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 헤아릴 수 없는 억겁 동안 법을 설했으니 교묘히 뛰어났다.
[論] 불방일(不放逸) 등의 모든 선근을 스스로 닦기를 좋아하는
이러한 보살들은 한 세상 혹은 둘, 셋, 네 세상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에 모든 공덕과 지혜를 모았던 것이다.
용수보살께서 하신 위의 말씀처럼,
보살이 성불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덕자량과 지혜자량을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 모아야 합니다.
그저 공을 돈오했다고 성불하는 건 불가능하고
또 참선/선정만 닦아서도 역시나 성불은 불가능하죠.
보리심과 공성, 즉 공덕과 지혜를 같이 닦아야만 성불이 가능합니다.
이런 게송이 있다.
중생을 위하여 큰 마음을 낸 이에게
공손치 않거나 교만을 낸다면
그 죄는 매우 커서 말할 수 없거늘
하물며 악심을 가하는 일이랴.
일체 중생을 모든 고통에서 다 벗어나게 돕겠다라는 그런 큰 대자대비심을 낸 보살에게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그것은 본인에게 너무나도 치명적이라는 말씀이죠.
심성이 악한 악당에게 악심을 품는 것보다
성인들게 악심을 품는 죄가 더 큽니다.
또한 이 보살은 셀 수 없고 한량없는 겁 동안에 몸을 닦고 계를 닦으며,
마음을 닦고 지혜를 닦아 생멸의 속박을 풀고 거슬리고
순종하는 가운데 스스로가 실상을 명료히 안다.
실상을 명료히 안다는 것은, 제법실상은 확실히 안다는 것이고
제법실상이란 모든 것의 존재방식을 말합니다.
제법의 존재방식이란 연기법이고,
연기적으로 생겨나고 존재하므로 그 어디에도 그 무엇에도 실체가 없어 공합니다.
제법실상...모든 것의 존재방식이란 곧 공성을 의미합니다.
모든 법의 실상을 아는데 세 가지 이해가 있으니,
문해(聞解),
의해(義解),
득해(得解)이다.
갖가지로 법문을 연설하되 걸림이 없으며,
모두가 설법의 방편과 지혜바라밀을 얻으니,
이러한 보살들이 설하는 바는 성인의 말씀과 같아 모두 믿어 지녀야 한다.
이런 게송이 있다.
지혜만 있고 많이 듣지 못하면
이는 실상을 알지 못하나니
마치 캄캄한 어둠 속에서
눈은 있으되 보지 못함과 같도다.
여기서 듣는다 함은 위대한 성인들의 가르침을 듣는걸 말합니다.
예전엔 다 들어서 배웠지만, 요즘은 다양한 통로로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들은 것 많건만 지혜 없다면
역시 실상의 이치를 알지 못하니
마치 매우 밝은 가운데
등불까지 있으되 눈이 없음과 같다.
불교에서 말하는 지혜는 곧 제법실상을 있는 그대로 아는 것을 말합니다.
이게 곧 반야바라밀입니다.
들은 것 많고 지혜도 예리하다면
그의 말은 받아들여야 하지만
들은 것 없고 지혜도 없다면
이를 사람 중의 소라 부른다.
소가 안되려면,
문사수의 세가지 지혜를 키워나가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