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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건 바닷물에 비친 산그림자가 고요한 염전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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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 |
| 그냥 그대로 앉아 죽읍시다. 바람결은 옛 바람 이오만 사람도 인정도 변하고 변해수다. 스레드지붕이 윙윙 운다.
오뉴월 염천의 햇볕은 보약 중에 보약이라 내소사의 송화 가루 노란 향기로 배겨서라
고무래에 묻은 인정이 어디 잘도 달아나리오. 마는 중국산 값싼 소금이 왜 그리 둔갑을 잘하는지요!
새우/갈치/밴댕이/멸치까지 진한 액젓 맛이 곰소라 하지만 옛 영화 간곳없이 을씨년스러운 천일염 덕장
나그네 깔깔한 속내 육담 좋은 전라도 아낙네 솜씨 구색 갖춘 떡 벌어 진 점심상 염전의 바람이 입맛 당긴다.
- 임인규 님의 시 <곰소 염전 > 전문 -
바람이 흐르는 곳에 마음도 함께 흐르는가 보다. 봄 햇살을 차창에 달고 달리다 보니 곰소 염전이 눈앞에 들어온다. 멀리서 바라보면 바다 같기도 하고, 논에 고인 물이랑이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다. 염전 옆엔 폐가 같은 집들이 나란히 세월을 이고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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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전의 작은 길을 걸어보는 아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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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 |
| 부안 줄포만에 위치한 곰소는 예로부터 젓갈과 소금으로 유명한 곳이다. 곰소라는 말은 소금이 많이 나는 지역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옛날에 '곰소'라는 말이 '소금'을 뜻하는 은어로 사용했다는 말을 들어보면 일리있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지금도 곰소는 천일염을 생산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런 천일염의 생산은 맛있는 젓갈로 이어져 인천의 소래포구, 강경 젓갈과 함께 젓갈 생산지로 명성을 떨쳤다. 지금도 곰소항은 김장철이면 젓갈을 사기 위해 전국에서 밀려드는 사람들로 문정성시를 이룬다.
겨울이면 젓갈을 사기 위해 사람들이 찾지만 봄(3월)이면 주꾸미를 먹기 위해 찾는 곳이 곰소이다. 3월 중순 경이면 부안 인근 앞바다와 곰소항 부근에서 건져 올린 주꾸미들이 맛객들을 유혹한다. 그러나 젓갈이 풍성하고 주꾸미 축제를 여는 곰소항은 곰소 염전과는 약간 떨어져 있다. 염전에서 자동차로 10분 정도 가야 곰소항이 나오고, 곰소항에서 10여분 더 달리면 <불멸의 이순신>을 촬영했던 모항이 나온다. 모항엔 드라마에서 전투에 사용되었던 거북선과 판옥선 세 척이 사공 잃은 배처럼 쓸쓸히 매어 있음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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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바람과 눈보라에 할퀴고 지난 저 모습 속엔 역사의 상흔이 남아있는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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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 |
| 곰소는 원래 하나의 섬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일제 때 일본인들이 부안에서 생산되는 질 좋은 농수산물을 수탈해가기 위해 진서면 연동에서 곰소까지 제방을 쌓고, 다시 곰소에서 작도까지 제방을 쌓고 도로를 개설하면서 지금의 곰소 염전이 형성되었다 한다. 어디를 가나 일제의 수탈 현장을 볼 수 있다는 것에 비애를 느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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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아직 단단함만은 버리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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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 |
| 2월 말의 염전은 쓸쓸하고 황량했다. 포근한 햇살과 바람이 아니었다면 인적이 뜸한 이곳은 폐촌의 삭막함에 짓눌려있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염전의 모습을 사진기에 한동안 담는 동안에도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도로 가까운 쪽은 바닥이 물기 하나 없이 바싹 말라 있고, 멀리 떨어진 곳에 염전에 물이 가득 고여 있다.
도로가에 죽 늘어서있는 염전창고는 뜯어지고 닳고 변색된 채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염전 창고 같은 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을까 싶었는데 인기척이 나 가보았다. 문패에 양제권이라고 쓰여 있다. 주인집 아주머니가 작은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닭구새끼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아 닭에게 모이를 주는 것 같았다. 인사를 하고 이것저것 물으니 친절히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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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량하기 그지없는 창고의 모습. 날이 따뜻해지면 여기에도 생기가 넘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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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 |
| 소금은 일 년에 한 번 정도 내는데 아직 날이 추워서 일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한다. 3월 중순이나 돼야 일을 시작한다며 4월 쯤 오면 소금을 볼 수 있고, 6, 7월쯤부터 생산하기 시작한다고 알려준다.
"지금은 여그가 이러지만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괜찮았어요. 요 금방이 다 염전이었응께." "엄청 났겠네요?" "그렸지요." "여기 사신 지는 얼마나 됐나요?" "요 집에서 소금농사 지은 지는 37년 정도 되었지라. 긍게 서른 살부터 염전을 시작했응게. 여그서 벌어서 자식들 공부시키고 시집 장가 보내고 그랬지. 지금은 그냥 두 늙은이가 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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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아주머니댁 한쪽엔 생명이 꿈틀대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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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 | 나이를 물으니 육십 칠세라 하면서 이름은 알려주지 않는다. 사진도 한사코 사양한다. 그러면서 소금이 나올 때면 사진을 찍으러 오는 사람이 많다고 알려준다.
"그런데 바닥에 있는 물은 뭐고, 지붕 아래 있는 물은 뭐래요?" "다 바닷물이지. 근디 저그 바닥에 있는 물은 싱건물이고, 쓰레트 지붕 안에 있는 물은 짠물이지라."
지금 염전 바닥에 있는 물은 소금기가 덜한 싱건물인데, 물이 없으면 바닥이 말라버려 갈라지고 하니까 짠물을 담기까지 놓아둔다고 한다. 그리고 그 물로 바닥을 청소하고, 갈라지고 패인 곳은 수리를 한 다음 날이 따뜻해지면 짠물을 올려 소금을 만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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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짠물을 보관해놓은 바닷물 창고. 싱건물(바닥에 고여있는 물)을 버린다음 짠물로 채워넣어야 소금을 만들 수 있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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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 |
| 소금은 한 구역당 30킬로그램짜리로 20개 정도 나온다고 한다. 그러면서 수입소금 때문에 옛날보다 여러 가지로 좋지 못한다며 짧은 한숨을 쉬며 웃는다.
"염전 창고는 지은 지 오래된 것 같은데 얼마나 되었나요?" "팔십 년, 구십 년쯤 됐을 성싶어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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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고 중간에 있던 주인잃은 집. 염전 역사의 부침을 말해주는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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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 |
| 오랜 세월 소금과 함께 살아온 창고엔 온기가 없다. 수많은 애환과 사연들을 담고 있을 창고는 말없이 비바람과 눈보라를 온몸으로 안은 채 저 자리에 수십 년 동안 서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창고 옆을 죽 걸어보니 문마다 자물통이 채워져 있는데 간혹 자물통도 없이 삐걱대는 것도 있다. 그리고 한 때는 살을 맞대고 짜디 짠 삶을 부대꼈을 빈 집도 보인다. 찢어진 저 창호지와 문살은 사연을 알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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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뜨거운 햇볕을 기다리면 고웁고 하얀 소금이 드러나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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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 |
| 아주머니와 헤어지며 사월 쯤 다시 오겠다고 하니 그때쯤은 볼 게 있다며 꼭 들르라 한다. 염전 바닥에 하얗게 빛날 소금을 생각하며 차안을 보니 아내가 피곤한 지 눈을 감고 있다가 배시시 웃는다. 아이들은 배고프다며 밥 먹으러 빨리 가자고 재촉한다. 시간을 보니 1시가 훌쩍 넘었다. 이 날 배고픔 속에 먹은 바지락죽은 꿀맛 그 자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