==>작성산(845.5m)==>무안사==>성내리
***********산행사진(2):성봉(825m)==>중봉(885m)==>무안사==>성내리*************
********적성산 동산*******
금수산에서 뻗어내린 능선 계곡의 금성면 성내리 무암계곡
왼쪽이 작성산 오른쪽이 동산이다.
능선 위에 사람 모습을 한 암봉이 줄지어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특히 북한산 인수봉의 축소판이라고 하는 배바위는
암벽훈련장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원래 이름은 까치성산이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지형도를
만들면서 한자 '鵲'자로 표기한 뒤부터 문헌에는
까치성산보다는 작성이라는 이름이 더 많이 쓰이게 되었다.
까치성산이라는 이름에 얽힌 전설이 전한다.
옛날 어느 왕이 이 산에 신하들을 데리고 들어와 궁궐을 짓고 살았다.
어느날 아침 왕이 신하들에게 동쪽 바위 봉우리를 가리키며
저 위에 까치가 앉을 것이니 무조건 활을 쏘아 까치를 죽이라고 명하였다.
신하들이 마침 바위 봉우리에 앉은 까치를 쏘아 죽이니
그 까치는 다름 아닌 일본의 왕이었다.
건물의 좌측 끝부분에 수도물이라 써붙인 푯말이 있다.
이 뒤로 등산로가 이어진다.
작성산은 산 호수(충주호) 계곡 바위 등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그리 높지 않으면서도 아담하고 긴 능선위로 사람형상의
암봉들이 연이어 있다.
그래서 계곡산행을 즐기는 등산객 뿐 아니라 북한산 인수봉의
축소판 배바위는 클라이머 들이 자주 찾으며
암벽훈련장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작성산은 정상부근까지 흙이 많은 육산이고
정상 부근에만 기암괴석이 발달한 것이 특징이다.
등산로는 톱날같은 형상의 바위능선 사이로 나 있는데
가을이면 좌우 양편으로 샛노란 은행나무와 붉은 단풍나무가
화려한 색의 대비를 이루며 늘어서 마치 내장산의 단풍터널을
빠져나가는 기분이 든다.
건너편으로 동산 줄기가 나란히 이어진다
암릉길을 올라갈수록 여러곳에서 전망이 트이면서 충주호 전경이 드러난다.
무암골 전경 중심부에 느티나무와 SBS 드라마 셋트장이 내려다 보인다
위로 올라갈수록 충주호 전망이 시원스럽다.
오름길 바위 전망대에서 바라본 월악산 방면 전경이다.
맨 뒤쪽에 길게 이어진 능선이 월악산 주능선이고
우측 가장 높은 봉우리가 월악산 정상부이다.
작성산 높이 770.9m 771m 820m 848m
이 산은정상의 위치와 높이가 상당히 헷갈린다.
높이로 보아서는 까치산이라 쓰인 표석이 세워진 두번째 봉우리가
정상임에 분명하다.
표석에는 848미터로 표기되어있지만 산 아래의 안내판에는
845미터로 표기되어 있어 높이 역시 분명치 않다.
또 다른 표석이 세워져있는 771봉의 경우는 국립지리원에서
발행한 지형도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데 지형도에는 봉우리가 아닌
능선 오르막길에 삼각점이 표시되어있고 770.9미터라 쓰여있다.
바로 이 문제때문에 작성산 정상이 771미터라고 여기저기서
이야기 되고 있는것이다.
지형도에 삼각점이 그려져 있다고해서 이것이 정상일수는 없다.
당연히 정상은 848봉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점 오해가 없기를 바라며 이곳에서는 정상의 표석을 기준으로
848봉을 작성산 정상으로 표기함을 밝힙니다.
(또한 지형도상의 삼각점을 771미터 작성산 표석이 세워진 곳에서
찾을수 없었기때문에 그곳이 과연 770.9봉인지도 의심스럽다.)
*****김팔봉 카페에서 복사함***
성봉에서 출발(13시16분)
환상의 눈꽃과 상고대가
중봉도착 (13시59분)
갈림길 (계속 산행은 시간이 모자라서 어려워 하산 결정)(14시6분)
하산길은 경사지고 미끄럽고 넘어지고 (아이젠 착용하지 않은 회원은 고생 많이함)
무암사도착(15시10분)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절을 세우려고 아름드리 나무를 잘라 다듬어 힘겹게 나르고 있을 때 어디선가 소 한 마리가 나타나 목재를 운반하여 준 덕에 손쉽게 절을 세웠다고 한다. 얼마 뒤 소가 죽어 화장을 하였더니 여러 개의 사리가 나와 소의 불심에 감동한 대사는 사리탑을 세웠다고 한다. 이 일로 우림사였던 이 절은 우암사(牛岩寺)라 부르게 되었다 전한다.
이 후 세월이 흘러 산사태로 절이 무너져 새로 세웠는데 맞은편 산에 큰 암석이 있는데 청명한 날씨에는 산과 암석이 일체로 보여 바위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나 운무가 산을 덮으면 암석이 뚜렷하게 보일 뿐 아니라 노승이 팔짱을 끼고 서 있는 모습과 같다 하여 무암사라 칭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성내리주차장도착(16시)**선두구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