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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귀검신(弓鬼劍神)-제5장-'포두이술(捕頭以術)' 초연(初演)-3
“에고 힘들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하루하루가 힘드는고만...”
헐떡거리며 분지에 올라온 소문의 얼굴에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위에 업혀오는할아버지의 말은 그런 소문의
속을 충분히 뒤집어 놓았다.
‘업고 온건 나인데 힘들다니....’
집을 나서자마자 다리가 쑤시니 허리가 아프네 하며 땅에 주저앉고 마는할아버지였다. 평소 같으면 주저앉거
나 말거나 신경쓰지 않을 소문이지만 지금은 목마른 놈이우물을 판다고... 울며 겨자 먹기로 할아버지를 업고
고생고생해서 간신히 여기까지올라올수 있었다. 그런데 고생했다는 말은 고사하고 늙었다고 신세한탄이나 하
고있다니....
“그래 무얼 익히고 이리 난리인 것이냐?
“예 이제는 제법 하늘 높이 화살을 날릴 수 있습니다. 바람땜에 처음엔힘들었지만 다극복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수직에서 점차 벗어나 활을 쏘고 싶습니다.”
“호오 그래? 니 말대로라면 활의 각도를 변화시키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근데바람을극복했다는 말이 정
말이더냐?”
“물론입니다. 제가 그 말을 입증하겠습니다. 바람이 전혀 없다면 제 자리에떨어지겠지만 지금은 바람이 제법
부니 저걸 맞추어 보겠습니다.”
소문은 약5장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표적을 가르켰다.
“그래? 그리 자신이 있더냐?”
“예. 처음엔 몰랐지만 우선 바람의 미세한 차이를 느껴 이를 극복하고 활에싣는 힘을변화시켜 그 거리를
조정하며 또한 쓰이는 화살을 통일하여 목표물에 대한 오차를없앨수 있었습니다.”
소문은 자신만만했다. 그 동안 자신이 기울인 노력이 얼마이던가? 이제 그 노력의결실을 매번 자신을 무시하
던 할아버지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기쁨에 흥분되는 마음을진정시키기가 어려웠다. 뽄때를 보여주리라 마음
먹었다.
“잠시만 기달리거라”
할아버지는 활을 드는 소문에게 말을 하더니 표적 앞으로 걸어나갔다. 표적 옆에나란히 선 할아버지는 소문
을 향해 손짓을 했다.
“쏴라”
‘드디어 노망이 난 것이다. 나를 그렇게 괴롭히더니만 결국엔 노망이 난것이다.’ 소문은 할아버지의 행동
을 노망으로 단정지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날 맞춰봅세’하는식으로 표적 옆에 설 이유가 없었다.
“왜 그러느냐? 자신이 없는게냐?”
머뭇거리는 소문을 향해 할아버지는 호통을 쳤다.
“제가 비록 뛰어난 활솜씨를 지니긴 하였고.... 물론 맞출 수도 있지만혹여라도 모르니 비켜서시지요.”
“자신이 있는 놈이 무얼 망설이느냐? 이 정도의 거리에서 날 피하지 못한다면그건 활솜씨라고 할 가치도
없는 것이다. 자신이 없다면 없다고 해라 이놈아”
정중히 부탁드렸거만 들려오는 소린,,,,소문은 할아버지의 말에 반사적으로 활을들어올렸다. 자신감에 살고 죽
는 소문에게 자신감이 없다는 말은 욕보다 더한 수치였다.
‘흥, 저따위 하나 못 맞출까? 내가 그 동안 연습한게 얼마인데. 근데 연습은연습인데...’
생각과는 달리 선뜻 화살을 날리기엔 목표가 너무 작았고 옆에 선 할아버지는너무나컸다. 소문의 입술은 바
싹바싹 타들어갔다. 반대로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맺혔다.
‘쏴라 쏴. 이보다 훨씬 심한 바람에서도 훨씬 더 작은 표적도 맞추지 않았느냐?넌 할수 있다. 을지소문 넌
할 수 있다.’
소문은 필사적으로 자신을 채찍질했다. 하지만 결국엔 활을 내려 놓고야 말았다.
“에라이.. 못난 놈아. 남자 놈의 배짱이 밴댕이 소갈딱지 같아서야...에잉”
할아버지의 질책에 소문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러나 너무 억울했다. 할아버지땜에차마 쏘지 못한 것이지...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소문의 맘을 알기나하듯 할아버지는 표적에서 벗어나며 말하였다.
“네놈의 표정을 보니 나로 인해 쏘지 못했다는 말도 안되는 표정이구나.그렇다면 내가 비켜설테니 하번
쏴보거라.”
소문은 묵묵히 활을 들어 올렸다. 할아버지의 말이 맞다는 무언의 시위였다. 오래재고할 것도 없었다.
‘이 정도의 바람에 이 정도의 거리, 최대다’
“퉁”
경쾌한 소리를 내며 화살은 하늘로 솟구쳤다. 끝없이 올라가던 화살은 잠시후 자유낙하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걸 보는 소문의 얼굴엔 당혹감이 서려있었다.
‘헛.. 이게 아닌데...왜 저리 멀리 가지?’
화살은 목표에서 한참을 빗나가 떨어졌다.
“이럴 리가 없습니다”
소문은 결과를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말은 들을 필요도 없이 다시한번화살을 날렸다. 하지만
결과는 아까보다 더 비참했다. 똑 같이 쏜 화살은 오히려목표보다 가까이 떨어졌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결
과였다.
소문이 몇 번을 더 쏘아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한발의 화살도 명중을 하지못하였다. 결국 활을 땅에 떨
어뜨리고 말았다. 소문은 망연자실했다. 자신에 대한자책과 지난날의 노력에 대한 결과가 너무나 허망하자 왈
칵 눈물을 쏟고 말았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 부모가 없어 놀림을 받은 이후 처음으로 우는 것이었다.다시는울지 않는다고 놀린 놈
을 두들겨 패며 결심한 소문이었다.
“흑흑”
좀처럼 울지 않는 소문이지만 한번 울음을 터뜨리자 봇물 터지듯 눈물이 쏟아졌다.
할아버지는 그런 소문을 잠시 바라보다가 활을 들었다. 그리도는 화살을 재었다.
“보거라”
할아버지의 말에 여전히 눈물을 흘리면서도 고개를 든 소문이 본 것은 하늘높이날아간 화살과 그 화살이 정
확하게 표적에 떨어지는 것이었다.
“다시 보거라”
이번에도 화살은 정확히 표적에 떨어졌다.
“또 보거라”
이제는 울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소문은 눈을 부릅뜨고 할아버지를살펴보았다.
화살은 또 한번 정확하게 표적에 떨어졌다.
“알겠느냐?”
소문은 고갤 저었다. 할아버지는 이후 몇 차례 더 화살을 날렸다. 화살은 여지없이목표를 꽤뚫었다. 할아버지
가 몇 번의 화살을 날리는 동안 약간씩 힘 조절을 한다는 것이외에는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이 더 이
상했다. 자신이 느끼기에 바람은일정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이는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뭔가 다른 것이 있는 것인가? 하지만 이미 필요한 조건은 다 갖추었다고생각했는데...’
소문이 뭔가를 골몰이 생각하자 할아버지는 활쏘기를 그만두고 옆에 박혀있는커다란바위에 가서 걸터 앉았
다.
“알겠느냐?”
할아버지는 자신의 질문에 기가 죽어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가로지르는 손자를보자 마음이 답답했다. 비록
자신이 두들겨 패고 욕을 하며 조금 엄(?)하게 키우고는있지만 어찌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랴. 그러한 행동 모
두 사랑(?)에서 우러러 나오는것을....물론이렇게 생각하면서도 확신을 하지는 못하지만....
.
“네가 준비한 것은 모두가 정확한 것이었다. 바람의 미세한 차이를 느끼는 것도제법이었고 힘에 강약을
주는 것도 제법이었다. 하지만 너는 하나를 빼먹었다”
“그게 무엇이지요?”
뭔가를 빼먹었다는 말에 고개를 반짝 든 소문이 물었다.
“너는 흐르는 냇물의 속도가 모두 같다고 느끼느냐?” “예?”
“흐르는 냇물은 지형마다 그 흐르는 속도가 모두다 다르다, 가파른 계곡에서는빠르게 흐르면 평평한 평지
에서는 그 흐름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느리게 흐른다. 같은이치다. 바람은 지형마다, 날씨마다 바뀐다. 그것이
오래 지속 될 수도 있고 수시로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느낄 수 있는데요. 그리고 이곳의 바람은 아까부터 변화가전혀없는데요?”
“네 말이 맞다. 하지만 하나 간과한 것이 있다 하지 않았느냐?” “간과한 것이라니요?”
“냇물의 물 흐름이 다르다는 것은 바람 또한 항상 같지 않다고 하는 말과통하지만 위에서 부는 바람과 아
래에서 부는 바람 또한 같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의미한다.” “아!”
확연히 떠오르는게 있었다.
‘그렇구나 왜 밑에서 부는 바람과 위에서 부는 바람이 항상 같다고 생각했을까?아니지 아예 생각을 하지
못했구나....그런데 왜 그것을 간파하지 못했지?’ 뭔가 이상한 느낌이 있었다.
“그런데 제가 그 동안 어찌 그것을 느끼지 못했지요? 수없이 많은 화살을날렸음에도?”
“내가 그 동안 네가 연습하는 것을 몇 번 보았는데 연습 과정에서 몇 가지의문제점이보였다.”
“문제점이라니요?”
연습자체가 문제가 있다니 이것은 큰 문제였다. 소문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보건데 넌 항상 이 자리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는 표적에 활을쏘더구나”
그건 사실이었다. 어차피 바람을 느끼고 힘 조절을 하는 연습이지 멀리 있는 곳에날리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쏜 화살을 쉽게 줏을 수 있다는 점도 작용을 했지만...
“바람이 거의 없는 맑은 날은 힘을 많이 실어 하늘높이 날렸지만 이런 날은대체적으로 하늘의 공기가 안
정되어 위아래의 바람차이가 별로 없다.
하지만 위아래 바람차이가 심한 날, 즉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은 네 스스로 힘을약하게 하여 위와 라레의 바
람차이가 확연히 느껴질 높이만큼 화살을 날리지 못했다.당연히 그 차이를 느끼지 못할 수 밖에....”
이제서야 모든 것이 명확해지는 소문이었다. 자신이 스스로 만족한 수련법에그러한 문제가 있었다니.,..부끄러
웠다.
“또한 하나의 문제가 더 있다”
“네?”
“넌 칼이나 창을 두고 활을 쓰는 이유가 어디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것이....”
소문이 말을 미쳐 잇기도 전에 할아버지는 말을 잘랐다, “지난번에 이미 밝혔듯이 활이란 가능한 한 멀리
눈에 보이는 거리를 뛰어넘어그 뒤에 도사리고 있는 생명까지 지배하는 병기다. 빠르고 강한 뇌전과 독사
의이빨처럼 날카로움을 지닌것이 바로 활인 것이다. 하지만 네 화살은 어떠냐? 바람을 의식해가까이있는 목표
에 힘 조절을 한답시고 그리 약하게 쏴서는 그것에 목숨을 잃을 것이무에고두려워 할 자가 무가 있단 말이냐?
나중에야 화살에 내공을 실으면 된다지만 지금은 아니지 않느냐? 50여장을올라간 화살과 10여장을 올라간 화
살은 그 위력에서 하늘과 땅차이가 있는것이다. 넌 바람을 극복했다지만 내가 보기엔 바람이 널 극복한 것 같
구나”
“그럼 어찌 해야 되는지요?”
“짧게 보지 말고 멀리 보거라. 지금 당장 맞추는 것에 신경을 쓰다보니 그리 된것이다”
“하지만 바람이 강할 때 가까이에 은폐하여 숨어 있는 적을 맞추려면은...” “그리 하고도 깨닫지 못하
다니.... 잊은게로구나. 누가 화살을 수직으로만쏘라더냐?그에 따라 활의 각도를 조금씩 변화시키면 되는 것
을”
“그럼?”
“오냐, 며칠 후부터는 활의 위치를 조금씩 변화시켜 연습을 해보거라. 하지만명심할것은 위아래의 바람의
차이를 염두해야 한다, 허나 아는 것만으로는 소용없다.정확하게 느끼고 이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네가 비록 활을 익히는 것이살상이목적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걸 무시할 수 없으니 살상의 범위에서 힘
조절을 하거라.
또한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 법이다. 화살의 차이 또한 극복해야 한다. 심지어울퉁불퉁한 나뭇가지를 쓴다
해도 여는 화살과 같아야 할 정도로 다루어야 비로서 활을쏜다고불릴 수 있을 것이다.”
소문은 자신이 언제 울었느냐는 듯 활짝 웃었다. 그리고는 땅에 떨어져 있는 활을힘껏움켜 잡았다.
“예 할아버지.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모든 것은 지금부터다. 다시 시작하자’
소문이 마음을 다잡아먹고 곧바로 연습할 태세를 하자 할아버지는 이를 만류하셨다.그리곤 부드럽게 말씀하셨
다.
“아니다. 며칠 후부터 연습을 하거라”
“예? 아닙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해서 하루라도 빨리경지에 이르고 싶습니다.”
“허허 하루라도 빨리 경지에 이르고 싶다는 말은 참으로 맘에 드는구나. 하지만소문아....”
여지껏 상심해 하던 손자를 어루만지시며 가르침을 주시던 인자한 할아버지의표상이었던 모습은 사라지고 있
었다. 안색이 점차 변해갔고 말 또한 거칠어지기 시작한것은순식간이었다.
“니놈이, 우화등선의 이치를 깨닫는 순간 눈앞의 신선지경을 발로 차버리고알량한 활솜씨를 자랑한다던
니놈이, 화살을 날리기는커녕 아니지 쏘기는 쐈구나. 쏘는 족족어림없는 곳에 떨어지긴 했다만.... 암튼 제대로
쏘지도 못하더니만 그리고는 메가잘났다고질질 짜기까지 한 니놈이 밥을 먹을 자격이나 있다는 것이냐? 3일간
금식은 물론이고 마침 땔감도 떨어졌으니 땔감이나 해 오거라. 기왕 하는거곧 겨울이 오니 겨울날 땔감을 미
리 마련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어차피 니놈이 해야하는 것이지만.....
에잉.. 니놈 때문에 신경쓴걸 생각해선 이보다 더한 벌을 내릴 것이나 내 특별히봐주는 것이니 불만은 없으리
라 믿는다”
‘믿는다’에 유독히 강조를 하는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가 사라지자 소문은 땅에주저앉고 말았다.
‘금식이라니 또,,,, 빌어먹을 할배 같으니라고 어쩐지 그리 자상하게설명하더니만....
밥이야 굶는게 다반사니 그렇다 치더라도 그 많은 땔감은 어찌한다....젠장할’
궁귀검신(弓鬼劍神)-제6장-산비둘기
장백산의 여름은 짧았다. 여름이라야 일년 중 고작 3개월에 불과하고 나머지는겨울이었다. 9월말이면 눈이
내리고 그 눈이 녹아 내를 흐르게 되는 것은 5월이되어서였다. 딱히 봄이라거나 가을을 규정하기는 어렵고 그
저 며칠 봄이려니 가을이려니 하는 것이전부였다.
여름의 끝에 접어든 장백의 풍경은 가히 볼만했다. 천지 주변에서 불타오르기시작한단풍은 그 범위를 점차
넓히더니 지금은 온산을 붉은 빛으로 도배를 해버렸다.혹자는해동 금강의 경치가 천하제일이라 했으나 금강을
비롯하여 조선에 솟아오른 모든명산들의 기운이 장백산으로부터 시작하니 그 으뜸중의 으뜸이라 할 수 있었
다.
산에 자라는 식물이나, 살고 있는 동물들이 오래되거나 귀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예로부터 사람들은 장백을
신령스런 산으로 여겼다. 당연히 장백에서 나는 모든것들을 두려워하며 사랑했다. 그런데 여기 그토록 신령스
러운 산에서 감히 불경스러운 짓을하는 놈이 있었으니....
“퍽퍽”
겉을 갑옷처럼 탄탄한 껍질로 무장한 소나무의 밑둥이 을씨년스럽게 옷을 벗고있었다.
“휘익...퍽!”
소문의 손에 들린 도끼가 한번씩 춤을 출 때마다 소나무의 밑둥을 보호하던 옷은얇아져 갔다.
“꽈지직.....”
마침내 하늘을 바치고 있던 기둥이 무너지는 양 소나무는 그 거대한 크기에 알맞게엄청난 소리를 내며 쓰러
졌다. 주위의 작은 나무들은 소나무의 거대한 감당하지못하고 맥없이 쓰러져 갔다.
“빌어먹을 놈. 누구처럼 나이만 쳐먹어서 그런지 질기기가 고래 심줄 갔구나.암튼 내가 이겼다. 이놈아. 카
카카! 오! 신이시여........ 이 일을 정녕 제가 했단말입니까?”
소문은 쓰러진 나무 옆에서 도끼를 하늘 높이 쳐들더니 발악적으로 외쳐 댔다.나무는그 길이가 족히 10여장
은 되었고 두께만 해도 장정이 서넛은 되어야 그 두께를가늠할수 있을 정도였다. 큰 기둥에서 옆으로 뻣어나
간 잔가지라 해도 그 하나 하나가어른 몸통보다 큰 실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소나무였다.
그런데 이처럼 큰 나무가 어째서 땅바닥에 누워야 했는가? 그 까닭은 간단했다.소문이기를 쓰고 이 나무를
잘랐던 것은 그 말도 안되는 내기에서 졌기 때문이다. 벌써며칠째 주린 배를 안고 겨울 땔감을 하는 중이었
다.
그런데 솔직히 이처럼 큰 나무는 땔감으로 효용이 없었다. 물론 알맞은 크기로자르기야 한다면 바랄 나위 없
이 최고의 땔감이 되겠지만 쓰러뜨리는데만도 하루가 꼬박걸렸는데 어찌 그것을 알맞은 크기로 자를 수 있을
까? 시간이나 많으면 몰라도 소문은그토록 많은 시간을 투지할 이유도 없었고 힘도 없었다. 그럼에도 소문이
이나무를 찍어넘긴 까닭은 어설픈 잔머리의 소산이었다.
땔감을 하려고 산에 올라온 소문은 처음에는 이나무 저나무 열심히 잘라댔다.하지만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에
도 땔감의 양이 좀처럼 늘지 않았다. 하기도 싫은 걸 억지로하는데다가 능률도 오르지 않으니 짜증만 났다. 그
래서 고심 끝에 생각해 낸 것이 이방법이었다. 일타 쌍피가 아니라 일타 수십피....
소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큰 나무가 아니라 그 주변에 작은 나무들과 수없이 뻗은가지들이었다. 하지만 마
음과는 달리 이넘의 나무를 자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아니었다.
보통의 애들과는 다른 상당한 힘으로 찍어대는 소문의 도끼질에도 끄떡하지 않고소문을 비웃고 있었다. 포기
할까도 생각했지만 성공의 대가가 너무나 달콤했기에하루종일이를 악물고 도끼질을 해댔다.
"흠... 이눔하고 주변의 나무만 손질하면 올 겨울은 까딱 없쓰렸다. 역시 나의뛰어난머리는 알아주어야 한단
말야,,,,흐흐흐"
쓰러진 나무에 걸터 앉아 엉성하게 만들어진 물통에서 물을 마시며 자화자찬을하던 소문의 머릿속은 온통 복
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흥. 빌어먹을 할배 같으니라고...가문의 하나뿐인 74대 독자를 이리 괄시를하다니...
어디 두고보라지... 내 그넘의 ‘포두이술'을 하루라도 빨리 익혀 이날의 설움을반드시 갚으리라...."
상상만으로도 즐거웠다. 자유자재로 활을 쏘는 자신,,,,할아버진 옆에서 감탄의감탄을하고 있고,,,, “자자. 빨
리 하고 활연습이나 해야겠다. 그날의 영광을 위하여,,,,"
흐르는 땀을 식히며 엄한 생각으로 잠시 휴식을 취한 소문은 우선 주변에 쓰러진나무들을 수습하기 시작했
다. 잔가지는 준비한 낫으로 쳐내고 기둥만을 따로 추려냈다.
땔감으로 쓰이는 장작이이 갖추어야 하는 최고의 미덕은 ‘은근’과 ‘끈기’다.겨울철의긴 밤을 버텨야 하
는 장작은 은근히 타면서도 화력이 좋아야 하는데 보통 기둥에서뻣어나간 잔가지는 잘 타기는 해도 오래가지
못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장작은 그 나무의기둥이 쓰였다. 그런 이유로 소문은 잔가지는 쳐다보지도 않고 쳐내
곤 했다.
큰 나무를 자르느라 시간을 워낙 많이 소모해서인지 주변의 나무중 이제 서너개를수습했는데도 벌써 날이 저
물어왔다. 소문은 할 수 없이 하던 일을 중단하고 집으로돌아가야 했다.
“에고 지겨운거...이짓을 언제 까지 해야 한다....삭신이 안 쑤시는데가없네..."
두자 남짓한 도끼를 오른쪽 어깨에 매고, 왼손에는 날이 시퍼렇게 슨 낫을빙글빙글 돌리며 걷고 있던 소문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린 것은 자신이 잘라놓은 그 큰나무의 끝을 막 지날 때였다.
“뭔소리랴?”
귀찮기도 했지만 궁금도 해서 소문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소문이발길을 멈춘 곳에는 한 마
리의 새가 날개를 퍼덕이고 바위 아래서 꿈틀거리고 있엇다.어디에 큰 상처를 입었는지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소문이 다가오자 날개를 퍼덕이며날아오르려 했다.
“꺼루룩....”
잠시동안 퍼덕이며 요동치던 새는 마침내 포기를 했는지 날개짓을 멈추고 소문을가만히 쳐다보았다. 비록 상
처를 입고 땅에 떨어지기는 했어도 그 모습이 웬지 심상치않았다.
상처입은 몸으로 인간을 앞에 두고도 동요하지 않는 이 새는 까치나 비둘기보다는약간 컸고, 매나 수리보다
는 작았다. 하지만 소문은 이 새를 보자마자 산비둘기라고단정지었다. 비둘기치고는 제법 그럴듯하게 생겼으나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꼬라지는 영맘에 안들었다.
“이눔의 비둘기새끼가 감히 누굴 노려보고 있어,....헤헤...암튼 횡재했네.금식이 풀리는 오늘 저녁엔 오랜만
에 포식이나 하라는 하늘의 선물이네... 하하하...하늘도나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구나.....”
자신이 베어 넘긴 나무가 쓰러지면서, 하늘에 유유히 떠다니다가... 숲속의 먹이를노리며 하강하는 해동청을
내리친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소문이었다. 맨 끝의여린 가지들에 맞아서 그나마 이 정도지 몸통에
맞았음.. 그 자리에서 죽었을해동청이었다.
소문은 해동청에게 재빨리 다가가더니 이미 기력이 다해 날개짓도 하지 못하고반항도못하는 몸체를 거칠게
낚아챘다. 그리고는 휘파람을 불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소문이 산에서 내려왔을 때는 이미 어둠이 짙게 깔린 저녁이었다. 싱글벙글 하면집안으로 들어서자 그때까
지 마루에서 잠을 자던 할아버지가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하아아아.....에구 자도자도 졸리는 구나,,,,어라....소문이 아니냐? 어째벌써 돌아오는게냐? 땔감은 다 마련
하였느냐?”
“아직 끝마치지 못했지만...날이 어두워서 내려왔습니다.” “에라이 이눔아. 오늘이 벌써 며칠째냐? 게
다가 날이 이리 밝은데도 일도 하지않고 이리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냐....맨날 땔감이나 해라. 이 눔아....그리
해보거라...100년1000년이 지난들 무공을 완성할 수 있을 줄 아느냐.... 어림도 없지,,,,암!!”
할아버지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소문이 미쳐 대문을 지나기도 전에 소리를질렀다.
그러다가 우물쭈물 서 있는 소문의 손에 뭔가 이상한 것이 들려 있는 것이 눈에띄었다.
“그게 무었이냐”
“산비둘깁니다.... 내려오다가 주었습니다”
“그래? 이리 가져와 보너라”
소문은 절대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해동청을 할아버지에게 넘겨 주었다.물론의심이 듬뿍 가는 눈치
를 보내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과거 자신이 사냥한 것들을이런식으로 빼앗긴 것이 어디 한둘이던가....
‘하지만 이번만은 안되지....며칠만에 밥을 먹는 건데....저건 하늘이 주신선물이야....
암...하늘의 선물을 .빼앗겨서는 안되지...’
“딱”
소문이 필승의 의지를 다짐하기가 무섭게 날라 오는 건 예의 그 곰방대였다.
“악! 왜 때려요?”
졸지에 별을 본 소문의 말은 당연히 항의 조였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냉랭한할아버지의 말이었다.
“뭐라? 비둘기?....허...나참...니눔은 이게 고작 산비둘기로 밖에 안보이냐?그런 썩어빠진 눈으로 제 딴에는
사냥을 하겠다고 설쳐대는 꼬라지 하고는.....”
아까 처음 볼 때 좀 이상하기는 했지만 그저 종류가 다른 산비둘기려니 했다. 헌데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그
러나 그건 중요한게 아니었다. 소문의 생각을 지배한 것은꼬투리를 잡기 시작한 할아버지에게 밀리면 저 새가
할아버지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것을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었다.
“그게 비둘기건 아니건 뭔 상관이 있어요...암튼 그거 제가 잡았으니주시지요....”
최강의 수였다. 소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를 했다고 확신했지만 이번역시상황 판단을 잘못하고
말았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또다시 나타난 곰방대가 소문의몸이곳저곳을 두들겼다. 곰방대의 무차별 적인 역
습에 소문은 결국 백기를 들고말았다.
“가지시지요”
‘내 비둘기.....흑흑...하늘이시여,.,,,’
“이놈아 너는 이게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영물인지 모르느냐? 이것이 하늘의제왕이라는 ‘해동청’이다....
‘해동청’
해동청을 ?송골(松?)매?라 하기도 하는데 ,해주목(海州牧)과 백령진(白翎鎭)에 매가 많
이 나며 전국에서 제일이었다. 고려 때에는 응방(鷹坊)을 두어 원나라에세공으로보내기도 했는데 그래서인지중
국은 이 매를 ‘해동청(海東靑)’ 또는보라응(甫羅鷹)이라하였다.
일반적으로 사냥에 많이 쓰이나 때로는 군에서 통신용으로 쓰기도 했다. 다른매들에비하여 그 크기는 작으나
비상력이 강하며, 사냥감을 발견하면 공중에서 날개를접고급강하하여 이를 차서 떨어뜨린 다음 잡는 모습에서
감탄한 사람들이 비록 다른매보다덩치는 작아도 ‘하늘의 제왕’ 이라는 별칭을 지어주기도 했다 소문이 잡아
온(사실은 줏어온) 이 해동청은 일반적인 해동청보다 더욱 작은 것을보니아직 다 자라지 못한 새끼임에 틀림
없었다. 하지만 빛깔은 등면이 청회색이고가슴에 흑색의 굵은 세로무늬가 있으며 뺨에는 흑색의 줄무늬가 있
는 전형적인 해동청의모습을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해동청을 보고 비둘기라 했으니 할아버지가 화낼 법도 했다. 그러나할아버지는 비둘기가 아니라고
했지만 소문에게는 어디까지나 그건 핑계이고 자신은며칠만에먹는 저녁의 맛있는 반찬을 빼앗긴 불쌍한 신세
였다. 또 비둘기면 어떻고해동,,,,거.. 머시기면 어떠랴...
어차피 죽기 일보직전이고 죽으면 밥상에 오르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거늘,,,, 반찬이라니...하늘의 제왕이라는
해동청도 소문에게는 그저 한끼 식사도 안되는비둘기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새는 해동청이라고 하는 매의 일종이다. 네놈이 보기에는 몸집이 다른맹금(猛禽)에 비하여 작아 보일
런지 모르겠으나 용맹으로 치자면 당할 새가 없다. 또한 한번주인을 따르면 죽을때까지 그 주인을 따르는 충
성심이 아주 강한 새이다. 그런데 이런영물을 비둘기라? 아니지 비교하는데 더해 반찬으로 먹을 생각을 해...허
허.,,..하늘도무심하시지...이런 무지한 놈이 내 손자라니...말년이 걱정되는구나....”
소문의 귀에는 할아버지의 호통도 푸념도 들리지 않았다. 이미 비둘기(소문은절대 매라고 인정을 하지 않았
다)기를 수중에 넣기는 요원했다. 소문이 걱정한 것은 그것이아니었다.
‘이걸 핑계로 또 금식을....? 그 동안 전력을 감안할 때 가능성이농후한데....아니지 거의 틀림이 없는데....제
기랄 또 산에서 풀뿌리나 캐먹어야 하나.....’
과거 소문이 할아버지의 금식명령에도 불구하고 산에서 몰래 산짐승을 잡아먹은적이잇었는데 그때마다 어찌
알았는지 할아버지는 소문에게 더욱더 강한 처벌을 내렸다.한번은 비오는 날 자신의 옷에서 먼지가 풀풀 나는
것을 목격하고는 다시는 이같은시도를 하지 않았다. 다만 풀뿌리며 산 과일을 먹는 것은 알고도 모른척 했기
에 금식때만풀로써 연명을 했다.
“두 가지 제안을 하마....굶을래....살릴래?”
“예? 무슨 말씀이신지....
귀까지 쳐먹었느냐? 한...보름정도 굶을래...아님 이 해동청을 살릴래?“
할아버지의 제안에 소문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보름이라....한여름이면 어찌 버티겠으나 지금은 보름은 무리이고,,,,살리자니저눔의비둘기가 죽기 일보직전
이라.....영...’
그래도 당장 굶기는 싫어서인지 비둘기를 살려보려는 마음으로 기울었지만비둘기가혹여 죽기라도 한다면 그
뒤에 따라올 할아버지의 꼬장을 감당할 엄두가 나질않았다.
하지만 질문의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저 잠시 잠깐 생각을 한 것 뿐이었다.
“살리겠습니다”
할아버지는 소문의 말에 이미 죽은 듯이 축 늘어져 있는 해동청을 소문에게 건네주었다.
“잘 살려보거라.....정성을 다하면 살릴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꼭살려야,,,할...것이다....”
저승사자의 말이 이보다 더 소름이 끼칠까....소문은 머리칼이 쭈뼛서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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