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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칠갑산 산행계획을 세울 때 "칠갑 주차장 → 한티재(칠갑 광장) → 칠갑산 → 천장호 출렁다리 → 칠갑산 → 장곡사 → 주차장"의 6시간 코스를 탐방할 예정이었지만, 이번에는 산악회와 같이 가는 만큼 변경은 불가피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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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갑산[七甲山]
높이: 560m
위치: 충남 청양군 대치면
충남 청양에 위치한 칠갑산은 예부터 진달래와 철쭉으로 이름이나 있는 산이다. 정상을 중심으로 아흔아홉 계곡을 비롯한 까치내, 냉천 계곡, 천장호, 천년고찰인 장곡사 등 비경 지대가 우산살처럼 펼쳐져 있어 볼거리도 많다.
1973년 3월 6일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면적은 32.542㎢로 4개 면에 걸쳐 있으며 주요 명소로는 정상, 아흔아홉골, 칠갑 산장(최익현 동상, 칠갑산 노래 조각품 등), 천장호, 장곡사, 정혜사, 자연휴양림, 도림사지, 두륭성 등이 있다.
지도상에서 보면 산 북동쪽 한여름에도 서늘한 마치리의 냉천 계곡, 북서로 강감찬 계곡, 서쪽 장곡사 쪽으로 장곡천, 99 계곡, 동쪽 천장리 쪽으로 천장 계곡, 남쪽 절골 쪽으로 백운계곡의 수림이다.
칠갑산은 계절마다 특색이 있지만, 봄철이 가장 화려하다. 산 전체에 야생 벚나무와 진달래가 밀집하여 있기 때문에 4~5월이면 하얗고 붉은색이 어우러진다.
진달래는 장곡산장에서 465봉을 거쳐 정상에 이르는 구간에 큰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 능선의 남북 쪽 사면을 채우고 있는 진달래는 아흔아홉 계곡을 오르며 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정상이나 삼형제봉에서 능선을 뒤덮은 진달래를 즐기는 것이 진달래 산행의 포인트.
오솔길로 이뤄진 등산로는 거의 완만해 어린이가 있는 가족이나 연인들끼리 오르기 적당하다.
천장호출렁다리
2009년 7월 개통한 출렁다리는 국내 최장이라 한다. 좌우로 30cm 정도 출렁인다. 청양고추를 상징한 교각에 길이 207m, 폭 1.5m, 높이 24m이다
인기 명산[35위]
대중가요 칠갑산으로 더 많이 알려진 칠갑산은 휴양림이 조성되어 있고 봄, 가을 순으로 인기가 있다.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백운동 계곡 등 경관이 아름다우며 도립공원으로 지정(1973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되었다. 계곡은 깊고 급하며 지천과 계곡을 싸고돌아 7곳에 명당이 생겼다는 데서 산 이름이 유래. 신라 문성왕 때 보조(普照) 승려가 창건한 장곡사(長谷寺)에 있는 철조약사여래좌상(보물 제174호) 등이 유명하다 - 한국의 산하
2012년 가을부터 매주 산에 다니기 시작했으니 벌써 6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초기에는 혼자 다니는 일이 많아 산행의 도움과 기록을 위해 앱을 찾다 발견한 것이 '카디오 트레이너'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지원이 중단되더니 현재는 과거의 유산으로 남았다. 해서 이것저것 다른 앱을 사용해보다가 서기가 사용하던 "트랭글"에 정착한지 3년 정도 되었다. 내가 뭘 했고 미래에 자료로 이용하기 위해 산행기를 쓴지도 몇 년 되었는데 그 토대가 트랭글의 기록과 사진이다. 3월 마지막 주 산행을 마치고 산행기를 쓰기 위해 트랭글에 들어가 기록을 확인하다가 우연히 3월 한 달 통계를 보게 되었다. 다른 월보다 주가 많아 다섯 번 산행했지만, 10km가 넘는 코스가 없었다. 3월 내내 뭔가 부족함을 느꼈던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순간이었다.
그래서 4월 첫 산행은 10km가 넘는 산행을 하기로 하고 산불 예방으로 출입이 통제된 국립공원을 제외하고 내가 가보지 않은 산 중 10km가 넘는 코스를 가진 산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봄철에 어울리는 야생화 산행이 가능한. 그때 눈에 들어온 산이 완주의 모악산이다. 작년부터 전주의 막걸리와 연계해 몇 번 가고자 시도했지만, 여러 사정으로 못 간 산이다. 이번이 기회라 생각해 등산방에 올렸지만, 지리 조를 제외하고는 호응이 없었다. 전주까지 가서 혼술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에 모악산은 다음으로 미루고 다른 산을 찾아보았지만, 조건에 맞는 산을 찾을 수가 없었다.
물론 조건에 맞는 산을 찾기 위해 각 산악회의 주말 산행계획을 살펴보았으나 토요일 경남 가야산을 가는 산악회가 있었지만, 내가 사이트를 방문한 목요일 현재 신청 인원이 5명에 불과해 성원 미달로 취소될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일요일에 가는 팀은 이미 20명을 넘어 취소될 위험은 없었지만, 내가 확인한 일기예보에 따르면 토요일 북쪽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해 일요일이면 충청 이남 지방에 내린다. 초봄에 우중 산행은 그것도 원거리 산행은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 일요일 산행은 염두에 두지 않기로 하니 산악회를 이용해 딱히 가고 싶은 산이 없었다.
모든 조건을 버리고 산악회의 움직임을 보니 대부분이 진달래로 유명한 영취산 또는 화왕산에 집중하고 있었다. 고로 그 산은 피해야 한다는 얘기라 다른 산을 찾다가 얼마 전에 친구가 칠갑산 간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나서 칠갑산을 찾아보았다. 한 산악회가 마침 칠갑산 계획을 세웠고 신청 인원도 20명이 넘어 취소될 위험도 없었다. 물론 강원도나 경기도 쪽 산도 찾아보았지만, 강원도 산불로 난리가 난 상황에 그 동네 산을 간다는 건 아니라는 생각에 후보에서 제외했다.
산악회에 칠갑산 등반을 신청한 후 배낭을 쌌다. 강원도가 난리 난 마당에 산에서 불을 피우는 건 적절치 않다는 생각에 비상용으로 들고 다니던 버너와 코펠이 든 디팩은 제외했다. 그리고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서 넣고 김치와 찬밥을 쌌다. 햇반을 가져갈까 했지만, 데울 방법이 없어 컵라면 국물에 찬밥을 말아먹는 것이 답이라 생각했다. 물론 빨갱이도 별도의 병에 그리고 늘 가지고 가지만 거의 이용해 본적이 없는 비상식도. 혹시 비가 올 수도 있어 우산과 여벌의 옷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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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으로 누룽지를 끓여 먹고 집을 나선 시각이 6시 10분경이다. 6시 27분 불광역발 지하철을 타면 7시까지 신사역 산악회 버스 출발 지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배낭을 버스의 짐칸에 넣고 내 자리로 가 앉았다. 산악회 게시판에서 확인한 참여 인원은 20명이 좀 넘어 자리가 많이 비었지만, 내 옆자리는 인솔자가 강제로 할당한 등산객이 배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배낭을 짐칸에 넣었다. 그런데 7시 10분 정각에 버스가 출발했는데도 옆자리 주인이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엔 자리가 많이 비어 있어 빈자리에 앉은 거로 보였다. 그래도 죽전에서 탈 수 있으므로 옆자리는 계속 비워두었다. 죽전에서 두 명의 등산객이 더 탔지만, 옆자리로 오지는 않았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상춘객 또는 한식을 맞이하여 성묘하러 가는 것으로 보이는 차량이 도로를 가득 메워 고속도로가 아니라 주차장에 가까웠다. 버스 전용차선도 다르지 않았다. 그 정체가 경기도를 지나면 나아지리라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마치 명절날 귀성 차량 행렬에 발이 묶이는 거 같았다. 대략 서울을 떠나온 지 1시간 반 정도 지나자 버스가 고속도를 벗어났다. 벌써 다 왔나 생각하고 창 밖을 보니 여기도 주차장이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어쨌든 산이 가까우니 참을만했다. 꽉 막힌 국도를 달리던 차가 다시 고속도로 들어섰다. 목적지가 가까워 고속도로에서 벗어난 게 아니라 길이 막혀 그나마 덜 막힌 국도로 우회했다. 내가 오해하고 있었다.
9시 33분경 산악회 버스가 휴게소에 도착했다. 서울을 떠난 지 2시간 23분 만이다. 남행하는 산악회 버스의 성지 정안 휴게소다. 휴게소라고 딱히 내릴 이유는 없었지만, 짐칸에 있는 배낭을 꺼내고 스트레칭도 하기 위해 내렸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길이 막혀 차량이 많을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휴게소에 정차한 관광버스를 세다가 포기했을 정도다. 계속해서 버스는 들어왔지만, 정차할 곳을 찾지 못해 헤매고 다녔다. 그래서 목적지가 어딘지 대충 훑어보니 80% 정도가 상춘객을 태우고 진달래의 고장을 향해 가는 차고, 나머지는 시제를 지내기 위해 친족을 모아 선산으로 가는 차로 보였다. 영취산이나 화왕산을 선택하지 않은 내 선견지명에 스스로 감탄한 순간이다. 아마 그 동네를 가는 차는 점심때가 훨씬 지나 도착하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9시 50분에 휴게소를 떠난 차가 10시경 다시 고속도로를 벗어나 23분이 지난 10시 23분에 이번 산행의 들머리인 천장호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들어서는 순간 내 예상이 빗나간 것에 한탄했다. 대형차량 주차장에는 이미 상춘객의 버스로 가득했고 소형 차량 주차장이 만차라 소형차량까지 대형차량 주차장을 침범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긴 것이 주차한 버스의 면면을 보니 산악회에서 온 차량은 우리가 유일했고 나머지 차량은 상춘객을 태운 차량이었다. 고로 어느 정도 산행이 시작되면 인파에 시달릴 일은 없을 거로 보였다. 그런데 요즘 관광버스는 LED 게시판에 목적지나 탑승팀의 정보를 보여주는데 버스 중 하나에 "집 나온 아낙네들"이라는 글을 보고 미소 짓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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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게소에서 짐칸에 있던 배낭을 꺼내 비어 있던 내 옆자리로 옮겨 놓은 상태라 버스가 들머리에 도착하기 직전 사용할 일이 없어 보이는 우산을 꺼내 좌석 뒷주머니에 넣고 바람막이를 벗어 배낭에 넣었다. 바람막이도 쓸 일이 없어 보였지만, 산에선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르는지라 일단 배낭에 넣었다. 그리고 인솔자의 주의 사항과 코스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산행 마감은 3시로 3시 정각에 버스는 장승공원 주차장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그럼 산행에 주어지는 시간은 4시간 반이 조금 넘는데, 9km를 4시간이라면 그리 무리한 코스는 아니지만 다른 친구와 같이 왔다면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인솔자 말로는 빠른 산꾼은 2시간 반이면 주파하는 코스라지만.
주차장을 떠나며 이번 칠갑산 산행을 시작한 시각이 10시 25분이다. 상춘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룬 소형차량 주차장을 지나 출렁다리로 가기 위해 "칠갑산" 노래의 조형물을 지나는 순간 옆에 핀 진달래를 보고 놀랐다. 영취산이나 화왕산 같은 남쪽의 진달래가 한창이라 북쪽으로 많이 올라온 칠갑산에서 만개한 진달래를 볼 수 있을 거라는 큰 기대는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조금씩 피어 있는 진달래가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은 있었다.
콩밭 매는 아낙네를 지나 국내에서 가장 길다는 출렁다리, 현수교의 거대한 붉은 고추 기둥에 다시 놀랐다. 버스에서 인솔자가 칠갑산은 고추로 유명한 청양에 있어 모든 이정표나 안내판이 고추 조형물이라는 얘기를 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상상을 못 했다. 산악지대에 있는 다른 출렁다리가 까마득한 높이에 매달려 있어 고소에서 나오는 아드레날린의 분비를 유도한다면, 거의 물에 닿을 정도 높이의 이 출렁다리는 흔들림으로 그것을 추구하고 있었다.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는 다리를 지나자 뜬금없는 호랑이와 용의 조형물이 나타났다. 웬 뜬금없는 용과 호랑이인가 해서 소개문을 주의해서 몇 번이나 읽어보았다. 그런데 뭔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 한 아이의 생명을 구하고, 이를 본 호랑이가 영물이 되어..."? 호랑이가 대오각성해서 영물이 되었다는 얘긴가?
용과 호랑이 조형물을 지나 본격적인 등산로 겸 전망대로 가는 계단에 올라선 시각이 10시 36분이다. 그 계단 좌우에는 만개한 진달래가 곳곳에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지금이 절정이다. 내일이면 늦는다. 정말 기대 이상이다. 이런 걸 보면 놀기 좋아하는 한민족은 언제 어디를 가면 뭘 즐길 수 있는지 정확히 꿰고 있는 거 같았다. 그리고 어디를 피해야 하는 지도. 소위 얘기하는 상춘객! 상춘객도 등급이 있는데, 지금 영취산이나 화왕산을 찾으면 下! 내 주장이 아니라 앞서가던 전문 상춘객이 나누던 대화다. 나는 초보 중의 초보!
계단을 계속 올라 10시 43분에 좌우로 진달래가 도열한 능선에 도착했다. 그러는 와중에 나와 같은 차를 타고 온 대부분 등산객은 이미 나를 추월해 가고 있었다. 산악회 여기저기와 몇 번 다녀봤지만, 특히 여성 등산객이 무서운 곳이 이 산악회다. 여성 등산객 따라가다 내가 뻗을 거 같은.
주변의 꽃이라고는 진달래와 나만 이름을 모르는 몇 송이 피지 않은 노란 꽃을 구경하며 올라가는데 뒤에서 인솔자가 나를 따라오며 '속도가 빠르시네요.' 한다. 이번에 처음 보는 인솔자라 서로를 잘 모른다. 정상 바로 아래 갈림길에서 어디로 가면 되는지 물어보니 정상에서 반대쪽으로 내려가야 한다고... 내가 길을 물은 이유는 이 갈림길에서 내려가는 거라면 배낭을 두고 갈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인솔자가 '지금 내려가시면 너무 빠른 하산'이라고 걱정해 '물론 점심은 먹고 가야죠.'하고 정상에 올랐다. 예상대로 정상은 반대편에서 올라온 등산객과 상춘객을 가장한 등산객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정상석은 텅 비어 있었다. 최근 산행 중 정상에 오른 인원이 최소 50여 명이 넘어 보이는데 까만 소 수건을 들고 설치는 사람이 없다니. 계속해 도착한 등산객도 까만 소 신자는 없는지 삼삼오오 모여 자리를 잡고 앉아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오죽하면 인솔자도 이런 모습은 처음이라고 했을까? 다들 화왕산이나 영취산으로 몰려간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리고 본 의외의 인물. 유니폼으로 보이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으로 칠갑산 관리원으로 보이는 요원이 있었다. 정상 바로 아래에서 동일한 복장의 사람이 쓰레기를 줍고 있는 걸 보고 뭐지 했었는데 정상에도 있는 게 자원봉사자든 정식 직원이든 도립공원에서는 처음 본다. 어쩌면 강원도 산불의 영향으로 감시 차원에서 긴급히 투입되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난 인솔자에게 부탁해 인증을 찍고 주변을 감상한 후 바로 장곡사를 향하는 하산길로 접어들었다. 정상에는 혼자 점심을 먹을 만한 공간이 없어 하산 중에 먹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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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바로 밑 10여 미터 아래에 좌우로 데크가 서너개씩 설치되어 일행이 모여 밥을 먹거나 쉬기 좋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중 하나에 자리를 잡고 아예 등산화도 벗고 앉아 컵라면과 찬밥, 보온 물통, 빨갱이, 김치, 감말랭이 등을 꺼내 점심 먹을 준비를 했다. 그 시각이 11시 46분이다. 애초 12시까지 정상에 도착해 점심을 먹으면 이번 산행은 성공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당시에는 12시가 넘은 것이라 생각했고 정확한 시간은 산행이 끝나고 알았다. 인솔자 말대로 너무 일찍 도착했다. 그리고 나를 다 추월했다고 생각했던 일행의 대부분도 내 뒤에 있었다.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 불기를 기다리는 동안 감말랭이와 김치를 안주로 빨갱이를 마셨다. 그리고 라면이 적당히 불은 이후에는 라면을 안주로 마셨다. 면을 어느 정도 건져 먹은 후 가져간 찬밥을 남은 국물에 말아 마저 먹었다. 그러는 중에 반대편에 아주 많은 등산객이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그것을 보니 적절한 타이밍에 점심을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었으면 올라오는 등산객과 하산하는 내가 좁은 등산로에서 아주 번거로울 뻔했다. 그리고 내가 왔다 갔다는 증거를 말끔히 치우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 시각이 12시 41분이다. 결국 보온병을 들고 가 컵라면을 불려 먹든 버너에 코펠을 가져가 라면을 끓여 먹든 걸리는 시간은 대동소이 하다는 얘기다. 원래 내 지론이지만.
도립공원답게 잘 다음어진 등산로를 따라 내려가다 아흔아홉골 촬영지 - 뭘 촬영했는지는 모르겠고 - 라는 전망대에 들러 사진 한 장 찍고 계속 길을 갔다. 등산로 좌우의 진달래를 보고 내려가다 갑자기 아직 올해 진달래는 맛을 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해서 바로 진달래꽃을 하나 따 맛을 보았다.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진달래에서 달콤함을 못 느끼기는 처음이다. 혹시나 해서 하나 더 따서 먹어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칠갑산 진달래는 다른가?' 하는 생각을 하며 계속 내려가 '연인 소나무'에 도착했다.
'연인 소나무?' 연리지를 얘기하는 건가? 그런데 나무의 생김새는 연리지가 아닌데! 해서 소개 글을 주의 깊게 읽어보았다. "... 뿌리가 같은 나무에서 나온 가지가 서로 꼬여있어 마치 한시라도 떨어져 있기 싫어하는 연인들의 마음과..." 연리지와는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연인'이라, 차라리 割半之痛의 형제애를 얘기하는 것이 맞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그 자리를 떠났다.
1시 19분에 거북바위에 도착했다. 참, 전설도 많은 산이다. 뭐 내용은 다른 산에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되었지만, 혹시 '연인 소나무'에서 받았던 충격적인 내용이 있을 수도 있어 소개 글을 열심히 읽어보았다. 예상대로 다른 곳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다만, 사진에 200m 아래에 거북 알이 있다는 내용에 계단을 내려가며 거북 알을 열심히 찾아보았다. 그런데 누군가 영험한 거북을 부화시키기 위해 가져갔는지 없었다. 혹시나 지나쳤나 다시 같은 길을 반복해 오가며 찾아보았으나 없었다! 내가 발견을 못했겠지.
산행에 동행했던 동무가 공통으로 하는 말이 하산이 빠르다고 하는데 이번 산행은 등산마저 빨라 시간 여유가 많아 가능하면 주변의 경치나 사소한 것에 정신을 팔아 속도를 늦추고자 노력했다. 그런데도 1시 26분에 장곡사 삼성각에 도착했다. 3시 마감에 1시 26분이면 너무 이르다. 해서 장곡사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하고 관람이 가능한 모든 건물의 내부를 보고 사진으로 남기기로 했다. 가장 위에 있던 삼성각을 보고 내려오는데 돌계단 옆에 놓여 있는 기왓장에 "안전한 산행길 되시길 기원합니다."라는 글귀가 쓰여있었다. 다른 절은 등산객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데 급급하지만, 장곡사는 산행길을 걱정해 주고 있었다. 그 글귀를 보는 순간 다른 절과는 차원이 다른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하 두 대웅전이 있다는 것에 이미 다른 절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그런데 별생각 없이 상하 두 대웅전을 구경하다 보물 제162호와 181호라는 사실을 알았다. 모습이 보물이 될만했다. 이번 산행은 무엇엔가 홀린 거처럼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산행하다 깜짝깜짝 놀라는 일이 가끔 있었다. 드디어 내가 무념무상의 세계에 진입하고 있는 거다. 얘기가 잠깐 빗나 갔는데, 물론 상 대웅전 옆에 있는 약수 한잔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삼성각과 대웅전 구경을 끝내고 범종각을 찾아보았다. 내가 처음 가는 절에서는 반드시 찾아보는 세 곳이 대웅전, 범종각, 삼성각(산신각)이다. 이층의 누각으로 된 범종루는 장곡사 입구에 있었고, 축생을 구제한다는 의미를 가진 '法鼓'는 찢어져 있었다. 축생을 위해 얼마나 강하게 쳤으면 북이 찢어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삼성각의 기왓장과 함께 장곡사라는 절을 다시 보게 했다. 법고를 다시 만들기 위해 시주를 원한다면 바로 할 거다. 그런데 이번 장곡사에서는 특별히 법고를 위한 시주를 받고 있지는 않았다. 그래서 궁금해 이 글을 쓰며 구글링을 해본 결과 찢어진 지는 꽤 오랜 세월이 흘렀고 그 가죽은 일반적인 소가죽이 아니라 과거에 인도에서 구해온 코끼리 가죽이라고.
장곡사를 구석구석 구경하고 포장도로를 내려와 일주문에 도착한 시각이 1시 48분이다. 1시간이 넘게 시간을 때워야 하는 상황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혼술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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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곡사 주차장에 주변의 펜션 및 식당은 상춘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나 같은 혼술인간은 취급도 못 받는 상황이라 사람이 극히 드문 외진 곳의 식당을 찾아갔다. 그 시각이 1시 55분으로 이번 산행의 종료시간이다. 마침 내가 찾아간 집은 손님이라고는 한 테이블밖에 없어 혼술인간도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도토리묵무침과 막걸리 한 병을 시키려니 주인장이 어느 막걸리를 원하느냐고 물어봤다. 세 종류의 막걸리가 있었다. 해서 어느 게 맛있냐고 다시 물어보니, 자기는 마셔보지 않아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우문에 현답도 아니고 약간 짜증이 났지만, 그럼 ‘알밤 막걸리’를 달라고 하고 시원한 야외에 자리를 잡았다.
<출처 햇빛 산악회>
그리고 버스 안에서 인솔자가 준 이번 산행 지도를 꺼내 다시 확인해 보았다. 이 주차장에 당연히 있어야 할 산악회 버스가 안보여 버스 출발지를 다시 확인해야 했다. 그 결과 버스 출발지는 장곡사 주차장이 아니라 장승공원 주차장이었다. 내 문제가 내가 주도하는 산행이 아니면 철저히 맡겨버린다는 거. 그나마 다른 등산객보다 산행이 조금 빨라, 시간 여유가 있어 사고가 안 났을 뿐 그렇지 않았다면 귀경 차량을 많이 놓쳤을 거다.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공식 날머리인 장승공원 주차장까지 거리를 정확히는 모르지만, 1km 이상은 되지 않을 거라는 판단에 30분 전에 일어나기로 하고 1ℓ의 알밤 막걸리를 묵무침과 무말랭이 안주로 마셨다.
그리고 2시 29분에 막걸리를 다 비우고 묵무침의 절반 - 내 기준 엄청나게 먹은 - 정도를 먹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계산을 하며 주인장에게 앞으로 '알밤 막걸리'를 추천하라는 말을 남기고 장승공원을 향해 출발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200여 미터 아래에 있었다. 가는 길에 천장호가 아닌 장곡사 쪽에 있는 콩밭 매는 아낙네의 뒷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런데 장승공원 주차장 주변에 있는 식당이 오히려 더 맛집 같아 보였고 더 저렴해 보였다. 산악회의 말을 주의 깊게 안 들은 게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어차피 남아도는 게 시간이라 장승공원의 장승을 구경하기로 하고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이제는 더 볼 것도 없다는 시점에 버스에 탔는데 그게 2시 44분이다. 내가 버스를 탈 때 버스에는 세 명의 등산객이 타고 있었다. 그리고 한두 사람의 등산객이 타기 시작하더니 50분경에 다 탔던 거로 기억한다. 이후 예정된 시각보다 일찍 서울을 향해 출발했다. 오늘 산행의 출발지이자 종점인 신사역에 도착한 시각은 6시 1분이다. 집에 도착한 시각은 7시 2분! 이런 정도면 눈치 보지 않고 산에 다닐 수 있는 수준이다.
결과적으로 '천장호 주차장 → 출렁다리 → 전망대 → 칠갑산 → 사찰로 → 장곡사 → 장승공원'의 8.1km(트랭글 기준), 3시간 31분의 진달래 산행을 즐겼다. 진달래를 찍고 장곡사를 구경하기 위해 잠깐 멈추기는 했지만, 산행 중 쉬지 않는 습관에 비추어 총 소요 시간에서 이동 시간 2시간 41분을 뺀 휴식 시간 50분의 대부분은 점심 먹느라 썼다.
그런데 사진으로 기록한 점심 시간과 트랭글이 알려준 휴식 시간은 많은 차이가 있다. 사진 상으로는 점심을 한 시간 가까이 먹은 것으로 나온다.
칠갑산을 끝으로 한국의 국가 기관 중 하나인 기상청이 선정한 충청도의 모든 산은 다 탐방했다.
기대하지 않은 진달래에 대단히 만족한 산행이었다.
도립공원으로써 칠갑산은 괜찮았지만, 산행지로는 다시 갈 거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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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래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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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제비꽃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