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배 Photo & Essay _ 독도의 해돋이
독도의 해돋이
독도에서 해돋이를 본다는 것은 평생을 통해 맞는 장관이 아닐 수 없다. 한반도의 귀중한 혈육인 독도는 동해에 핀 꽃이다. 한국인의 가슴 속에 영원의 꽃으로 피어있는 독도에 와서 해돋이 장면을 촬영하는 일은 가슴이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울릉도 도동항 ‘독도펜션’에서 자정이 다 되어 자리에 누웠다. 독도 해돋이 촬영의 기대에 부풀어 잠이 오지 않았다. 겨우 잠들었는데 한이불 덮고 자던 권○○ 감사가 일어나는 바람에 나도 일어났다. 새벽 1시다. 출발 준비하고 저동항으로 가니, 정원 20명인 어선 지도선이 대기하고 있었다. 모 국회의원 보좌관이 울릉군수의 협조를 얻어 한국사진작가협회 남국교류분과위원회 회원 17명이 독도 촬영에 나서게 되었다.
2009년 5월 8일 새벽 2시, 우리를 태운 배는 깜깜한 저동항을 미끄러지듯 빠져나가 동남쪽으로 씽씽 달렸다. 밤바다의 차가운 바람이 우리를 선실로 밀어 넣었다. 중앙 통로 양쪽에 3층으로 된 침상이 6개뿐이었다. 공기가 탁하다며 여럿이 밖으로 나갔다. 나는 왼쪽 아래 침상에 누웠다. 나중에 침상이 다 차고 통로에도 신골 치듯 누워 발 디딜 틈도 없었다. 김○○ 감사가 “유○○ 사무국장은 옆자리 남자가 세 번이나 바뀌었어야!” 하고 깔깔대며 셔터를 눌렀다.
기관 소리가 통통거리고, 울렁거렸지만 견딜 만했다. 갑자기 사이렌 소리와 함께 회원들이 우당탕 뛰쳐나가는 소리에 나도 반사적으로 일어나 카메라를 메고 갑판으로 올라갔다. 먼동이 트며 멀리 독도가 시야에 들어 왔다. 춤추는 파도 위에 여명의 독도가 우리를 반겼다.
“독도야, 너를 촬영하기 위해 그제 밤부터 서울서 왔단다. 멋진 오메가를 두 섬 사이로 보여 주렴!” 하면서 촬영준비를 했다.
독도 하늘이 벌겋게 물들기 시작했다. 회원들은 좋은 자리에서 촬영하기 위해 야단이다. 섬이 가까워지자 나는 두 대의 카메라로 번갈아가며 셔터를 눌렀다.
누군가 “야! 해가 나온다.” 하는 소리에 셔터 소리가 빨라졌다. 동도 우측 수면에서 초승달 같은 해님이 수줍은 듯 얼굴을 내밀었다. 해가 두 섬 사이로 보이도록 배를 전속력으로 달리게 했다. 두 섬 사이로 막 해가 솟고 있었다. 평생에 한 번 볼 수 있는 장관이었다. 동해를 벌겋게 물들이며 솟아오른 해는 황홀함과 감동, 그 자체였다. 해돋이 순간에 천지는 광명으로 환해지며, 만물에게 빛을 고루 비추는 이 은혜로움이야말로 생명의 근원이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나는 해돋이의 아름다움과 황홀함에 몸이 떨렸다. 이토록 장엄한 자연의 신비에 잠겨본 일은 처음이었다. 잠시 숨을 멈추고 해돋이에 정신이 빠졌다가 깜짝 놀라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독도 해돋이 촬영은 나의 숙원이었다. 천우신조로 오늘 그 소원을 이루었다. 이는 축복이었다. 해가 동도 일출봉에 걸릴 때, 두 섬 주위를 한 바퀴 돌면서 촬영한 뒤, 동도의 선착장에 배를 댔다.
독도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감개무량했다. 뒤에서 “김 회장님!” 하는 소리에 돌아보니, 월간사진 서울클럽에서 함께 활동했던 김○○ 씨였다. 그저께 사진작가 열 명을 인솔했단다.
그는 오래전에 한 달간 독도를 촬영하여 『독도』란 사진집을 내고, 예총 화랑에서 개인전을 한, 독도 사진가다. 어제는 상공에 패러글라이딩을 띄우고 섬 주위엔 모터보트를 달리게 하며 촬영했단다.
선착장에서 독도의 민간인 김○○ 씨가 환하게 웃으며 우릴 반겼다. 그와 태극기 앞에서 기념사진도 찍었다.
준비해온 김밥을 배 위에서 먹었는데, 메스껍던 속이 진정됐다. 오는 도중에 바나나와 빵을 먹은 이들은 뱃멀미로 바다에 반납했단다.
파도가 심하면 배가 접안도 못 하고 그냥 섬 주위를 한 바퀴 돌고 돌아간다는데 오늘은 파도가 없어 찬찬한 호수 같았다.
일출봉으로 올라가는데 갈매기들이 여기저기에 알을 낳아 품고 있다. 알을 품다가 우릴 보고 일어나 눈을 부릅뜨고, 입을 크게 벌려 소리 지른다. “찍을 테면 찍어봐! 하지만 내 알에 손은 대지 마!” 라는 듯 알 옆에 떡 버티고 서 있다. 대부분 알을 지키고 있는데, 알을 놔두고 도망가는 겁쟁이도 있다. 머리 위를 휙휙 날면서 허연 물찌똥을 찍찍 갈기는 녀석도 있었다.
경비경찰이 따라다니며 시설물은 찍지 말라는데, 물색없는 권 감시는 대포 앞의 경찰 옆에서 포즈를 취하며 찍으란다. 갑자기 들이닥친 우리에게 경비경찰이 어디서 왔느냐기에 ‘한국사진작가협회 남북교류분과위원회’라고 했더니, 생소하고 긴 이름에 무전기로 보고할 때, 뒷부분은 얼버무린다. 독도 지킴이 삽살개는 짖지 않고 우리를 반기는 듯 쳐다본다. “韓國領”이라고 크게 새겨진 바위 앞에서 기념촬영도 했다.
11시에 서도로 갔다. 바위에 붙여 지은 3층 건물엔 독도 주민 김○○·김○○ 부부의 문패가 붙어있고, 그 아랜 우편함이 있다. 김○○ 씨는 웃으면서 모델이 돼 주는데, 물가에서 홍합을 까는 부인은 수건을 내려쓰며 찍지 말란다. 육지의 아들딸들이 싫어한다고.
서도 정상을 향해 중간쯤 올라가니 널판으로 된 계단의 양쪽 난간이 부서졌다. 위험하니 내려가자는 이가 있어 중도에서 내려왔다. 김○○ 씨가 대한봉에 올라가 봤느냐고 했다. 올라가다가 부서진 나무계단이 위험해서 내려왔다고 했더니, 여자들도 올라가는데 남자들이 못 오른대서야 말이 되느냐고 했다. 그 말에 몇몇이 다시 올라갔다. 수많은 계단을 끝까지 올라가니, V자형 협곡 사이로 갈매기 떼가 나는 동도의 모습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산 옆으로 돌아갔을 때, 일행은 그만 가자고 했지만, 나는 김○○ 보좌관과 계속 올라갔다.
수많은 갈매기 떼가 비상하고 여기저기 갈매기 둥지 마다 알이 서너 개씩 있었다. 계단에 알을 낳은 녀석도 있었다. 밟으면 어쩌나 하며 조심조심 올라갔다.
또 한참 올라가니 독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가 나를 반겼다. 해발 168.5미터의 대한봉의 위용이 당당했다. 서도의 정상인 대한봉은 대한민국의 영원한 국토요, 우리나라 동쪽 끝 영토의 상징이다. 우뚝 선 대한봉이 “여기는 대한민국 영토다. 그 누구도 함부로 넘보지 마 라!” 하고 호령하는 듯했다. 누가 뭐래도 독도는 대한민국 땅이다. 가수 김장훈 씨는 이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거금을 들여 미국의 주요 일간지에 광고를 냈다. 일본인들이 그토록 탐내는 독도, 그들이 아무리 저희 땅이라고 떼써도 독도는 엄연한 대한민국 영토다.
독도에서 일몰을 촬영하려 했는데 선장이 너무 늦다며 낮에 갔으면 좋겠다고 하여 아쉬웠지만, 독도를 한 바퀴 돌며 촬영하고 울릉도를 향하여 배가 속력을 냈다. 독도를 홀로 두고 떠난다는 마음에 독도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배 뒤에 나부끼는 태극기가 독도를 가리켰다. 셔터를 여러 번 눌렀다.
일행은 바람이 차다며 선실로 들어갔다. 나는 멀리 수평선 너머로 사라져가는 독도를 바라보며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조타실에서 선장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만히 있어도 배가 잘도 간다고 했더니, 목적지만 입력해 놓으면 스스로 알아서 간단다. 오는 배와 충돌하면 어쩌느냐고 했더니 알아서 피해 간단다. 참으로 뛰어난 기술이다.
아! 언제 또 독도에 갈까? 6월 초엔 갈매기 알이 부화하여 새끼들이 볼 만하다는데……. 독도의 해돋이로 보고, 그토록 영상으로 남기고 싶던 일을 해낸 그림이 감격을 영원히 잊을 수 없다. 동해를 환히 밝히는 독도의 해돋이 장면은 나의 가슴속에 감동의 빛으로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