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 임정자
여느 날과 다름없는 아침, 운동복을 입고 전신거울 앞에서 얼굴에 스킨·로션을 바르고 가방을 들고 현관으로 나갔다. 내 모습이 신발장 문에서도 보인다. 외출할 때마다 두어 번씩 옷매무새를 매만졌을 것이다. 그때는 무심하게 지나쳤다. '집에 거울이 많구나.' 혼잣말했다. 관심을 두고 거울을 찾아보니, 화장실, 붙박이장, 책장 옆에도 있었다.
계절은 봄인데 시국은 겨울이다. 벚꽃이 피었지만 바람에 꽃잎이 떨어진다.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았다. 내 얼굴을 비춰보는 거울뿐만 아니라, 배치에 따라 다른 각도의 모습도 볼 수 있는 것들이 보인다. 운전대 위에 룸미러(room mirror), 차량 앞부분 좌우에 하나씩 달린 사이드미러(side mirror ), 시야를 촬영하는 블랙박스(black box), 주차할 때 불편하지 않게 후방카메라까지. 집 안 못지않게 밖에는 나를 너를 지켜보는 거울들이 많다는 걸 새삼 느낀다.
시동을 걸고 안전벨트를 매고 출발하려고 옆을 보았다. 자동차 앞 운전석 쪽 사이드미러 아래 작은 글씨가 보인다. '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이라고 쓰여 있다. 오호,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물체가 멀리 있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가까이 있다는 말일 것이다. 운전하다 보면 다른 차들의 움직임에 신경을 써야 한다. 차선을 바꾸려 할 때 뒤에 차가 얼만큼 떨어져서 달리고 있는지 보고 어느 순간 끼어들어야 할 것인지 판단해야 하므로 주의하라는 말로 받아들였다. 또한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닐 듯하다.
이 문구(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는 자동차 사이드미러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닐성싶다. 안전하게 운행 하려면 거리를 잘 살펴야 하듯이 사람과의 관계도 일정한 간격, 적절하게 속도를 유지하면서 주변 환경이나 세상의 변화 등을 분별하고 판단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보고 만지고 느끼는 것은 전체의 일부분이다. 각자의 관점과 편견으로 해석한다.
내가 살던 고향 마을에 공동 빨래터가 있었다. 우물이 얕은 것처럼 보이지만, 제법 깊은 샘이었다. 마을에서 조금 동떨어져 있었고 농번기 때는 논밭에 물을 대주기도 했다.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농부들이 들에서 일하다 목마르면 샘가로 달려가 물을 떠먹기도 했다. 초등학교 2학년쯤이었다. 해 질 무렵 그곳에서 동네 언니들이 빨래하고 있었다. 나는 옆에서 놀았다. 찰랑거리는 물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어찌나 신기했던지. 바가지로 물을 떠서 머리에 적시기도 하고 무릎 꿇고 손을 내밀어 우물 안으로 어깨를 쭉 뻗어 물을 헤집어보기도 했다. 물을 듬뿍 손으로 퍼 올리기를 여러 번, 손가락 사이로 물이 빠지자, 우물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대로 그만 풍덩 빠지고 말았다. 물이 실제로 더 깊었지만 어렸던 나는 가까이 있을 거로 생각했었던 모양이다.
첫댓글 제목이 똑같아서 깜짝 놀랐어요. 하하. 고민하다 그냥 올렸습니다. 혹시 내용도 비슷할까 봐 조마조마하며 선생님 글 꼼꼼하게 읽었어요. 다행히 다르네요. 하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제가 써 놓고 다시 봐도 산만한 글인데, 꼼꼼하게 읽어주시고 고맙습니다.
글을 읽고 보니 주변에 참 거울이 많네요.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는데도 모르고 살 때가 많습니다.
거울은 곳곳에 있답니다. 핸드폰 카메라, 씨씨티브이에도...
하하. 저도 좀전에 이런 제목의 글을 봤는데, 누구지?
다시 되돌아서 확인했습니다.
이런 긴 제목을 두 분이나 쓰셨다는 게 놀랍습니다.
두 분 자매신가요?
하하하.
하하하. 저는 미옥샘처럼 이쁘고 글 잘 쓴 동생이 있으면 좋습니다만...
'거울'이라는 주제를 보고 인류의 맨 처음 거울은 무엇이었을까을 생각하다가
물이었을 거라고 추측했는데 선생님도 샘에서 얼굴을 보셨네요. 하마트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선생님,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나르키소스,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서 물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 나리시스에 빠진 윤가와 연결하려했는데. 글이 산으로 바다로 가려버렸어요. 글쓰기 참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