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사 성어
1. 萬物榮枯 皆有定 (만물 영고 개유정)
浮生碌碌 空奔忙 (부생녹녹 공분망)
笑彼愚人 不岸命 (소피우인 불안명)
强覓冬電 和夏霜 (강멱동전 화하상)
인생의 모든 흥망성쇠가 다정해져 있거늘 인생은 부질없이 분주하도다. 우습구나! 저 어리석은 사람은 분수를 모르고 욕심을 부리니 생명이 위태롭도다. 굳이 한 겨울에 번갯불을 구하고 여름날에 서리 오기를 원하는 도다 …….
중국 진(晋)나라 문공이 젊은 날에 국내사정이 불안정하여 타국에 19년간 망명생활을 하다가 나이 60세에 왕위에 올라 8년을 다스리고 68세에 세상을 떠났다.
인간세상의 부귀영화가 모두 뜬구름 같다고 했는데 …….제나라 환공도 부귀영화를 지극히 오래 누리지 못했고 진나라 문공 또한 그러했으며 초나라 장왕이나 오나라 합려, 부차, 월나라 구천도 처음에 시작은 성실하고 조신했는데 영화가 극에 다다른즉 소돔과 고모라처럼 사치와 향락에 젖어들어 충신열사들의 충고도 귀에 들리지 않고 외골수로 주색과, 귀에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간신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가 하나같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음을 생각하면 역사는 반복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통치자가 귀만 기울인다면 나이와 지역 남녀 간에 스승으로 섬길만한 현명한 사람이 왜 주변에 없겠는가? 옛사람의 행적을 살펴보면서 근신하고 근신하여 후회 없는 인생을 영위해 가도록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할 것이다.
2. 걸견폐요(桀犬吠堯)
桀:임금 걸. 犬:개 견. 吠:짖을 폐. 堯:임금 요
걸왕의 개가 요왕을 보고 짖는다. 대립되는 상대가 훌륭해도 자기편을 따른다.
개는 주인을 따르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상대가 아무리 훌륭해도 주인에게 해를 입히면 주인을 위해 짖는다. 이것은 한나라 초기에 괴통이라는 모사가 주인(韓信)을 위해 헌신한 것을 뜻한다.
천하를 통일한 유방은 측근에 있던 장수들을 하나 둘 지워 나가기 시작했다. 이것은 황후인 여치(여태후)의 작품이었다. 첩자들의 보고를 받은 유방이 한신(韓信)을 잡기 위해 장안으로 왔으나 특별히 잘못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일단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초 왕에서 회음후로 작위를 깎아 버렸다. 또한 한신은 뒤에 다시 역적으로 몰려 여치의 손에 목숨을 빼앗겼다. 그때 한신은 탄식했다.
"내가 괴통의 지략을 따르지 않고 아녀자를 속인 것을 후회할 따름이다. 이것이 어찌 운명이 아니겠는가"
괴통의 지략이란 어떤 것인가? 그것은 항우가 남쪽을, 유방이 서쪽을 차지하고 있을 때에 한신이 움직이는 여하에 따라 천하대세가 좌우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괴통은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고 세발 솥(鼎)처럼 삼분천하 하여 대세를 관망하라는 것이었다. 한신의 탄식을 들은 유방은 곧 괴통을 잡아들였다. 유방은 결박된 괴통에게 다그쳤다.
"네가 한신에게 반역하라 했느냐?“
"그렇습니다. 한신 그 철부지가 소인의 지략을 따르지 않았기에 죽음을 당한 것입니다. 나의 지략을 따랐다면 어떻게 죽음을 당 하겠습니까“
유방은 대노했다. 고약한 괴통을 삶아 죽이라는 명을 내렸다. 괴통이 냉소를 흘리며 물었다.
"내가 죽어야 할 이유가 뭡니까?“
"배반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진나라가 천하를 잃은 뒤 온 천하가 이를 쫓았습니다. 물론 결과적으로 폐하의 것이 됐습니다. 폐하, 도척이 기르는 도둑놈의 개도, 폭군 걸 왕의 개도 요 임금을 보면 짖습니다(桀犬吠堯). 요 임금이 어질지 않아서가 아니라 개는 주인이 아니면 짖습니다. 소신은 한신만을 알고 있을 뿐 폐하는 알지 못했습니다. 폐하, 천하 만민이 폐하와 반대되는 생각을 가진다면 모두 삶아 죽이시겠습니까?“
유방은 그 말을 옳게 여기어 괴통을 살려주었다.
3. 구이지학(口耳之學)
口:입구. 耳:귀 이. 之:어조사 지. 學:배울 학
들은 것을 새기지 않고 그대로 남에게 전하기만 할 뿐 조금도 제 것으로 만들지 못한 학문.
순자(荀子)의 <勸學篇>에 이렇게 쓰여 있다. 군자의 학문은 귀에 들어가면 그대로 마음에 말하고, 신체에 정착하여 인격을 높이고,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러한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사소한 말이나 동작도 많은 사람이 거울이 될 수 있다. 이에 반하여 소인의 학문은 귀로 들어가면 곧바로 입으로 나온다. 즉 들은 대로 즉시 타인에게 전하고, 조금도 자신을 수양하는 양식으로 두지 않는다. 귀와 입 사이는 겨우 네 치, 그 네 치 사이만 신체에 머물러 있었던 것으로 된다. 그러므로 이것을 "口耳之學"이라고 한다. 이래서는 대장부의 마음과 행동을 훌륭하게 할 수가 없다.
옛날 사람은 자신의 몸을 닦고 덕을 높이기 위해 학문을 했으나 요즈음 사람은 배운 것을 남에게 가르쳐서 생활의 수단으로 하기 위해 학문을 하고 있다. 군자의 학문은 자신을 훌륭하게 하기 위한 것인데 비해 소인의 학문은 생활의 도구로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묻지 않은 것까지 가르치는 것을 훤조(喧조)라고 한다. 하나를 물으면 둘을 대답한다. 이것을 다언(多言)이라고 한다. 훤조도 다언도 다 같이 잘못이다. 군자는 묻지 않은 것은 대답하지 않으며, 하나를 물으면, 때리면 울리듯이 하나만을 대답한다.
순자가 지적했듯이 곧잘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싶어 하며 모르는 바를 아는 체하는 것을 《맹자》에서는 "사람들의 병폐는 자기가 다른 사람의 스승이 되는 것을 좋아하는 데에 있다"고 훈계하고 있다.
이 "구이지학"과 뜻이 비슷한 말로 《論語》<陽貨篇>에 "도청도설(道廳塗說)"이 있다.
"길에서 들은풍월을 길에서 되받아 옮기는 것(道廳而塗說)은 덕을 버리는 짓이다."
우리 주변에 조금 안다고 남에게 훈수를 못해서 참지 못하는 사이비 대가들이 넘치는 현실에 딱 어울리는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4. 과전이하(瓜田李下)
瓜:오이 과. 田:밭 전. 李:오얏 리. 下:아래 하.
[원말]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
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
오이 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 나무 아래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뜻으로, 의심 받을 짓은 처음부터 하지 말라는 말.
전국 시대인 주(周)나라 열 왕(烈王) 6년(B.C. 370), 제(齊)나라 위왕(威王) 때의 일이다. 위 왕이 즉위한지 9년이나 되었지만 간신 주파호(周破湖)가 국정을 제멋대로 휘둘러 왔던 탓에 나라꼴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러웠다. 그래서 이를 보다 못한 후궁 우희(虞姬)가 위왕에게 아뢰었다.
"전하, 주파호는 속이 검은 사람이오니 그를 내치시고 북곽(北郭)선생과 같은 어진 선비를 등용하시오소서."
이 사실을 알게 된 주파호는 우희와 북곽 선생은 전부터 서로 좋아하는 사이라고 우희를 모함하기 시작했다. 위왕은 마침내 우희를 옥에 가두고 관원에게 철저히 조사하라고 명했으나 이미 주파호에게 매수된 관원은 억지로 죄를 꾸며내려고 했다. 그러나 위왕은 그 조사 방법이 아무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위왕이 우희를 불러 직접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전하, 신첩(臣妾)은 이제까지 한마음으로 전하를 모신 지 10년이 되었사오나 오늘날 불행히도 간신들의 모함에 빠졌나이다. 신첩의 결백은 청천백일(靑天白日)과 같사옵니다. 만약 신첩에게 죄가 있다면 그것은 '오이 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말고[瓜田不納履]' '오얏나무 아래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李下不整冠]'고 했듯이 남에게 의심받을 일을 피하지 못했다는 점과 신첩이 옥에 갇혀 있는데도 누구 하나 변명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신첩의 부덕한 점이옵니다. 이제 신첩에게 죽음을 내리신다 해도 더 이상 변명치 않겠사오나 주파호와 같은 간신만은 내쳐 주시오소서."
위왕은 우희의 충심어린 호소를 듣고 이제까지의 악몽에서 깨어났다. 그러자 위왕은 당장 주파호 일당을 삶아 죽이고 어지러운 나라를 바로잡았다.
君子 防 未然 (군자는 매사를 사전에 예방해야
하는 것이니)
不處 嫌疑間 (의심 살 만한 곳에는 처신하지
말지어다)
李下 不整冠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관을 고쳐
쓰지 말 것이며)
瓜田 不納履 (오이 밭에서는 신발을 고쳐 신지 말라)
嫂叔 不親授 (형수씨와는 친히 주고 받지 않고)
長幼 不比肩 (어른과 아이는 나란히 걷지 않는다.
오이 밭에서 신발을 고쳐 신으려고 웅크리면 오이 도둑으로 의심 받고, 오얏나무 밑에서 갓을 고쳐 매려고 손을 올리면 오얏 도둑으로 의심받으므로 주의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형제의 아내와 남편의 형제간에는 각별히 주의해야 하며, 연소자는 한발 뒤처져 가야 한다는 뜻이다. 괜히 의심받을 짓은 하지 말라는 뜻으로 文選(문선)과 古樂府(고악부)의 君子行에 실려 있는 말이다.요즘 같은 선거철에 공연한 오해를 받을 식사 대접이나 선물의 교환이 바로 이 말에 해당되는 이야기인 것 같다,
5.기화가거(奇貨可居)
奇:기이할 기. 貨:재물 화. 可:옳을 가. 居:살 거
투자해 볼만한 진기한 물건. 이용하면 이외의 이익을 얻을만한 사물이나 기회
사마천(司馬遷)은 《史記》에서 '千金을 가진 者는 군수(郡守)와 상대하고, 萬金을 가진 자는 천자(天子)와 상대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중국에서 재벌(財閥)은 春秋時代부터 등장했다. 孔子의 수제자였던 자공(子貢)은 춘추시대 말기의 재벌이었다. 孔子가 제국(諸國)을 유세(遊說)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그의 재력 덕분이었다고 하니 지금말로 하면 산학협동(産學協同)인 셈이다.
戰國時代에 오면 전쟁 때문에 무기상이 톡톡히 재미를 보았다. 이때 비로소 정치재벌이 등장하게 되는데 대표적인 사람이 여불위(呂不韋)였다. 그는 본디 소금과 비단으로 거부가 된 者였다. 한번은 조(趙)의 수도 한단(邯鄲)에 들렀다가 우연히 인질로 와 있던 진(秦)의 왕자 자초(子楚)를 만나게 되었다. 상업의 귀재였던지라 그는 첫눈에 子楚의 값어치를 꿰뚫어 보았다.
"음, 투자해 볼 만한데!"(奇貨可居)
그는 놀랍게도 '天子의 자리'를 투자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때부터 그는 子楚에게 금전공세와 함께 애첩 조희(趙嬉)까지 바쳤는데 이미 임신 중이었다고 한다. 그의 투자는 적중해 후에 子楚는 秦의 왕(莊襄王)이 되고 애첩 조희는 황후가 되었으며, 얼마 뒤 자초가 죽어 아들이 즉위하니 이가 진시황(秦始皇)이다. 呂不韋도 옛날의 애첩과 함께 부귀영화를 누렸음은 물론이다.
[註]여불위(呂不韋):전국시대 말엽의 진(秦)나라 승상. 한(韓)나라 사람. 큰 장사꾼으로써 천금을 던져 볼모로 있던 왕자 자초를 도와 왕위에 오르게 함으로써 승상이 됨. 13세 어린 나이로 즉위한 정(政:진시황)으로부터 중부(仲父)라 불리며 문신 후(文信侯)에 봉해짐. 3,000명의 식객을 모아 30여만 어(語)에 이르는 《여씨춘추(呂氏春秋)》를 편수하는 등 위세를 떨쳤으나 후에 밀통 사건에 연루되어 진시황에게 벌을 받고 좌천되어 자살했음. 진시황의 친아버지라고도 함.
6. 계찰괘검(季札掛劍)
季:끝 계. 札:편지 찰. 卦:걸 괘. 劍:칼 검
계찰이 칼을 걸어 놓다. 신의를 중히 여긴다는 뜻
춘추시대 오(吳)나라에 계찰(季札)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오나라 왕 수몽(壽夢)의 막내아들이었다. 그가 처음으로 사신이 되어 여행하던 중 서(徐)나라에 들른 적이 있었다. 그때 서나라의 왕은 계찰의 검을 가지고 싶었으나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한편 계찰은 속으로 짐작은 했지만, 그때는 사신으로 여행하는 중이라 검을 줄 수가 없었다. 그 후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서나라에 당도하고 보니 서 나라의 왕은 이미 세상을 뜬 후였다. 그래서 그 보검을 풀어 서나라 왕의 무덤 옆에 있는 나무에 걸어 놓고 떠났다. 수행원이 이상히 여겨 물었다.
"서 나라의 왕은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무슨 연유로 저렇게 걸어 두는 것입니까?""나는 처음부터 그 검을 그에게 주려고 마음에 정해 두고 있었다. 그것을 어떻게 상대가 세상을 떠났다고 해서 자신의 마음을 거시를 수가 있겠는가. 그런 것은 할 수 없는 일이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생각하면 참 어리석은 일이라고생각도 되겠지만 계찰이라는 사람의 신의는 그가 입 밖으로 발설한 것도 아니고 오로지 그의 마음속으로 만 간직했던 바의 약속대로 행하였다는데 의미가 깊다. 오늘날 이익에 따라 조변석개하는 이 세상 사람들이 한번쯤 짚고 넘어갈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7.간담상조(肝膽相照)
肝:간 간, 膽:쓸개 담, 相:서로 상, 照:비칠 조
서로 간과 쓸개를 꺼내 보인다는 뜻. 곧 ① 상호간에 진심을 터놓고 격의 없이 사귐. ② 마음이 잘 맞는 절친한 사이.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중 당대(唐代)의 두 명문(名文) 대가에 한유[韓愈: 자는 퇴지(退之), 768∼824]와 유종원<柳宗元.774-819.자는 자후(子厚)>이 있었다. 이들은 함께 고문 부흥(古文復興) 운동을 제창한 문우로서 세인으로부터 한유(韓柳)라 불릴 정도로 절친한 사이였다. 당나라 11대 황제인 헌종(憲宗:805-820) 때 유주 자사(柳州刺史)로 좌천되었던 유종원이 죽자 한유는 그 묘지명(墓地銘)을 썼다. 자신의 불우한 처지는 제쳐놓고 오히려 연로한 어머니를 두고 변경인 파주 자사(播州刺史)로 좌천, 부임하는 친구 유 몽득(劉夢得)을 크게 동정했던 유종원의 진정한 우정을 찬양하고, 이어 경박한 사귐을 증오하며 이렇게 쓰고 있다.
"…… 사람이란 곤경에 처했을 때라야 비로소 절의(節義)가 나타나는 법이다. 평소 평온하게 살아갈 때는 서로 그리워하고 기뻐하며 때로는 놀이나 술자리를 마련하여 부르곤 한다. 또 흰소리를 치기도 하고 지나친 우스갯소리도 하지만 서로 양보하고 손을 맞잡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서로 간과 쓸개를 꺼내 보이며(肝膽相照)' 해를 가리켜 눈물짓고 살든 죽든 서로 배신하지 말자고 맹세한다. 말은 제법 그럴듯하지만 일단 털 끌만큼이라도 이해관계가 생기는 날에는 눈을 부릅뜨고 언제 봤냐는 듯 안면을 바꾼다. 더욱이 함정에 빠져도 손을 뻗쳐 구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깊이 빠뜨리고 위에서 돌까지 던지는 인간이 이 세상 곳곳에 널려 있는 것이다." 한유와 유종원 두 사람은 문장가로서도 뛰어났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주는 그런 멋진 교우관계를 유지한 두 분 을 후인이 칭할 때 두 사람의 성을 따서 한. 유< 韓. 柳>라고 부를 정도였다니 얼마나 아름다운가! 존경심이 저절로 나오는 도다.
8. 九死一生(구사일생)
九:아홉 구, 死:죽을 사, 一:한 일, 生:살 생
아홉 번 죽을 고비에서 한 목숨 살다. 곧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겪고 겨우 살아난다. 는 뜻.사마천의 史記(사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굴평(屈平-굴원의 이름)은 임금이 신하의 말을 듣고 분간하지 못하고, 참언(讒言)과 아첨하는 말이 왕의 밝은 지혜를 가리고, 간사하고 비뚤어진 말이 임금의 공명정대함을 상처내고, 마음과 행실이 방정한 선비들이 용납되지 않는 것을 미워했다. 그리하여 근심스러운 생각을 속에 담아 '이소(離騷)' 한편을 지었다."[한숨 쉬며 눈물을 닦으며, 인생의 어려움 많음을 슬퍼한다 …… 그러나 자기 마음에 선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비록 아홉 번 죽을지라도 오히려 후회하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雖九死 猶未基悔).]
이 구사(九死)에 대하여 '문선(文選)'을 편찬한 유량주(劉良注)는 이렇게 말했다.
"아홉은 수의 끝이다. 충성과 신의와 곧음과 깨끗함 충신정결(忠信貞潔)이 내 마음의 선하고자 하는 바이니 , 이 해를 만남으로써 아홉 번 죽어서 한 번을 살아나지 못한다 할지라도 이직 후회하고 원한을 품기에는 족하지 못하다."
구사일생(九死一生)은 유량주가 말한 <아홉 번 죽어서 한 번 살지를 못한다. >에서 나온 것으로 ,
열 번 중에서 아홉 번까지는 별로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며,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고 간신히 살아난다는 뜻이다.
9.계구우후(鷄口牛後)
鷄 :닭 계. 口:입 구. 牛:소 우. 後:뒤 후.
[원말] 영위계구 물위우후(寧爲鷄口 勿爲牛後)
닭의 부리가 될지언정 쇠꼬리는 되지 말라는 뜻. 곧 큰 집단의 말석보다는 작은 집단의 우두머리가 낫다는 말. 전국시대 중엽, 동주(東周)의 도읍 낙양(洛陽)에 소진(蘇秦: ?∼B.C.317)이란 종횡가(縱橫家:모사)가 있었다. 그는 합종책(合縱策)으로 입신할 뜻을 품고, 당시 최강국인 진(秦)나라의 동진(東進) 정책에 전전긍긍(戰戰兢兢)하고 있는 한(韓) 위(魏) 조(趙) 연(燕) 제(齊) 초(楚)의 6국을 순방하던 중 한나라 선 혜왕(宣惠王)을 알현하고 이렇게 말했다. "전하, 한나라는 지세가 견고한데다 군사도 강병으로 알려져 있사옵니다. 그런데도 싸우지 아니하고 진나라를 섬긴다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옵니다. 게다가 진나라는 한 치의 땅도 남겨 놓지 않고 계속 국토의 할양을 요구할 것이옵니다. 하오니 전하, 차제에 6국이 남북, 즉 세로[縱]로 손을 잡는 합종책으로 진나라의 동진책을 막고 국토를 보존하시오소서.
'차라리 닭의 부리가 될지언정[寧爲鷄口]쇠꼬리는 되지 말라[勿爲牛後]'는 옛말도 있지 않사옵니까."
선혜왕은 소진의 합종설에 전적으로 찬동했다. 이런 식으로 6국의 군왕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 소진은 마침내 여섯 나라의 재상을 겸임하는 대정치가가 되었다.
[주] 종횡가 : 전국 시대(戰國時代)에 제국(諸國)의 군주(君主)들을 찾아다니며 독자적인 정책을 유세(遊說)하여 그들 여러 나라를 종(縱) 횡(橫)으로 묶어서 경륜(經綸)하려던 외교가(外交家) 책사(策士) 모사(謀士)의 총칭. 합종책을 설(說)한 소진과, 소진이 피살된(B.C.317) 후 합종책을 깨기 위한 연횡책(蓮衡策)을 펴 성공한 장의(張儀)가 그 대표로 꼽힘.
10.간장막야(干將莫耶)
干:막을 간. 將:장성할 장. 莫:깍을 막. 耶:그런가 야
①간장과 막야가 만든 칼로, 천하에 둘도 없는 명검 혹은 보검을 비유한 말. ②명검도 사람의 손이 가야만 빛이 난다. 사람도 교육을 통해 선도해야만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
오(吳)나라에는 유명한 대장장이 간장(干將)이 그의 아내 막야(莫耶)와 성실하게 살고 있었다. 그 당시 오나라 왕으로 있던 합려는 간장을 불러 명검 두 자루를 만들도록 명령했다. 간장은 이 나라에서 제일가는 대장장이라는 공식 인정을 받아 기뻐 주조하기 시작했는데, 이 청동이 3년이 지나도 녹지 않는 것이었다. 왕의 독촉은 매일매일 계속되고, 청동은 녹을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으므로 그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이 청동을 하루 속히 녹여 칼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걱정으로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날이 허다했다. 그러던 중 그의 아내 막야가 청동을 녹일 방법을 알아냈다. 그것은 부부의 머리카락과 손톱을 잘라 용광로에 넣고 소녀 3백 명이 풀무질을 하는 것이었다. 막야의 말대로 하자 과연 청동은 서서히 녹기 시작 했다. 그래서 칼도 명검으로써 손색이 없을 만큼 제 형태를 드러내기 시작 했다. 간장은 칼이 완성되자, 한 자루에는 막야라는 이름을 새겼고, 또 다른 한 자루에는 간장이라고 새겼다. 이 칼은 그 어느 칼보다 단단하고 예리했으므로 높이 평가 받게 되었고, 이로부터 '간장막야(干將莫耶)'라는 말로써 명검을 나타내게 된 것이다. 《순자(荀子)》<성악편>에는 중국 역대의 명검에 끼워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제나라 환공의 총(蔥),강태공(姜泰公)의 궐(闕) 주문왕의 녹, 초장왕의 홀, 오왕 합려의 간장과 막야, 거궐과 벽려는 모두 옛날의 명검이다. 그러나 명검일지라도 숫돌에 갈지 않는다면 보통의 무딘 칼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 명검도 사람의 노력이 없으면 자를 수 없다. 이렇듯 순자 역시 '간장막야'를 고대 명검의 하나로 손꼽고 있다. 어떤 일 이든지 최선의 노력을 하면서 공을 들여야만 일이 제대로 성취될 수 있다는 교훈을 일깨워 준다.
11.曲突徙薪(곡돌사신)
曲:굽을 곡. 突:굴뚝 돌. 徙:옮길 사. 薪:땔나무 신
굴뚝을 구부리고 굴뚝 가까이에 있는 땔나무를 다른 곳으로 옮기다. 화근을 미리 치움으로써 재앙을 미연에 방지하다. 는 뜻. 길 가던 어떤 나그네가 한 집을 찾아 들어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되었다. 나그네는 우연히 방밖을 내다보다가 그 집의 굴뚝이 너무 곧게 세워져 있어 이따금 불길이 새어 나오고 있는 걸 보게 되었다. 게다가 굴뚝 옆에는 땔 나무가 잔뜩 쌓여 있었다. 그걸 보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나그네는 주인에게 이렇게 충고해 주었다.
"큰일 나겠소이다. 얼른 굴뚝을 구부리고 땔나무도 멀리 옮겨 놓으시오. 그렇지 않으면 불이 날지도 모르오"
그러나 주인은 나그네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뒤 그 집에 불이 났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어 주인을 구해내고 큰 피해 없이 불을 끌 수 있었다. 주인은 잔치를 베풀었다.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이웃 사람들의 노고에 대한 보답이었다. 손님들의 좌석도 불을 끌 때 힘쓴 정도에 따라 상석(上席)부터 차례로 배치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는 처음에 굴뚝을 고치고 땔나무를 치우라고 말해준 나그네의 공로를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잔치판이 한창 무르익어 갈 때쯤 어떤 사람이 시 한 수를 썼는데 두 구절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굴뚝을 구부리고 땔나무를 옮기라고 권고한 사람의 은혜는 모르고 불에 덴 사람만 귀빈 대접을 받는구나(曲突徙薪 無恩澤 焦頭爛額是上賓) 이 故事(고사)는 두 가지 교훈을 담고 있다.
하나는 일의 근본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
둘은 災害(재해)는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