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열리는 시간
이향숙
따스한 봄바람이 기지개를 켠다. 창틀 사이로 새어드는 금빛 가루가 온몸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코로나 19로 힘들었던 지난 세월을 보상해주듯 막혀있었던 일상이 다시 회복되었다. 움츠러들었던 몸과 마음이 펴졌다. 오랜만에 창작반 문우들이 나들이하기로 했다. 함께 공부하는 문우가 자기 농장에 매화가 지기 전에 오라고 초청을 해서였다.
가는 길목에 잠시 ‘돈암서원’을 들렀다. 홍살문을 넘어 안으로 들어가니 빼어난 꽃담의 조형미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곳은 지역 유생들이 사계 김장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우리나라 예학파 서원이다. 사당에는 김장생을 중심으로 김 집, 송준길, 송시열의 위패를 모시고 있었다. 세계 유네스코에 등재될 만큼 예학의 산실인 ‘돈암서원’은 단청으로 꾸며진 특유한 사당이다.
이분들은 살아서도 같은 학문을 했지만 죽어서도 한자리에 있었다. 오늘 우리처럼 봄기운을 흠뻑 받으며 네 분이 툇마루에 모여 앉아 사상을 논했으리라.
서원을 뒤로하고 홍살문을 나오는데 갑자기 앞이 환했다. 여름밤의 은하수처럼 별이 무더기로 여기저기서 반짝거렸다. 도대체 이게 뭐야. 아, 장관이다. 모두 봄 처녀가 되어 나비처럼 나풀대면서 감탄사를 연발했다. 각자 엎드려 꽃을 들여다보며 카메라에 담기 바빴다. 꽃 이름이 개불알꽃이라고 했던가. 이렇게 예쁜 꽃을 일본인이 개불알꽃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무슨 억하심정으로 이름을 지었을까?. 이름이 꽃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이름은 알아볼 수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구체적이어야 한다. 이 어둑한 봄에 눈이 부시게 반짝거리고 있으니 나는 그것을 개불알꽃이 아닌 별꽃이라 부르고 싶다. 별꽃, 너무 잘 어울린다.
별꽃 무리를 보며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을 연상했다. 어느덧 나는 소녀처럼 별꽃 향에 취해 마음이 들떴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의 사랑과… 흥얼거리며 내 꿈도 별과 같이 하늘을 향해 쏘아 올렸다. 그러고는 다음 목적지로 갔다.
지인의 농장에 당도했을 때, 차에서 내려오는데 발아래 쑥 무더기가 나를 반긴다. 나도 모르게 그것에 손이 간다. 뒤를 돌아보니 매화가 무리 지어 피어있다. 홍매와 청매 그리고 퇴계도 감복했다는 그 눈이 시리도록 흰 백매도 있다. 매화를 그리 감상했으니 눈이 호사했다.
기록을 보면, 방년 18세의 관기 두향은 48세 중년의 중후한 멋을 풍기는 퇴계에게 반했다. 그러나 워낙 자세가 꼿꼿하여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두향은 퇴계의 각별한 매화 사랑을 알고, 꽃 빛깔이 희면서도 푸른빛이 나는 진귀한 매화를 구해 그에게 선물했다. 매화에 감복한 퇴계는 드디어 마음을 열고 두향을 가까이했다고 한다. 열심히 노력하면 안 될 일이 없구나. 천하제일인 퇴계의 마음도 움직이는구나. 매화를 보며 문득 한 생각이다.
주인이 차려놓은 다과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모두 매화 향에 취했다. 한참을 지나고 나니 배가 출출해졌는지 하나둘 다과가 있는 테이블 앞에 앉았다. 과자며 과일, 커피가 한참 동안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농장이 어마어마하게 컸다. 주인이 손으로 가리키는 경계가 수십 정보는 되는 듯하다. 농장 크기만큼 주인장의 마음도 넉넉했다. 나를 사로잡은 것은 커피다. 평소 커피를 즐겨 마시지 않는 나를 반하게 했다. 마시는 순간 느껴지는 쓴맛이 차차 단맛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오묘하고 신비스러울 정도다.
내가 처음 글을 접했을 때가 생각난다. 커피의 쓴맛보다 더 쓰게 내게 찾아온 글쓰기였다. 가난하게 살아온 지난날이 너무 아려서 그 상처를 치유해 보려고 시작했다. 그러나 배우고 싶다고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배움이 짧았던 나에게는 너무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유교 사상이 깊었던 집안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배움의 길은 막혔다. 그런 마음을 이해한 남편의 격려로 환갑을 내다보는 나이에 공부를 시작했다. 손주를 돌보면서도 학업을 이어갔다. 친구들은 이 나이에 뭐 하려고 공부를 하느냐고 했다. 하지만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이 즐거워 힘든 줄을 몰랐다. 공부를 마치고 나니 더 허전했다. 다시 창작 교실 문을 두드렸다.
알아갈수록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이 길이 나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때로는 실망하고 때로는 좌절하기도 하면서 길을 찾아가려고 애썼다.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못한다고 생각하면 더 가슴이 미어져 내렸다. 같이 할 수 있는 친구를 찾아보았다. 한 친구가 기꺼이 동참해 주었다. 그 친구와 같이하면서 우리는 조금씩 적응되어 갔다. 혼자 했다면 오래 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려운 고비마다 서로를 격려하며 한발씩 나아갈 수 있었다.
오늘 모인 문우들은 모두 나보다 젊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젊은이들이다. 나는 이들과 같이 어울리고 같이 숨 쉰다. 내 나이 칠순이 넘었지만, 나이는 숫자일 뿐이다. 내년에도 꽃은 열린다. 나는 내년에도 그 향기를 좇아 이곳을 다시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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