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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I 칼럼] 한국엔 진정한 보수가 없다
엘정책연구원(ELI)의 정치 아카데미인 PLI(Political Leadership Institute)가 지난 22일 첫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이정훈 교수가 대한민국의 건국과 자유민주공화정, 그리고 보수주의의 정신에 대해 강의했고, 저도 PLI에 대해 잠시 소개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이정훈 교수는 이날 저에게 한국에서의 PLI의 필요성에 대해 말하면서 "미국의 보수주의에도 위기가 있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했고, '미국의 보수주의'와 '미국의 정치적 보수'에 대해 정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교수는 아울러 한국에 진정한 보수가 없다고 했는데, 이 역시 진지한 고찰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필자주)
<당신 안에도 보수가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보수는 '적폐'로 치부되고 있다. 특히 '친일', '독재', '재벌'을 대변하는 것처럼 좌파에 의해 프레임이 견고하게 만들어져 있다. 대한민국에서 보수의 다른 이름은 '수구꼴통'이다. 또 낡은 '반공' 세력 정도로만 인식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보수라고 말하는 걸 매우 꺼린다. 보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치욕적이고 수치스런 닉네임이 되었다. 대한민국의 보수가 왜 이렇게 된 것일까? 그것은 한국에 진정한 보수, 즉, 보수의 멋과 품격을 보여주는 보수가 없기 때문이다.
보수는 적폐가 아니라, 어떤 이데올로기나 이념이 아니라, 보수뿐만 아니라 스스로 진보라 하는 이들도 가지고 있는,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아주 보편적인 태성적 성품, 성향, 태도다. 만약에 주식 투자를 하다가 망하면, 주식 투자에 아주 보수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좌파라고, 진보라고 스스로 보수적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보수적이 된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좌파라, 진보라 하는 이들도 자신의 자식은 최대한의 안전장치로, 아주 보수적으로, 명문고와 명문대에 보내고, 또 미국에 유학까지 보내는 것이다!
보수는 인간의 불완전함, 한계를 이해하는 이들이다. 그리고 인간이 얼마든지 악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또 급격한 변화가, 혁명적 시도가 악마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도 안다. 자신의 자녀를 선진국인 미국이 아니라 혁명적으로 중동이나 동남아에 유학을 보냈다가 돈만 버리고 쪽박을 찰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자신의 자식을 자신의 양심과 신념에 위배되게도 눈물을 머금고 미국으로 보낼 수 밖에 없는 좌파들의 마음을 보수는 충분히 넓은 마음으로 이해한다! 그게 인간이다. 그래서 보수는 절대적으로 겸손하고 신중할 수 밖에 없으며, 또 끝없이 악마화를 막을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만들 수 밖에 없다.
한국인들 가운데 보수적인 이들이 있다면 오히려 축복이다. 한국인들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바로 다혈질에 너무 급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한국인들의 특징은 "빨리 빨리"라는 말로 대변된다. 이 "빨리 빨리"의 성향이 좋은 점도 있지만, 악마적 문제도 초래한다. 빈대(벼룩)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조상들의 말도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실제로 이 나라는 초가삼간을 다 태워 먹은 이력도 있다. 민족성이 쉽게 변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에게 "빨리 빨리"의 성향을 완화시켜줄 수 있는 보수적인 성향이 있다면 나은 것이다. 왜 보수가 악마시되어야 하는가? 보수를 악마시하면, 그가 탄 기차는 결국 멸망의 폭주기관차가 될 뿐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지금 대한민국이 바로 그 길로 가고 있다. 그것은 진짜배기 보수가 거의 전멸한 탓이다.
<한국에 진정한 보수는 없다>
보수는 인간의, 국가의 폭주를 막기 위해 극우든, 극좌든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 지상 낙원을 만들 수 있다는 모든 시도와 선동에 대해 맞서 싸운다. 또 어떤 사람도, 어떤 정치 지도자도 자신의 메시아가 되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맹목적으로 지지하며 '노사모'나 '문슬람이나 문꿀오소리, 대깨문', '박사모'가 되지 않는다. 그것이 결국에는 자신의 생각과 달리 끔찍한 악마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러셀 커크는 인간 사회란 한 번에 완전히 다 때려 부순 뒤 다시 만들 수 있는 기계 같은 것이 아니라 섬세한 법률 체계를 지닌 영혼이 있는 실체라고 했다. 그래서 의사가 환자를 다루듯 아주 조심스럽게 사회를 다루어야 한다. 국가는 좌파나 특정 정파, 특정 이데올로기의 실험 대상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좌파는 한국을 아주 마음껏 실험하고 있는데, 한국에 진정한 보수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보수라 하지만 상당수가 사실상 거기에 동조하고 있다.
이 말이 자신을 스스로 보수라 여기는 이들에게는 꽤나 도발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러셀 커크가 제시한 보수의 6가지 정신에 비추어볼 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특히 대한민국에 정치적 보수 정당이 없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슬픈 현실이다. 보수 정당이라고 간판만 달고 있을 뿐, 실제론 한국 사회의 좌편향에 좌파 정당 못지 않게 일조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의 진정한 보수주의자들은 좌파가 정권을 잡는 것도 걱정이지만, 자칭 보수라 하는 이들이 정권을 잡아도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다. 따지고 보면 그 나물에 그 밥이어서, 나라를 빨리 망하게 하느냐, 늦게 망하게 하느냐의 차이일 뿐이기 때문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런 정당이나 정권에 대해 비판하는 대다수의 자칭 보수주의자들도, 실제론 자신이 욕하는 이들과 별로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유권자들의 수준이 정치인들의 수준을 결정짓는 것이다. 정치인 욕만 하지 말고, 먼저 자기 비판과 자아 반성부터 하라는 것이다. 커크는 보수의 6가지 핵심가치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1) 초월적 질서 또는 자연법 체계가 사회와 인간의 양심을 지배한다는 믿음
2) 협소한 획일성과 평등주의 그리고 모든 급진적 체계가 가진 공리주의(논리우선주의 사회)적 목적이 아니라 다양성 확산과 인간 존재의 신비에 느끼는 애정 (획일성과 평등주의를 배격하고 다양성과 인간 존재의 신비로움에 대한 애정)
3) 문명화된 사회는 '계급없는 사회'가 아니라 질서와 계급을 요구한다는 확신 (문명화된 사회에는 질서와 위계가 필요하다는 믿음)
4) 자유와 재산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신념
5) 법률과 규범을 믿고 추상적 설계에 따라 사회를 구성하려는 '궤변론자, 숫자로만 생각하는 사람과 경제학자'를 불신함 (추상적 설계에 따라 사회를 구성하려는 사람을 믿지 않고 법률과 규범을 믿음)
6) 변화가 유익한 개혁이 아닐 수 있다는 인정 (급격한 개혁보다 신중한 개혁을 선호)
1)초월적 질서 또는 자연법 체계가 사회와 인간의 양심을 지배한다는 믿음
보수들은 기본적으로 개인과 국가의 안정적인 발전을 위해 도덕과 양심을 강조한다. 도덕과 양심은 개인과 국가의 폭주를 막을 수 있는, 악마화를 막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안전 장치다. 그런데 도덕과 양심이라는 것은 신이라는 초월적, 절대적 존재를 제외하고는 성립할 수 없다. 리버럴 좌파의 성(性)정치, 젠더 이데올로기, 동성애, 트랜스젠더, 낙태 등의 이슈가 현대 사회에서 작동할 수 있는 것은 도덕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한 보수는 도덕과 양심의 중요성을 알고 생명시 한다. 그리고 거기에 절대성을 부인하기 위해서라도 신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도덕과 양심을 잃어버린 인간은 인간이 아니며 금수만도 못한 존재다. 도덕과 양심의 붕괴와 소멸은 필연적으로 급진 개혁, 폭력 혁명, 유혈 혁명의 시발점이 된다. 개인과 사회, 국가 붕괴와 소멸의 시발점이다. 스스로 진보라 하는 좌파가 도덕과 양심이라는 말을 너무나 싫어하고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것이 변화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변화에, 혁명에 대해 억제제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커크는 초월적 질서가 사회와 인간의 양심을 지배해야 한다는 것을 보수의 가장 첫 번째로 제시했다. 그것만이 인간의, 국가의 폭주와 악마화를 막을 수 있다. 초월적 존재, 초월적 질서를 인정하지 않으면, 즉 절대 도덕, 불변의 도덕적 원칙을, 양심을 강조하지 않으면 보수는 더 이상 보수가 아니다. 실제론 부도덕한 좌파들과 똑같은 삶, 즉 부도덕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사회와 국가도 내부적으로 무너져간다. 실제로 대한민국에서는 스스로 보수주의자라 하면서도, 도덕을, 결혼과 가족을 중요시한다면서도, 정작 그들에게서 무분별한 성관계, 낙태, 이혼 같은 도덕적 문제가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오늘날 많은 동성애자들의 항변은, 이성애자들이 오히려 더 성적으로 타락하지 않았냐는 것이다. 도덕적 우위에 있지 못한 보수 우파들은 항상 이러한 공격을 당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대한민국에 좌파가 이처럼 득세하는 것은 보수 우파가 잘못 살고 있기 때문이다. 좌파는 항상 보수 우파에 기생한다. 보수 우파가 보수 우파 답지 않으면, 도덕적인 삶을 살아가지 않으면, 적폐 세력, 기득권 세력, 부패 세력으로 욕을 먹게 되고, 좌파가 기승을 부리게 된다. 또 사람들은 보수가 도덕적으로 너무 타락했다면서 손가락질을 하고 욕한다. 그런데 실제론 그들은 말만, 무늬만 보수일 뿐, 전혀 보수가 아니다. 그들은 실제론 좌파와 똑같은 자들인 것이다. 가짜 보수가 보수를 욕 먹게 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진정한 보수는 절대 도덕을, 초월적 질서, 초월적 존재가 사회와 인간의 양심을 지배해야 한다고 믿는 이들이고, 도덕과 양심에 따라, 신 앞에 살아간다. 보수는 개인과 사회와 국가의 도덕과 양심이 되어야 한다. 그럴 때 불온한 급진 좌파, 급진 개혁파, 급진 혁명파가 나타나지 않고 안정적인 발전이 가능하다.
자유지상주의자(libertarian)들은 자유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보수와 일치하는 점이 있지만, 초월적 질서, 즉 도덕과 양심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결국에는 그들도 좌파와 비슷해지게 된다. 미국에서 좌파를 '리버럴(liberal)'이라고 하는 것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말하는 좌파는 우파의 반대가 아니라 '반보수 세력'인 셈이다. 보수는 반드시 도덕적으로 살아야 하며, 이것을 위해서는 도덕과 양심을 절대시해야 한다. 그리고 도덕과 양심이라는 초월적 질서를 부여한 신을 인정하며, 그 신 앞에서 살아야 한다.
2) 획일성과 평등주의를 배격하고 다양성과 인간 존재의 신비로움에 대한 애정
보수는 또 획일성과 평등주의를 배격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보수라 하면서도 평등주의를, 예를 들어 보편복지, 평등복지를 외치는 이들이 많고, 보수 정당들이 내놓는 정책들을 보면 좌파 정당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상황이다. 이들은 반공을 외치는 것만 다를 뿐, 그것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좌파 2중대나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정부의 시장 가격 통제에 찬성하는 이들은 원칙적으로는 보수가 아니다. 또 모든 대학을 국립대학으로 만들자, 등록금을 동일하게 받자, 대학 진학을 선발제가 아니라 추첨제로 하자고 외치는 이들도 보수가 아니다. 학생들에게 모두 교복을 입게 하는 것, 무상급식으로 학생들에게 배급하는 것도 보수의 원칙에는 사실 맞지 않다. 보수는 획일성이 아니라 다양성을 강조한다.
인간은 모두 고유하게, 독특하게, 신비하게 태어났다. 인간 각 개인이 가진 신비, 고유의 개성을 어떤 것으로도 획일화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인간성에 대한 도전이다. 오히려 각자의 신비를, 개성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좌파는 복잡한 것을 좋아하지 않고, 통일성과 평등, 규격화, 획일화를 원한다. 인간도 그저 부르조아와 프롤레타리아, 가진 자와 아닌 자, 부자와 빈자, 권력자와 억압 받는 자, 가해자와 피해자로 이분법적으로 단순무식하게 나눈다. 그런데 보수는 불평등을 현실로 받아들이며, 그것을 불평등이 아니라 오히려 다양성으로, 신으로부터 부여 받은 타고난 각자의 능력과 개성이 완전히 다른 것으로 이해한다. 어느 것이 진정으로 올바른 인간에 대한 이해, 불평등에 대한 이해일까? 불평등을 그저 악으로만 생각한다면, 원빈이나 정우성과 다른 나의 얼굴, 아인슈타인과 다른 나의 두뇌, 모짜르트와 다른 나의 음악 소질, 피카소와 다른 나의 그림 재능 등 타고난 불평등을 어떻게 생각해야겠는가? 하지만 그들에게 없는 게 나에게는 있고, 또 모두가 다양하기에 우리는 그들 각자가 가진 천재성을 누리며 더 풍요롭고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다. 우리는 불평등한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보수는 공리주의도 배격한다. 공리주의를 대표하는 말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다. 공리주의는 인간 행위의 법적, 도덕적 기초를 개인의 이익에 두는 것이다. 그리고 개인에게 이익이 되는 것의 기준은 바로 개인이 얼마나 행복한가, 얼마나 쾌락을 추구할 수 있느냐다. 공리주의에게 있어서 선은 쾌락이고 악은 고통이다. 이것은 옳고 그름, 선악에 대한 판단의 기준을 개인의 쾌락에, 개인의 행복에 두는 것이다. 즉, 자신에게 좋은 것은 선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나쁜 것은 악이다. 보수주의자는 자신에게 피해가 되더라도, 자신에게 고통이 되더라도 지켜야 할, 양보할 수 없는, 포기할 수 없는 가치와 원칙을 가진 자인데,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하는 자인데, 공리주의는 그런 보수의 정신을 완벽하게 해체한다. 공리주의에서는 보수가 지켜야 할 가치가 그저 개인의 쾌락, 다수의 쾌락이 되어버린다. 공리주의를 지향하는 순간, 보수는 오히려 좌파이지 결코 보수가 아니다.
그리고 다수가 좋다면, 다수가 행복하다면, 다수가 쾌락을 느낀다면 그게 선이라는 공리주의는 필연적으로 좌파 포퓰리즘, 폭민정치(중우정치)의 문을 열어주게 된다. 성적 타락, 동성애, LGBT, 젠더, 낙태, 이슬람 등의 문제도 다수가 좋아한다면 얼마든지 선이 되어버린다. 그런 점에서 보수에게 공리주의는 오히려 가장 경계해야 할, 치열하게 맞서 싸워야 할 최대의 적 중에 하나다.
정치의 영역에서는, 보수 진영에서 자주 하는 말이 보수 통합이다. 자유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이기 때문에, 다수를 차지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통합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보수를 보수되게 하는 핵심 가치와 원칙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상대에게 보수의 가치와 원칙을 반드시 보장받는 통합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은 보수 대통령이라 하면서도 보수의 원칙과 가치를 포기하는, 좌파와 큰 차이가 없는 정책을 펼치기도 했다. 심지어 이슬람 스쿠크법을 도입하려 한다던지, 할랄단지를 조성하려는 정책을 펼치기도 했다. 이들은 보수의 선명한 가치와 원칙이 없었기에 결국은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과 같은 성공적인, 국가와 국민들에게 이익이 되는 보수 정치를 구현하지 못했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공리주의자가 되어서는 안되며,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가치와 원칙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지키려고 해야 한다.
3) 문명화된 사회는 '계급없는 사회'가 아니라 질서와 계급을 요구한다는 확신
셋째, 보수는 질서와 위계, 즉, 권위를 존중한다. 권위에 대한 도전, 반항을 미덕으로 여기는 이들은 보수가 아니다. 보수는 해체주의, 포스트모더니즘에 절대적으로 반대한다. 아무런 권위가 없는 개그맨 김제동이 무슨 권위자처럼 헌법 강의를 하고 다니는 것은 명백하게 잘못된 것이며, 선동이요 혹세무민이다. 수술실에서 집도의는 때로 독재자가 될 수도 있다. 환자의 생명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집도의는 다수결에 따라 수술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문적인, 경험 많은, 권위 있는 집도의에 지시에 따라 수술실에 있는 모두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주는 게 기본적으로 맞는 것이다.
학교에서 선생님은 학생들에 대해 권위를 가져야 한다. 다수의 학생들이 수학시간에 1+1=1이라고 우긴다고 선생님이 거기에 동조해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잠을 자는 것, 게임하는 것, 스마트폰 하는 것은 허용해서는 안된다. 성문란을 가르치는 성교육이 아니라 결혼과 가정, 출산의 아름다움을 가르치는 건전한 성교육을 시켜야 한다. 최근에 좌파 교육감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도입되고 있는 학생인권조례는 학교와 교육을 망치는 것이고 학생들을 망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사회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영역이 민주주의에 의해, 다수결에 의해 운영될 수는 없다. 민주주의는 사회의 모든 영역에 작동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민주주의에 따라 움직이지 않아야 하는 곳도 아주 많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기는, 다수가 한 사람을, 심지어 전문가를 바보로 만드는 것이 허용되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 보수라 하는 이들에게서도 그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권위와 질서를 인정하지 않는 해체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은 진보가 아니라 인류 문명에 대한 역행, 퇴보이며 야만화, 짐승화의 길을 가는 것이다.
4) 자유와 재산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신념
보수는 또 자유와 재산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쉽게 설명하면, 개인이 정부의 돈을 받아서는 자유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자유를 빼앗기게 된다는 것이다. 정부에게 돈을 받는만큼 자유는 빼앗기게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재산이 필요한 것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부에 의존하지 않기 위해서다. 즉, 정부로부터 자신의 자유를 지키며 살아가기 재산이 필요한 것이다. 한국인들의 재산관, 물질관이 근본적으로 변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재산은 풍요나 편안함, 자랑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유를 위해 필요한 것이라는 진정한 보수주의적 사고를 가질 때 가능하다.
정부의 돈을 받는, 정부에 의존하는 개인은 정부를 제대로 비판하고 견제하기 힘들고, 결국에는 자신의 자유까지 제한 받게 된다. 그래서 진정한 보수라면, 아동수당, 청년수당 등 각종 정부의 지원금, 보조금에 대해서 설령 준다 해도 안 받겠다고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푼돈보다 자신의 자유가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전 국민이 다 받는 데, 나 하나 안 받는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느냐고 생각하지 말자. 그런 생각 때문에 대한민국에 보수는 씨가 말라가고, 지금과 같이 아주 급속하게 좌편향이 심각한 나라가 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은 정부가 너무 강해져서, 개인 위에 군림하고 있다. 대통령은 점점 왕처럼, 독재자처럼 되어가고 있고, 정부가 마치 합법적 강도, 조폭처럼 기업과 개인들 위에 위세를 떨친다. 한국 사람들은 입만 열면 제왕적 대통령을 견제하자고 하는데, 사실은 정부의 돈 받는 개인들이 대통령을, 정부를 제왕적으로 만들어 온 것이다. 정부의 돈을 안 받는 순간, 정부는 작아질 것이고, 당신은 더 자유를 누를 것이다. 당신이 정부의 돈을 받으면 받을수록 정부는 커질 것이고, 당신이 누리는 자유는 제한될 것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망국병이자 말기암과 같은 복지병 중증에 걸려 있다. 보수를 자처하는 이들도 말만 보수라 할 뿐, 정부가 주는 돈은 아주 열심히 받고 있다. 자유가 공짜가 아니라고 하는데, 복지도 공짜가 아니다. 자신의 자유를 제한당하는 대가로, 자신의 자유를 어느 정도 갖다 바치는 대가로 복지를 누리는 것이다. 정부의 돈을 받는 건 그 순간에는 달콤하고 좋고 편하겠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자유에 대해선 독극물을 마시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집에서도 자녀들이 용돈을 주는 엄마 아빠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것과 같다. 오늘날 여권이 크게 신장된 것도, 여성들이 남성으로부터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남성이 주는 돈에 의존하며 살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유와 재산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진정으로 자유를 지키고 싶고 누리고 싶다면, 절대로 정부가 주는 돈을 받아서는 안된다.
그런데 보수 단체라 하면서도 자신이 만든 단체를 정부 보조금을 받아가면서 운영하는 이들도 있다. 소위 관변단체라 하는데, 이들은 정권에 따라 단체가 카멜레온처럼 색깔이 바뀌어야 할 수도 있고, 특정 정권에 비위를 열심히 맞추었다가는 정권이 바뀔 경우 존폐의 위기에 빠지기도 한다. 지금 유치원이나 사립학교 등이 위기에 빠지는 것도, 정부의 보조금을 받기 때문이다. 자신의 자유를 보장 받기 원하는 이들은 철저하게 정부로부터 자립해야 하며, 개인과 기업, 재단 등의 후원으로 운영해야 한다. 이렇게 단체를 운영하지 못하는 이들은 실제론 보수라 할 수 없다. 설령 보수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보수 단체는 정부의 돈을 받으면 안 된다.
엘정책연구원은 정부의 보조금을 일절 받지 않고 오직 개인과 단체 등의 후원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 엘정책연구원은 앞으로도 정부의 보조금을 받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단체만이 진정한 보수단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돈을 받는 보수 단체는 실제론 보수 단체가 아니다. 보수 단체는 절대로 정부에 의존하지 않는다. 또 정부의 돈을 받는 단체가 어떻게 정부를 비판하고 견제하고 감시하겠는가?
무엇보다 보수주의자들은 위대한 문명이 바로 사유재산권을 토대로 수립되었다고 믿는 이들이다. 사유재산은, 즉 열심히 일하면 자신의 부를 일굴 수 있다는 것은 인류에게 땀 흘려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한 가장 위대한 당근이었고, 그것이 결국에는 지금과 같은 위대한 문명을 만들었다. 지나치지 않은 인간다운 이기심, 탐욕이 오히려 강압되거나 어설프게 베풀어진 선의보다 인류 문명의 발전에 더 크게 기여했다. 사유재산권을 빼앗으면 인간의 일할 동기를 빼앗아 인류의 문명은 나락으로 떨어지며, 공산주의의 실패가 그 명백한 증거다. 따라서 보수주의자들은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자발적으로 내어놓는 것이 아니라 세금을 과중하게 강제적으로 부과해 개인의 재산을 빼앗는 합법적 강도의 역할을 자행하는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대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단순히 세금을 내기 싫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행위와 같고 문명의 진보를 방해하는 반문명적 행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보수주의자들은 자발적으로 기부하며 많은 이들을 돕고 있다. 대표적으로 사회적 약자들을 가장 물심양면으로 열심히 돕고 있는 곳이 보수의 심장이요 상징과 같은 기독교다. 정부가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면서까지 하지 않아도 교회 등에서 자발적으로 스스로 하고 있다.
5) 추상적 설계에 따라 사회를 구성하려는 사람을 믿지 않고 법률과 규범을 믿음
보수는 또 법치를 강조한다. 좌파는 인간에 대해 한없이 긍정적이며 항상 올바른 방향으로 진보하는 존재로 여긴다. 그러나 보수는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며, 언제든지 악을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진보적 이상향의 추구가, 선의가 오히려 끔찍한 지옥을 가져올 수도 있다고 믿는다. 비둘기에게, 야생동물에게 주는 선의의 먹이가, 독약이 될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래서 불완전한 인간을 억제하기 위해 법이 반드시 필요하다. 보수는 법을 중요하게 여기며 존중한다. 자신의 악마성, 야수성을 잠재우기 위해 법 아래 자신을 둔다. 그리고 법치의 핵심은 법의 절차와 공정성에 있다. 특히 법에 절차가 필요한 것은, 불완전하거나 악한 인간이 실수를 해 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스로 보수 정당이라 하는 자유한국당은 법치를 유린하고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 나라를 급진적, 혁명적 위기에 빠뜨렸다. 그 결과 프랑스 혁명이 자코뱅당을, 로베스피에르를 낳은 것과 같은 상황이 지금 대한민국에도 벌어지고 있다. 한국의 자코뱅당이, 로베스피에르가 누구겠는가? 프랑스혁명보다 덜 과격하고 덜 피를 흘릴 뿐이지, 아주 똑같은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은 이 문제에 대해 진정한 반성이 없고, 대통령의 탄핵이 잘됐다고 생각하는 보수들도 아주 많다. 이로 인해 지금 자유한국당과 탄핵 찬성 세력, 그리고 태극기 시위 참여자들과 탄핵 반대 세력은 완전히 갈라선 상태다. 자유한국당은 헌법 유린 세력이라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자유한국당은 사람에 따라 우르르 몰려 다리는 패거리 정당일 뿐 결코 보수의 정신과 가치, 원칙에 입각한 보수 정당이 아니다. 만약에 진정으로 법치주의에 입각해 탄핵이 진행됐다면, 대통령은 탄핵되지 않았거나 설령 탄핵 당했어도 지금과 같은 국론 분열을 초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혁명의 음산한 기운이 지금처럼 대한민국을 뒤덮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법치 파괴 때문에 자유한국당을 싫어한다는 보수주의자들도 말로는 법치주의를 외치지만, 실제로는 본인이 법을 잘 안 지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치적으로만 법치주의를 외칠 뿐인 것이다. 실제로 대한민국은 준법정신이 가장 떨어지는 나라에 속한다. 선진국은 법을 지키기 위해 법을 알려고 하지만, 대한민국 사람들은 법망을 피해가기 위해 법을 알려고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보수는 또 오래된 규범이라는 원칙을 믿는다. 커크는 현대인이 거인의 어깨 위에 있는 난쟁이이며, 그들의 조상보다 더 멀리 바라볼 수 있는 이유는 앞서 살았던 인물들의 위대한 능력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에게는 조상들의 지혜가, 그 지혜가 담긴 규범들이 필요하다. 우리에 대해 과신하거나 과대평가해서는 안된다. 겸손이 미덕이며, 유구한 인류의 역사 앞에서 우리는 한낱 갓난 아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이전부터 내려온 규범을 존중하며 살아야 한다. 자신들이 대단한 존재인 것처럼, 자신들은 다를 수 있는 것처럼 오만을 떨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커크는 인간의 본성에 선악이 섞여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보수주의자들은 단순한 호의를 신뢰하지 않으며, 헌법적 제약, 정치적 견제와 균형, 법률의 적절한 강제, 예로부터 의지와 욕구를 억누르는 미묘한 그물망 등을 자유와 질서의 도구로 승인한다고 말했다. 사회는 법과 규범이 제대로 작동할 때, 제대로 돌아갈 수 있다. 오히려 추상적 설계에 따라 사회를 구성하려는 궤변론자, 숫자로만 생각하는 사람과 경제학자가 해악적인 존재다. 사회는 숫자로 도식화할 수 있는 기계가 아니라 신비로운 영혼이 있는 실체와 같다. 돌팔이 의사는 사람과 국가를 잡는 백정이 될 뿐이다.
6) 변화가 유익한 개혁이 아닐 수 있다는 인정 (급격한 개혁보다 신중한 개혁을 선호)
보수는 급격한 개혁보다 신중한 개혁을 선호한다. 따라서 혁명을 말하는 이들은 보수가 아니다. 물론 변화는, 개혁은 중요하지만, 가장 위대한 개혁이었던 종교개혁도 있었지만, 모든 변화가 개인과 국가에 유익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진보는 무조건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낫다고 생각한다. 인류 역사는 매일 진보하고 있으며, 그래서 모든 변화는 좋다고 한다. 따라서 변화는 절대선이다. 오히려 이들에게는 변화가 없는 것이 문제인데, 그것은 바로 현상 유지를 하려는 기득권 세력 때문이며, 이럴 경우에는 이를 뒤집는 인위적인 혁명은 불가피하다. 더군다나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관습이나 전통이 불합리하다고 판단하면, 그것이 적폐로 여겨지면, 혁명을 일으켜서라도, 숙청을 해서라도 깨부시는 게 반드시 요구된다. 하지만 인류 역사에서 모든 변화가, 모든 혁명은 유익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커크는 우리가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최대치는 참을만하게 질서가 잡혀 있으며 정의롭고 자유로운 사회로서, 어느 정도의 악과 사회적 불균형, 고통이 계속 존재하는 곳이라고 말한다. 보수의 시조와 같은 영국 철학자 에드먼드 버크는 "관습을 급진적으로 타파하고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해악을 감수하기보다는 실수하는 아이처럼 보일지라도 예전 관례를 유지하는 게 더 현명하다"고 했다.
이 세상에 죄가 없는 완벽한 천국은 존재할 수 없고, 진공 상태는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들은 변화에, 혁명에 신중하다. 돌다리도 두드려보면서 건넌다. 보수주의자들은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온건한 변화, 신중한 변화, 단계적 변화, 점진적 변화를 원할 뿐이다. 러셀 커크는 이들은 전통과 규범에서 오는 계속성과 진보의 힘을 조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또 진보가 말하는 미래의 지상의 낙원은 미지의 곳이며, 무엇보다 지옥이 되지나 않을지 의심스럽기만 하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혁명이 성공한 아주 이례적인 나라 중 하나이고, 그래서 많은 이들이, 심지어 보수주의자들도 혁명이라는 말을 아주 좋아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군사혁명의 추억이 강하게 남아있는 탓이다. 하지만 혁명 자체에 대해 긍정적이라면, 마르크스 레닌주의 혁명, 공산주의 혁명도 얼마든지 좋은 결과만 도출된다면 긍정할 수 있게 된다. 혁명을 좋아하는 대한민국에서 촛불혁명이 일어났고, 그 촛불혁명은 지금 대한민국에 재앙을 초래하고 있다. 어설픈, 아무런 준비되지 않고 훈련되지 않은 아마추어들이 정권을 잡은 탓이다. 미국은 정치적으로 매우 안정되어 있고 혁명이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것이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이 된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다.
보수는 모르는 악마, 미지의 악마보다는 아는 악마를 선호한다. 왜냐하면 아는 악마의 경우, 역사의 경험을 기초로 해 악마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악마가 싫다고 해서, 혁명을 선택해서 모르는 악마를 선택하는 것은 어리석고 미개한 것이다. 실제로 자본주의가 싫다면서 공산주의라는 악마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묻지마 혁명을 선택했을 때, 인류는 오히려 최악의 악마를 만나고 말았다. 커크는 질서와 정의, 자유는 오랜 사회적 경험의 인공적 산물이며, 수세기의 고난, 반성, 희생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변화가 필요할 때도 이것을 한꺼번에 해체하려고 하기보다는 단계적으로, 점진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커크의 기준에 따르면, 한국에는 진정한 보수주의자들도 찾아보기 어렵고, 진정한 보수 정당도 없다. 그래서 대한민국에는 지금과 같은 위기가 찾아왔다. 보수의 핵심은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여서 (더 나아가 기독교에서는 인간을 부패한, 타락한 죄인이라고 한다)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 지상낙원이나 천국을 지구상에 구현할 방법이 없으며, 오히려 지옥의 구덩이로 들어갈 수도 있으니, 도덕과 양심, 조상들의 지혜와 규범, 법 등의 최대한 안전장치를 한 뒤에 단계적으로, 점진적으로 신중하게 변화를 이루어나가자는 것이다. 지금이야 말로 보수의 정신을 다시 회복할 때이고, 진정한 보수 정신으로 정치 의식을 새롭게 하고, 정당을 새롭게 하고, 나라를 새롭게 해야 할 때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진정한 보수를 찾고 있다.
노승현 엘정책연구원 PLI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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