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렇게 오래된 이야기는 아닌 걸로 안다.
몇 해 전부터 젊은층에게 질문을 했다.
“부모 부양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계십니까?”
놀랍게도,
점점 좁혀지던 간격이 지금은 과반을 넘어서버렸다.
“부모 부양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친구들과 모임을 하면 수많은 수다 주제가 가족에 관련한다.
“우리가 부모를 부양하고, 자식에게는 부양을 못 받는 마지막 세대일 거야. 미리 양로원 알아보자. 아니, 친구들끼리 모여 사는 건 어때?”
다른 친구는 이런 말도 한다.
“얘기했어. 엄마가 치매 때문에 안 간다고, 안 간다고 해도 꼭 요양원에 보내라.”
친구 말에 나는 이렇게 대꾸했다.
“얘, 하라고 안 해도 지들이 다 알아서 보낸다. 뭘 거기까지 너가 신경쓰니?”
“하하하”
깔깔대며 나누던 얘기다.
과연 나중에도 우리는 웃을 수 있을까?
나는, 자신 없다.
아버지는 몇 주 요양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 갑자기 결정된 일이라 우왕좌왕 뭘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하얀 벽지를 보듯, 영화 관람을 하듯 우선 진행되는 순서에 따라
그렇게 따라갔다.
우리 모두 그랬다.
혼미한 우리의 정신을 깨운 건 아버지의 전화였다.
“아버지 집에 간다. 여기 계속 놔두면 아버지 생으로 죽을 거다.”
아버지로부터 매일 걸려오는 전화는 우리의 몸을 긴장시켰다.
죽는다고 협박,
사랑한다고 호소,
어느 날은 냉정한 목소리,
통화 중 우리의 알랑거림에 무반응,
무관심...
우리는 몸이 달았다.
아버지께 신속한 퇴원을 약속했지만 병원은 폐렴을 이유로 퇴원이 불가하단다. 며칠 지연되는 동안 몸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매일 걸려오는 전화에 우리의 정신은 다시 혼미해지고
앞뒤 생각 없이 거동을 아예 못하시는 아버지의 퇴원을 무작정 결정해 버렸다.
“아버지를 퇴원시키자.”
지금 생각해도
참, 잘한 결정이고
다시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나는, 아버지를 생각보다 많이 닮았다.
종종 이런 사연의 기사를 만나곤 한다.
“부모님이 재산을 제 남동생에게 다 물려주셨어요. 그런데 남동생이 재산을 받고 부모님을 방치하고 있어요.”
이에 관련하여 여러 말이 오고 가는 가운데
꼭 등장하는 조언이 있다.
“부모님과 손절하세요.”
시골에서 자랄 때에, 나이는 나보다 몇 살 위지만 학년이 같은 친구가 있었다. 친구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서울에 일하러 갔기에 몇십 년은 얼굴 한 번 못 보고 지냈다.
언제부터인가?
명절날 친정에 가면 아주 맹랑한 목소리로
“반갑다. 친구야!”
몇 번 친구네 집에도 가보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나 열심히 중언부언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내가 어른이 되고 들은 얘기인데
이 친구는 친모에게 자라지 않았고, 부모님 두 분으로부터 많은 미움을 받고 자랐으며, 그 때문인지 늘 배가 고팠고,
친구는 주린 배를 채우고자 밤이면 이웃집 부엌에서 셀프로 밥을 얻어먹었다고 한다.
그 당시는 다들 형편이 녹록하지 않던 시절이라 아이의 행동이 불편한 심정이야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차마 불쌍해서 나무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우리 뒷집은 아들 대신 할머니가 손녀를 맡아서 키우셨다.
기억하기로 뒷집 할머니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매일 손녀를 혼내셨다.
엄마 말로는 언제 한번 웃는 얼굴로 손녀를 대하는 걸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엄마는 늘 그 할머니를 “돼지”라고 지칭하셨다.
그런데,
이 두 집안에 어른들의 노후는
그 친구가,
그 손녀가 살뜰하게 챙기고 있다.
언젠가는 이 두 집안 얘기를 하시던 엄마가
“00는 엄마가 죽어야 오겄지? 그렇게 금이야 옥이야 키웠건만... 천한 것이 귀하게 되고 귀한 것이 천하게 된다더니 옛말이 틀린 게 하나 없다.”
고 말씀하신다.
아주 옛날 내 고향에서는 여기저기 온 동네에 조롱받던 집안이 있었다.
자산가인 부모가 돌아가시자
부모 재산 다툼으로 형제간에 칼부림이 났던 사건이 있었다.
그 자식들을 향한 온갖 욕이 난무했고 잊을만하면 다시 등장하여 또 욕을 먹었다.
당시는 있을 수 없는 희귀한 사건이었기에 어른들의 심기를 단단히 불편하게 했다.
지금은 듣고 싶지 않아도 듣지 않으려고 해도 이런 사건은 기사로 종종 등장하여 잘 듣고 있다.
지금을 사는
당당한 젊은이들에게
옛날부터 살았던
나도 당당하게 묻는다.
“부모 부양 의무는 없고, 부모 재산 권리는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