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미화 방송인
예쁜 잔디밭 가지려 잡초와 전쟁을벌였다… 그러다 지쳐 포기했다
어느 날 잡초와 어울린 잔디밭을 보고서 그만 반해버렸다… 인생의 교훈으로 삼으려 한다
나는 지금 집 주위로 논밭이 더 많은 농촌에 4년째 살고 있다. 매일 왕복 156㎞를 달려 생방송을 하러 방송국으로, 집으로 왔다 갔다 하는 일이 만만치 않지만, 좋은 공기와 자연 때문에 즐거운 여행을 매일 한다.
요즘 날이 좋아 시골길을 걷다 보면 아주 작은, 눈에 잘 뜨이지도 않는 예쁜 꽃들이 길가에 피어 있다. 냉이꽃, 별꽃, 제비꽃, 이름 모를 꽃들이 앙증맞게 올라와 있다. 감탄을 하며 걸음을 자주 멈춘다.
예전에 탤런트 김수미 선배가 했던 얘기가 생각난다. 김 선배가 꽃을 너무 좋아해서 하얀 국화를 다발로 사다가 하얀 침대 양옆 꽃병에 꽂아 두고 잠을 자는데, 퇴근한 남편이 문을 열고 들어오다 갑자기 술잔을 들고 두 번 반 돌리며 제사지내는 시늉을 해서 한참을 웃었다고 했다.
길 양옆에 작은 꽃이 예뻐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우리 동네 소 키우는 영록 삼촌이 경운기를 몰고 오다가 "형수, 뭘 그렇게 들여다보고 있슈~" 한다. "삼촌, 이 꽃 이름 알아요? 너무 예쁘다"했더니, "그거 유~, 잡·초·유~"라고 한다. 대답 한번 깔끔하다. 그런데 잡초라….
시골집에서 나는 잔디밭을 갖고 싶었다. 잔디는 까다롭다. 하루라도 가꾸지 않으면 들쭉날쭉 티가 팍팍 나고, 손길이 가면 '저 푸른 초원'이 된다. 처음엔 예쁜 잔디밭을 가꾸고 싶은 욕심에 잡초라 불리는 그 어떤 식물도 보이는 족족 캐내 버렸다. 그렇게 만든 깨끗하고 네모반듯한 잔디밭이, 그 초록이 너무 좋았다. 만족했다.
그런데 다른 잡초들은 다 만만해서 뾰족한 쇠스랑으로 파내면 바로 뽑혀 나오는데, 민들레와 토끼풀은 질겼다. 토끼풀은 옆으로 확장해가면서 뿌리를 박는데 한 번 퍼져 나가면 '기하급수적'으로 퍼져 나갔다. 또 뿌리가 얼마나 깊이 내리는지 파도 파도 뿌리가 끊어질지언정 뽑히지는 않는다.
- ▲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한여름 땡볕에 잡초와의 전쟁은 '고왔던' 내 얼굴을 다 망쳐 놓았다. 원래는 '예뻤던' 내 얼굴이 잡초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나는 여기서 강력히 주장한다.
나는 지난 2년간 푸른 초원을 갖고 지키기 위해 온갖 장비를 동원해서 잡초와의 전쟁을 벌였다. 하다 하다 지쳐서, 3년째는 에라 모르겠다, 내쳐두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잔디밭은 얼마 못 가 잔디밭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가 됐다. 일에 치여 바삐 살다 어느 날 밖으로 나가던 중에 정말 오랜만에 '잔디밭'을 제대로 쳐다보게 되었다. 그 순간 나는 정말 반해버렸다.
노란 민들레꽃과, 하얀 토끼풀과, 거기에 귀한 토종 하얀 민들레까지…. 초록과 노랑과 하얀 꽃들이 바람에 살랑거리는 너무나 자연스런 그 아름다움이라니! 나는 왜, 그 무수한 날들을, 이 아름다운 꽃들을 뽑아 내지 않으면 안 되는 잡초들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벼도 잡초를 다 뽑아내고 키우면 경쟁력이 약해져서 바람이 세게 불면 넘어진다고 하고, 잡초와 함께 자란 벼들은 서로 경쟁을 하면서 뿌리를 깊게 내려 바람이 불어도 넘어지지 않는다고 하는데….
잔디와 잡초가 서로 조화를 이뤄 아름다움이 배(倍)가 되는 우리 집 잔디밭을 나는 좋아한다. 적당하게 깎아만 주면 또 꽃들이 군데군데 피고 지고, 잔디 깎을 때 풍기는 향긋한 풀냄새까지 너무 좋다. 우리 마을 이장님부터, 소방대장 아저씨까지 모두 우리 집에 놀러 오면 한마디씩 한다, "아니, 잔디 꼴이 이게 뭐여~." 그래도 나는 우리 집 잡초 잔디밭이 좋다.
왜 꼭 잔디밭에는 잔디만 살아야 하나. 거기에 더불어 잡초라 불리는 그 꽃들이 함께하면 이렇게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자연을 볼 수 있는데. 잔디도 생명력이 강하고, 잡초도 생명력이 강하다. 그래서 그 둘은 서로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게 가장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봄이다! 죽은 듯 메말랐던 나뭇가지들이 다시 우리들에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 집 잔디밭에 다시 온갖 꽃들이 활짝 피겠지, 오늘은 어떤 나무에서 새싹이 얼마나 올라왔나, 부추는 벌써 한 뼘이나 컸구나… 이거 구경하는 재미가 시골 사는 재미다.
부추꽃이랑 쑥갓꽃은 게으른 사람만 볼 수 있는 꽃이라던데, 나는 부추랑 쑥갓이랑 먹어보기만 했지 실제로 꽃을 피워 본 적이 없어서 꽃을 보려고 그냥 놔둔다. 부추꽃이 만발하면 경이롭다. 크고 화려한 모양의 둥그런 꽃들이 땅바닥에서 불꽃놀이를 제법 멋지게 한다. 쑥갓꽃의 하얀 꽃잎은 너무 하얘서 형광색처럼 빛나는 하얀색이다.
'잡초와의 전쟁'을 벌였던 내가 '잡초와의 평화'를 배웠다. 인생살이의 한 교훈으로 삼으려고 한다. 이해인 수녀님은 "색색의 빛깔로 피어난 채송화 꽃밭에서, 환한 햇살 받으면서 환해지는 마음, 나는 오늘도 '작은 자'의 행복을 누립니다"라고 했다. 나도 오늘 이렇게 작은 행복을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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