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
[KBS 추적 60분] “아프거나 나쁘거나, 조현병 범죄의 진실”
(2018. 8. 29. 방송)을 시청한 촛불 배정규의 시청소감문
이 방송의 유튜브 주소 https://www.youtube.com/watch?v=jgVXCHAvFlw&feature=youtu.be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나서 씁쓸했다. 실망스러웠다. 이 프로그램이 주장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호하게 느껴졌다. 도대체 전달하려던 메시지가 무엇이었을까? 총 55분 분량 중 앞부분 40분과 마지막 15분의 내용이 달랐다. 마치 두 편의 서로 다른 방송을 본 듯한 느낌이다.
앞부분 40분은 차라리 방송하지 말아야 했다. 그 내용은 조현병을 지닌 당사자는 위험한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위기감과 두려움을 증폭시키고 편견을 조장한다. 표면적인 말과 배경영상이 다르다. 표면적인 말은 “치료받으면 괜찮다.”고 하지만 배경영상은 섬뜩하고 황당하고 위화감을 느끼게 만드는 장면들이다. 인간은 이성적인 말보다 감성적인 메시지로부터 더 큰 영향을 받는다. 말보다 영상의 호소력이 더 크다. 표면적인 말은 “치료받으면 괜찮다.”는 것이지만 영상물의 메시지는 “위험하다. 격리해야 한다.”는 느낌을 전해주는 장면들이다. 편견을 없애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편견을 증폭시키고 있다.
마지막 15분 분량은 괜찮았다. 미국 애리조나주의 경우를 예로 들었다. 애리조나주립경찰들의 정신질환자에 대한 초동대응훈련을 소개하고, 스타정신재활센터의 예를 들었다. 국내의 경우로는 수원에 있는 마음샘정신재활센터의 예를 들었다. 그리고 끝부분에서 정신질환자들이 지역사회 내에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보건복지부가 조만간 “지역사회관리 로드맵(Community Care Road Map)"을 내어놓겠다고 한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그것을 지켜보겠다는 말로 마무리하고 있다.
앞부분 40분을 삭제하고 마지막 15분만 방송했다면 나는 박수를 쳤을 것이다. 끔찍하고 두렵고 기괴하고 황당한 장면을 40분간 내보내고 마지막 15분 정도 그럴 듯한 말로 마무리했다. 끔찍하고 잔인한 것을 기대하는 사람들의 말초적인 욕구를 잔뜩 충족시켜주고 마지막에 그럴 듯한 말로 포장하면서 끝내고 있다. 한숨이 나온다. 프로그램의 의도가 뭔지 모르겠다. 조현병에 대한 편견을 없애자는 건지 아니면 조현병에 대한 두려움과 증오심, 그리고 편견에 편승하여 시청률을 높이자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댓글을 보면 이 프로그램이 어떤 기능을 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9 대 1 이상이다. 조현병과 당사자에 대한 혐오적인 댓글이 9개라면 그나마 중립적이거나 우호적인 댓글은 1개 정도이다. 우리 사회의 조현병에 대한 편견이 심하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9 대 1이라는 비율은 심했다. 만일 프로그램에 감동적인 요소가 있었다면 이 비율은 그래도 8 대 2나, 7 대 3이나, 6 대 4나, 5 대 5... 이런 식으로 긍정적인 댓글이 많아졌을 것이다. 진짜 잘 만든 프로그램이라면 우호적인 댓글이 혐오적인 댓글보다 훨씬 더 많아야 한다. 혐오적인 댓글을 단지 사람들의 편견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걸 바꿔주자는 게 프로그램의 목적이지 않은가? 그런데 그 비율이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면, 오히려 만일 증가했다면? 이 점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댓글의 비율로 판단할 때 이 프로그램은 편견을 없애주는 게 아니라 편견을 조장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씁쓸하다.
도대체 앞부분 40분은 누가 어떤 생각으로 넣었을까? 본 방송의 첫 40분은 “조현병 범죄”가 마치 “병 자체의 문제”이거나 “개인의 책임”, 또는 “가족의 책임”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것은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고자 하는 대중들의 욕구”와 결합될 수 있다. 나는 이 방송이 그러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댓글의 내용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조현병 범죄”를 “병 자체의 문제”이거나 “개인의 책임” 또는 “가족의 책임”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것은 천재지변을 “태풍 자체의 문제”이거나 “대비를 소홀히 한 개인의 책임” 또는 “가정의 책임”인 것으로 돌리면 이후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반복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설혹 대중들이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언론은 달라야 한다.
천재지변으로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때, 언론은 가장 먼저 “국가가 책임을 다했는가?”를 묻고, “현재의 국가 재난대비시스템이 적절한가?”를 묻는다. 마찬가지로 조현병과 관련된 심각한 사건이 일어날 때, 언론은 가장 먼저 “국가가 책임을 다했는가?”를 물어야 한다. 또한 “현재의 국가 정신보건시스템이 과연 적절한가?”를 물어야 한다. 언론은 “천재지변”에 대해서는 국가의 책임을 준엄하게 물으면서, “조현병 범죄”에 대해서는 왜 국가의 책임을 준엄하게 묻지 않는가? “막을 수 있는 일을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 “천재지변에 대한 국가의 무책임”과 “조현병 범죄에 대한 국가의 무책임”은 동일 선상에 있다.
본 방송이 첫 부분부터 “국가의 책임”을 물으면서 시작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강력하게 지적하면서 시작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외국과 우리나라의 정책방향과 시스템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우리나라의 경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자료화면과 각종 통계치를 제시하면서 시작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국가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국가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지?”를 적극적으로 제안하면서 마무리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아쉽게도 본 방송은 맨 마지막에 “지켜보겠다.”는 말만 하고 있다. 뭐가 잘못되었는지 제대로 문제점 분석도 안 하고,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방향제시도 제대로 안 하고, 단지 “지켜보겠다.”고만 하고 있다.
조현병 범죄자와 그 가족들은 “국가의 무관심과 무책임의 희생자”들이다. 우리나라 정신건강시스템에는 어떤 문제점들이 있는가? 어떤 문제점들이 있기에 이러한 문제가 반복되고 있는가? 내 생각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약물치료와 수용(입원치료) 중심의 시스템이 심각한 문제이다. 본 영상물에서는 “약만 먹으면 괜찮았을텐데, 약을 먹지 않아서 그렇다.”는 식의 설명이 반복되고 있는데, 만약 모든 당사자들이 약만 잘 먹는다면 이후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인가? 본 영상물에서 가족살해의 30%가 정신질환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들이 단지 약을 먹지 않았기 때문에 가족살해를 하는 것인가? 발병초기부터 병에 대한, 그리고 병치료에 대한 당사자교육과 가족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것이 생략되고, 당사자와 가족들에 대한 심리상담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것이 생략되고, 가족 간의 원활한 대화와 가족갈등 해결을 위한 가족대화법 교육과 가족상담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것이 생략되었기 때문은 아닌가? 이웃주민과의 관계개선 노력이 생략되었기 때문은 아닌가? 그들이 사회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다각도로 지원해야 하는데 그러한 노력이 생략되었기 때문은 아닌가? 이러한 측면들은 검토하지 않고, “약만 먹으면 된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강제입원과 강제투약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하는 어리석음과 용감함이 문제해결을 원천적으로 가로막고 있는 최대의 방해요소가 아닐까? 본 방송은 그러한 설명방식을 여과 없이 그대로 내보내기보다 오히려 그러한 설명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했어야 하지 않을까?
방송의 마지막 15분 분량에서는 지역사회정신건강증진센터와 정신재활센터의 기능 확대를 말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경우 지역사회정신건강증진센터는 대략 인구 20만명 기준으로 1개소씩 설치되어 있는데, 우리나라도 비슷한 인구 단위인 구 또는 군 단위로 이러한 기관들이 설치되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인력과 예산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 미국과 유럽의 경우 1개소당 규모가 작은 경우는 30~40명, 규모가 큰 경우는 100명 이상의 전문인력이 배치되어 있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규모가 작은 경우는 3~4명, 규모가 큰 경우는 10명 정도의 전문인력이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정신재활센터의 경우에는 그 상황이 더욱 열악한데, 인력만 적을 뿐 아니라 예산의 80% 이상이 인건비로 편성되어 있어서 일을 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일할 수 없는 실정이다.
그런데 인력이나 예산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일의 목표”의 문제이다. 정신건강증진센터와 재활센터는 말로는 “지역사회복귀”를 외치고 있지만 실제로는 수용(입원치료) 위주의 시스템에서 그에 종속된 하부기관으로 기능하고 있다. 즉 입원대상자를 발굴하고 퇴원자를 재입원할 때까지 임시 관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정신건강증진센터를 대학병원 또는 대형정신병원에서 위탁 운영하도록 하는 현행 방식이 유지되는 한 우리나라의 정신건강증진센터와 정신재활센터는 대학병원 또는 대형병원의 하부기관 역할만 할 뿐 진정한 의미에서의 지역사회기관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데 본 방송은 이러한 문제점들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고 있다. 본 방송에서 가장 중요하게 언급한 문제점은 “약 안 먹어서 그렇다.”인데, 이것은 “조현병 범죄”가 “병 자체의 속성” 때문이고 “약 복용을 하지 않은 개인의 책임”이라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또한 방송이 은근히 제안하고 있는 해결책은 “국가관리시스템”인데, “국가는 그들이 약을 잘 먹는지 수시로 점검하고, 그들이 약을 잘 먹도록 강제할 방법을 궁리하고, 그들이 사고치지 않도록 감시 감독할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는 메시지를 은근히 내포하고 있는 느낌이다.
내 생각에, 현재의 우리나라 정신보건에서 반복해서 일어나는 문제점들은 “기득권 전문가들의 무책임과 국가의 무책임의 합작품”이다. "KBS 추적 60분“은 고발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자신들이 누구를 고발해야 하고, 무엇을 고발해야 할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내 생각에 본 방송은 자신들이 고발해야 할 사람들부터 자문을 받고 그 관점에 안주함으로써 무엇이 문제인지, 애초에 문제 자체를 제대로 찾아내지 못한 것 같다.
나는 이후로 누군가 “조현병 범죄”와 관련된 고발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다음을 강조해 주기를 바란다.
첫째, 정신건강 분야에 관심이 없고 지나치게 적은 예산만을 배정함으로써 이 분야를 거의 방치하다시피 하고 있는 국가의 무관심과 무책임을 고발해 주기를 바란다.
둘째, 국가정신보건예산의 거의 대부분을 약물치료와 수용(입원치료) 위주로 집행함으로써 여타의 서비스가 애초에 시도되지 못하게 막고 있는 현재의 왜곡된 돈의 흐름을 고발해 주기를 바란다.
셋째, 자신들의 영역이라고 울타리만 쳐놓고 병을 낫게 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당사자와 가족들의 고통에 무관심한 기득권 전문가들의 나태함과 무책임을 고발해 주기를 바란다.
넷째, 유럽과 미국의 다양한 대안적인 방법들을 적극 소개해 주기를 바란다.
이 글이 본 방송을 보고 씁쓸한 느낌을 가지셨던 분들께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이후로 “국가의 책임”을 준엄하게 묻는 고발 프로그램이 제작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첫댓글 10대의 아픈자녀를 기르는 입장에서 통탄할입니다 kbs 에 항의 전화를 가족들이 해야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살아갈 자녀들의 미래가 참으노 걱정됩니다
저도 기쁜노래님 의견과 같아요..
개인적으로도 항의가 빗발쳐야되고, 가족협회. 정신장애인협회 차원에서 들고 일어나 고발하고 시위하고 난리를 쳐서 언론과 맞서는것 부터 시작해야 되는게 아닌가 생각되요. 당사자에 대한 편견을 극도로 조장하는 내용물을 공영방송사에서 버젓이 내놓는 것을 계속 그대로 둔다면 앞으로 점점더 당사자는 이사회에 발붙일곳이 없겠네요.
사람들은 앞부분 40분만 기억하겠지요. 그쪽이 훨씬 강렬하니깐요. 차라리 안하느니만 못한 방송이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시아님~~ 속상하셨던 마음 잘 추스르시길 바랍니다.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영상을 보면서 손이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밤에 잠도 안 오더군요. 뒷부분에 조금 시간을 할애해서 대안을 제시하긴 했지만, 대중의 시각은 이미 앞부분에서 결정되었다고 봅니다. 또한 음향과 연출도 마치 공포영화처럼 묘사된 것을 보면서... 그저 분노만 나올 뿐이었습니다.. 힘이 들지만 그래도 어쨌든 이겨내야할 현실적인 문제가 아닐까 생각도 됩니다...
사회적으로 조현병 환자를 일반인이 접근을 못하게 하는 방송입니다. 전체적인 시스템을 바꾸어야 하는데 환자를 범죄자 취급하는 방송, 대안제시없는 방송, 조현병 환자를 사회에서 더욱더 낙인시키는 방송입니다. 공영방송이 앞장서 이렇게 하니
심각합니다. 당사자들을 더욱더 힘들게 하는 이런 방송을 편성한 집단은 규탄해야 합니다.
편견을 조장하고 부채질하는 방송입니다.
후반 15분을 앞에 두고 편안하게 풀어가는
진행이 바람직합니다.
후진국 수준의 메스컴의 야만적 실태에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마치 조현병 환자를 쇼킹하게 고발하는 내용이네요.
오히려 KBS와, 태만한 국가를 고발해야겠습니다.
이런 나라에 우울병 안고 사는 내가 부끄럽고 죽고만 싶습니다. 강남역사건 때 죽고 싶었던 그심정 또 느낍니다. 헬조선 낙인천국 100대지표 정신장애 복지는 종잇장 처럼 날아가는 나라입니다. 추적60분이 복지후진국 만들고 YTN 조현 왜곡 뉴스가 황색언론 극치를 보입니다. 60분을 인터뷰해도 30초짜리 영상으로 처리되어 등장하는 가련한 조현당사자는 잠재적범죄자로 전락되었지요. 펜이 칼되어 사람죽이더니 영상이 폭탄되어 조현당사자를 산중으로 쫓습니다. 돈 몇푼에 깔짝이는 몇몇 정신장애 활동가들 언론 춤에 선무당 되지 말기를. 복지부 국회복지위 의 나태와 무기력함을 나팔불며 선전해주는 어리석은 활동가 없기를 바랍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