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삼 선생님의 「까치바람」, 이번 작품은 상당히 좋습니다.
특히 이전의 까치 작업보다 ‘까치’보다 ‘바람’이 주인공이 되어가는 방향이 보입니다.
제가 가장 좋게 보는 부분
1. 앞의 검은 까치가 작품의 중심을 잡습니다.
한 마리의 진한 까치가 화면 가운데에서 강하게 서 있고, 뒤에는 수많은 연한 까치들이 사라지듯 겹쳐 있습니다.
이 대비가 아주 좋습니다.
→ 현재의 까치 / 기억 속 까치 / 지나가는 까치 / 보이지 않는 까치가 동시에 존재하는 느낌입니다.
2. 연한 청회색 까치들이 ‘바람’처럼 보입니다.
뒤쪽의 까치들은 정확한 형상이 아니라 거의 흔적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을 단순한 까치 군집이라기보다 까치가 지나간 자리의 바람과 기척으로 읽습니다.
이 점은 선생님이 계속 이야기하신 **‘비가시적 바람어(風語)’**와도 아주 잘 연결됩니다.
3. 색이 절제되어 있어서 오히려 깊이가 있습니다.
청회색과 백색 위에 중앙의 짙은 남청색 까치 하나가 놓이면서 화면에 긴장감이 생깁니다.
특히 저는 검정을 완전한 검정으로 하지 않고 남청·먹빛으로 처리한 것이 좋습니다.
자연 속에서 실제로 바라본 까치의 색감에 가깝습니다.
한 가지 중요한 제안
지금 작품은 거의 완성 단계로 보입니다.
저라면 여기서 까치를 더 그리지 않겠습니다.
오히려 마지막에 아주 작은 ‘바람의 흔적’ 한두 군데만 넣겠습니다.
예를 들면,
중앙 까치의 꼬리에서 아주 가늘게 빠져나가는 선
화면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흐르는 짧은 붓질
또는 거의 보이지 않는 골드색 한 점
정도입니다.
특히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자연가치의 금색’**을 이 작품에도 아주 작게 적용한다면, 금색을 장식처럼 쓰기보다 **‘까치바람이 지나간 순간의 자연가치’**를 표시하는 표식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미술사적으로 보면
흥미롭게도 이강소의 작업에서도 오리·사슴 등의 형상이 고정된 대상이라기보다 관람자의 인식 속에서 변화하도록 열어놓는 방식이 중요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도 그의 회화를 보이는 이미지와 보이지 않는 관계, 변화와 인식의 문제로 설명합니다.
mmca.go.kr
+1
그런데 선생님의 이번 「까치바람」은 그와 비슷한 조형적 언어를 참고하면서도 방향이 다릅니다.
이강소가 ‘형상과 인식 사이의 여백’을 만든다면,
박상삼의 「까치바람」은 ‘자연과 작가 사이의 대화’를 기록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작품에서 **‘까치를 그렸다’보다 ‘까치가 불러온 바람을 그렸다’**라는 설명이 훨씬 강하다고 봅니다.
작품 제목
지금 제목 「까치바람」, 그대로 가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조금 더 확장한다면:
자연대화주의 — 까치바람
Ziran Dialogues — Magpie Wind
그리고 작품 옆에 붙일 짧은 문장은:
“까치를 그린 것이 아니라,
까치가 지나간 자리의 바람을 그렸다.”
이 한 문장이 이번 작품의 핵심을 아주 잘 잡아줍니다.
현재 작업 중인 ‘까치바람’ 연작 가운데서도 이번 작품은 상당히 중요한 작품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앞의 한 마리 + 뒤의 수많은 희미한 까치라는 구조를 앞으로 반복·변주해도 좋겠습니다.
You said:
감사드립니다
The assistant said: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박상삼 선생님.
이번 「까치바람」은 정말 선생님만의 ‘자연대화주의’가 한 단계 더 선명해진 작품으로 느껴집니다.
특히 한 마리의 강한 까치와 수많은 희미한 까치의 관계를 앞으로도 계속 발전시켜 보시면 좋겠습니다.
좋은 작업 계속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까치가 아니라, 까치와 함께 온 바람을 그리는 작업.
그 방향이 아주 좋습니다. 🌿
20260921_135154.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