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요 ‘혼의 빛깔’ 없어…노래 왜 하고 왜 듣는건가”

1960~70년대 청바지와 통기타로 대변되는 포크송시대 전성기를 구가한 가수 조영남-한대수-송창식-윤형주-김도향-이장희-양희은-김민기-서유석-전인권. 그리고 80년대 조용필-이동원-어니언스(임창제-이수영)-김정호 등 한국 대중문화의 꽃을 피운 70~80세대의 우상들을 하나로 엮어주는 연결고리가 있다. 대중음악평론가인 ‘똘강’ 이백천(77)씨가 그 주인공이다.
충청도 말로 ‘작은 개울’을 뜻하는 ‘똘강’, ‘백천(白川)’이 있었기에 우리 대중가요의 큰 강줄기가 형성될 수 있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악단 ‘민들레’를 창단한 똘강은 조영남-김민기-조용필과 같은 한국 가요계의 주역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 통기타군단 주역은 그가 펼쳐놓은 멍석에서 맘껏 끼를 발휘했다. 데뷔시절부터 똘강과 통기타의 숨결을 같이하며 성장해 청년문화의 꽃이 만개했다. DJ, MC, 프로듀서, 가요평론가 등으로 폭넓게 활약한 그는 한국 대중음악의 한 시대를 이끈 총연출자이자 통기타군단의 스승이었다. ‘멍석’은 포크음악의 산실인 서울 무교동의 음악감상실 ‘쎄시봉(C’est ci bong)’과 명동 YWCA의 ‘청개구리집’, 그리고 충무로 태극당 삼익피아노 지하실의 ‘르 시랑스(Le Silence)’에서 마련됐다.
조영남이 ‘통기타군단의 담임선생님’이라는 닉네임으로 부르는 한국 가요사의 산증인이자 포크음악의 이론적 스승 똘강을 9일 오후 경기 일산 동구 중산동의 자택 인근 중앙공원에서 만났다.
-똘강선생님, 요즘 근황이 궁금합니다. 일산 호수공원에서 진행하던 ‘석양음악회’는 그만두셨는가요.
“호수공원 약식무대에서 5~10월 시민들을 모시고 매달 저녁 7시 전후 석양이 질 때 하던 음악회였는데 2007년부터 시작해 2008년까지 하고 9차례 MC를 보며 진행했는데 지금은 손을 놓았어요. 제가 아는 통기타 가수들이 주로 왔지만 지역의 합창단과 무용단도 와서 ’시(詩)·가(歌)·무(舞)’를 주제로 3번을 했어요. 소문이 나 서울시민들도 와 관객이 1000명이 넘을 때도 있었지요.”
똘강선생은 “대중가요 하는 데 무슨 시냐고 생각하겠지만 통기타가 중심이 되다 보니 시와 가요와 석양이 잘 어우러졌다”면서 “석양이 질 때쯤 호수공원 장소가 참 좋았고 해가 떨어지는 걸 배경으로 시도 읽고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한 게 호응을 얻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평생 라이브 공연을 고집해온 그는 출연자의 자격요건을 유독 강조했다.
“석양음악회를 하면서 제일 중시했던 것은, 공연현장에 온 사람들은 정말 음악이 좋아서 온 사람들인데 그 무대에 선 사람인 출연자들은 자기를 곧장 뚫어져라 보는 관객들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알고 나와야 한다는 것이었고 이것을 출연자의 첫번째 조건으로 꼽았습니다. ‘객석의 무서운 응시’와 경청이 워낙 좋아 최선을 다해서 부르는 라이브의 감동이 물결치는 음악회가 제가 추구해온 음악입니다.”
똘강선생은 “세계 10대 문화도시로 발돋움한 고양시의 문화명소로, 석양음악회를 국제적인 음악회로 키우고 싶었다”면서 “문화가 서울을 중심으로 좇아가는 경향이 있는데 이제 지방자치시대 지역민들이 관객으로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창의성을 발휘하는 문화행사를 많이 만드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아쉬워했다.
걸을 때 다리가 불편한데다 한쪽 귀가 잘 안 들린다고 해 건강이 어떤지 궁금했다. “지난해 12월6일 아침에 화장실을 가려고 문고리를 잡았는데 나가 떨어졌지요. 급성 심근경색으로 1주일간 입원했는데 병원에서는 ‘3번의 심근경색 경험이 있었는데 제가 모르고 지나간 것 같다’고 했지요. 생각해보니 바둑두거나 열중할 때 몇번 심장에 무리가 있었는데 그냥 넘어간 기억이 있었어요.”
그는 “77살의 나이에 심근경색에 걸려 병원에 1주일씩 입원한 것은 난생 처음”이라며 “그 전까지는 나이 90까진 현역일 것이라 생각했고 어떤 젊은이와 경쟁해도 제 분야에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고 해낼 자신이 있었는데…” 하며 말끝을 흐렸다.
똘강선생은 올해 처음으로 스승의 날에 한대수-김도향-이필원-장은아-윤연선 등 10여명의 통기타세대 시니어들로부터 스승 대접을 받았다. “아무래도 심근경색 영향이 컸어요. 이제 그만 ‘말질’하라는 뜻인가 봐요.” 1세대 포크음악을 출범시킨 60년대 ‘청춘과 낭만’의 산실인 무교동 ‘쎄시봉’ 시절로 화제를 돌리자 똘강선생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쎄시봉이 대단했던 것은 고등학생은 못 들어오고 대학생이 돼야 들어올 수 있는 음악감상실이었는데, 거기서 통기타 주역들이 줄줄이 나왔어요. 포크송은 제가 정말 제일 사랑했어요. 제가 그들이 데뷔할 때, 매스컴 타면서 같이 출발하는 현장을 옆에서 지켜봤어요. 조영남이 유명해지기 전에 대학생들 앞에서 노래할 때, 송창식이 유명해지기 전에 제일 먼저 제가 소개를 했으니까요.”
젊은이들의 축제마당인 쎄시봉의 새 역사가 시작됐다. 장안의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하나둘씩 기타를 들고 라이브 무대로 모여들었다. 시인 서정주, 박목월, 박재삼씨가 학생들과 자리를 함께했고, ‘명사특강’에는 국회의원 김대중, 정광모씨 등 각계인사들이 초대됐다. 낭만과 지성, 청춘과 열정의 통기타문화가 용틀임한 것이다.
“통나무로 만든 게 통기타죠. 통기타는 통나무의 숨결에 맞춰서 자기 목소리를 내서 노래하는 것이죠. 통기타 가수들이 얼마나 순수해요. 통나무 숨결을 자기 숨결과 일치시켜 애인처럼 껴안고 자기 반주로 노래한다는 것, 통기타세대는 참 행복한 친구들이었어요.”
그가 1972년 동양방송(TBC TV)에 사표를 내고 프리랜서로 일할 당시 KBS TV에서 급작스럽게 새해특집으로 2시간짜리 ‘젊음의 행진’을 준비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음악감상실 ‘르 시랑스’ 출연 멤버 등 30명의 화려한 통기타군단이 급조됐다. 트윈폴리오-조영남-어니언스-김세환-이장희-풋내기 가수 윤석화-전유성-정광태-김민기-양희은-이연실-정미조 등. 하지만 막판에 배정된 방송시간은 30분으로 줄었다. 똘강선생과 라이브의 백전노장들은 모두가 출연키로 하고 작전을 짰다. 다들 노래는 반절만 부르고 누가 노래하면 나머지는 기타 반주나 박수로 반기고, 서로 서기도 하고 의자에도 앉고 바닥에 철퍼덕 앉기도 했다. 일제히 고고를 추다가 스톱 모션에 걸리면 한사람씩 짧은 외마디를 내지르는 스페셜 컷도 준비했다. MC는 윤형주와 윤석화. 대미는 김민기가 작곡한 ‘내나라 내겨레’였다.
다음날 아침 방송 뒤 KBS 국장으로부터 떨리는 음성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날밤 박정희 대통령 가족이 프로를 봤고 방송 후 최창봉 사장에게 치하의 말이 전해졌다는 것이다. ‘젊음의 행진’은 정규프로그램으로 승격됐다. 이때부터 청바지에 더벅머리, 통기타를 껴안은 젊은이들이 매주 KBS로 벌떼처럼 밀려갔다.
의사인 아버지는 서울대 생리학과 교수였고 7남매 중 셋째로 차남이었던 똘강선생은 아버지 생신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형은 소아과 의사, 동생은 병리학과 교수고 누이는 간호사, 아래여동생은 약제사로 의사집안에서 똘강선생은 돌연변이였다.
“의사인 형이 친척 등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야, 백천아. 너 아직도 딴따라 하니?’ 그래요. 남들 술마시고 춤추고 그러는 데서 언제까지 음악할 거야 그랬어요. 그래서 제가 ‘의사라는 것은 아픈 사람을 정상적인 상태로 고쳐놓는다고 해도 완전 건강을 확보해 주는 것이 아니야. 건강을 돌려놓으면 뭐해, 행복하지 않으면. 형이 아픈 사람들을 고쳐놓는다고 해도 완전한 건강을 확보해주는 것은 아니야. 형이 건강을 고쳐주면 나는 그 다음 단계를 맡고 싶다’고 했어요.”
똘강선생은 “저는 음악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정말 좋은 음악을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다”며 “완전한 건강은 행복을 느끼고 사는 것에 보람을 느끼는 것인데 음악이 한 가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요즘 젊은 후배 가수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궁금했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왜 노래를 하고, 왜 가수 노래를 듣는지 근본 문제를 다시 생각할 때”라며 “요즘 유명한 젊은 가수들 목소리만 듣고 누구 노래라고 지목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예전에는 노래에 색깔이 있었어요. 현인과 고복수의 노래에서는 혼의 빛깔이 들렸지요. 지금은 혼의 빛깔을 듣게 해주는 가수는 드문 것 같아요. 사람들도 그런 것 들으려고 하지 않아서 그렇게 만들어놨는지도 모르죠. 지금은 그런 소리를 듣고 싶으면 성당, 절에 가야 할 지경이 됐어요. 최근 선거의 정치인 연설에서도 관객의 영혼에 호소하는 말들을 잊어버린 것 같아요. 정치인들이 사람들을 모아놓고 하는 말에 혼의 빛깔이 없어졌어요. 전문가들이라는 사람들의 말투도 마찬가지지요. 대중음악에서 그걸 찾는다는 것 자체가 웃기는 상황이 돼버린 것 같아요.”
-포크송 세대에 있었던 혼의 빛깔이 왜 지금은 사라졌을까요. 열정이 식어서일까요.
“가공된 음향, 기계음의 증폭된 음향들, 그런 것들을 음악이라고 듣기 시작하면서 섬세한 소리를 듣는 능력이 쇠퇴해 버렸어요. 소리를 여음까지 다 듣는 욕심들을 가질 짬이 없어졌다고 할까요. 50년 전 음악과 비교한다면 요즘 사람들은 바빠서 그런지 좀 이상해졌어요. 제가 석양음악회를 만든 것은 음악회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어요. 새로운 청중, 관중을 만들자는 것이었어요. 현장으로 애써 찾아온 사람들이 하품하면서 그날 공연을 망칠 수 없지요. 음악이 잘못되면 관객은 ‘야지’를 놓고 고함을 치고 좋으면 박수를 쳐야죠. 그래야 ‘기적의 공연’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음악회는 관객과 같이 만드는 현장인데 지금은 관객의 역할이 쇠퇴해버린 것 같습니다.”
팔순을 앞둔 똘강선생의 음악을 향한 열정은 건강이나 나이에도 여전히 식지 않았다.
“송창식-조영남-김도향-서유석 등이 1944~46년생으로, 포크가수 1세대가 64년에 출범했으니까 4년 후 통기타 출범 50주년 특별음악회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통기타 주역들이 모두 참석하는 또 한번의 대형무대를 꿈꾸고 있는 똘강선생이 마지막 꿈을 얘기했다.
“죽기 전에 정말 멋있는 것 하나 하고 싶어요. 세계의 음악제인 민속음악제가 그것이죠. 서구 중심적이거나 상업성에 치우친 음악 말고 자연 속에서 만들어진 그런 음악제 말이죠. 각 나라 풍토의 영향을 간직한 채 그 풍토 속에서 숨쉬면서 소중한 삶을 엮어왔던 사람들이 키운 음악들을 라이브로 펼쳐보이고 싶어요.”
<자료출처 : 문화일보(인터뷰 = 정충신 사회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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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리같은 문외한이 들어도 그런 것 같습니다...
이백천씨는 말씀도 조근조근 잘하시고 해박한 음악 지식을 갖추신분 같아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