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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호수에서 눈내리는 수면을 바라보며 잠깐 산책하다가 근처에 있는 오래된 작은 성당인 하우현성당을
찾았다. 백운호수에서 성남가는 국도를 따라 5분쯤 달리다가 청계산 자락 아담한 원터마을로 좁은 길을
따라 들어가면 하우현성당이 살짝 모습을 드러낸다. 멀리서보면 성당이 있는지도 모를 만큼 아담하고
아늑해보이는 곳에 자리해 있다. 청계산 자락이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원터마을에 있는 하우현성당은
100년이 훌쩍 넘는 유서 깊은 역사를 지닌 성당이다.
1893년에 공소로 지정되었고 1894년에는 알릭스 신부의 적극적인 노력과 신도들의 후원금으로 초가지붕을
덮은 목조스타일의 공회당 10칸을 건축한것이 지금 하우현성당의 본격적인 출발이었다. 1900년에 벌써
신도수가 160여명을 넘었고 샤플랭 신부가 부임하면서 공식적으로 본당이 되면서 하우현성당은 인근의
천주교 성지로 발돋움하게 된다.
청계산과 광교산, 백운산의 정기가 모여드는 이곳 하우현성당은 옛날에는 동양원이라는 역원이 있어
원터라고 불렸다고 한다. 역원이니 말도 있을테고 여관역활을 하는 객주도 있었을 것이다.
이곳 하우현 일대에 언제부터 이런 교우들이 터를 잡았는지 분명치 았지만 조선말기 천주교에 대한
조정의 박해를 피해 산속에 은신하면서 이런 신도들의 공동체가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박해를 피해 이곳에 모인 신도들이 땅을 파고 토굴속에 살았다해서 토굴이라고도 불렸다.
하우현이라는 말은 지금의 의왕 청계와 성남 운중을 연결하는 높은 고개인 하우고개에서 나온 이름이다.
교통과 통신시설이 조악했던 시대에는 이 고갯길이 험하고 오지처럼 돼있어 탄압과 박해를 받는
신도들에게는 포근하고 안전한 포교와 선교의 장소였으리라.
원터마을 입구에서 50여m 를 들어가면 하우현성당을 만나게 된다. 눈이 간간히 내려서인지 성당은
희미한 안개에 휩싸여 있다. 인근에는 불우아동보호시설인 명륜보육원이 자리하고 있고
마을은 정적히 흐르는 가운데 조용하기만하다. 마치 성스러운 성지로서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하다.
입구로 올라가면 작은 예배당과 사제관이 있고 왼편 좁은길로 들어가면 수녀원이 있다.
하우현은 현재 200여 명의 신자수로 교우촌을 형성하고 있는 작은 본소에 불과하나 본당 역사 100주년이
넘는 유서 깊은 역사를 가진 성당이며, 1906년 신축한 사제관은 2001년 1월 22일 경기도 기념물 제 176호로
지정되었다. 한강 이남 경기지방의 세번째 본당이기도 한 하우현성당은 공소와 본당을 거듭하다
광복 후인 1965년 베드로 김영근 신부가 부임하여 지금의 성당건물을 신축했다고 한다.
1965년 김영근 신부는 성당 건물이 퇴락하여 붕괴 위험이 있음을 보고 미군부대 건축자재 원조로
현재의 성당을 신축하였다. 하우현은 본당 설정 이래 본당 폐쇄가 거듭 되풀이 되고 타 본당에 귀속된
공소였던터라 사목 활동이 활발하지 못했었다. 하우현성당은 일제 치하의 대부분의 종교시설들이
그렇듯이 학교와 작은 강습소를 설립하여 선교와 초등교육, 봉사활동, 애국계몽운동 등을 펼쳤다.
흰색 건물의 예배당과 팔작기와지붕의 사제관이 마치 성당과 법당이 이웃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우현성당 오른쪽에 한옥기와 지붕을 한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사제관이 있는데,
이곳 성당에 부임한 신부가 생활할 수 있도록 1906년에 건축된 사제관은 처음에는 벽체를 거의
벽돌로 쌓고 서양식 지붕틀에 함석지붕을 올리고, 외부에 초석을 갖춘 기둥을 세워 회랑을 마련하였다고 한다.
안방에는 퇴를 두었으며 내부의 벽에는 면을 말끔하게 다듬은 자연석을 허튼층으로 쌓고
그 사이에 백회로 줄눈을 그려넣었다. 이후 개보수를 거치면서 돌로 만든 본채에 지붕은
골기와를 덧댄 팔작기와지붕 집으로 한국과 서양을 한곳에서 만날 수 있는 절충식 건물이 되었다.
흰눈이 세상을 덮듯이 내리는 날. 흰눈을 맞으며 순백의 빛으로 모든 고통과 티끌을
덮어주려는듯한 모습의 성당으로 들어간다. 단층의 예배당은 그리 특별한 모습은 아닌데,
입구에 손 조각상 두개와 정중앙에 마리아상이 있는 정도이다.
계단을 오라가니 기와지붕과 석조몸체가 융합된 동양과 서양이 어우러진 사제관이 나온다.
사제관 앞에는 성 서 루도비꼬 볼리외 신부의 동상과 김영근신부의 기념비가 있어 사제관 건물과 함께
순수성지요, 한국 천주교의 역사와 함께한 유서깊은 성당이란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당시 프랑스에서
온 신부들이 생활하였기 때문에 신부들이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한국식과 서양식을 절충한 근대 건축양식의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1년 경기도기념물 제176호로
지정되었다. 전면 중앙에는 간단한 거실이 있고 왼쪽에 식당과 사랑방이 오른쪽은 앞뒤로 통칸방으로
되어있는 단촐한 사제들의 휴식처였다. 사제관 앞 뜰에는 프랑스 볼리외 신부와 김영근 신부의 기념비가
각각 세워져 있다. 2004년 의왕시에서는 사제관 건물을 복원하고 주변을 새롭게 단장하였다.
사제관 우측에는 작은 성당 사무실이 있는데, 새로 지은듯 깔끔하다.
작은 정원에는 순백의 가운을 걸친 성모마리아가 두손을 곱게 모으고 기도드리고 있다.
나도 성모마리아상 앞에서 한번 더 좋은 미래와 다가올 새해를 기원하며 잠시 눈을 감았다.
현재 200여명의 신자수를 가진 작은 본소에 불과하지만 1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의미깊은 성당이다.
골기와 지붕의 작은 사제관으로 올라가는 댓돌로 만든 2층 계단과 사제관이 잘 어울린다.
사제관을 가리키는 현판은 만든지 오래되어 보이지 않는데, 한문으로 쓰여있는것이 경기도기념물로
지정된 것과 어느정도 연관이 있는것 같기도 하다. 20세기 초 선교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가 억압받고
있던 시절, 머나먼 타국땅에서 신념과 용기로 가득했던 이방인 신부들이 이곳에 머물면서 천주교를 알리고
평등과 애민사상을 깨우쳤을 것이다. 외진 성당 작은 사제관에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사제가 된다는것, 그것은 나와 이웃과의 결별이요, 모든것을 포기하고 순수와 평화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인데. 한국 천주교의 푸른 싹이 움텃던 이곳 하우현성당.
초대 본당신부이면서 주보성인인 성인 서 루도비꼬 볼리외 신부 기념비와 지금의 하우현성당의 모습을
갖추는데 큰 역할을 한 김영근 베드로 신부의 기념비가 나란히 있다. 김영근 신부 기념비는
마치 조선시대의 공적비와 같은 모습이고 루도비꼬볼리외 신부의 기념비는 동상스타일.
사제관에 들어가보려 했지만 굳게 잠겨있기에 들어가지는 못했다. 이런 건물로 나만의 작은 별장을
내도 좋을것같다. 사제관의 회랑에 등이 밝혀지고 은은한 종소리가 울려퍼지면 분위기는 한껏 경건해진다.
사제관을 둘러본 다음 성당의 본당인 예배당으로 들어간다. 좁은 입구에 신발을 벗은 다음 끼익 문을 여니
아담한 모습의 예배당이 반겨준다. 조금 역사가 깊은 성당을 보면 스테인글라스와 샹들리에,
천장의 석조인테리어까지 고풍스러운 화려함이 있는데, 이곳은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100여년의 역사라지만 작은 성당이고 신자수도 많지 않기에 외형보다는 내실에 충실해온 기품이 느껴진다.
한마디로 심플하고 단촐하다고 할까. 꾸밈없는 소박함이 있다. 창문은 직사각형에 위부분만 살짝 호를 두른
지극히 평볌한 모습. 작은 앉은뱅이 책상에 방석들이 깔려있는 모습은 100여년 전 초창기의 성당을
떠올리게 만든다. 교회의 외형과 신도수로 대변되는 요즘의 종교계에서 이런 소박하고
주민과 함께하는 성당을 보면 속세에 찌들지않은 본연의 교회를 보는것 같아 마음이 한결 흐뭇하다.
작은 책상에 앉아 성경을 낭독하며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가끔 혼자라도 와서
이곳에 앉아 참회의 시간을 갖고싶다. 비록 신자는 아니지만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의미깊은 시간을
이곳에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호젓한 명상과 산책을 할 수 있는 시간.
100석 정도 되는 본당은 교실 두개정도의 크기지만 그 안에는 어떤 수많은 진리의 말을 지닌 진실의 세계를
담고 있는듯했다. 책상위에는 성경이 놓여있고 방석에 앉으니까 조금 썰렁했던 기운이 사라진다.
잠시 앉아 눈을 감고 가족의 행복과 건강을 기원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예배당을 보고 난 후 밖으로 나왔다. 눈은 그쳐 있지만 날은 아직 오리무중의 안개속에 사로잡혀 있다.
본당 앞 둥근 제단위에는 손이 두개가 있는데, 하나는 활짝 펼쳐져있고 하나는 무언가를 잡으려는 듯
모으고 있다. 과연 나의 손은 남을 위해 포용의 자세를 갖고 있는지 아니면 나를 향해 모으고 있는지.
가끔 이런 곳에 오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맑아지고 깨끗해짐을 느낀다. 비록 일시적이긴 하지만서도.
눈내리는 날 이런 작고 아담한 성당에 가서 새로운 희망과 기원의 메시지를 남겨보면 어떨까.
하늘을 하얀색으로 뒤덮으면서 내리던 눈발도 그쳐가더니 포근한 날씨에 어느새 사르르 녹아버렸다.
다시금 사제관쪽을 한바퀴 어슬렁거리면서 기웃거리다가 인사를 한 후에 길을 떠났다.
성당의 왼편 소나무 가든에는 10여기의 조각상들이 있었다.
모두 십자가를 짊어지고 있는걸로 봐서 예수의 고행과 순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다.
박해와 순교의 성인에 대한 조형물이 있어 잠시 둘러보니 잘은 모르지만 대충 이해할 수 있을것 같다.
성당 왼편에는 빨간벽돌과 기와지붕이 있는 잘 가꾸어진 단독주택같은 모습의 수녀원이 있다.
사제관은 경기도기념물이기 때문에 성당 왼쪽 건너편 초록색지붕의 건물을 사제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본당의 뒷부분과 옆에 자리한 사제관의 모습. 소북하게 떨어진 낙엽을 서설이 감싸고 있다.
100년전의 한국과 프랑스가 함께 녹아든 사제관을 보고 소박한 예배당에서 보낸 뜻깊은 연말의 소중한 시간. 가끔 백운호수와 함께 찾아 산책도 하고 명상의 시간을 가져야겠다.
너른 호수를 백설이 덮어버린 수면에는 유유히 헤엄쳐가는 오리들만이 평화롭다.
하우현성당 근처에는 수도권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카페와 식당이 많은 넓은 호수의 배경이
일품인 드라이브코스로 널리 알려진 백운호수와 세종대왕의 넷째 아들인 임영대군의 묘,
우담바라의 전설이 깃든 천년고찰 청계사, 의왕에서 성남으로 넘어가는 하우고개에 있는 도깨비도로와
운중저수지 등 주변볼거리도 많으니 하우현성당을 본 후에 함께 해도 좋을 듯하다.
백운호수에는 매운탕을 잘 하는 집들이 제방 양옆에 있으니 찾아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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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포들님은 늘 유명하지 않은 숨겨놓은 곳을 잘 소개시켜 주시는거 같네요~ 오래전 성당 분위기가 그대로 있는곳이군요
네, 오래되고 국내에서 제일 조그만 성당이래요!! 감사합니다.. 남들 가는곳엔 아직 실력이 없어서.. 좋은 한주 보내세요!
의왕에서 성남으로 넘어가는 길에..
사제관 수녀원 주변들~ 오래전 분위기 좋은데요..!! 좋은 정보 감사 합니다
네, 맞습니다. 분위기 괜찮지요. 그냥 시골 성당쯤으로요!! 좋은 한주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