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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9.
<흐리고 오후에 비>
오늘은 월요일, 다낭 여행 이틀째 날이다. 아침 7시 조금 전에 잠이 깼다. 어제 밤에는 비교적 잘 잤다. Daily Note로 기행문 쓰고 밤 11시쯤 자리에 누웠는데 한 번도 안 깨고 아침까지 잤다. 호텔 방이 조금 추워 온도조절기를 30도까지 올려놨으나 방안 온도는 22도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Front Desk에 얘기했더니 호텔 전체에 에어컨이 작동되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단다. 잠옷도 반팔+반바지 여름 것만 갖고 왔는데 난감하다. 온도 올리는 거 포기하고 내복 바지 껴입고 방에 비치된 샤워 가운까지 겹쳐 입고 잤다. 집에서 떠날 때 추워서 내복 바지 입고 온 것이 천만다행이다. 이번 여행에는 다낭 날씨를 잘 못 짚었지만 겨울옷을 입고 온 것이 여러모로 도움이 많이 됐다. 일반적으로 3월의 다낭은 건기로 접어들어 비가 적고 기온이 20~28도 정도로 여행하기 가장 쾌적한 시기라지만 기상 이변으로 상층권의 찬 공기가 내려와 하층권의 수증기를 품은 구름 대를 만나면서 비정상적으로 비가 많이 오고 날씨도 서늘하다고 한다. 비도 오다가 그치고 그쳤다가 또 온다. 우리나라 장마철 같다. 때를 잘 못 골랐네...
일어나자마자 집에서 하던 대로 스트레칭과 어깨운동 한 세트 하고 호텔에서 제공하는 조식을 먹으러 갔다. 뷔페인데 음식 종류가 다양하고 음식 맛도 그만하면 됐다. 4성급으로 1박에 5만원 줬는데 가성비가 좋은 편이다. 방도 30m2로 좁지 않고 미케 비치 바로 옆이라 위치도 좋은데다가 미케 비치가 (옆으로 조금이라도)보이는 부분 씨 뷰 방이다. 작년 11월에 미리 예약해서 싸게 잡았지 지금 예약하려면 그 곱절은 줘야 한다. 뷔페에서 각종 야채 샐러드를 먼저 한 접시 먹고 햄, 치즈, 계란오믈렛, 구운 베이컨, 쌀 만두, 바게트 빵, 호박죽 등을 먹고 후식으로 요거트, 수박, 패션푸르트(Passion Fruit), 귤, 바나나, 커피 한 잔을 마시니 배가 빵빵하다.
조식 마치고 방에 와서 양치하고 나니 9시가 다 됐다. 오늘도 일기예보는 하루 종일 비다. 1회용 비옷을 사 입고 어제 가려다가 못 간 '한 강'과 그 위에 있는 용다리(Dragon Bridge), 다낭대성당, 한 시장을 둘러보고 한 강변도 산책할 예정이다.
숙소 앞 보반끼엣(Vo Van Kiet) 대로를 따라 약 15분 걷다 보면 다낭의 젖줄인 '한 강(Sông Hàn, 汗江)'을 마주하게 된다. 강 폭은 약 600m~800m로 서울의 한강보다 약간 좁지만 그만큼 강 너머의 풍경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관문'을 뜻하는 그 이름처럼 이 강은 과거 외세의 침략을 막아내던 방파제였으며, 오늘날에는 화려한 용다리의 조명과 함께 다낭의 새로운 경제 성장을 이끄는 통로가 되고 있다. 강변을 따라 주요 경제권이 형성돼 있으며 한 시장, 다낭 대성당, 카페 등 관광 핫플레이스들도 이곳에 모여 있다.
용다리(Dragon Bridge, Cầu Rồng)는 한 강을 건너는 여러 개의 다리 중 가장 의미 있으면서도 화려한 다리이다. 총 길이는 666m인데 다리의 중앙분리대에 거대한 황금용이 수면 위를 박차고 오르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약 1,000톤 이상의 강철이 사용되었으며 용의 몸통을 형상화한 5개의 아치 구조가 다리 전체의 하중을 지탱하는 독특한 설계이다. 5개의 아취 중 머리와 꼬리는 공중에 나와 있으며 세 번째 아취가 가장 길고도 높다. 다리 디자인의 모티브는 베트남의 황금기였던 리 왕조 시대의 용 형상에서 따왔다고 하는데 베트남 사람들에게 용은 번영, 권력, 그리고 고귀함을 상징한다. 용다리에서는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밤 9시에 용의 입에서 실제 불꽃과 물줄기를 뿜어내는 ‘불꽃과 물 쇼 (Fire & Water Show)’가 펼쳐지며 2,500여 개의 LED 조명이 시시각각 색을 바꾸며 용의 비늘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불행하게도 나는 이 장관을 폭우가 쏟아져 보지 못했다.
용다리를 구경하며 사진도 몇 장 찍고 천천히 건너 한 시장(Chợ Hàn, Han Market)으로 갔다. 한 시장은 꼭 우리 남대문시장을 옮겨 놓은 것 같다. 파는 물건도 비슷하다. 2층 건물인데 1층에는 식품류(건어물, 건 과실, 젓갈류, 신선 과일 등)와 각종 액세서리 등을 팔고 2층은 의류, 가방류, 신발류 등을 파는데 세계 유명 제품을 다 판다. 다만 모두가 짝퉁이다. 우리나라 여자 관광객들은 여기서 아오자이를 사 입고 다니기도 한다.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흥정을 잘 하면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사지만 부르는 대로 다 주면 호구다. 딱 우리나라 남대문 시장이다.
이 시장은 과거나 지금이나 다낭 상업의 중심지이다. 1940년대 프랑스 식민 시대부터 이어져 온 이 시장은 한 때 수입품과 고급 식자재를 주로 취급하여 '부자들을 위한 시장'이라는 별칭이 있었으나 1990년 리모델링을 거치면서 점포수도 늘어나고 취급하는 상품들도 다양화하면서 ‘싸구려’ 시장으로 전략하였다. 현재의 규모는 약 28,000m2 면적에 600여 개의 점포가 밀집해 있다고 한다. 점포와 점포 사이의 길이 좁아 두 사람이 비껴 지나가기도 어렵다. 한 시장 안에서 두리안 까서 파는 가게가 있어 한 팩 사 먹었다. 열대 지방에 오면 꼭 한번은 사먹는 과일이다. 과일 중에 King이라 불리지만 싸지는 않고 한국 사람들에게는 호불호가 갈리는 과일이다.
다음에 간 곳은 다낭 대성당(Da Nang Cathedral)이다. 이 성당은 한 시장과 거의 붙어 있는데 프랑스 식민 시대의 대표적인 유산이자 현재는 다낭의 핵심 랜드마크이다. 건물이 핑크 색이라 ‘핑크성당’이라고도 불리는데 뾰족한 아치형 창문과 높은 첨탑, 그리고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Stained Glass)가 특징이다. 현지인들은 이곳을 '수탉 성당(Con Gà)'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는데 성당 지붕의 피뢰침 끝에 합금으로 만든 수탉 모양의 풍향계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성당 뒤편에는 성모 마리아를 모신 작은 동굴 사원이 있는데 많은 신자들이 찾아와 기도를 올리고 있다. 그리 크지는 않은데 색갈이 예뻐서 사진 찍기는 딱이다. 역시 사람들이 붐벼서 사진 찍기가 쉽지 않다. 문이 잠겨 있어 내부는 보지 못했지만 일요일에는 개방하고 예배를 본다고 한다.
한강변 산책은 비가 많이 와서 대충 했다. 강변 양쪽에는 산책로가 만들어져 아침저녁으론 현지인들이 뛰거나 걷고, 새벽에는 기공 체조를 하는 사람들이 많으며, 저녁에는 버스킹 공연과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어우러진다고 한다. 강변 산책로를 따라 드문드문 참파 왕국의 문양이나 현대적인 조각품들이 설치되어 있고 용다리 끝에는 말의 조형물이 있다. 베트남은 한국처럼 십이지신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금년은 말의 해라 말의 조형물을 설치하여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한다고 한다. 강 변 곳곳에 벤치가 있어 쉬기도 좋고 여기서 바라보는 용다리는 멋지다. 특히 밤에는 조명을 비춰 운치를 더하고 용의 모습도 한층 생동감이 넘친다. 강변을 따라 3차선 일방도로가 있고 그 도로를 끼고 각종 레스토랑, 카페, 마사지 숍 등이 이어져 있다. 한시장도 그 중 하나인데 한 시장을 중심으로 주요 상권과 관광 핫 플레이스 들이 모여 있다. 한 가지 흠이라면 화장실이 없어 급한 사람들은 강 쪽에 대고 냅다 갈긴다.
구경하는 중에 여러 번 비가 왔다. 오다 그치고 그쳤다가 또 온다. 비가 오면 잠시 건물 추녀 밑이나 카페 등으로 피하고 비가 그치면 또 돌아 다녔다. 점심은 코바 쌀국수(Cô Ba Phở Bò) 집에서 해결했다. 쌀국수는 인근에 있는 안토이(AN THOI)가 미쉘린에도 등재된 유명한 집인데 대기 줄이 엄청나게 길다. 이 집 포기하고 현지인들이 이 집 다음으로 추천하는 코바로 갔다. 아침 뷔페를 든든하게 먹어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비를 피할 겸 11시 반쯤 일찍 들어갔다. 어쩔 수 없어 들어갔지만 이 집도 쌀국수 맛이 좋다. 소뼈를 오랜 시간 고아낸 육수 국물은 맑고 투명하지만 한 입 머금으면 입 안 가득 퍼지는 진한 육향과 은은한 향신료, 라임의 새콤한 맛이 삼중주를 이루어 자동적으로 엄지척이 올라간다. 고수와 숙주나물, 라임 한 조각을 따로 주는데 고수를 못 먹는 한국인을 배려하는 것 같다.
고수는 한국인들에게는 호불호가 갈리는데 나는 좋아 하고 잘 먹는다. 고수의 독특한 냄새는 데카날(Decanal)과 도데카날(Dodecanal)이 핵심 성분인데 이들은 강력한 살균력을 가진 천연 방부제이다. 열대 지방 덥고 습한 나라에서는 음식물이 상하기 쉬운데 이를 막기 위한 현지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뿐 만 아니다. 고수에는 퀘르세틴(Quercetin)이나 캠페롤(Kaempferol) 같은 강력한 항산화 성분이 들어 있어 체내의 유해한 활성산소를 제거하고, 체내에 쌓인 납이나 수은 같은 중금속을 흡착하여 배출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알고 보면 따로 돈 주고라도 먹어야 할 보물 같은 향신료다.
코바 쌀국수의 특징 중 하나는 얇게 저민 신선한 소고기를 뜨거운 육수에 살짝 익혀 먹는 방식이다. 서빙될 때 선홍빛을 띠는 고기가 뜨거운 국물에 서서히 익어가며 내는 부드러운 식감이 일품이다. 면발도 기성 제품이 아닌 부드러운 생면을 사용하여 젓가락 끝에서 느껴지는 찰기가 남다르다. 먹고 있으려니 금방 사람들로 꽉 차고 밖에는 대기 줄이 길게 생겼다.
점심 먹은 후 한국 사람들이 다낭 오면 꼭 들른다는 콩(CONG) 카페로 갔다. 콩 카페는 베트남 전역에 퍼져 있는 체인점인데 한 시장 주변에도 2개가 있다. 나는 한 강 변 도로에 있는 집으로 갔는데 역시 사람들로 꽉 차 있다. 겨우 한 자리 잡고 앉아 카페라떼 따뜻한 걸 시켰는데 실패다. 여기 사람들은 모두 아이스를 시킨다. 가격은 같은데 양이 조그만 커피 잔에 하나로 아이스에 비해 반 밖에 안 되고 달기는 엄청 달다.
콩 카페에서 나와 다시 한 시장 주변을 어슬렁거리는데 이번에는 햇볕이 따갑다. 여기 날씨는 종잡을 수 없다. 다리도 아프고 햇볕도 피할 겸 바로 앞에 있는 반미누이(Banh My Nuoi)라는 과일가게 추녀 밑으로 피했다. 마침 망고를 팔고 있어 망고 스무디를 시켰는데 가격은 6만동(한화 3,400원 정도)인데 맛이 기막히고 양도 500CC 정도로 엄청나다. 한참 먹고 있는데 허리 뒤쪽이 가렵다. 모기가 물고 갔다. 다낭까지 와서 그것도 대낮에 헌혈을 하다니...말라리아나 없으면 좋겠다.
해는 금방 구름에 가렸다. 다시 근처를 어슬렁거리다가 안토이(AN THOI)에서 저녁을 먹을 요량으로 예약하러 갔더니 예약은 안 받는단다. 안토이는 다른 날 오기로 하고 천천히 걸어 호텔로 돌아가려고 걷고 있는데 용다리 못 미쳐 또 비가 온다. 이번에는 빗줄기가 굵다. 얼른 피할 데를 찾아보니 마침 바로 옆에 HIGHLANDS라는 카페가 있다. 여기에 들어가 카페라떼 아이스를 시켰는데 이번에는 너무 달다. 냉수를 조금 달래서 희석해 마시고 있는데 이번 비는 그치질 않는다. 비가 그치길 기다리며 한 시간 동안 Daily Note를 썼다. 시간은 5시가 다 됐다. 비가 그치면 반미(Ban Mi) 잘하는 집을 찾아 저녁을 간단히 먹고 들어가야겠다.
비가 그치질 않고 배도 안 고파 그냥 호텔로 가려고 Grab을 불렀는데 차가 안 온다. 비가 많이 와서 Grab 수요가 넘쳐 나고 길이 막혀 차가 오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한참 기다리니 차가 와서 호텔로 돌아왔다. Grab 기사가 나를 찾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툴툴댄다. 팁을 달라는 소리 같아서 내릴 때 1만동을 줬더니 받지 않는다. Grab 회사가 교육을 잘 시켰나 보다. 오늘은 총 13,500보를 걸었다.
호텔 방으로 와서 우산 가지고 내일 바나힐 갈 때 입을 두꺼운 비옷을 사왔다. 내일도 비가 오락가락할 텐데 바나힐에서 비 맞으면 안 될 것 같아 튼튼한 놈으로 미리 준비를 했다. 내일은 아침 7시에 기사가 오기로 했다. 바나힐을 왕복해 주는 기사 딸린 차량을 한국에서 미리 예약해 놨다. 내일은 새벽 5시 반에는 일어나야 한다. 벌써 9시 반인데 서둘러 자야겠다. 오늘 밤에도 어제 밤처럼 깨지 않고 잘 자면 좋겠다.

첫댓글 혼자 놀기 잘하시네요. 대단합니다. 재작년 다낭 다녀온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