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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 시간 서로를 바라보면서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우리 정 가운데에 앉아 계시는 유정욱 권사님을 향해서 우리 좀 위로의 말 힘내십시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 권사님에게 힘 주시고 또 위로하심을 허락하실 줄 믿습니다.
참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결코 앞날을 내다볼 수 없는 진짜 삶인 것 같아요. 우리 젊은 우리가 우암 청년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중환자실에 지금 입원해서 이렇게 우리가 기도해야 할 상황이 이를 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참 요즘은 건강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기도 제목이 참 많지만 가정적으로도 또 나라적으로도 또 우리 연세 드신 분들은 연세 드신 분들 나름대로 나이가 들어가면서 다양한 우리의 연약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과연 이 세상살이를 내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라고 하는 염려가 우리를 찾아올 정도이지요. 그래서 그런 이런 깨어진 환경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뭔가 의지할 대상을 찾습니다.
특별히 종교를 갖는 사람들 가운데 이러한 어려움을 어떻게든지 벗어날 수 있는 뭔가 나를 도와줄 수 있는 대상, 그 대상을 의지하고자 종교를 갖는 분들이 계세요.
또 어떤 분들은 자기개발서 같은 책들을 막 읽으면서 긍정적인 마인드로 자기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어떻게든지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얻고자 합니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도 이 역경을 이 사람들처럼 이겨보리라 꿈은 이루어진다 막 이런 이야기들을 선포하면서 나름대로 힘을 내려고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예나 지금이나 서점에 가면 자기개발서 또 성공에 대한 책 이런 책들은 늘 사람들이 즐겨 읽는 책입니다.
여러분들이 아마 읽어본 적이 있는 내용들이 있을 겁니다. 긍정의 힘 꿈꾸는 다락방 시크릿 이런 책들이 이미 우리 많은 사람들이 읽고 도전도 됐고 또 이 안에서 뭔가 좀 얻고자 하는 마음에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책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책은 물론 긍정적인 면이 있습니다. 사람들 안에 부정적인 시각이 요즘 시대 가운데 흐르고 있어요. 내가 뭐 이렇게 아무리 노력해도 삶에 변화가 있겠어 부정적인 사고에 사로잡혀 있다 보니까 내가 뭘 해도 안 될 거야라고 하는 인식 속에 거하고 있는데 이런 책 같은 것들이 그래도 내가 얼마나 지금 잘못된 생각들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점검하게 해주고 자신감을 좀 회복하고 뭔가 해보자라고 하는 그러한 기대감을 만들어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적인 서적이 아니더라도 세상적인 책에서도 보면 긍정적인 이야기들, 긍정의 힘 뭔가 꿈을 꾸게 하는 내용들, 그런 내용들이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고 기독교 서적 가운데서도 그런 내용의 주제를 가진 책들이 사람들이 참 많이 본다는 거예요.
다만 비교점이라고 한다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곳에는 하나님과 어떤 기도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지 않고 기독교 서적에는 하나님 그리고 기도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는 그 정도 차이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기독교 안의 거짓말 지금 세 번째 시간 어쩌면 지금 이 수요일마다 제가 지금 나누고 있는 내용들이 이건 무조건 틀렸어 이런 내용이라고 하기보다는 우리가 다시 한 번 본질을 생각하게 하는 내용인 것 같아요.
오늘은 세 번째 시간으로 믿고 기도하면 응답받아요?
여러분 믿고 기도하면 응답받습니까? 아멘 기독교인의 거짓말이라니까 또 왠지 이게 틀린 말인가 어쩐 말인가 헷갈리기 시작하죠. 믿고 기도하면 이루어 주십니다. 하나님이 복 주시려고 하는데 여러분들이 기도하지 않아서 이 복을 누리지 못하는 겁니다. 우리가 이런 식으로 말씀들을 나누고 또 더 긍정적으로 사고하고 우리 믿음으로 선포하며 기도합시다. 우리가 늘 해오던 이야기들입니다. 근데 이런 내용으로 이제 요즘 그런 책들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중요한 건 그러면 지금까지 우리가 기도한 내용들 가운데 응답되지 않은 기도의 제목은 어떻게 해석을 해야 될 것인가라고 하는 이제 질문에 다다르게 됩니다.
여러분들 기도한 게 다 응답되셨나요? 그러면 혹 응답되지 않은 기도는 내가 믿음이 부족해서 안 믿고 내가 기도해서 그런 것일까 내가 흔들린 가운데 기도해서 그런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진실되게 기도한 사람들 가운데 병이 낫지 않은 분들도 계십니다. 자녀의 아픔을 위해서 지금 우리가 우리 권사님 또 우리 공동체가 같이 기도하고 있지만 자녀가 아픈 부모의 심령 가운데 진실되게 기도하지 않는 부모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아마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아픈 걸 차라리 내가 아프고 말지 내 자녀의 아픔을 우리는 볼 수가 없으니까요. 자녀를 위하여 더 처절하게 애타는 심정으로 믿음으로 기도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기도 가운데도 이루어지는 기도가 있는가 하면 또 이루어지지 않는 기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죠. 믿음으로 새로운 사업장을 열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믿음으로 맡기고 나아가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시작한 사업장이 잘 운영되지 않은 경우들도 있어요. 그럼 믿음이 부족해서일까요? 믿음으로 배우자를 위해서 기도했고 신앙의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 애타는 마음을 가지고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었는데 그렇지 못한 분들도 계시고 또 여전히 독신으로 살아가는 분들도 계시고 그런 분들이 믿음이 연약해서 그런 것일까요?
실제로 많은 분들이요. 신앙생활을 하다가 자기가 기도한 그 기도의 내용들이 응답되지 않은 것 때문에 시험에 들기도 하고 또 뭔가 기도에 무력감을 느끼는, 그래서 신앙은 그냥 하나의 마음의 평안함을 주는 도구 정도 수준으로 여기는 분들이 생각보다 있습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요? 열심히 기도도 했고 열심히 믿음으로 선포도 했는데 예수님도 믿음의 중요성을 보면 엄청 강조하시잖아요. 중풍병자를 메고 온 친구들 그들의 믿음을 보고서 예수님이 그 중풍병자에게 죄사함을 받았다고 말을 하시고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기 대기만 해도 내가 낫겠다는 믿음으로 손을 대었더니 나음을 입었어요.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 회당장이 두려움으로 예수님께 맡기며 나올 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고 말씀하시고 났더니 정말 죽은 딸이 살아났습니다.
근데 여러분 성경에 보면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걸 우리가 발견하게 됩니다. 마가복음 4장 35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가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배를 타고 가다가 예수님과 같이 배를 타고 가는 그 배가 풍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막 물이 넘치고 뒤집어질 상황이 되니까 제자들이 두려움에 떨며 예수님을 깨우는 이 상황 속에서 예수님이 그 풍랑을 향하여 잔잔케 하시고 난 다음에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왜 무서워하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그러면서 꾸짖으셨어요. 여기서 말하는 예수님이 말하는 믿음은 무엇일까요? 믿으면 풍랑이 불어도 이 풍랑이 잔잔해질 것이라는 믿음일까요? 아니면 믿으면 내가 지금 이렇게 풍랑이 쳐도 해를 당하지 않고 저쪽으로 건너갈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 그런 믿음일까요?
마가복음 9장에 보면 벙어리 귀신 들린 아들을 고쳐달라고 온 하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자기 자녀를 위하여 애타는 심정으로 왔는데 제자들이 그곳에 있었고 예수님은 그 자리에 안 계셨죠?
그런데 제자들에게 기도 부탁을 했는데 제자들이 아무리 기도를 해도 이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어요. 변화산에서 예수님이 내려오셔서 그 아버지를 만나셨죠? 그리고 그 아버지에게 그 이야기를 들으시고 난 다음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겠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에게 참아야 하겠느냐
여기서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대상은 아버지거든요. 믿음이 없는 아버지요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없는 제자들아라고 말하지 않고요. 믿음이 없는 세대예요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지금 살아온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잠깐 나누었지만 예수님께서도 믿음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포인트를 두고 말씀하셨는데 약간 뭔가 다른 내용이 있죠.
좀 자세히 한번 마가복음 9장의 내용을 살펴보면요. 귀신 들린 아들이 어떻게 됐습니까?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귀신 들려가지고 여러 번 죽을 뻔한 상황들이 있었습니다. 불쌍히 여겨달라고 할 수 있으면 우리 아들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도와달라고 말을 합니다.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시죠.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사람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아버지가 그때 내가 믿습니다. 믿음 없는 나를 도와주십시오라고 간구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치유해 주셨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는데 도대체 여기에서 믿는 자라고 하는 이 믿음이라는 게 뭘까?
잘못 우리가 이제 이거를 그냥 문자적으로만 이렇게 보면요. 내가 믿음으로 기도하기만 하면 이 병이 나을 것이다. 아이의 병이 낳을 것을 믿으면 낳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해석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본문을 다시 한 번 설명을 생각해 보십시오. 아버지는 그 아이의 상황을 쫙 이야기하고 난 다음에 할 수 있거든 도와달라고 부탁을 하죠. 한마디로 예수님 당신이 할 수 있으면 한번 고쳐주세요. 뭐든지 좀 해주세요라고 지금 요청하고 있는 겁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근데 예수님이 말씀하신 게 뭐예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못할 일이 없다.
여러분 이 말은 되짚어보면요. 지금 믿음이 뭔지를 우리가 분명히 알게 됩니다. 한마디로 할 수 있거든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고 하는 그 말에 생략된 건 나를 믿으면 예수를 믿으면 능치 보답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뭔가를 할 수 있다면 이게 무슨 말이냐 나를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라고 하는 말씀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서 지금 말하는 예수님이 말하는 믿음은 예수님이라고 하는 예수님이라고 하는 대상에 대한 믿음을 말하는 거지, 아이가 병이 나을 거라고 하는 믿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마가복음 10장에서도 바디메오라고 하는 눈먼 거지가 예수님 앞에 소리지르죠. 그럴 때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 그때 그가 내가 다시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고 말했고, 내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하고 그 눈이 띄어져서 그가 가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그 눈 먼 사람 바디메오에게 예수님이 물어본 질문은 니가 눈을 뜰 만한 믿음이 있느냐라고 물은 게 아니에요. 내가 눈을 뜨고 새롭게 살아갈 그것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믿음으로 도전해라 이런 의미도 아닙니다. 그에게 물어본 게 뭐예요?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길 원하느냐 한마디로 지금 눈먼 바디메오의 시선이 예수님을 향하게 하신 겁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줄까 이것을 해줄 수 있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명확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고 예수님이 무엇을 할 수 있는 분인가라고 하는 것에 대한 믿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누구를 믿고 있느냐라고 하는 그것이 중요한 것이지 무엇을 어떻게 될 것을 믿느냐가 아니라는 거예요.
아까 말한 어떤 긍정적인 사고에 대한 책들 성공담 참 좋습니다. 유익하지.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요. 긍정적으로 사고해서 이렇게 긍정적으로 사고하면 긍정적인 일이 일어날 것이다가 아니라 예수님 내가 믿는 그 예수님이 나와 함께하시면 이 일들도 변화될 줄 믿습니다. 이 일들 가운데서도 예수님은 분명히 불가능을 가능케 하실 줄 믿습니다. 거기에 초점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원하는 뭔가를 이루어내는 요술 방망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피하고 싶은 것은 피하고 얻고 싶은 것은 얻게 하는 그런 주술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철저하게 예수님하고 연결돼 있는 거예요.
오늘 제목이 뭐라고요? 믿고 기도하면 응답받아요? 그런데 우리가 지금 믿고 기도할 때 무엇을 붙들고 기도했는지를 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 권사님 우리 같이 기도 해야 되는 상황이지만 우리 우람이의 질병이 치유될 줄 믿습니다고 우리가 기도하고 기도하잖아요. 근데 우리가 병의 치유를 믿고 기도하는 게 아니라 병의 그 치유의 주관을 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겁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참된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 그것은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무엇을 믿느냐가 아니라 누구를 믿느냐 그 개념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믿고 기도하는 대상이 예수님이 무엇을 할 수 있는 분인지 어떤 분이신지를 확신하고 기도하는 그 기도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여기서 약간 혼돈을 느끼고 왜 이 부분을 기독교 안의 거짓말이라고 표현을 했을까요? 그건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해주시겠다고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기도할 때가 많고 또 그것을 더 믿고 간구하는 경우들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보통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원합니다고 우리가 간구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대로 우리의 뜻 안에서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들이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외형적인 모습은 비슷해 보이지만 여러분 똑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사랑과도 똑같은 부분이에요.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를 누구보다 사랑하신다는 것 이 사실을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우리 안에 감격이 일어납니다. 나 같은 사람을 하나님이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신다고 아무런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서 예수님까지 보내주셨다고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도가 지나치면요.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니까 마치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나를 위해 존재하는 존재의 대상으로 여기는 그러한 분이 계시다는 겁니다.
우리의 행복과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기 위하여 존재하는 분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에요.
아주 미묘한 것 같지만 굉장히 중요한 차이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연히 사랑하시기에 우리가 구하지 않은 것조차도 주시길 원하시는 하나님이시죠.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들이 필요한 것들을 다 간구하는 것들을 채워주기 위해 존재하는 분이 아니라 그냥 여러분들 자체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마치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것들은 별책 부록과도 같은 거예요.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인물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믿음 안에서 거했더니 하나님께서 부어주십니다. 믿음으로 붙들었더니 자기가 구하지 않은 것까지도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기도를 우리가 함께 읽었죠. 예수님을 따라 기도하는 법을 우리는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합니다. 내 뜻대로 마치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성경에 부름받아서 많은 사람들이 아주 구하게 된 샘플들이 많이 있죠. 아브라함, 또 솔로몬.
근데 여러분 그들이 불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저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제가 부악이 될 줄 믿습니다. 하고 나가서 부자가 된 게 아니에요. 그들은 하나님을 먼저 붙들었습니다. 안전과 부가 보장되어 있는 아비의 집과 친척과 고향을 떠나서 나아갔습니다. 이거는 안정과 부의 오히려 반대 방향이었죠. 그런데 하나님이 그에게 더 큰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롯과의 그 갈등 관계 속에서 오히려 눈에 보이기에 좋은 곳을 택하지 않고 그 롯이 택한 반대 방향을 택해서 나아갔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붙들고 나아갔더니 오히려 아브라함은 놀라운 은혜를 경험했던 것입니다.
요즘 우리가 새벽마다 솔로몬을 묵상하고 있지만, 솔로몬이 국왕 위에 올라서 이 제국에 권력과 부위를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 들을 수 있는 마음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그것과 더불어 북이 영화를 더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살아가는 자들에게 하나님을 온전히 믿음으로 붙들고 살아가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더욱더 많은 것들로 채워주셨다는 사실이죠. 참된 믿음은 참된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의 주권을 의지하며 하나님께 맡기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기다려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즉각적인 응답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어요. 하지만 하나님은 나를 너무나도 잘 아십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역사하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그 하나님을 온전히 믿음으로 하나님께 맡겨놓고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 가운데 그 일을 온전히 이루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해야 될 것은 응답이 더뎌 보이고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예수님처럼 그 뜻대로 되길 원합니다 라고 붙들고 믿음으로 간구하는 그 자리가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자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분명하면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막 이렇게 글을 쓰신 분들도 있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시죠. 근데 이거는 성경적인 믿음은 아닙니다. 굉장히 도전적이고 우리에게 뭔가 도전하게 하는 그런 표 같은 이야기긴 하지만 성경적인 믿음은 아니에요. 하나님은 주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마음대로 우리가 주무를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하나님은 움직이는 분이 아니십니다. 마치 하나님을 내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처럼 내가 원할 때마다 내 원하는 대로 그렇게 강구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들이 있지 않은지 살펴보길 원합니다.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믿기 때문에 우리는 낙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도전하며 하나님의 뜻을 붙들고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나라가 나를 통하여 이루어지게 해 주십시오. 어쩌면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부자가 되지 못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하지 못할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아무 문제없이 평안하게 살아가는 삶이 우리에게 온전히 임하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붙들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우리가 인생을 살아갔다면 내 삶의 어떠한 성공의 결과물이 아니더라도 내 자녀들이 또 내 후배들이 나의 모습, 나의 흔적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느끼고 발견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그게 바로 참된 성공이고 참된 행복인 줄 믿습니다. 오늘 이 저녁, 하나님을 온전히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이 나의 삶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소망함으로 여러분들 안에 있는 지금 그 고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님을 믿음으로 우리가 맡기고 나아가는 이 저녁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