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가 있는 서재35. <요술 맷돌>
독식
바닷물이 짜게 된 사연
어린 시절 섬에는 먹을 물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바닷물이 그렇게 많은데, 왜 물이 모자라다고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중에야 바닷물은 너무 짜기 때문에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서 머리를 긁적였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바닷물은 왜 짠 것일까? 과학자들의 설명을 잠시 들어보자. 45억 년 전 지구가 만들어질 당시 지구는 가스덩어리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지구는 조금씩 식어갔고 자연스럽게 수증기가 발생하였다. 수증기는 위로 올라가 구름층을 만들고 비가 되어 땅으로 떨어졌다. 이 비가 수백 년 동안 내리면서 바다가 만들어졌는데, 그때는 지금처럼 바닷물이 짜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 지구는 아직 불안정해서 지각도 흔들리고 폭발도 일어났으며, 지구 표면에는 독한 가스가 계속 품어져 나왔다. 지구에 소금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때부터라고 한다. 가스와 바위가 서로 부딪치고 그 안의 원소들이 서로 결합하면서 소금 성분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금 성분이 빗물에 쓸려 바다로 흘러들어가면서 바닷물이 짜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소금은 가스와 구름, 비, 바위 등 여러 인연이 서로 만나면서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전래동화 <요술 맷돌>은 바닷물이 짜게 된 사연을 아주 재미있게 전해주고 있다.
아주 오랜 옛날 어느 마을에 가난하지만 마음씨 착한 농부와 욕심쟁이 부자 영감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이 마을을 지나던 할아버지가 너무 배가 고파 욕심쟁이 영감 집에 들러 먹을 것을 좀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욕심쟁이 영감은 딴 데 가서 알아보라고 하면서 문전박대를 하였다. 너무 굶주렸던 할아버지는 길을 가다가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마침 쓰러진 할아버지를 발견한 착한 농부는 할아버지를 집으로 업고 와서 정성껏 간호를 하였다. 얼마 남지 않은 쌀로 죽을 만들어 먹이기도 하였다. 할아버지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자신이 갖고 있던 맷돌을 농부에게 주고서 바람처럼 사라졌다.
착한 농부는 할아버지가 주고 간 빈 맷돌을 돌리면서 혼잣말을 했다.
“이 맷돌에서 쌀이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자 정말 맷돌에서 쌀이 펑펑 쏟아져 나왔다. 농부는 너무 놀라 뒤로 넘어질 뻔 했다. 이번에는 옷이 나오라고 주문을 하자 정말로 옷이 나왔다. 돈이 나오라고 얘기하면 실제로 돈이 나왔고, 금이나 귀한 물건들도 말만 하면 어김없이 맷돌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요술 맷돌이었던 것이다. 가난했던 농부는 어느새 큰 부자가 되었고 마을 사람들을 초청해서 잔치를 벌이기도 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욕심쟁이 영감은 질투가 나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영감은 농부의 집에 몰래 들어가 맷돌을 훔쳐서 나왔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먼 곳으로 도망가기 위해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욕심쟁이 영감은 맷돌을 돌리면서 소금이 나오라고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맷돌에서는 소금이 펑펑 흘러나왔고 금세 배안에 가득 차게 되었다. 영감은 자신이 아주 큰 부자가 되었다고 좋아하면서 계속 맷돌을 돌렸다. 그러나 배는 소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바다 밑에서는 맷돌이 계속 돌아가면서 소금이 나오고 있으며, 그래서 바닷물이 짜게 되었다고 한다.
독식, 공멸에 이르는 길
바닷물이 짜게 된 사연을 들려주는 전래동화 <요술 맷돌>은 지금 읽어도 재미있다. 특히 욕심쟁이 부자 영감이 요술 맷돌을 혼자 독차지하고, 소금에 대한 욕심을 억누르지 못해 결국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지나친 욕심이 화를 부른다는 교훈에 잘 어울리는 동화다.
그런데 욕심쟁이 영감은 맷돌을 돌리면서 왜 돈이나 금이 아니라 소금이 나오라고 주문을 한 것일까? 이유는 단순하다. 소금이 최고의 가치를 지닌 물품이기 때문이다. 소금은 생명을 유지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 소금은 금이나 돈보다 높은 가치를 지녔다. 요즘말로 한다면 소금은 최고의 블루오션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영감은 요술 맷돌, 즉 최고의 가치를 산출하는 산업의 자본과 기술을 독점한 것이다.
소금은 인류의 문명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소금은 생명을 유지하는 필수품이기 때문에 이를 생산하고 유통시키는 일은 매우 중요했다. 소금을 운반하는 과정에서 길이 만들어졌고 그것을 사고파는 시장과 도시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고대 문명은 그렇게 소금과의 만남 속에서 탄생하였다.
오늘날 소금은 블루오션이 아니더라도 여전히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소금이 없다면 인간의 생명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고도로 문명화된 사회에 살고 있는 오늘날 동화 <요술 맷돌>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일까?
욕심쟁이 영감은 모든 것을 독점하고 있는 오늘의 자본가에 비유할 수 있다. 그들이 요술 맷돌이라는 자본과 기술, 정보를 독점하면서 소금이라는 이익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타고 있는 배가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어져 있다. 자칫 바다 속으로 가라앉을지도 모를 위험한 상황이다.
2011년 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라는 구호와 함께 대규모 시위를 벌인 일이 있다. 그들은 상위 1% 부유층의 탐욕 때문에 99%의 사람들이 정당한 몫을 받지 못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시위는 미국 1%의 부자들이 전체 부富의 5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 경종을 울렸으며,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가기도 하였다.
부의 지나친 독점과 소득의 양극화 문제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소수의 부자와 금융자본, 기업 등의 탐욕이 이러한 결과를 낳았다는 데 공감하였다. 동화 속 이야기처럼, 욕심쟁이 영감이 요술 맷돌을 계속해서 돌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이익의 사유화와 손실의 사회화’다. 생산을 통해서 발생한 이익은 사적으로 독식하는데, 손실이 나면 자본가가 책임지지 않고 공적 자금이라는 이름으로 국민들 세금이 투입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예를 우리는 IMF 외환위기 이후 숱하게 보아왔다. 참으로 부도덕하고 이상한 사람들이 주도하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전북 고창 선운사 창건설화에는 검단선사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검단선사는 당시 도둑들에게 소금 굽는 방법을 알려주고 삶의 터전을 마련해주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매년 봄과 가을에 자신들이 생산한 소금을 선운사 부처님께 바쳤는데, 이 소금을 보은염報恩鹽이라 한다. 은혜 갚는 소금이란 뜻이다.
그런데 힘센 자들이 이를 독점하자 검단선사는 소금 나오는 구덩이, 즉 염정鹽井을 없애버리고 염전법으로 바꾸었으며, 그들을 참회하게 했다고 한다. 염정을 이용하면 염도가 높은 바닷물을 바로 끓여서 손쉽게 소금을 생산할 수 있지만, 염전법은 갯벌을 갈아엎어야 하기 때문에 매우 힘든 일이었다. 요즘말로 하면 고부가가치를 산출하는 정보와 기술을 포기한 것이다.
검단선사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그것은 바로 부의 독점이 자신은 물론 마을 전체를 공멸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공동체라는 배가 가라앉기 전에 맷돌 돌리기를 그만 두도록 한 것이다. 이는 소수가 부를 독점하고 있는 오늘의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독식은 공멸에 이르는 길이다. 동화에서는 욕심쟁이 영감 혼자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지만, 그 배에는 영감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타고 있다. 요술 맷돌이 만들어낸 소금을 배의 다른 쪽으로 균형 있게 나누는 지혜가 필요한 오늘이다. 배가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어 가라앉기 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