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시월의 끝날, 유정독서 모임은 실레마을 김유정문학열차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단풍은 그 절정에 올라 있었습니다.
1차시에는 이어령교수의 에세이,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광을 안은 한 강의 에세이와 시작품, 그리고 한 언론인의 에세이를 읽고 이야기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어령교수의 <무당은 왜 칼날 위에서 춤을 추는가>에서, 무당은 하늘과 땅 사이를, 신과 인간 사이를 잇는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무당은 인간의 소망을 신에게 전하고, 신은 무당을 통해 인간에게 그 대답을 전합니다. 무당은 신을 만나기 위해서 상징적인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작둣날(작도날)입니다. 피와 뼈와 살을 가진 인간의 몸으로는 한없이 투명한 신을 만날 수 없기에, 이승과 저승을 잇는 머리카락처럼 가늘고 동굴처럼 어둡고 좁은 길을 지나야 하는데 그것이 작둣날입니다. 작둣날을 탄다는 것은 무당에게는 자신의 생명을 건 테스트이고, 그 테스트를 통과해야만 신의 말씀( 공수)을 받을 수 있지요. 여기서 말하는 테스트는 다른 말로 통과제의(intiation)입니다.
문학인도 또 한 작둣날을 타야합니다. 통과제의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래야만 뮤즈와 접신을 할 수 있습니다. 뮤즈(예술의 신)와 접신을 해야만 시공을 초월한 영험한 언어의 조련사가 될 수 있습니다. 통과제의라는 '외롭고 위태롭고 고통스런 과정을 거친 다음에야 우리는 상상력과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한강의 시작품 < 북향방>은 그 자체가 작둣날과 같은 상징 공간입니다. 북향은 어둡고 외롭고 추운 방이며 북향창에 블라인드를 내린다는 것은 외부세계와의 차단을, 그 어두운 방 책상위의 스탠드를 켠다는 것은 내면으로의 응시를, 세상과 철저하게 차단된 공간에서 단어를 찾아내고 그것을 투명한 잉크로 적어갑니다. 세속에 때묻지 않은 가장 순수하고도 신선한 잉크로 일기를 써나가다보면 방밖, 세속에서 일어나는 허접한 일과는 절연하고, '빛이 변하지 않는' 의롭고 아름답고 따뜻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게 됩니다. 어쩌면 시인에게 '북향방'은 자궁과 같은 곳이어서 새롭게 태어나고픈 소망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2차시에서는 김유정의 자전적 소설 <형>을 읽었습니다.
함께 모여서 차례로 돌아가면서, 눈으로 보고 목소리에 감정을 담뿍 담아 책을 읽는다는 것, 바로 옆에서 책읽는 소리를 들으면서 눈으로는 책의 행간까지를 보면서 그 감추어진 의미를 파헤쳐 본다는 것, 신기하면서도 재미 있는 일입니다.
<형>은 자전적 소설이기에, 어린 시절 김유정의 생활이 많이 반영되어 있기야 하겠지만 소설은 소설인 만치, 그것을 감안하면서 읽어야 하겠습니다.
다음 유정독서 모임은 11월7일 목요일 18:00~20:00, 커먼즈 필드 세미나실에서 진행됩니다.
함께 읽을 작품은 < 가을>입니다.
다음주 목요일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