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내문
지난 9월25일 임관50주 기념 회고록 ‘대열 반세기여정’의 발간경과 2차 보고에서 밝힌 대로, 11월1일 부터는 발간예정 책자 본문 중 이미 홈피에 올려 공개된 목차와 연보,각 병과별 약사, 동호회 및 지역포럼 약사, 개별 회고 기고문 외에 편집진이 작성한 일부를, 관련 도표와 사진들은 생략한 상태로, 대열 홈피에 올려 공유하도록 합니다.
오늘 내용이 어느 위치에 수록되는지를 알 수 있도록 그 앞에 책자의 항목표시도 함께 올립니다. 아울러 회고록에 사용한 사진들을 재편집한 동영상도 함께 올리고, 책자에 수록하지는 않았지만, 자료로 수집했던 과거 사진들도 틈틈이 올립니다. -편집진-
< '대열반세기 여정' 본문 소개 5-생도대생활: 삼사체전 국국의날 화랑제 OBC>
▣ 제1부 육군사관학교 생도 시절
◉ 생도대 생활과 주요훈련
◇ 3군 사관학교 체육대회
‘삼사체전’으로 추억하는 육·해·공 3군 사관학교 생도들이 참여하는 3군 사관학교 체육대회는 국군의 날에 즈음해 군의 사기를 높이고 단결력을 과시하며 위문하기 위해 진행됐던 전통적인 국가적 체육축전이었다.
1954년 11월 처음 열려 1993년까지 매년 국군의 날 이후 사흘간 서울효창운동장과 동대문운동장 등지에서 개최됐었다.
각 사관학교 자체로는 단체정신과 전투의지를 고양시키고 3군 사관학교 생도 간에는 상호 우의를 증진시키며 Fair Play 정신을 발휘하는 가운데 같은 국방의 간성이자 전우이며 동지로서의 단결력을 키우는 긍정적인 효과도 만만치 않았던 고품격 군사문화의 한 일면이기도 했다.
이 삼사 체전을 4년간 맞이했던 27기 대열 동기에겐 2학년 때 종합우승의 영광을 안고 학교로 돌아오는 차량 위에서 서울 시내가 떠나가라 응원가를 불렀었고, 모든 책임을 질 4학년 때는 참패를 당하는 등 삼사체전의 승패에 따른 영욕의 역사를 가지지만, 체전을 준비하며 땀 흘린 선수 동기생과 힘들었지만 화려했던 응원연습에 대한 추억이 더 진할 것이다.
▷ 대열 대표선수 동기생들
축구부 : 김부명, 김장수, 김윤석, 이광희, 이진수, 한광문
럭비부 : 김동윤, 박승춘, 박정학, 송석열, 오용근, 하삼석
그랬던 삼사체전은 오늘날 ‘군 내 사조직’ 근절이니, 대회준비 과정에서의 수업결손과 승부욕에 따른 과열경쟁 양상 등의 부작용이 심하다는 등의 이유로 1993년 이후 중단됐다가 부산 아시아경기대회 개최를 앞두고 체육 붐을 조성하기 위해 1999년 부활돼 2002년까지 진행되었다가, 2002년을 끝으로 폐지되고 말아 우리에겐 추억 속에만 남게 됐다.
아울러 삼사체전의 힘찬 응원구호인 ‘무라카’의 함성만 남게 된 모양이다.
▷ 응원구호 ‘무락카(Mul-Aca)’
▶ 원문
무락 베니 비디 비키
억쎈 엠에이 바이터러 비거러
카슈까라 레벤 사자 호랑나
카레스 카레스 육사 육사
▶ 인용 원어
베니 비디 비키(Veni Vidi Vici): Ceasar가 루비콘 강을 거너며 전승을 알렸던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라는 뜻의 라틴어
억센 엠에이(M.A): 억세고 강한 용사(Military Academy)를 표현하는 한글과 영어 약어의 조합
바이터러 비거러(Vital Vigor): 생동감과 정열, 활력을 나타내는 영어 형용사
카슈까라: ‘적에게 달려가서 무찔러라’ 라는 뜻의 국어
레벤(Leben): ‘항복하는 자는 살려주자’ 라는 뜻의 독일어
사자 호랑나: 용맹하면서도 약자에게 관용을 베푸는 사자나 호랑이
카레스(Caress): 육사를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자는 뜻의 영어
▶ 의역
육사여!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억세고 강한 육사여! 힘차고 용맹하게 달려가서
묵사발을 만들어라! 그러나 사자나 호랑이처럼 항복하는 자는
너그럽게 살려주겠노라!
나의 사랑 육사여! 나의 사랑 육사여!
▶ 유래
제11기 이동희 장군이 생도시절이었던 1953년 초에 동기생들과 함께 만든 응원구호이다.
‘무락카’라는 이름은 사관학교의 영어명칭인 Military Academy의 앞 글자를 따오되, 당시 미군 교관들의 발음을 따라 지었다고 한다. ‘무락카’는 국어, 영어, 라틴어, 독일어 어휘를 혼합하여 필승의 힘찬 결의와 함께 아량과 포용력을 강조함으로써 화랑정신과 기사도 정신의 핵심가치를 골고루 담고 있다. 육사인들은 단결과 승리의 기쁨을 표현할 때 ‘무락카’를 제창해 왔다. 지금도 육사인들은 각종 행사나 모임에서 오른손을 아래 위로 흔 들면서 ‘무락카’를 힘차게 외치며 일체감을 드러내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 국군의 날 행사
국군의 날은 한국군의 위용과 전투력을 국내외에 과시하고 국군장병의 사기를 높이기 위하여 지정된 법정 기념일로서, 6.25전쟁 당시 남침한 북한공산군을 반격한 끝에 38선을 돌파한 10월1일을 그 날로 하고 있으며, 그날 전투능력을 배양시켜주는 군의 사기진작에 기여하는 여러 가지 기념행사를 하고, 그 중심이 군의 최고통수권자 대통령이 임석한 가운데 이뤄지는 제병 열병식과 각종 무력시위에 이은 분열, 그리고 수도 서울의 중심지 시가행진이었다. (지금은 남북관계를 구실로 해 유명무실하게 만들었지만)
1학년 생도시절 처음 참가한 국군의 날 행사는 모래 먼지바람 세찬 여의도 비행장에서였다, 지금은 국회의사당이 들어선 서북단 동산 지점에서 지금은 여의도공원 광장으로 남아있는 동남단까지 구멍 빵빵 뚫린 철제강판 활주로를 따라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열병 및 분열 연습에 여념이 없었다. 사열단은 지금의 여의도 전철역과 KBS사옥 방향의 어디쯤이었을 것이다. 여의도에서 제병 분열식을 마치고 난 후, 시가행진은 차량으로 이동해, 대한문 앞에서 준비해 시청 앞을 경유하고 광화문 방향으로 그리고 비각을 돌아 종로 방향으로 해서 종로 6가까지 행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의도에서의 오랜 훈련과 예행연습 끝에 열병 분열을 하면서 피곤했던 심신이 시가행진을 할 때 연도의 시민들로부터 뜨거운 환호를 받으면서는 일시에 사라졌다. 국군이 국민의 군대임을 함께 공감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시가행진 대열 중 가장 멋진 대열은 당연히 육사 대열이었다, 백색으로 나부끼는 예모의 깃털과 청백으로 빛나는 예복이 시민들을 매료시키니, 환호성의 반응은 더욱 뜨거웠던 것이고 영화배우 등 연예인들이 꽃다발을 안기는 장면에선 사기가 드높이 올라 조국을 위한 애국 충정의 결의를 가슴 속에 더욱 다지곤 했었다.
그러나 그 화려한 외출의 뒤에 숨은 애환은 우리만의 행진곡 아닌 장송곡이기까지 했으니, 분열연습 동안에 열과 오를 맞춰라! 대각선 정열도 하라! 오다리로 걷지 말라! 등 2학년 생도들의 끝없는 지적 질(?)에 시달려야 했고,
심한 경우 귀대 후 사후 응징 얼차려 기합도 받곤 하는 피로 만땅 행군 길이었지만, 결국 열병과 사열을 통해 군기를 유지한다는 유·무형 전력 구비의 중요한 과정이었음에야 누가 토를 달겠는가.
트럭 위에서도 열을 맞춰 선 채로도 승차해 행사장 가던 차량이 묵동교 위에서 전복돼 생도들이 묵동천으로 쏟아져 내려 심하게 부상당했던 대형 사고의 기억은 행복한 추억일 수가 없다. 달리기가 장기였던 동기생이 후유증으로 이후 지체가 부자연스럽게 변하고 말았었으니 그 아픔의 상흔이 심신 양면으로 크기만 하다.
국군의 날에 발휘한 생도들의 질서정연한 분열 실력은 평소 토요일 특기식의 분열에서 연마된 것이고, 그 분열의식은 대개의 경우 육사 화랑대를 방문하는 VIP들에 대한 환영의식으로 동원되기 마련이었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검의 대륙의 지도자들 에티오피아 셀라시에 황제나 가봉의 봉고 대통령, 서독의 뤼브케 대통령 등의 초청 환영은, 당시 치열했던 남북 간 비동맹외교 경쟁과 경제건설에 필요한 외자유치에서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기 위한 지원 행사이기도 했었다. 물론 박정희 대통령시절부터의 수출입국이란 경제 전략의 전개에서 중요한 돌쩌귀 역할도 했던 것이다. 결국 이 특기식 퍼레이드를 통해 생도 시절부터 국가이익 도모 활동에 참여한 셈이니, 참으로 영광스러운 노력이었다고 보람을 느낀다.
◇ 화랑제 행사
화랑제는 1963년에 최초 시작한 생도들의 자축 문화축제였다. 한해 1년간의 문화체육활동을 통해 개인‧부서별로 갈고닦은 실력을 발표함으로써 생도들의 정서를 함양하고 단결심을 고취하며 육사의 명예를 대외로 선양하는 데 그 의의가 있어, 신사의 향연으로 불리기도 했다.
화랑제 행사는 해마다 가을의 정취가 무르익어가는 10월경에 3~4일 간 시행됐으며, 학술발표와 서예 및 그림의 전시회, 시를 주제로 한 시화전, 음악제와 연극제 등으로 다양하게 치러졌다.
매년 5월 봄에 가지는 ‘생도의 날’ 행사가 전교생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면, 초창기 화랑제는 졸업을 앞둔 4학년 생도가 주인공인 축제로서 4년의 생도생활에 대한 격려와 성공적인 마무리에 대한 축하의 목적으로도 진행됐고, 축제는 학교장 주관의 공식 만찬, 파트너와의 무도회, 파트너와 아기별 행사 등으로 시행되었다.
4학년 생도의 경우, 평소 애인이 없던 동기생들은 무도회 파트너를 급조하기 위해 단체 미팅을 하기도 하고, 동기생 애인의 친구들 중에서 소개받아 만나는 요즘 말하는 소개팅, 건너 편 서울여대를 기웃거리기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으니, 암컷을 부르기 위한 공작새의 화려한 날개 율동이 그들만의 것이 아닌 우리들의 것이기도 했다.
무도회 파티장은 생도들의 손으로 꾸몄다. 시중 조명기구상과 지물포에서 카바레나 댄스홀에 설치하는 밀러 볼과 반짝이등과 벽걸이 장식용 조화, 금·은박 색종이를 구해다 걸개 꽃술을 만들어 실내장식도 했다. 대열의 미술부 생도는 3학년 때엔 졸업생을 위해서, 4학년 때에도 동기생 파티를 위해 3학년 이하의 재능 있는 생도들로 팀을 꾸려 해냈다. 그 생도는 파티장 장식 완성에 시간을 허비해 자기 파트너는 청량리에서 한참이나 기다리게 했고, 그래서 파티에 지각하는 남모르는 애로도 겪어야 했다. 그런 화랑제를 통해 일부 생도는 당시의 파트너와 결혼까지 골인해 부럽고 행복한 결실도 맺었으니, 화랑제는 노년의 지금에 돌아보아도 그 때로 다시 돌아가 또 갖고 싶은, 낭만 가득 어리고 행복한 추억의 축제였다.
◇ 초등군사반교육
이전의 선배들은 졸업·임관 직후 소위 때 받던 것을, 우리 대열 동기생 때부터는 4학년생도 시절에 받았던 위탁교육과정이었다.
지금도 4학년 생도를 대상으로 임관 후 요구되는 필수 야전 실무소양을 배양할 목적으로 매년 실시하는 교육과정이다. 내용은 자생적 문제해결 능력 배양을 위한 기초 소양교육과 병과별 실무교육 등을 통해 임관 전 초임장교로서 갖춰야 할 기본 자질을 함양하며, 교육기간 중 장교 기본소양 교육인 교육훈련, 경계 작전 등을 통해 부임 후 즉각 임무수행이 가능한 능력을 구비했던 것이다, 졸업 전에 개인별로 배정된 병과별 실무교육을 통해 특성에 맞는 교육을 진행함으로써 임관 전 필수역량을 배양하기도 했다.
생도의 신분이면서 받은 그 과정 훈련교장에 그런 변화의 사정을 모르고 야영 텐트로 찾아드는 행상 여인들의 공세에 당황했었고, 그 서슬에 몇몇 걸출한 동기생들이 야영지 근처 낭만적 야간작전지를 내려갔다가 사단이 나 가슴 아픈 멍에를 짊어지게 했던 것도 그 훈련 과정이었으니, 그놈의 변칙 교육과정을 어찌 우리 잊으랴!
3학년 생도시절, 하도 고생해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며 그 쪽으로는 오줌도 누지 않을 것이라며 떠났던 화순 동복유격대를 다시 찾아 특공훈련을 추가로 받았던 기억도 새롭고, 그 때는 오히려 반갑기만 했던 것이니 이 무슨 감정의 변곡(變曲)인지 알다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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