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암마을(寶巖, 보안, 保安, 돌쟁이, 石亭)
●지명유래
보산리(寶山里) 의 지명은 보암(寶巖) 마을의 보(寶)자와 난산(卵山) 마을의 산(山) 자를 각각 취하여 보산리라 하였다. 보산리는 보암마을, 석정마을, 난산마을로 나뉘어 있었으나 석정마을은 일찌기 폐촌되고 보암마을과 난산마을도 1970년 동복댐 확장공사로 수몰 폐촌되었다.
보암마을은 원래 유마사를 건립한 유마운의 딸 보안이 이곳에 보안사를 건립한 이래 보안사의 이름을 취하여 보안이라 하였다고 전하는데 후에 와전되어 보암이라 변천되었다. 보암의 뜻으로는 적벽을 두고 보배로운 바위라 칭한 것으로 보인다. 마을을 세분하면 큰동네, 잿물, 미륵쟁이, 돌쟁이로 구분된다.
보암마을 남서쪽에는 돌쟁이로 부르는 석정리(石亭里) 마을이 있었으나 일찌기 폐촌되었다.
1789년 호구총수에는 동복현(同福縣) 내서면(內西面) 보암리(寶暗里) 로 기록되어 있으며,
1912년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는 동복군(同福郡) 내서면(內西面) 석정리(石亭里), 보암리(寶巖里) 로 기록되어 있고, 1914년 행정구역개편시 동복군이 화순군으로 통합되면서 외서면 내서면은 이서면으로 통합되어 화순군(和順郡) 이서면(二西面) 보산리(寶山里) (보암리, 난산리 일부) 로 편입되었다. 1970년 동복댐에 수몰 폐촌되었다. 이전에는 7개반으로 구성되었다.
●마을형성
보암마을은 동쪽으로는 적벽강 건너로 적벽산이 웅장하게 있으며 서쪽으로는 천변에 형성된 평야가 약간 있고 남쪽은 적벽강이 흐르며 북쪽은 도석재에서 뻗어온 산등이 위치하고 있다.
적벽강은 적벽 아래서부터 남서쪽으로 흘러 마을남쪽을 거쳐 서북방향으로 흐르다가 난산마을 앞에서 다시 남쪽으로 굽어 흐른다.
마을은 남쪽방향으로 형성되어 있다.
1632년경 광산김씨 金의(1614 ~ 1704) 가 광주 당부면 금부촌(광산, 서창, 금호) 에서 거주하다가 돌쟁이로 입향하였다.
1780년경 달성서씨 徐光修(1761 ~ 1840) 가 경기 파주 광탄에서 입향하였다.
1880년경 달성서씨 徐彰錫( ? ~ ? ) 이 경기도 광주에서 거주하다가 입향하였다.
1840년경 경주정씨 鄭漢鉉(1821 ~ 1879) 이 외북면 상다마을에서 입향하였다.
1930년경 남평문씨 文基洪(1907 ~ ? ), 文基善(1910 ~ 1980) 이 여수에서 입향하였다.
동쪽은 동복면 안성리 성황마을, 서쪽으로는 난산마을, 남쪽으로는 석정마을, 동복면 연월리,
북쪽으로는 장학리 장항마을이 있다. 이전에는 170여호가 거주하였다.
●유물. 유적. 고문서
고인돌(정판종집 주변 6기), 고인돌(정권호집 대밭 30여기), 고인돌(서덕윤집안 2기), 한산사(寒山寺, 1984폐찰), 죽천정(竹川亭, 金鰲嶝, 金香培 소축), 고소조대(姑蘇釣臺, 金容換釣臺), 선돌(2기, 미륵쟁이, 높이 170㎝, 폭50, 두께18, 높이190㎝, 폭40, 두께25), 보안사지, 보안사삼층석탑, 보안사지부도(국립광주박물관으로 이건), 효자정자근노미지비(1726년 초건, 1855년 1월 중건, 높이1.1m, 폭55㎝, 1985년 수몰지구라 야사리로 이건, 3월 3일 향사), 애계나무(효자나무), 야은당(野隱堂, 오완기 소축), 朝鮮國石亭處士光山金公漢鳴土墓有明碑(1600년대 사람, 병자호란후 낙향 松石亭 건립 은거생활, 1896건립, 좌의정송근수撰, 대사헌송병준書, 응교정희篆, 총고 175㎝, 옥개석높이 30㎝, 옥개석폭 65㎝, 옥개석길이 105㎝, 비신높이 144㎝, 비신폭 66㎝, 비신두께 29㎝, 김극중소장고문서 〈동면 신운거주, 養窩遺稿(金赫洙(1867 ~ 1928) 의 유고, 漁樵子遺稿(金兌基(1791~1858) 의 유고, 白鹿洞規, 조墓歲一祭笏, 祭笏(경인정월)〉
●민속놀이, 전설, 민담
⊙당산제 : 정월 대보름에 웃당산(잿물)과 아랫당산(큰마을), 가운데 당산에서 제를 지낸다.
미륵에도 금줄을 쳤다.
⊙농악 : 당산굿, 미륵굿, 마당볼비를 하였다. 상쇠로는 서순석, 김수만, 조수만 등이 잘 하였다.
⊙디딜방아 액막이 : 동복면 탑선이(탑동), 성황마을에서 몰래 밤에 가져다가 마을 입구에 거꾸로 세워놓고 고쟁이를 씌워 액막이를 하였다.
⊙달집태우기 : 정월 대보름에 밤에 대나무섶으로 둘레 4.5m 가량의 둥지를 만들어 마을 사람들이 달이 뜰무렵 달집에 불을 피워 놓고 웃뜸, 아래뜸으로 나뉘어 줄다리기를 하였다. 달집이 넘어지는 쪽이 풍년이 든다고 하였다.
⊙절 : 빈대로 폐사하였다고 전한다.
⊙정자근노미와 애계나무 : 정자근 효자각이 있던곳에 효자나무라는 애계나무가 자랐으나 수몰로 없어지고 말았다.
●풍수지리 및 주요지명
⊙상추 : 보암마을 뒷산을 말한다. 이곳에 묘를 쓰면 자손이 잘 된다고 전해온다.
⊙돌정이 : 보암마을 뒷편에 있던 마을이름이다. 석정마을
⊙부들재 : 이전에 산등에 보안사 부도(5층)가 있었다. 부도재가 와전된 것이다.
⊙미륵정(미륵쟁이) : 선돌 2기가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미륵이라고 부른다. 보안사지의 입구에 세워졌던 것이라 하며 수몰전까지도 선돌 앞에서 소원을 빌기도 하던 구복대상물이었다. 1기의 크기는 총고 170㎝, 폭 50㎝, 두께 18㎝이며 판석형으로 세우고 윗부분에 머리모양을 만들어 놓았다. 머리부분은 높이 20㎝, 폭 12㎝이다. 다른 1기는 기둥형으로 크기는 높이 190㎝, 폭 40㎝, 두께 25㎝이다.
⊙산, 등 : 탑선이, 중메(중산), 효자등, 진등, 하만등(난산), 와우등, 노천봉, 안산, 돗밭등, 적벽산, 상추, 금오등
⊙들 : 웃들, 아랫들, 새들, 닷마지기, 서마지기, 말각지기, 장구배미, 진배미, 광대배미
⊙고개 : 당골재( ~동복면 월봉 당굴), 상추재( ~학당, 도석), 부들재( ~노루목)
⊙골짝 : 큰골, 학서굴, 일보굴, 작은골, 비어굴, 다랑치, 화장골, 범항굴, 쇠아지골, 산당골
⊙바위 : 보산적벽, 대바위, 개바위, 고소대
⊙내, 쏘, 방죽 : 야은당 방죽, 고소대쏘
⊙샘 : 돌쟁이 시암
⊙길 : 물방걸, 미륵쟁이골목, 잿몰골목, 큰동네골목, 삼굿거리
⊙터 : 보안사터, 삼층석탑, 벼락방아터, 물레방아터, 매방아터, 자갈삼굿터
⊙보 : 웃들보(적벽보), 새들보, 아랫들보(학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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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살았던 내 고향 보산리가 이런 역사와 지리였다는걸 새삼 알게 되 기쁘네..잘 봤슴당
"전설따라 삼천리" 에 나오는 옛날 이야기 같군 ... 참 자세히도 기록 되어 있구나....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