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거장
한경희
오랜만에 휴대폰 연락처를 열었다. 한동안 소식이 없거나 피하고 싶은 사람은 주저 없이 삭제한다. 쌓아두거나 추억하는 일보다, 버리고, 잊고, 보내는 것에 익숙하다. 한 카톡 문구에서 시선이 머문다. ‘Ama momentum, hic et nunc.’
그때 난 수면제로도 네 시간 이상을 못 잤다. 꿈속에서조차 누렇게 말라버린 시간의 덩어리가 나를 옥죄었다. 거기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인터넷 독서 카페에 가입했다. 그렇게라도 세상과 소통하고 싶었다. 온라인에서는 모두 행복해 보였다. 하루를 ‘살아내는’ 나와 달리 그들은 주체적으로 ‘살고’ 있었다. 맛집 사진을 올리고 여행지에서 누구도 부럽지 않은 얼굴로 희희낙락했다. 회원들 간의 모임 후기가 경쟁적으로 올라오기도 했다. 보이지 않게 서로를 견제하고 시샘하면서. 그들을 보며 자극받길 원했지만 자괴감만 쌓여갔다.
용기를 짜내어 익명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조금은 후련했다. 댓글이 궁금해 자주 몸을 일으켰다. 첫 댓글이 그녀의 것이었다. 자신도 나처럼 그랬었다고··· 지금은 나아졌다고 했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며 이메일을 남겼다. 우리는 이내 일기 쓰듯 안부를 주고받았다. 누군가를 만나고, 무엇을 만들거나 산책했던, 별것 아닌 그녀의 일상이 부러웠다. 멋져보였다. 그 부러움은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의욕을 불러일으켰다. 약간의 질투를 동반한 동경, 그녀를 향한 내 감정이었다.
메일 속 나는 현실의 나인 동시에 내가 아니었다. 때로 괜찮아 보였다.
잘 지내셨죠. 남편이 장기 출장을 갔어요. 혼자 남은 집은 왜 이리 크게 느껴질까요. 미야모토 테루의 『환상의 빛』을 읽고 있어요. 저도··· 그런 글을 쓰고 싶어요.
차차 속마음도 털어놓았다.
어제 십년지기 친구와 통화하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어요. 후회돼요. 그 친구도 속상했던 사연을 털어놓더군요. 상처 따윈 받지 않는 친구인 줄 알았는데, 사람은 알고 또 알아도 미처 보지 못한 구석이 있나 봐요. 이 일을 계기로 더 가까워질지 멀어질지는 모르겠어요.
우리가 오프라인에서 만난 건 포도가 제 안으로 들였던 햇빛을 한껏 부풀리는 계절이었다. 그렇게 작고 마른 사람이 있을까. 후 불면 날아갈 것 같았다. 목소리마저 여려서 자꾸만 내 목소리도 작아졌던, 맑고 투명한 먼지 같던 사람.
그녀는 아프다고 했다. 열이 오르고 까무룩 정신을 놓아 자주 병원 신세를 진다고 했다. 온갖 검사를 다 해도 병명이 나오지 않아 꾀병으로 오해 받았다면서 환하게 웃었다. 아픈데도 참 예뻤다. 자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서만 나오는 평온하고 확신에 찬 눈빛이었다. 나는 만남 이후 더 빈번하게 그리고 전보다 더 큰 동경을 담아 심중의 얘기를 써 보냈다.
그게 부담스러웠을까. 그녀는 차츰 답장을 걸렀다. 나는 자제를 하다가, 그녀에게 쓸 문장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나오면 메일을 보냈다. 답장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추신을 달았지만 인터넷을 수시로 들락거렸다.
내가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그녀 덕분이었다. 아니 그녀와 주고받은 메일 때문이었다. 글의 치유력을 알아버린 나는 쉽게 그 맛을 떨칠 수 없었다. 나만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모든 게 좋게 흘러갈 거라는 기대감이 일 무렵 그녀가 몇 달 만에 메일을 보내왔다.
늘어나는 시간에 따라 조금씩 벌어질 수도 있는 00님과 저, 우리도 언젠가 더 뜸한 사이로 변할 수 있다는 걸 압니다. 슬프거나 헛헛하지 않습니다. 부질없다고도 생각지 않을 겁니다. 저는 이 순간 00님에게 딱 맞는 좋은 정류장이고 싶으니까요.
제가 00님 속에 잠시 지낸 것이 고맙습니다. 그 시간이 저에게 녹아들어 좀 더 나 자신과 편안하게 마주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거라고 믿어요. 모든 순간이 다 필요한 여정일 테니까요.
어쩌면 변심이라든가, 변덕스러움을 에돌아 변명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이것이 진심이고 맞는 답이라고 여깁니다.
누군가에게 빈 병에 편지 넣어 흘려보내고픈 날 메일 주세요. 답이 없으면 어제보다 조금 더 힘들게 살고 있거나, 바쁘게 살거나, 둘 중 하나일 겁니다.
건강하셔야 해요.
그 후 간혹 허공에 대고 허공에 이야기하듯 그녀에게 메일을 보냈다. 드물게 짧은 답장을 받았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메일 대신 문자를 이용했다. 그렇지 않아도 뜸했던 답장이 대여섯 번 중에 한 번, 일곱에 한 번 여덟아홉에 한 번꼴로 바뀌어 갔다.
그러는 사이 나는 수필이 당선되어 본격적으로 글을 썼다. 서서히 나도 문자를 보내지 않게 되었다. 연락만 하지 않았을 뿐, 그녀를 잊은 적은 없었다.
언젠가 ‘마음에 없는 답 문자보다는 정말 하고 싶을 때 보내는 게 상대를 더 위하는 방법’이라고 그녀는 말했었다. 그 말에 의지해 우리 사이는 여전하다고 믿었다. 상처받기 싫었던 것이다. 전화를 걸어 왜 답을 안 하냐고, 힘든 일이 있으면 내게 말하라고, 내가 너로 인해 지옥을 벗어났던 것처럼 이제는 너한테 힘이 돼 줄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나는 그녀를 위해서라고 자위하면서 다 한 인연을 부정해왔던 것이다.
가끔 그녀의 카톡 프로필 사진을 보았다. 그것만으로도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다 점점 보는 횟수가 줄고 아니, 줄어든 지도 인지하지 못하고, 그녀를 지워갔다.
오늘 그녀의 카톡 사진은 공란이다. 번역기를 돌려보았다. ‘현재를 사랑하라, 지금 여기에 Ama momentum, hic et nunc.’ 그녀를 보내줘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그녀가 ‘40대 초반 그 시절의 정류장에서 자신을 그만 놓아 달라’고 말한다.
지금 내가 서있는 정거장을 찬찬히 둘러본다. 함께 있는 이들도 언젠가는 떠날 것이다. 나 또한 그들에게 좋은 정거장으로 남겨지길 소망한다.
삭제 버튼을 누른다. 아름다웠던 정거장에 그녀를 남겨두고서.
안녕 000님.
잘가요, 나의 정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