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李承晩) 대통령에 대한 재조명 - 건국대통령 이승만의 주요 업적 30가지
Article/History
꿈을 위해 잠을 잊은 그대에게 2020. 3. 28.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으로 산업화의 기반을 닦은 대한민국을 세운 이승만 대통령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사와 텍사스대학교오스틴캠퍼스 대학원 석사, 카네기멜론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를 받았고 미국 웨스트버지니아대학교 행정학과 및 정치외교학과 조교수, 조지타운대학교 정책대학원과 경영대학원 조교수와
자본시장연구소 연구교수, 아시아공공정책연구소 소장, 스탠퍼드대학교 후버연구소 연구원과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최고위과정 주임교수와 정경대학 행정학과 학과장 및 행정대학원 주임교수 및 정경대학 부학장을 지냈으며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행정학과 교수와 한국대통령학회 회장, 한국대통령학연구소 이사장과 소장으로 있는 함성득 고려대 교수팀이 1999년 임기중 업적, 비전, 위기관리능력, 자질 등 여섯 개항으로 분석한 역대 대통령들에 대한 평가
1997년 10월 6일 경향신문이 '전문가 30인이 본 역대대통령 리더십'에 대해 총 전문가 30인이 평가한 목록을 차트로 만들어 썼던 기사의 내용 중 "이승만 대통령은 '인물발탁'의 능력보다는 발탁한 인물을 충성토록 만드는 노회한 용인술만이 두드러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의 취약한 인력층을 감안하더라도 독립운동의 공로자들이 망라됐어야 할 건국 초대내각에 해외유학파 출신의 측근들이나 친일관료들이 과거청산 없이 대거 발탁된 점이 예시됐다.
집권기간 동안의 잦은 개각에서 인선기준도 자질이나 능력, 전문성보다는 충성심에 좌우됐으며 즉흥적, 파격적 인사도 적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
해방직후의 혼란기와 6.25전쟁 등 중대위기에 직면했던 이승만 대통령은 탁월한 위기관리능력을 발휘했다는 평을 받았다. 신탁통치 반대 - 단독정부 수립 - 미군의 6.25참전 유도 등 특유의 결단력을 통해 대한민국의 국체를 지켰다는 것이다. ······
역대 대통령 가운데 이승만, 박정희 두 대통령의 지적수준은 상대적으로 높았던 것으로 평가됐다. 이승만 대통령은 한학은 물론 5년여만에 미국 프린스턴대학의 박사학위를 취득할 정도로 동서양의 수준높은 교양을 두루 섭렵한 점이 높이 평가됐다.
특히 '외교에는 귀신'으로 불릴 정도로 국제적 관점에서 한반도 문제를 통찰하는 능력이 있었다는 중론이다."
- 1997년 10월 6일 경향신문이 '전문가 30인이 본 역대대통령 리더십'에 대해 인천대 김학준 총장, 명지대 송재 총장, 서울대 명예교수인 김홍우(정치학), 최명(정치학), 김광웅(정치학),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인 노화준(행정학), 김준기(행정학), 서울대 법대 교수인 최대도(법학), 이상면(법학), 연세대 교수인 최평길(행정학), 김학은(경제학) 유석춘(사회학), 연세대 명예교수인 송복(정치사회학),고려대 명예교수인 최장집(정치학), 최상용(인문학), 고려대 교수인 서진영(정치학), 김병국(정치학), 김호진(행정학), 서강대 교수인 손호철(정치학), 이화여대 교수인 진덕규(정cl학), 임현백(정치학), 숙명여대 교수인 이남영(정치학), 한국외대 교수인 이정희(정치학),한양대 행정대학원 교수인 공성진(정치학), 경희대 교수인 신정현(정치학), 전북대 교수인 정재길(법학), 전남대 교수인 김광수(정치학),경북대 교수인 윤용희(정치학), 부산대 교수인 정용하(정치학), 전 정무장관인 이종률, 총 전문가 30인이 평가한 목록을 차트로 만들어 썼던 기사의 내용 중
이승만 대통령과 관련된 중요한 업적 30가지를 집필한 이유
이승만 대통령과 관련된 중요한 업적 30가지를 집필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일단 이승만 대통령은 좌파쪽에서는 물론이고, 소위 박정희 대통령을 옹호하는 보수쪽에서조차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섣불리 평가를 하면서,
그의 공적을 상대적으로 축소시키고 과오만 집중적으로 부각시켜서 매도하는 경향이 크다고 판단했다.
기본적으로 필자는 역사학도로서 중도이지만 정치적으로는 보수우파에 더 가까운 사람이다.
보수세력의 대표적인 대통령인 박정희 대통령과 이승만 대통령 중에서 대부분이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서는 그가 어떤 업적을 행했고, 또 그 영향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아주 극소수이기 때문에 이렇게 나서게 되었다.
최근 이승만 대통령과 관련해서 소련이 해체됨에 따라 극동문서고가 개방되면서 관련해서 여러 정체된 연구가 진전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여러 학자들로부터 새로운 해석과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이승만 대통령의 과오로 평가를 받는 부분이 공적으로, 또는 알려지지 않은 업적들이 재조명 및 재평가를 받는 부분이 생기기 시작했다.
또한 최근에 좌파적 역사단체로 알려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백년전쟁'이라는 동영상의 타이틀로 대한민국의 토대를 닦은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명확히 확인되지 않은 사실도 사실로 둔갑 및 엉뚱한 해석을 하여 십자포화를 쏟아붓고 있는 것을 보고 기본적인 지식과 이해가 없는 대중들이 자칫하면 잘못된 사고를 할 수도 있다고 판단하여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
따라서 부족하지만 최근에 한국현대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대한민국의 역사학도이자 20대의 청년 보수우파로서,
그 흐름에 맞춰 역사학의 인식을 전환하여 가장 많은 대중들이 찾는 인터넷을 통해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기존의 잘못된 선입견과 편견을 바로잡고자 시간을 내어 집필하게 되었다.
본 글은 이승만 대통령의 주요 업적 30가지로 구성되었으며, 보다 정확한 출처를 통해 서술했음을 앞서 밝히는 바이다.
1. 최초의 우리나라 일간지 '매일신문' 창간
- 1898년에 창간되었던 일간신문인 매일신문은 당시 발간되고 있던 <협셩회회보>를 개제하여 창간한 우리 나라 최초의 일간신문이었다.
사장에는 양홍묵, 기재원(記載員:지금의 기자)에 이승만, 최정식, 회계에 유영석 등이 참여하였다.
그 이후에 이승만은 주필과 사장직을 맡아 활약하였고, 독립협회 산하의 만민공동회를 통해 부패·무능한 정부를 비판하고 독립·민권사상을 고취하는 등 민중계몽에 앞장섰다. 이러한 개혁운동을 벌이던 끝에 1898년 11월에 중추원(中樞院) 의관(議官:종9품)에 임명되었다.
2. 미국 유니버시티 프레스에 한국인 최초로 논문을 출간(프린스턴대 박사학위 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