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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자기업 근로자의 연쇄자살과 파업 사태
중국의 노사관계가 시험대에 올랐다. 타이완계 팍스콘(富士康)사 선전 공장 근로자들의 연쇄 투신자살 사건과 일본 혼다자동차 부품공장의 파업사태는 중국 노사관계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중국에서는 타이완계 폭스콘사에서 13명의 직원들이 자살을 기도하여 11명이 숨진 연쇄자살 사건이 벌어진 데 이어, 중국 광둥성 포산의 일본 혼다자동차 부품공장에서 2주 넘게 이어지고 있는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공장 4곳이 멈춰 서는 등 중국 노사관계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애플, 델, 소니 등 글로벌 기업들의 아웃소싱을 담당하는 대만 전자기기 업체 팍스콘의 중국 공장에서는 지난 1월 이후 최소 13명의 임직원들의 자살 사건이 이어졌다. 사건 발생 비율도 갈수록 증가, 지난 3월 두 건이던 자살은 4월 세 건, 5월에만 여섯 건으로 늘어났다.
잇따른 자살 원인으로는 먼저 단조로운 작업 환경에서 오는 '우울증'이 꼽혔고, 이에 회사 측은 정신과 의사와 심리상담가 등을 공개적으로 모집하는 등 사건 수습에 나섰으나 근무시간에 동료와 잡담이 불가능하고 점심시간이 30여분에 불과한데다 월 900위안(약 16만원)에 불과한 저임금 문제 등 비인간적인 처우들이 속속 공개되면서 회사 측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팍스콘의 모기업인 혼하이정밀 경영진들이 회사를 찾아 이례적인 '공개 사과'를 시행하는 등 진화에 나섰지만 지난 31일 또 한 번의 자살 시도가 이어지는 등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팍스콘은 지난 주말 중국 내 근로자들의 봉급을 평균 20% 인상한다고 밝혔다. 정확한 인상 시기는 결정되지 않았지만 회사 측은 "매우 빠른 시일 내"라고 언급했다.
회사 측은 이번 임금 인상이 이번 자살 사건과 관련된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그동안 중국 제품의 특징으로 꼽혔던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저임금에 근로자를 고용, 노동력을 착취했다는 비난에 직면하자 팍스콘은 부랴부랴 임금 인상에 나선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번 팍스콘 사태에서 특히 가장 두드러지게 부각된 저임금 문제는 비단 팍스콘만이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주 노조총연맹에 해당하는 중화전국총공회(ACFTU)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75%의 중국 노동자가 소득분배가 불평등하다고 느끼고 있었고, 약 4분의1 가량의 노동자들은 지난 5년간 임금 인상이 전혀 없었다고 응답했다.
저임금 문제가 대두되면서 팍스콘 뿐 아니라 다른 대만과 중국 지역 기업들까지 국제 여론을 살피며 임금 인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최대 전자제품 계약생산 기업인 팍스콘의 움직임은 여타 관련 기업들에게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팍스콘을 필두로 한 중국 기업들의 노동자 근로 환경 개선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정적인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대만과 중국 지역의 늘어나는 실업률은 근무 환경 개선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한 요소다. 게다가 중국 남부에 위치한 중소형 공장들은 대기업들과 달리 임금 인상 등으로 인한 비용 증가를 감당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혼다 중국공장의 파업사태였다. 트랜스미션 등 핵심 부품을 생산하는 부품공장의 파업으로 혼다자동차의 중국내 공장 4곳(남부 주요도시 광저우 3개 공장과 동부 우한의 1개 공장 등) 모두가 31일까지도 조업 중단 상태인 혼다의 자동차의 파업 역시 임금 인상 요구에서 비롯된 것이 확인되고 있다.
혼다 중국 근로자들은 자살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폭스콘 공장 노동자들과 같은 수준의 한 달 평균 월급(900위안~1500위안)을 2000위안~2500위안 수준으로 인상해줄 것을 요구하면서 지난 17일부터 중국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조직화된 파업을 계속하고 있다. 현재 혼다 노동자들은 동종 업계 평균 임금에 맞춰 매달 기본급 800위안 인상, 연공서열에 따라 매년 100위안씩 인상, 파업참가자 불이익 금지 및 노조위원장 재선출 등 4가지 핵심 요구를 내걸고 있다.
하지만 근로자 파업으로 중국 현지 공장의 가동을 중단한 혼다자동차는 팍스콘과는 달리 임금인상 대신 강경책으로 나왔다. 31일자 파이낸셜타임스(FT)는 관계자 발언을 인용, 혼다자동차가 중국 공장 근로자들에게 파업을 중단하지 않을 경우 강한 제제조치를 받을 것이라는 서한을 보냈다고 밝혔다. 이 같은 혼다의 강경책은 최근 직원들의 잇따른 자살로 평균 20%의 근로자 임금 인상에 나선 광동성 선전에 위치한 폭스콘 공장의 경우를 감안하면 이례적이라는 평가였고, 혼다의 강경책에 근로자들 역시 강경한 태도로 응하면서 사태는 더욱 악화됐다. 공장 근로자들 대부분은 혼다측이 보낸 서신에 사인을 하지 않거나 아예 읽어보지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혼다 측이 이렇게 강경책을 내밀면서도 내부적으로는 40% 이상의 임금 인상안을 내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폭스콘이 20%의 임금 인상을 한 것과 맞물려 중국 전역에서 외자기업 근무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봇물을 이루기 시작했고, 중국 전역에서 임금인상 요구 파업이 확산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노동자들의 자살과 파업은 중국의 노사 관계가 달라지는 국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중국은 개혁·개방 30년 동안 값싸고 풍부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면서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저가 노동력 시대는 사실상 끝난 것으로 보인다. 경제성장론에 묻혀 그동안 간과됐던 노동자 권익이 중요한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중국식 노사관계'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되고 있을 뿐 아니라 중국의 저임금 노동력과 저렴한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에 길들여진 세계 경제에도 강력한 '도전'이라는 점에서 세계적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SCMP)의 중국문제 전문가인 왕샹웨이(王向偉)는 ‘팍스콘. 혼다사건, 노사관계 변화 노정’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최근 발생한 팍스콘 근로자 연쇄 투신자살 사건과 혼다 자동차 근로자들의 파업사태는 중국에서 노사관계라는 복잡하고 중요한 문제가 표면화됐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의 칼럼니스트 왕샹웨이는 최근의 사건은 노사관계의 변화를 보여주는 신호탄이라며,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더 커질 수 있다고 분석한다.
노사관계가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 배경에는 무엇보다 중국의 인구학적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1979년 중국 개혁개방 이후 노동자들의 침묵과 복종을 강요해온 중국 노사관계의 근본적 변화를 예고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1979년부터 인구증가 억제를 위해 소수민족 출신 등을 제외하고는 ‘1가구 1자녀 정책’이라는 산하제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데, 이 같은 산하제한 정책 아래서 태어난 중국의 젊은 근로자들이 노사관계 변화를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현재 중국 대도시의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근로자들의 대다수는 산하제한 정책 아래서 태어난 농촌출신의 농민공들이다. 이들은 비록 경제적으로 가난하지만 '1가구 1자녀' 정책으로 태어나 귀하게 자란 ‘독자’로서 자존심이 강하고 상대적으로 인내심이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자존심이 강한 반면 인내심은 적은 신세대 농민공들이 노동 운동에 앞장서면서 노사 갈등이 중국의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들은 평등과 존엄에 대한 요구가 강하고, 귀하게 자란 탓에 이들은 또한 봉급 못지않게 여가도 중요하게 여긴다. 이러한 성향을 갖고 있는 중국의 신세대 농민공들이 엄격한 규율을 토대로 한 팍스콘사의 노동문화를 견뎌내기는 쉽지 않다는 게 왕샹웨이의 지적이다. 지난 1월23일 이후 4개월여 만에 모두 13건의 자살기도(투신 12건 포함)가 이어져 11명이 숨지고 2명이 다친 팍스콘사 선전공장에서 자살을 시도한 종업원들 모두가 25살 미만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팍스콘사 선전 공장에는 총 42만여명의 종업원들이 일하고 있으며, 근로자 가운데 85%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태어난 농민공들이라는 점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2004년을 계기로 중국이 노동력 부족 상태로 접어들었고, 앞서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도 지난 3월 업무보고를 통해 중국 근로자들이 번영을 공유하도록 하는데 정부 정책의 우선권을 두겠다고 말한 바 있는 것처럼 중국 정부가 빈부격차 해결을 강조하고 있는 사회·정치적 상황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중국 내 노사문제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노동과 자본의 본격적인 대립으로 해석하고 있다. 자본주의 초기형 노동착취가 중국 노사관계 '혁명'의 신호탄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중국 인민대학 법률사회연구소 저우샤오정(周孝正) 소장은 31일 경제도보(經濟導報)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노동자들이 자본가들에 비해 약세인 데다 노동자 조직의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기업들이 노동자들의 정상적인 요구를 무시하고, 노동자들을 존중하지 않는 한편 심지어 임금까지 지급하지 않고 있다."며 "이는 사실상 노동자들에 대한 폭력"이라고 주장했다.
베이징대 경제학원의 노동경제 전문가인 샤예량(夏業良) 교수도 "중국의 공회(노동조합)는 아직 노동자 권익보호 역량이 약하다."면서 "실질적으로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및 복지향상을 위해 일하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공회의 결성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혼다자동차 노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공회 간부들의 민주적인 선출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될 가능성이 높다.
급기야 중국의 노총격인 전국총공회는 지난 29일 '노동자 대오의 권익 보호와 사회안정 업무에 관한 의견'을 발표, "경제발전 방식의 변환 시기에 노동자 권익 보호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서 노사문제가 표면화되고 있는 것이다.
팍스콘 연쇄자살과 혼다의 장기 파업사태가 국제적인 이슈로 부각되면서 중국의 저임금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국제적 비난이 높아지면서 대만과 일본 기업이 임금 인상 움직임을 보이는 등 사태 해결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이지만, 문제는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왕샹웨이는 팍스콘사의 모기업인 대만 훙하이그룹(鴻海科技集團)이 지난 28일 팍스콘사 근로자들의 투신자살 사건 재발방지책으로 근로자들의 임금을 평균 20%가량 올리기로 결정한 점을 지적하면서 팍스콘 사건과 혼다자동차의 파업사태가 중국 전역에서 근로자들의 임금인상 요구를 촉발하는 촉매제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미 베이징현대차에 부품을 공급하는 성우하이텍의 베이징 공장에서도 지난 28~29일 파업이 일어나, 베이징현대차 공장도 일시 조업이 중단되면서 임금 15% 인상에 합의하여 파업이 마무리된 바 있다.
이에 대해 국제노동기구(ILO) 베이징사무소의 이창휘 노사관계 선임자문위원은 "기업들이 임금 결정권을 쥐고 있는 중국 현실에서 혼다 노동자들이 동종업계와 평등한 임금, 연공에 따른 임금 인상, 독립적 노조 문제 등을 제기한 것은 의미가 크다"며, 이번 파업이 중국 산업계 전반의 노사관계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선임자문 위원은 "중국 정부가 혼다 파업에 어떤 입장을 취할지가 중요한 변수"라고 말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31일 "중국 정부는 혼다 파업에 개입하지 않으면서, 이번 사태가 임금제도 개선으로 이어지길 희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주간지 ‘신세기’는 혼다 파업이 중국 '저임금 제조업 모델'에 대한 타격이라며, "중국노동자와 고용주의 불평등한 대결이 평등을 향해 나아가는 역사적 사건"이라는 분석을 소개했다.
그러나 이번 두 가지 사건에서 명백하게 드러났듯이 노사관계는 이제 중국 산업계에서 중요한 문제로 등장했으며, 특히 중국에 진출한 해외의 다국적 기업에게는 중요한 요인으로 떠올랐다. 단순히 노사관계 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비용부담이 더 클 것이다. 팍스콘이 임금 인상 계획을 밝히면서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회사의 분기별 지출 비용이 8400만달러 가량 늘어나게 되며, 이는 곧 영업이익이 10~12% 감소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 반면, 다른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이러한 경제적 영향력에 대한 '계산'을 내놓기엔 세부적인 내용이 너무 부족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 큰 비용요소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개혁.개방 30년’ 동안 중국은 값싼 노동력을 활용해 원자재를 가공, 해외로 수출하는 ‘세계의 공장’ 역할을 수행해 왔고, 다국적 기업들은 막대한 자본을 중국에 투자해 생산기지를 구축했으며, 이들은 노사문제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었다는 점에서 이는 심각한 제약요건이 될 것이다. 중국 언론인 글로벌타임스는 "중국은 향후 몇 년간 근로자 환경 개선과 동시에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도 제공해야만 한다. 두 문제를 모두 완벽하게 해결해야 하는 것이 중국이 직면한 문제"라고 분석했다. 중국 노사관계의 이러한 지각변동은 한국 기업을 포함한 중국 진출 다국적기업의 전략적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