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까마귀'의 수요 벙개산행
2022년 05월 17일, 섯째주 수요일.( 16˚도 ~ 31˚도)
'돌까마귀'의 수요 벙개산행
수요벙개 / 정생동에서 정생천 따라 천비산 숲길에 올라 중암사 찍고 서당천 따라 원점 회귀.
대전 중구 유천동 서남부터미널 시내버스 승강장에서 09:30발 31번 외곽버스 탑승
버스노선 : 급행1번, 113, 119, 201, 202, 608, 613, 916번 시내버스 타고 버드내아파트 하차 도보 2분
31번 노선 : 버드내아파트 - 서부종합시장 - 머티네거리 - 산성네거리 -
산성초등학교 - 오월드입구 - 침산동 - 목달동 - 정생1동 하차
코스 : 정생동보건소 - 중암사 - 임도길 - 정생동보건소(원점산행).
개인차량은 대전 중구 정생동 278-3 정생보건진료소로 10시까지
난이도 : 난이도 中下의 임도와 천변길 약 9km를
점심시간 포함 5시간 동안 천천히 걷고 오후 3시 종료 예정
산행안내 팀장 : 돌까마귀 / 문의 010-4413-6565
사진 청마(靑馬)
중암사(中庵寺) / 묘각사(妙覺寺)
「중암사(中庵寺 대전광역시 중구 정생동)는 천비산(天庇山)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창건연대 및 창건자는 미상이나 삼한시대에 창건되었다는 설과 약 800년 전에 창건되었다는 설이 전한다. 원래 이 절은 묘각사(妙覺寺)라 하였으나 중암대사(中庵大師)가 거처한 이후 중암사로 명명하였다고 한다. 천년고찰 천비산 중암사는 신라 문성왕 14년(852) 무염(無染) 스님이 창건하였다. 원래 창건 당시 절의 명칭은 미륵사(彌勒寺)라고 하였다. 불탄 후 묘각사(妙覺寺)라는 이름으로 중건되었다.
그러나 절의 역사는 거의 전래되지 않고 있다. 다만, 이 절에 서산대사(西山大師)·사명당(四溟堂)·영규(靈圭)의 영정을 모신 삼충사(三忠寺)가 있었으나 한말에 계룡산 갑사(甲寺)로 이전하였으며, 당우들도 1932년에 주지의 실화로 소실되었다. 화재 전에는 불교강원(佛敎講院)이 있었는데, 50∼60명의 학인들이 모여 공부하였다고 한다.
묘각사에는 상암(上庵), 중암(中庵), 하암(下庵)이 있었다고 한다. 상암과 하암은 불에 탄 채 폐사지로 남아있다. 천비산 중턱 한가운데 중암사만 남아 묘각사라 불리기도 하고 중암사로 불리기도 한다. 1932년에 큰 화재로 대웅전과 법당건물이 모두 불탄 뒤로 1934년 현재 대웅전 건물을 지었다. 그 뒤에 산신각과 지장전(요사채)을 지어 현재에 이른다.
법당 오른편에 영규대사 순의비(殉義碑)가 있다. 영규대사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병을 모아 의병장 조헌과 함께 청주를 수복하였다. 금산 전투에 참여하기 위해 승군을 이끌고 외부에 노출되지 않는 천연 요새 중암사로 모여들었다. 영규대사는 금산에 이르러 일본군과 격전 끝에 승병들과 함께 순국하였다. 중암사 법당 뒤에는 그 당시 승군들이 쓰던 돌절구와 맷돌이 보존되고 있다.
일제 강점기까지 영규대사의 유물과 투구, 고등(孤燈)과 공신록 네 권. 화엄경 한질, 법화경 한 질이 보존되고 있었다. 1945년 광복 이후 혼란기를 틈타 모두 분실하였다고 한다. 중암사에는 법당에서 약 50m 떨어진 곳에 여섯 기의 부도와 탑비 일기(基)가 있다. 부도는 한월당(漢月堂), 추월당(秋月堂), 천봉당(天峰堂), 홍파당(泓波堂), 수월당(水月堂)、월영당(月影堂) 등 여섯 승려 사리가 모셔져 있다. 이 부도는 조선 시대 후기의 것으로 1989년 3월 18일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11호로 지정되었다. 비(碑)는 기록에 의하면 정조 8년(1784년)에 세웠다 한다.」
보시느라 수고하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