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중반 이전에 태어난 세대들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맛있는 탕수육을 먹고 지냈다. 갓 튀겨 폭신하며 두툼한 튀김 옷에 싸인 고소한 돼지고기를 달콤한 소스에 비볐다가 고춧가루 뿌린 간장식 초장에 찍어 한 입 먹었을 때의 황홀함을 기억하고 있을 텐데, 지금은 어떤가. 미리 잔뜩 튀겨뒀다 데워낸 딱딱한 옷의 퍽퍽한 고기조각을 시큼한 소스에 불려 먹으며, 분식집이나 시장통 혹은 노점에서도 흔히 파는 싸구려 음식이 되어 있다. 그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기에 맛있던 탕수육은 이 모양이 되었을까.
정부의 물가억제정책 때문에 인상이 강하게 억제되던 짜장면 조차 지난 이십 년 간 열 배 가까이가격이 올랐지만 탕수육은 아직도 두 배 근처에도 도달하지 않고 있는데, 탕수육에 불어 닥친 살벌한 저가경쟁이 그 원인이다.
화교들에 의해 주로 운영되며 고가격 정책을 펴던 중식당 계에 70년대 후반부터 한국인들이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숫자가 크게 늘며, 떨어지는 음식솜씨를 덮고 업소 간의 영업구역 다툼 속에 저가경쟁이 시작된다. 그러면서 차츰 망가져 가던 탕수육 맛에 결정타를 날리는 중요한 사건이 벌어진 것은 1995년 겨울이었는데. 88올림픽 이후 나날이 발전하던 프랜차이즈 외식업 중 선두자리를 차지한 양념치킨의 성공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저가 탕수육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탄생한다. ‘정박사네 탕수육’에서 시작하여 순식간에 30여 개로 늘어난 탕수육 전문 브랜드들 중 ‘육영탕수육’은 일년 만에 800개의 가맹점포를 오픈하는 기염을 토하는데, 그 인기의 비결은 다름아닌 ‘싼 가격’에 있었다.
한 접시에 이 만원 가까운 가격의 중국음식점과는 달리 육천원이라는 놀라운 가격은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면서 인기가 치솟았는데, 대신에 저급한 재료를 쓰고 조악한 조리실력을 낼 수 밖에는 없었던 탓에 떨어지는 튀김 맛을 감추려고 그 전 까지는 깔끔하고 단맛 위주였던 소스에 케첩과 통조림과일을 잔뜩 넣어 시큼 들큼한 자극적인 맛으로 바꿔 놓았다. 예전의 비싼 음식에서 골목길의 싸구려 음식이 되면서 동네 아줌마들과 청소년들로 주 고객층이 바뀌게 되어 그들의 입맛 취향에도 맞아 케첩과 통조림과일을 넣은 소스는 어느새 표준처럼 굳어지게 되었다.
예전의 탕수육 소스는 신맛이 적어서 간장과 식초를 섞고 고춧가루를 살짝 뿌려 준 양념장에 찍어먹어야만 맛이 완성되었던 반면, 시고 짠 맛이 강해진 새로운 소스로 그럴 필요가 줄어든 요즈음은 그냥 집어 입 안에 넣기만 하면 된다.
질 좋은 전분과 계란 흰자거품을 써서 주문과 함께 만들어지던 바삭하고 폭신하던 맛있는 튀김은 밀가루와 화학팽창제가 들어가고 미리 잔뜩 튀겨뒀다가 데워내기만 하며 묵은 기름에 찌들은 딱딱한 맛으로 변하게 되었다. 맛이고 질이고 어느 하나 망가지지 않은 게 없었지만 사람들은 싼 가격에 눈이 멀어 미친 듯 탕수육 가맹점들에 몰려 들었는데 중국음식점들에게는 큰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물가억제책으로 가격이 묶인 짜장면과는 달리 적당히 이윤을 챙길 수 있는 탕수육 손님을 거의 다 빼앗기게 되며 큰 손실을 보던 중식당들이 오래잖아 저가 경쟁에 참여하면서 싸움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가격을 가맹점들 수준으로 끌어 내리면서 짜장+탕수육+군만두 구성의 염가세트라는 엄청난 카운터 펀치를 날렸고, 치킨집들 숫자를 곧 추월할 것처럼 맹렬히 증가하던 탕수육 브랜드 가맹점들은 2년을 넘기지 못하고 거의 대부분 도산해 버렸는데, 이 전투의 상처가 지금껏 남아서 맛있던 탕수육을 오늘날 이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탕수육 전문 프랜차이즈점들은 사라졌지만 예전의 탕수육으로 돌아오기에 그 상처는 너무 컸다. 싸구려에 길들여진 고객들은 가격인상(회복)을 받아들이질 못했고 그 사이 너무 많아진 숫자의 중식당들 간 경쟁은 탕수육뿐만 아니라 중국음식점 자체의 싸구려화를 가속화하여 오늘날에 이르게 된다.
예전에는 ‘청요리 먹으러 갈까’ 하거나 졸업식 등의 특별한 날에나 맛을 볼 수 있었던 고급 음식으로서의 높은 위상은 간데 없고 배달 시켜 싼 맛에나 먹는 싸구려 음식으로 취급 받게 된 서글픈 처지가 되었다.
피자 한 판에 삼 만원이 넘는 시대가 되었음에도 좋은 재료를 써서 옛날식으로 제대로 만드는 탕수육을 이 만원 넘게 받으려고 하면 ‘미쳤어, 만원도 안 되는 집이 널렸는데 무슨 배짱이야? 싼 맛에나 먹는 게 탕수육인데 제정신이 아니구먼’하며 손가락질을 해 대니 예전 그 맛이 돌아오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반죽에 찹쌀가루를 넣어 쫄깃한 식감을 보강한 탕수육이 근래에 인기를 모으고는 있지만 옛 맛이 아니며 흡사 찹쌀떡을 씹는 듯한 질감인지라 필자는 그리 좋아하질 않는다.
그럼, ‘누가 옛 탕수육 맛을 망가뜨렸을까?’
중식당 들도 그 조리사들도 아닌 바로 우리가 주인공이다. 싸다는 이유만으로 허접한 탕수육에 몰려가고 제대로 만드는 집들은 외면했기 때문인데, 다시 예전의 맛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좀 더 돈을 쓸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하며 몇 남지 않은 옛 맛의 업소들을 격려해 줘야 한다. 우리가 그렇게 만들었기에 우리가 아니면 해결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모든 탕수육들이 다 옛날로 돌아가서 지금 보다 비싸져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현재의 맛과 가격에 충분히 만족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기에 두 종류가 공존할 수 있는 여건 정도만 갖추게 되어도 고맙겠다.
예전의 맛을 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업소들은 거의 모두 화교 운영식당들인데, 서울에서는 논현동의 대가방(02-544-6336)이 유명하며 케첩이나 통조림과일이 들지 않은 옛날식 소스에 바삭한 튀김이 제 맛이고, 저녁시간에 가서 탕수육만 시키면 눈치를 좀 준다는 단점이 있다. 서대문의 목란(02-732-0054)도 솜씨가 좋은데 예전 스타일에 비해 튀김 옷이 좀 단단한 편이다. 경기도에서는 포천의 미미향(031-531-4333)을 최고로 꼽는 이들이 많은데 탕수육 자체는 괜찮은 반면 앞서 소개한 두 집과는 달리 이 곳의 식사류는 동네 중국집 수준이라 아쉽다.
물론 화교 중식당이라고 다 잘하는 것만은 아니다. 인천차이나타운의 업소들 거의 다가 실망스러운 수준이며, 인터넷 검색에 많이 등장하는 유명 업소인 삼각지의 명화원(02-792-2969)은 한일월드컵 무렵 까지가 절정기였고 현재는 찹쌀가루를 많이 넣어 떡 같은 맛으로 변해버렸기에 소문만으로 찾게 되면 크게 실망할 수 있다.
출처= 아시안푸드·월간외식경영 공동 기획
기고자= 박태순(Gundown) 음식칼럼니스트 (kr.blog.yahoo.com/igundown)
[푸드조선 food.chosun.com]
첫댓글 탕수육은 잘하는 곳 못하는 곳에 따라 맛 차이가 심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