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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강 소정묘의 주살
1. 성인의 의미
이제 우리가 학이편을 끝나고, 위정편으로 들어갔다. 도올 논어 2권이 시중에 나왔다. 사실 책을 한 권 끝내면, 책거리라는 것을 했다. 책례(冊禮), 세책례(洗冊禮)라고 한다. 서당에서 책을 하나 끝내면, 선생님한테 감사하다는 뜻으로 잔치를 벌였다. 부잣집에서 떡 같은 걸 해 가지고 와서, 서로 나눠주면서 즐거운 책거리를 하곤 했다.
오늘은 1권을 끝내기 전에, 1권에서 남겨둔 부분이 하나 있기 때문에 그것에 관해 한 말씀만 드리고 넘어가겠다. 1권에서 제가 터치하지 못하고 넘어간 부분이 기억났다.
성인(聖人)이라는 말이 있다. 성인이라면 어떻게 생각되는가? 아주 성(聖)스러운 사람이 연상된다. 현재의 유교적 의미에서 성인(聖人)이라고 하면, 영어로는 Sage라고 한다. 기독교에서는 성자(聖子), saint로 번역한다.
성인(聖人)이라는 것은 군자(君子)와 마찬가지로 유교사상에 있어서는 완전히 도덕적으로 완성된 사람이다. 일반적으론 그렇게 쓴다.
성인(聖人, Sage) : 도덕적 인격의 완성자, 사회제도문물의 제작자 등의 의미로 쓰인다.
그런데 이 성인이라는 말은 의미가 상당히 복잡하다. 도올 논어 1권에서 사마천의 사기를 인용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성(聖)이라는 글자를 뜯어보면, 귀이(耳)변이다. 그리고 이(耳)자와 들어날 정(呈)자가 결합한 모양이다.
성(聖) = 이(耳) + 정(呈)
재미난 건, 노자에도 성인(聖人)이라는 말이 나온다. 성인지치(聖人之治) 즉 성인의 다스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마왕퇴의 노자본으로 BC 2세기 경의 노자 사본을 직접 볼 수 있다. 거기에 보면, 성인이라는 말이, 똑같은 텍스트인데 성인(聲人)으로 되어 있다. 소리 성(聲)자로 되어 있다.
마왕퇴(馬王堆)문헌 : BC 168년에 장례를 치룬 대후의 아들의 무덤에서 나온 문서. 이 중 『노자』가 들어있다. 비단에 쓰인 고본이다.
마왕퇴에서 2권이 나왔는데, 갑본에는 성인(聲人)으로 되어 있고, 을본에는 耳口가 합친 문자로 되어 있다. 임금 왕(王)이 없다.
聖人 = 聲人(마왕퇴 갑본) = 耳口人(마왕퇴 을본)
이렇게 성인이라는 말은 간단하지 않다.
사마천이 인용하길, 맹희자라고 하는 사람이 자신의 어린 아들을 불러서 공자를 놓고 하는 말이 있다. 그때 공자는 17살로 아직 미숙한 상태로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17살 먹은 공자를 놓고, 공자의 7대조 할아버지를 들먹이면서 이야기를 하길, ‘공구(孔丘)라는 이 아이는 성인의 후예로 뭔가 이 아이한테 배울 게 있을 것이다.’고 한다.
孔丘聖人之後, 滅於宋-세가-
맹희자라는 사람은 자기 아들인 맹의자에게, 이 아이는 성인의 후예니깐, 내가 죽고 나서 이 아이한테 배우라고 한다.
맹희자(孟僖子) : 공자가 젊었을 때의 맹손씨 가문의 수장. 그 아들이 맹의자(孟懿子)이며 차세대 수장.
성인의 후예라는 말이 좀 이상하지 않은가? 공자의 7대조 할아버지가 아주 훌륭한 사람이어서 성인의 후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최초의 성인은 공자다. 공자 이외에 도덕적으로 완성된 성인은 생각할 수가 없다. 그래서 성인의 후예라는 말을 영 해석하기 어렵다. 해석이 잘 안 된다.
이 때 성인(聖人)이라는 것은 공자 가계(家系)의 직업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럼 이해가 된다. 공자는 성인(聖人) 집안 사람이었다. 사마천이 분명히 성인의 후예라고 쓰고 있다.
여기서 성인이라는 말은, 요새 우리가 쓰는 성인(聖人)이라는 말로 해석하면 안 된다. 여기서 성인은 우리가 생각하는 성인이 아니다.
여기에 대해 분석을 해보면, 마왕퇴 본에서 왜 성인(聲人)이라는 표현을 썼는지도 알 수 있다.
우선 성인이라는 말은, 공자 이전의 춘추 문헌에서는 성(聖)스러운 사람을 뜻라는 게 아니었다. 영어의 holy나 독일어의 der Heilige의 뜻이 아니다.
성인은 단지 귀가 밝은 사람이다. ‘귀가 밝은 사람’은 보통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는 것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성인(聖人)의 원래적 의미는 단순하게 "귀가 밝은 사람" 이라는 뜻이다.
이것을 과거에는 신탁의 소리를 듣는다고 했다. 소크라테스도 델피의 신전에 가서 신탁을 들었다.
사마천의 사기에서 공자 집안을 가리켜서 성인의 후예라고 이야기했을 적에, 이 성인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신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사람들의 집안이라는 이야기다. 이걸 요새로 말하면, 일종의 무당 집안이라는 의미가 된다.
사기의 뒤쪽을 더 읽어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내가 듣기로 성인 집안 자식들은 비록 세상에서 대접은 못 받는다 할지라도 반드시 사리에 통달한 자들이 있다고 한다.’
여기도 기존 개념으론 이해가 안 된다. 만약 훌륭한 성인 집안이라면, 왜 세상에서 대접을 못 받겠나?
吾聞聖人之後, 雖不當世, 必有達者.
그 다음에 ‘지금 공구라는 아이는 아직 나이가 어리지만, 예를 좋아한다. 예를 좋아한다는 것은 곧 통달한 자의 증표가 아니겠느냐? 내가 죽으면, 곧 너는 반드시 그를 스승으로 모시거라.’라는 훈계가 나온다.
今孔丘年少好禮, 其達者歟? 吾卽沒 若必師之.
그러면 이때에 중요한 사실은, 성인의 자식들은 세상에서 대접받지 못한다. 부당세(不當世)라는 말이 들어가 있다. 그 다음에 성인의 자식들 중에서는 통달한 자들이 많다. 그리고 호례(好禮), 예(禮)를 좋아하는 것이 통달함의 증표이다. 이런 메시지를 여기서 뽑아낼 수 있다.
그러니깐 무당이라는 사람들은 귀가 밝은 사람들이고, 그래서 신의 소리를 들을 줄 안다.
귀가 밝다고 하는 것은 보통 사람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는다는 의미이다.
사실 평상적인 여러분들도 남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을 줄 알면, 그게 다 성인이다. 우리나라 정치가 안 되는 것도 국민의 소리를 안 듣기 때문이다. 국민의 소리를 들을 줄 알면, 그게 성인이다.
옛날부터 성인이라는 것은 그런 무당과 비슷한 의미로 내려왔다. 결국 공자의 일생이라는 것은 이렇게 성인의 후예로 태어나서, 성인으로서 만족하지 않고, 이 성인의 의미를 도덕적으로 완성된 인간이라는 의미로 바꾸는 과정이었다.
이전의 성인이 가지고 있던 토속적이며 종교적 뉘앙스를 도덕적인 뉘앙스로 바꾸어 간 것이 공자의 일생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공자의 삶은 성인의 종교적인 맥락을 일상적이고 도덕적인 맥락으로 혁명시킨 위대한 과정이었다.
그래서 이 성인이라는 개념은 상당히 중요한 개념이다. 고대에 나오는 성인이라는 개념을 후대의 개념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2. 기복의 극복
예수가 되었든, 공자가 되었든, 아무리 위대한 사람도 고대(古代)로 가면, 종교라고 하는 것과 무속이라는 것의 관련은 벗어나기 어렵다.
이 무(巫)라고 하는 것의 의미는 뭐냐? 이건 기본적으로 좁은 의미에선 기복사상이다. 자기 개인만을 위해서 복을 빈다고 하는 것이 바로 무당의 문제이다. 이러한 기복 신앙을 벗어나서, 어떻게 인간의 보편주의를 획득하느냐? 이것이 소위 말해서, 모든 위대한 고등 종교의 관건이었다.
인류의 모든 종교는 샤마니즘(shamanism)과의 관련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고등종교의 탄생은 무속의 기복신앙적 성격을 보편주의로 전환시키는 데서 출발한다.
갈릴리 지방의 예수도 하씨드 전통을 이어간 것이다. 무당이라는 말이 싫으면 하씨드라고 해도 되고, 성인이라고 해도 좋다.
하씨드(hasid) : 유대교의 무속전통의 사람. 병든 자를 고치고, 마귀를 쫓아내고, 기후를 변화시키는 성스러운 사람. 역사적 예수는 갈릴리 지방의 하씨드였다는 것이 오늘날 비평신학의 일치된 견해이다.
그런데 이러한 표현은 문제가 아니다. 결국은 기복적인 요소가 문제인 것이다. 예수가 장님을 보고, 침과 진흙을 이겨서 장님의 눈에 발라준다. 그렇게 해서 눈을 뜨게 해준다.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요한 9:1~7
사실 지금 보면, 이게 대단한 건 아니다. 지금은 백내장 수술을 해서 고친다. 눈을 고친 것은 똑같다. 예수의 기적이라고 하지만, 그 행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늘날은 그 이상의 기적이 다 일어나고 있다. 지금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런 기복 행위에 머무르지 않고, 인류의 죄를 걸머지고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서 인류를 구원하는 보편주의의 성취가 문제이다. 그러한 것은 공자에 있어서나, 예수에 있어서나, 위대한 사람들의 동일한 문제의식이다. 그러기 때문에 고대의 모든 위대한 종교는 그러한 기복적인 성인의 개념에서 탈출해야만 했다.
그럼, 탈출하는 방법은 어떻게 이루어졌냐? 공자는 철저하게 도덕적인 세속성을 가지고 이루어졌다. 예수는 보편주의적인 박애, 아가페적인 사랑처럼 율법을 초월하는 사랑의 정신으로 그걸 이룩했다.
기복신앙의 극복 :
1. 공자 - 도덕주의적 인의 사상
2. 예수 : 아가페적 사랑의 사상
논어를 진행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다시 한 번 이 자리에서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 사회가 이기적이고 기복적인 그러한 신앙의 형태를 어떻게 극복하느냐?’ ‘어떻게 우리 사회의 보편주의와 상식을 회복하느냐?’하는 것이다. 이것이 제가 논어를 강의하고 있는 본론이 되겠다.
3. 장사익
이런 이야기가 미진했기 때문에 강의를 첨가했다. 도올 논어 1권은 이것으로 마치겠다. 너무 섭섭하다. 그래서 제가 책거리 같은 것을 마련했다.
제가 연초에 향기로운 편지를 하나 받았다. 아주 정성스럽게 쓴 편지인데, 이 편지의 주인공을 모셔볼까 한다. 편지를 잠깐 읽어보겠다.
“흰눈내려 꽃피니 겨울 내음 향기로워 어둔 세상 여명이네~ 매주 선생님 강의 시간은 희열입니다. 꽉 차신 열강에 늘 감동입니다. 어느덧 노자를 다 읽고, 공자를 읽으니, 저 또한 유식인입니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늘 건승하세요.”
이 편지의 주인공을 잠깐 모시겠다.
장사익(張思翼) : 충남 광천 출신. 태평소의 명인.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우리시대의 가인.
여러분 다 아시죠? 장사익 선생님이다. 사실 장 선생님이나 나는 이런데서 만나면 항상 즐겁다. 우리는 소위 말해서, 뜨기 전에 서로 알던 사람들이다. 여러분들에게 유명해지기 전인 옛날에 소박하게 사귄 친구들이라서 그렇다.
그런데 장 선생님도 너무 많이 떴다. 아주 순수한 한국인의 모습과 한국인의 목소리를 가지신 분이다. 나는 이런 분들을 항상 사랑하고, 맘에서 동경한다.
책거리를 하려고 한다. 이 책을 통해 많이 배우셨으니깐, 술 한 잔 올리기 바란다.
장사익 : 원래 배우신 분들이 떡을 한 시루 해서 선생님한테 바쳤다. 어려서 서당에 다닐 때 그랬다.
도올 : 서당을 다니셨군요. 그래서 글씨도 예쁘게 쓰신 거군요.
장사익 : 공부한 입장에서, 대표로 제가 한 잔 올리겠습니다.
(책을 칠판 위에 놓고, 절을 한 후, 술을 한 모금씩 나누어 마신다.)
도올 : 이 칠판 이상의 제단이 없다. 그리고 제가 제문을 하나 잠깐 읽겠다.
우리 사회의 천재적인 음악가시다. 재즈 기타리스트로는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인데, 이 자리에 같이 나오셨다. 김광석 선생님이시다.
김광석(金光錫) : 강원도 원주 출신. 기타의 명인. 자유로운 연주기법으로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아름다운 소리를 많은 이들의 심금에 선사하고 있다.
세책례제문(洗冊禮祭文)
배워 때에 맞추어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뜻을 같이 하는 자 먼곳으로부터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부끄럽지 않으니 또한 군자(君子)가 아니겠는가? 이제 ‘학이’편 한 권이 우리 삶의 양식의 밑거름이 되어 시간의 토양 속으로 스며듭니다. 우리 민족이 인간다움의 도덕성을 다시 일깨울 수 있도록 하늘이시여, 도우소서. 사문(斯文)의 위대함이여, 우리 삶의 상식을 회복케 하옵소서. 우리 모두가 가식을 버리고, 서로가 서로를 믿고 살 수 있는 인의(仁義)의 세상을 만들어 가도록 우리를 도우소서. 이러한 바램이 우리 마음을 항상 새롭고 또 새롭게 만들도록 도우소서.
상향(尙饗)
(상향문을 태움)
도올 : 장 선생님의 노랫소리는 그야말로 있는 그대로 꾸밈없고 가식 없는 소리다. 강의 재미있게 들으셨죠?
장사익 : 늘 저는 밤눈이 어두워서, 녹화를 해 놓고 꼭 한 번 듣는다. 거르지 않고 듣는다.
도올 : 시청자들도 한 마음일 테니깐, 노래 하나 선사하시죠. 책거리를 대신해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대신해서, 그 동안 배운 것이 아까 태운 재와 더불어 전파를 타고,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향기롭게 스밀 수 있도록 노래 한 번 불러주시면 감사하겠다.
찔레꽃, 장사익 작사, 작곡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 놓아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 놓아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찔레꽃 아-
찔레꽃처럼 울었지
찔레꽃처럼 노래 불렀지
찔레꽃처럼 춤을 췄지
찔레꽃처럼 울었지
당신의 넋 찔레꽃
찔레꽃처럼 울었지
저는 장 선생님하고 옛날부터 아는 사이다. 도올서원에 와서 학생들하고 자유롭게 교감을 잘 하시고, 우리 서원에 와서 학생들을 많이 격려도 해주는 훌륭한 분이시다. 오늘 긴장을 하신 거 같다. 보통 때는 아주 자유분방한 분인데, 오늘은 제식적인 분위기에 맞추셔서 너무 진지하게 풀어 가신 거 같다. 아주 재미있는 분이다. 순진한 어린애같이, 자유롭다. 제가 평소 좋아하는 분이다.
그리고 이 술이 아까우니깐, 자네가 마시게. 그 술은 굉장한 술이다. 술을 여기 따라놓는다는 것은, 나중에 논어에서 이야기하겠지만, 이런 제식에 쓰는 술은 아주 향기가 좋아야 한다. 그래서 옛날에 울창주 같은 특수한 향기가 나는 것을 제주(祭酒)로 쓴다. 그럼 그 향기를 맡고 모든 신들이 모여든다고 한다. 향기를 맡고 그 자리가 제사지내는 자리인줄 아는 것이다. 원래 술의 의미가 그런 것이다.
신이 다 모여든 술을 자네가 다 마셨다. 대단히 좋은 술을 마신 거다. 나중에 결혼하면, 훌륭한 아이를 낳을 거다.
4. 법치의 의미
분위기가 갑자기 바뀌어서, 바로 강의에 들어가기가 뭐하다. 아무튼 지난번에 이야기가 불충분했으므로 간단히 말씀 드리겠다.
爲政 第3장
子曰 :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자동차를 몰고 가다가 경찰들과 실강이를 하는 한국사람들의 행동방식은 단순히 준법정신을 모르는 전근대적인 행동으로만 볼 것이 아니다. 그러한 행동도 분석을 해보면, 거기에는 법치와 덕치라고 하는 이론적 틀에 들어가 있는 가치관에서 나온 행동방식이다. 이런 이야기를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다.
그런데 법치와 덕치의 문제에 있어서, 유교 입장은 법으로 인간세상은 다스려지기가 어렵다고 본다. 결국은 법 이전에 인간의 자발적 선의지를 따르는 도덕에 의해, 사회 질서를 유지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러나 법가의 입장은 그러한 유교적 입장에 반대한다. 한 동네에서 서로 빤히 아는 인간 관계라면 덕을 중심에 두어도 된다.
우리 어려서는 항상 꼰대가 무서웠다. 동네에선 촌장이 제일 무섭고, 집안에서는 꼰대가 무서웠다. 그러니깐 꼰대 말씀이면 다 통하던 사회다. 그런 구조 속이라면 예(禮)가 먹혀들어간다.
하지만 당시는 춘추시대에서 전국시대로, 그리고 전국7웅의 시대에서 진시황이 통일을 해나가는 시대였다. 그러한 통일의 시대로 가면, 그만큼 사회가 복잡해지고 거창해진다. 그렇게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복잡해지고 커지면 예(禮)만으로는 사회질서를 잡기 어렵다. 따라서 새로운 사회 지배의 원리가 필요하다. 그것이 뭐냐? 그것이 바로 법이라는 것이다.
좁은 공동체 의식을 벗어나는 복잡한 사회에는 새로운 객관적 통치의 원리(objective governing principle)가 필요하다. 그것이 법(法)이라고 한비자(韓非子)는 주장했다.
그러니깐 예라고 하는 것은 과거처럼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 때라면, 먹혔지만, 이제는 그런 거 가지고 안 된다고 하면서 나온 게 한비자 사상이다.
그렇게 한비자 사상은 진시황의 통일 이데올로기를 제시하였다. 그래서 사실 중국은 법가에 의해서 통일이 되었다.
한비자는 역사의 진보를 인정하고, 법을 새로운 제국의 통일이념으로 제시했다. 그의 사상은 세(勢)와 술(術)과 법(法)의 통일이다.
여기서 이야기를 좀 더 풀어보면, 우리나라에도 법이 있었다. 조선조에도 경국대전이라는 게 있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 : 세조때 편찬작업이 시작되어 성종 때 완성. 1485년 원단부터 시행. 「이전」·「호전」·「예전」·「병전」·「형전」·「공전」으로 되어 있다.
경국대전은 세조 때부터 시작해서 성종 때 완성되었다. 거기 보면, 이호예병형공의 6전이 있다. 이전, 호전 등 전(典)이 따로 따로 되어 있었다.
과거 조선조가 유교사회라고는 하지만 법치가 있었다. 그런데 여기 중요한 개념이 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의 법의식에서..여기서 우리가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옛날의 한비자, 이사, 진시황에게 법이라는 개념은 요새말로 하면, 이건 기본적으로 형법이다. 영어로 하면, punitive하다. 처벌적이다.
형법(criminal law) : 범죄와 형벌에 관한 법체계
여러분들 ‘법!’이라고 하면 당장 포도청이 생각난다. 나졸이 생각 난다. 그러니깐 법이란 것은 무조건 피하면 피할수록 좋은 게 된다. 왜냐? 그건 형벌이기 때문이다. 모든 죄를 처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미법이라고 하는 것은, 근세 사상으로 영국에서 나오는 법의 개념은 기본적으로 처벌적인 개념이 아니다. 왕권을 제약하기 위해서 귀족들에 의해 마그나카르타 같은 것이 나오고, 평민들은 귀족의 권리까지 제약하기 위해 법을 구성한다. 이렇게 근대의 서양법이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형법보다는 민법이 중요하다.
민법(civil law) : 실질적인 의미에서는 사법의 일반법. 서양에서는 18세기 말·19세기 초에 국가의 중앙권력이 강대해지고 자연법론이 융성하게 일어나면서 민법전이 편찬되었다.
그러니깐 현대의 법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을 처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피해야할 대상이 아니다. 근대의 법 사상은 법을 통해서 나의 권리를 획득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깐 유교에서 말하는 법치의 개념 속에는 민법 사상이라는 것은 없다. 법을 통해서 나의 인간다움을 쟁취해야겠다는 생각이 없다. 과거 우리 사회에는 그런 민법이 보장되지 않았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한국 사람의 의식 속에서 법은 피할수록 좋은 것이다. 법이라는 것은 피하고, 덕으로서 모든 것을 다스려야 된다고 생각했다.
유가의 법에 대한 비판적 의식의 전제 속에는 민법사상이 결여되어 있다. 그러나 제아무리 민법이라 할지라도 인간세의 질서를 보장하는 것은 법이 될 수 없다. 법은 인간에게 진정한 도덕성을 깨우칠 수 없다고 믿는 유가의 정신은 현대사회에도 타당하다.
결국 논어 구절을 읽을 적에도, 현대의 법사상과 관련지어서 생각할 게 있다는 이야기다. 맥락이 좀 다르다는 것이다.
근대법 사상은 법을 통해서 인간다움의 권리를 획득한다고 하는 중요한 측면이 있다.
5. 소정묘 주살 사건
여기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다. 공자가 대사구(大司寇)가 되었다고 했다. 그야말로 수상이나 마찬가지의 위치에 올라 간 것이다. 요새 로 말하면, 법무장관과 비슷한 자리에 올랐다. 실제적으론 수상 위치까지 간 거 같다.
대사구(大司寇) : 정확하게는 법무장관에 해당. 그러나 공자의 실제역할은 수상격이었다. 공자의 나이 56세로 사마천의『세가』는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공자가 수상직에 오르자마자 7일 만에 노나라의 대부인 소정묘라는 사람을 죽여버렸다.
於是誅魯大夫亂政者少正卯. [세가]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사건이다. 수상이 되자마자, 공자는 7일만에 노나라에서 아주 존경을 받던 대부를 주살시켰다. 사형을 시켰다. 순식간에 죽여 버렸다. 그러면 이게 덕치인가? 법치인가?
법치다. 법치도 아주 엄형주의다. 이것이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공자의 일생 중에 아주 중요한 사건이다. 그래서 이렇게 되면, 공자가 말하는 덕치주의에 어긋나는 행동이 아니냐고 하면서 논란이 아주 심하다.
6. 사기의 기록
사기의 기록을 보면, 그가 소정묘를 주살하였다. 이렇게 ‘국정을 다스리기 시작한 후 3개월이 지나자,’
與聞國政三月,
‘양과 돼지를 파는 사람들이 가격을 속이지 않았고, 남녀가 길을 갈 때에도 따로따로 질서 있게 걸었으며, 길거리에 재물이 떨어져 있어도 주어가는 사람이 없어졌다.’
粥羔豚者弗飾賈;男女行者別於塗;塗不拾遺;
‘그리고 사방에서 성읍 내로 몰려드는 백성들이 성읍의 관리들에게 뇌물을 쓰는 일이 없이 모두 충분한 대접을 받고 다시 제 갈 길로 돌아갔다.’
四方之客至乎邑者不求有司,皆予之以歸。
‘제나라 관리들이 소문을 듣고 두려워하여 말하기를, 공자가 정치를 계속하게 되면 노나라는 반드시 패자가 될 것이다.’
齊人聞而懼,曰:孔子為政, 必霸...
길거리 갈 때 물건도 줍지 않고, 여자 남자가 따로 걸어간다고 했다. 그런데 이렇다는 게 굉장히 좋은 것 같지만 스산하다. 어명에 의해서 질서가 억지로 착착 일사분란하게 이루어진다. 그러니깐 제나라가 위에서 볼 적에, 공자가 수상이 되더니, 저렇게 엄벌주의를 채택해서 질서가 있게 되면 결국 이것이 패자의 길로 가겠다고 생각했다. 필패(必霸)라고 했다.
사마천의 사기에서 공자라는 사람의 인간상을 주살 사건으로 그려놓고 있다면, 이건 문제가 크다. 그래서 여기에 대한 논란이 아주 심하다.
7. 순자의 기록
그래서 문헌을 다 조사해 보았다. 그럼 소정묘 주살사건이 논어에 나오느냐? 조사해보니 논어에는 안 나왔다. 그래서 선진문헌을 다 조사해 봤다. 그랬더니 현존하고 있는 ‘순자’라고 하는 책 속에 최초로 나왔다.
『순자』(筍子) : 순황(筍況)의 사상을 기록한 책. 성악설과 법가의 기초가 되는 명실(名實)론을 제창. 소정묘 설화는 「유좌」편에 나온다.
순자는 맹자와 거의 동시대지만 조금 아래다. 순자의 제자가 한비자, 이사인데, 그 둘은 전부 진시황을 도와서, 전국을 통일해서 진나라 제국을 세웠다.
순자라고 하는 사람은 직하학파의 마지막 총장이라는 사람인데, 순자라고 하는 사람의 책 속에 이 사건이 최초로 나온다.
그러면 거기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냐?
‘공자가 노나라의 재상직책을 섭정하는 사람이 되어, 조정에 나간 지 겨우 7일 만에 소정묘를 주살하였다.’
孔子爲魯攝相, 朝七日而誅少正卯.
‘공자의 제자가 나아서 여쭈었다. 소정묘라는 사람은 그래도 노나라 대부로서 명망이 높은 사람이었는데, 선생님께서 정치를 하시자마자 다짜고짜 그를 주살하심은 아무래도 좀 실수가 아닐까요?’
門人進問曰:「夫少正卯, 魯之聞人也,夫子為政而始誅之,得無失乎?」
‘그러니깐 공자가 말하기를, 그래, 게 좀 앉거라. 내가 그 자초지종 연고를 너에게 말해주마.’
孔子曰:居,吾語女其故。
‘사람에게 증오스러운 것이 다섯 가지가 있는데, 우선 도둑질은 그 속에 들지 않는다.’
人有惡者五,而盜竊不與焉
이 말도 상당히 이상하다. 우선 소정묘의 죄목을 다섯 가지 드는데, 우선 도적질은 넣지 않는다. 도적질보다 더 지독한 것이라고 말하는것이다.
‘그 첫째가 마음이 사물에 통달하여 있으면서도 음험한 것이요, 둘째는 행실이 한곳으로 치우쳐 있으면서도 완고한 것이요,’
一曰:心達而險;二曰:行辟而堅
‘셋째는 말하는 것이 모두 거짓인데도 구변이 썩 좋은 것이요, 넷째는 추악한 것들만 기억하면서도 박식하게 보이는 것이요. 다섯 번째는 비리만을 따라가면서도 겉으로 윤기가 자르르 도는 것이다.’
三曰:言偽而辯;四曰:記醜而博;五曰:順非而澤
‘사람에게 이 다섯 가지 중 한 가지만 가지고 있어도 그놈은 군자의 주살을 모면키 어려운 것이거늘, 소정묘는 이 다섯 가지를 모두 겸해서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此五者有一於人,則不得免於君子之誅,而少正卯兼有之。
‘그러므로 그는 텃세를 부리면서 불량배를 모아 반역의 무리를 짓기에 충분하고, 교활한 언변으로서 사악함을 수식하여 대중을 현혹시키기에 충분하고, 억센 배짱으로 틀린 것을 오히려 바르다고 강변하고 홀로서기에 충분하다.’
故居處足以聚徒成群,言談足飾邪營眾,強足以反是獨立,
‘이런 놈들이야말로 소인들의 걸출한 영웅이다. 이런 놈은 죽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此小人之桀雄也,不可不誅也。
뭔가 이 논리가 좀 이상하지 않은가? 여기 죄목으로 든 다섯 가지를 보면, 겉이 번드르 하다던가, 박식하다던가, 구변이 좋다든가, 음험하다든가, 뭐 이런 이야기들밖에는 없다. 그러면서 도둑질은 빼고 있다. 이런 것 중에 한 가지만 있어도 죽여야 한다고 한다. 이놈은 그렇게 나쁜 놈이라고 한다. 하지만 여기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본다면, 소정묘 사건은 내가 보기에 구체적인 사건이 없다. 여기 논의된 것을 보면, 구체적인 사건이 하나도 없다.
그놈이 나쁜 놈이어서 좌우지간 죽였다는 이야기다. 나쁜 놈을 형용하는 말을 다섯 가지 늘어놓았으나, 그걸로 볼 적엔, 소정묘를 죽여야 할 결정적인 요소가 없다. 요새로 말하면, 소정묘가 오히려 명예훼손죄로 걸 수도 있는 말밖에는 없다.
다섯 가지 죄목
1) 險 음험하다 2) 堅 완고하다 3) 辯 달변이다 4) 博 박식하다 5) 澤 번지르르하다.
이 말이 뭐냐 하면, 공자 밑의 순자학파 사람들은 공자라는 캐릭터를 빌려서 자기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깐 순자학파 계열에서 이런 설화를 만든 것이다.
순자는 유가임에도 불구하고 법가적 사상가이다. 이들이 쭉 늘어놓은 이야기를 보면, 법가적 사상가의 관심을 알 수 있다. 그 사회에서 구변이 좋고, 거짓말을 잘하고, 완고하고, 박식한 채 하고, .나쁜 짓을 하면서 겉으로 윤기 좋게 번지르하게 잘 사는 놈들은 대개 그 사회의 가장 악랄한 보수 세력이다.
이런 보수 세력을 척결하지 않으면, 진시황이 통일을 향해서 가는데 필요한 법가적 사회의 기반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순자는 그 보수 세력을 척결하기 위하여 소정묘 주살 설화를 꾸며낸 것이다. 공자 이상의 도덕적인 인물이 없었기 때문에 공자라는 캐릭터를 빌려서 순자는 공자를 법가적인 사람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순자의 문제의식은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보수세력의 척결이다. 이 목적을 위해 공자와 같은 도덕적 캐릭터를 빌어 소정묘를 죽이게 하는 설화를 지어낸 것이다. 통일제국의 탄생을 지향하는 이데올로기가 반영되어 있다.
공자 사상은 후대로 가면서 변질되어 여러 갈래로 해석되어 간다. 그래서 텍스트를 그냥 단순히 텍스트로서 읽는 것이 아니라,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봐야 한다.
순자가 소정묘 주살 사건이라는 것을 꾸며낸 것이 분명하다. 소정묘라는 것 자체가 소정(少正)은 바른 게 없다는 이야기다. 묘라는 것은 ‘덮어씌웠다. 음험하다.’는 의미가 된다.
소정묘(少正卯) : 소정(정의가 없다) + 묘(사악함에 덮혔다)
소정묘라는 말 자체도 아주 나쁜 놈이라는 뜻으로 만들어낸 말이다. 순수한 픽션이다. 순자가 공자의 주살 사건이라는 픽션을 만든 이유는 자기의 법가사상을 펴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이런 설화를 만들었다.
그럼 왜 사마천은 정전(正傳)인 공자세가에 이런 순자가 만든 설화를 집어넣었을까?
사마천은 한(漢) 무제 때 사람이다. 그리고 한 무제 때 중국은 다시 통일제국을 향해서 가장 활발하게 법제질서를 만들어 가려던 시대였다. 그러한 한(漢) 무제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또 다시 사마천은 순자의 그러한 날조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래서 공자 세가에 소정묘 주살 사건을 집어넣은 것이다.
사마천은 한제국의 전성시기인 무제(武帝)때 사람이다. 강력한 중앙집권의 법제질서가 필요한 시기였다. 그래서 사마천은 순자의 소정묘 설화를 『공자세가』에 편입시킨 것이다.
8. 순자의 사상
순자의 사상을 보면 재미난 게 나온다.
‘어떤 이가 정치를 행하는 방법을 물었다.’
請問爲政. 曰. 賢能
‘순자는 이에 대해서 대답하였다. 현인이나 능력 있는 자가 있으면 신분이나 지위를 불문하고 바로 기용하며, 어리석은 자나 무능한 자는 지체할 것 없이 그 자리에서 파면시키며’
賢能不待次而擧, 罷不能不待須而廢,
‘극악한 원흉은 가르치려 하지 말고 즉시 죽여 버리며, 평범한 일반 민중들은 정령이나 형벌로 다스리지 말고 감화가 되도록 이끌어 나간다.’
元惡不待敎而誅, 中庸雜民不待政而化。
‘이것이 곧 왕자의 정치다.’
是王者之政也. -순자 [왕제]-
이렇게 나온다. 이게 무슨 이야기냐 하면, 순자의 사상은 예형병용(禮刑倂用)이라는 이야기다. 유가적인 의미에서의 덕치사상이라고 하는 것은 일반 백성들에게 적용하라고 한다. 일반 백성은 덕의 감화로서 이끌라고 한다. 그리고 원악(元惡)이라는 말을 쓴다. 그 사회를 담당하고, 그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고급관리들, 그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배계급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엄형을 적용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왕도의 정치라고 한다.
원악(元惡: 부패한 고급관리, 지배계급사람) : 엄형주의를 적용
중용(中庸: 평범한 일반백성을 감화하는데) : 관용주의를 적용
순자는 그러한 예형병용의 사상을 공자가 실천하게끔 설화를 만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전국시대부터 한(漢) 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기본적으로 유교가 되었든, 법가가 되었든, 이러한 예치와 법치의 사상이 같이 쓰였다.
그런데 예치는 일반 백성들을 감화하는 데 쓴다. 형법의 이론은 그 사회를 리드하고 있는 리더들, 고급관리들, 옛날에는 사(士)의 계급들, 대부들,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엄형주의를 채택해야 한다. 왜냐? 그 사람들은 그 만큼 행동에 책임이 있고, 그 만큼 더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행위는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 만큼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방향으로 나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여기서 우리는 전국시대로부터 한초에 이르는 시대의 일반적인 사상적 흐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소정묘 주살사건이라는 것은 공자의 예치주의, 덕치주의에 대한 하나의 반론으로서 성립한 것이 아니다.
소정묘 주살은 공자의 덕치주의의 반론으로서가 아니라, 공자의 이미지가 역사적으로 해석되어간 설화의 구조를 반영한다. 한 사회의 리더들에게는 엄형이 적용되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이렇게 공자라는 하나의 인간을 둘러싸고 많은 설화들이 만들어 지면서, 시대의식을 반영하고 조작해가는 과정을 우리는 읽을 수 있다. 처음에 이야기했지만, 그것이 제가 기본적으로 논어를 읽어가는 방식이다. 논어뿐만 아니라 일반 성서까지도 그러한 시대적 의식 속에서 읽어야 한다. 그것이 어떻게 해석되어 가고, 어떻게 변질되어 갔는지 우리는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말씀을 드리고, 오늘 강의를 끝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