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과 기억 / 이미옥
새벽부터 내린 봄비에 벚꽃이 몸살을 앓는다. 눈에 잔뜩 힘을 주고 가지에 매달린 붉은 눈이 봉오리인지 여린 꽃이 진 자리인지 가늠해 본다. 피자마자 지는 것 같아 아쉽다. 우산에 떨어진 하얀 꽃잎을 털어내고 도서관 문을 밀었다. 다 읽지도 못한 책 두 권을 반납하고 한 권은 손에 쥔 채 자리를 잡았다. 그 책은 반납하면 꼼짝없이 사서에게 갖다줘야 할 거 같았다. 2월에 대기를 걸어서 3월 중순에 받았다. 앞에 읽던 사람의 반납일이 2월 6일이었는데 참으로 천천히 읽고 싶었나 보다. 작가의 바람처럼.
4분의 1쯤 읽은 양귀자의 『모순』을 펼쳤다. 분명 20대 때 읽었는데 주인공 이름 빼고는 기억나는 게 하나도 없다. 다들 다시 읽어도 진짜 재밌다고 했다. 너무 기대했을까? 소설의 시작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90년대의 시대상도 20대 주인공의 고민도 진부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좀체 속도를 내지 못하다 이렇게 도서관 소파 신세까지 졌다. 나만 놓친 게 뭘까?
<작가의 말>까지 읽고 책을 덮었다. 핸드폰 시계가 5시 20분에 멈춰 있다. 이 기분을 먼저 읽은 이들이 있는 단톡방에 올렸다. ‘책 넘 좋았어요. 쌤들 의견에 동의!’ 바로 답이 올라왔다. 늘 내 연애 감성을 걱정하는 황 쌤이 ‘오, 꽃피는 계절이라 감성이 살아났나요?’라고 물어왔다. 그런가? 꽃비가 내리는 날이라서. 곧바로 다음 질문이 날아온다. ‘쌤은 누구예요? 두 남자 중에.’ 소설을 읽는 내내 주인공 못지않게 고민했다. ‘김장우? 나영규랑 살고 있으니까. 흐흐.’ 황 쌤은 ‘나는 김장우랑 사니까. 나영규로 픽.’이라고 답했다. 뒤늦게 합류한 송 쌤은 ‘나도 김장우.’라고 달았다. ‘될대로 되라. 같이 돌아다니던지. 놀던지. 아닌가? 그래도 결혼은 안 되나? 헷갈린다.’라는 말을 바로 덧붙였다.
우리는 이상주의 김장우와 현실주의 나영규를 놓고 고민하다 결론을 내지 못했다. 결론이 나지 않는 모순처럼. 김장우와 나영규뿐만 아니라 주인공 안진진 엄마와 쌍둥이 이모, 그리고 아버지와 이모부. 모두 소설 속에서 창과 방패처럼 대립하고 있다. 소설은 삶에 정답이 있는 것처럼 정확하게 둘로 나누어 보여준다. 그러나 작가는 결국 삶에는 정답이 없다고 말한다.
이모가 죽고도 세월은 흘렀다.
이모를 죽인 겨울이 지나고 봄은 무르익어서 사방에 꽃향기가 난만했다. 겨울이 있어 봄도 있다.
나도 세월을 따라 살아갔다. 살아봐야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아직 나는 그 모순을 이해할 수 없지만 받아들일 수는 있다. 삶과 죽음은 결국 한통속이다. 속지 말아야 한다.
(양귀자, 『모순』, 쓰다, 2013, 291쪽)
‘망각’이란 글감으로 글을 쓰려면 잊어버린 것들을 기억해 내야 한다. 그건 망각한 게 아니지 않나? 망각과 기억은 결국 한통속이군.
첫댓글 삶과 죽음이 한통속이듯 망각과 기억도 한통속이다? 발상이 재미있습니다.
김장우와 나영규, 그냥 두 사람 다 같이 데리고 살면 안 되나요? 하하.
만약 내가 김장우가 되거나, 혹은 나영규가 된다면 우리 삶은 또 어떤 모순을 마주하게 될까요?
정답이 없는 인생, 참 재밌내요.
지금의 내가 딱 그렇습니다. 읽었던 책인데 다시 들여다 보면 새로 마주한 것 처럼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아요. 그래서 요즘은은 다시 읽기를 하고 있답니다.
여전히 두 쌤들과 정다우시네요. 재밌네요. 나도 누구랑 살고 있는지 읽어 봐야겠네요.
저도 그 책이 처음 나왔던 90년대 말에 읽었는데, 이번에 다시 보니 아무런 내용도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왜 요즘 젊은이들이 그 책을 좋아하는지 어렴풋이 알겠더라고요. 인스타에 나올 만한 짧은 명언들이 자주 눈에 띄더라고요. 마지막에 안진진이 그런 식으로 현실과 타협해 버리는 게 안타까우면서도 이해는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