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되(삼상 7:1-17)
1-2.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놓고 그의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더니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나하)
궤가 기럿여아림에 이십년 동안 오래 있었던 이유는 사무엘이 성장하여 이스라엘을 제대로 다스리도록 하는 준비기간을 의미한다. 그동안에는 엘리아살로 하여금 제사장으로서 나라를 다스리게 한 것이다. 거룩하게 구별한다는 말은 제사장으로 세운다는 것이다. “나하”는 신음하다, 슬퍼하다(lament)라는 의미다. 이스라엘이 여전히 블레셋 사람들의 억압에 있었기 때문이다.
3.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슈브)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는 여호와를 섬기고 우상(아스다롯)도 섬기는 이런 행태가 지속되므로 하나님이 블레셋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고통 중에서 부르짖게 하는 것이다. 아스다롯(여신)은 기복신앙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기복신앙의 남신은 바알이다.
슈브가 바로 예수님이 하신 회개하라는 단어와 같은 의미다. 예수님이 공생애 시작했을 때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라고 말씀하셨는데, 천국(하나님 나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의미한다. 회개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이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을 하지만, 자기가 생각하는 하나님을 믿었던 것이다. 미신을 비롯한 기복신앙과 율법주의가 만연한 그런 종교행위를 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자기가 천국이므로 자기에게 오라는 말씀이다. 그런데, 백성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거하지 않았다. 결국 이스라엘은 로마에 의해 멸망당하고 만 것이다.
회개는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던 탐욕이자리하고 있는 자기라는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거하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세상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비는 행위를 회개라고 생각하는데, 좁은 의미에서 이것도 회개이지만 넓은 의미의 회개는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자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한다.
4.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섬기면서,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는데, 그 우상들을 제거하고 오직 여호와만 섬겼다는 말이다. 열왕기상 18장 16-20절을 보면 당시 엘리야 시대에 이스라엘이 섬기는 우상의 행태를 볼 수 있다. 『오바댜가 가서 아합을 만나 그에게 말하매 아합이 엘리야를 만나러 가다가 엘리야를 볼 때에 아합이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따랐음이라 그런즉 사람을 보내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명을 갈멜 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아오게 하소서 아합이 이에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로 사람을 보내 선지자들을 갈멜 산으로 모으니라』
오늘날 교회에서 신도들이 하나님을 섬기지만, 우상을 섬기고 있다고 말을 하면 놀랄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기복신앙이다. 하나님 나라도 가고 싶고, 세상에서도 복을 비는 그런 혼합형의 종교행위를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심판의 대상이 된다. 우상은 다름 아닌 탐욕의 마음이며, 자기라는 우상인 것이다.
5.사무엘이 이르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미츠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파랄) 하매
미츠바는 망대, 파수꾼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이 파수꾼(사무엘)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것이다. 에스겔 3장 17절에서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파수꾼은 하나님이 선지자에게 주로 하신 말씀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파수꾼들 중에는 이런 역할을 감당하지 못한 자들도 있었다. 이사야 56장 10-12절에서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들이요 누워 있는 자들이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니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요 그들은 몰지각한 목자들이라 다 제 길로 돌아가며 사람마다 자기 이익만 추구하며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마시자 내일도 오늘 같이 크게 넘치리라 하느니라』
재대로 된 파수꾼은 기도하는 자가 된다. 파랄은 중재하다, 기도하다 라는 의미다. 민수기 21장 7-8절에서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기도는 단순히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아가 하나님과 죄인들 사이에 중재하는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기도는 생명을 낳고, 영적 치유를 하는 그런 의미를 갖는다.
6.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 종일 금식하고 거기에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샤파트)
물을 붓고, 금식하는 행위는 회개의 모습이다. 물을 붓고 금식하는 장면은 자신은 죽은 자라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물세례는 물에 빠져 죽는 것을 상징한다. 즉 자신은 하나님께 범죄한 자(우상숭배)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예레미야애가 2장 18-19절『그들의 마음이 주를 향하여 부르짖기를 딸 시온의 성벽아 너는 밤낮으로 눈물을 강처럼 흘릴지어다 스스로 쉬지 말고 네 눈동자를 쉬게 하지 말지어다 초저녁에 일어나 부르짖을지어다 네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 쏟듯 할지어다 각 길 어귀에서 주려 기진한 네 어린 자녀들의 생명을 위하여 주를 향하여 손을 들지어다 하였도다』
샤파트는 기본어근은 심판하다, 즉 판결을 선고하다. 함축적으로 정당함을 입증하다, 또는 벌주다. 연루된 의미로 ‘지배하다(다스리다).’ 수동태로 ‘소송을 제기하다’(문자적, 또는 상징적으로)보복하다, 유죄판결한 것, 논쟁하다, 변호하다, (심판을)실행하다, 재판관이 되다, 재판하다 등의 의미가 있다.
7.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그들의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지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모인 것을 알고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자신들을 치기 위해 모인 것으로 생각하고 먼저 선제 공격을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은 전쟁이 아니라 자신들이 우상숭배를 한 것을 회개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8-9.이스라엘 자손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하니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번제는 온전히 태워 드리는 것이다. 어린양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상징한다. 그리스도를 통한 속죄의 모습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다시 태어나는 모습이다.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쟁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 전쟁하시는 모습인 것이다. 오늘날도 자기(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욕망:A.I.)와의 전쟁은 곧 하나님이 하시는 전쟁이다. 그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은 어린양을 번제에 드린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연합되어 성도 역시 죽은 자가 되는 것이다.
10-11.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콜)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
콜은 소리로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현재적으로 부활하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모두가 하나님이 하시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욕망(A.I.:Angel Intelligence:우상)이었음을 깨닫고 돌이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죽을 수 밖에 없는 그런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성도의 심령 속에 옛사람과의 전쟁이 바로 이런 모습이다. 가나안 일곱 족속과의 전쟁도 이와 같은 것이다.
12-14.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역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에벤에셀(에벤 하에쩨르)은 도움의 돌이다. 도움은 여호와의 도움이다. 돌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하나님의 손이 악으로부터 보호하시는 것이다. 요한일서 3장 5-6절『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15-17.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되(샤파트)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여 그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고(샤파트) 라마로 돌아왔으니 이는 거기에 자기 집이 있음이니라 거기서도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며(샤파트) 또 거기에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샤파트는 다스리다 라는 의미로서, 왕으로서 백성을 다스리는 것을 의미한다. 16절에서 다스리는 샤파트는 선지자로서 역할이며, 17절에서 샤파트는 제단을 쌓는 것과 연결되므로, 제사장직인 다스림이다. 왕, 선지자, 제사장은 그리스도의 상징이다. 사무엘이 바로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나라는 바로 세상 속의 하나님 나라이다. 하나님 나라는 바로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당시 사무엘이 그 역할을 한 것이다. 그래서 샤파트라는 단어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것을 나타낸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지배하고 다스리는 나라인 것이다. 성도 역시 하나님이 다스리는 하나님 나라인 것이다. 자기가 주인인 사람은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사탄의 나라가 된다. 하나님이 구약시대는 왕, 선지자, 제사장을 통하여 하나님의 다스림이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보여주셨다. 그리고 신약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신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그리스도를 통한 다스림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