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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 족구 소식 ♡ 스크랩 [18호](칼럼)우리 족구에도 역사가 있다
김종환 추천 0 조회 36 14.11.27 09:1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2014년 11월 23일 일요일, 대한족구협회 임시총회가 열렸다. 이 총회에서 가장 큰 안건은 바로 두 협회, 대한족구협회와 한국족구협회의 통합이었다. 이 날 양측은 통합에 합의 했고, 대한족구협회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통합이 확정되었다. 족구인으로서 정말 기쁘기 그지 없는 소식이다.  11월 28일까지 대한체육회에 가맹서류를 제출, 2015년 3월 대한체육회의 심의를 거쳐 정식으로 준가맹이 된다면 전국체전 시범 종목채택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향후 2년 안에 큰 결격사유가 없다고 판단되면 대한체육회의 정식가맹과 동시에 전국체전 정식종목채택까지 이루어진다.

 

 전국체전에 족구의 입성은 우리 족구에 그야말로 경사다. 지금까지 우리 족구는 전국체전에서 동호인 종목에 불과했다. 지방으로 가는 비용은 물론 숙식까지 모두 선수들의 자비로 해결해야 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각 시도에서 유니폼 부터 선수들의 숙식까지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전국체전에서 단 하나의 메달이라도 더 추가하기 위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각 시도에서 알아서 팀을 만들어 운영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렇게 기쁜소식을 접한 날, 글을 쓰는 사명(?)을 가진 필자는 과연 무슨 글을 쓸까 상당히 고민을 했다. 그런 와중 우리 족구를 세계에 알리어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에 힘을 모으자고 말했던 많은 족구인들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이제 통합된 족구협회가 만들어져 족구를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첫 단추를 꿴 이날, 우리 족구를 세계에 알리려고 하는 우리의 뜻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찾는 것이 우선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우선되어야할 일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가 우리의 족구를 제대로 아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족구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우리 족구를 세계에 알리겠는가. 그리하여 필자는 우리 족구의 역사를 파헤쳐 보는 글을 쓰려고 한다. 하지만 필자는 많은 것을 알아내지 못하였다. 제대로 찾아내지 못하는 필자의 능력이 한스럽기도 하였지만 이를 알 수 있는 자료가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족구의 유래는 삼국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우리 조상들이 짚, 마른 풀등으로 만든 공으로 족구와 유사한 놀이를 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는 것이 우리 족구의 시작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그(이름조차도 전해지지 않고 있는)놀이로 인해 지금의 족구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조금 억지스러운 측면이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실제로 지금의 족구가 정확한 틀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이다.

 

 1966년, 당시 공군 11전투비행단 101전투비행대대소속이었던 정덕진 대위(공사9기)와 안택순 중위(공사14기)가 조종사들이 비상대기 시간 중 간단히 조종복을 입고 활주로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생각하다가 배구네트를 땅에 내려놓고 인원에 제한 없이 손을 제외한 모든 신체부위를 이용하여 세 번 안에 공을 넘기는 공놀이를 즐겼다. 당시엔 족구라는 이름도 없었고, 확실한 규칙도 없었다. 그저 재미있었고, 나름 운동도 되었기에 그들은 쉬는 시간 및 비상대기시간을 이용해 이 공놀이를 즐겼다.

 

 2년 뒤,1968년 정덕진 대위와 안택순 중위는 세부적인 규칙을 만들어 이를 국방부에 상신하였고, 국방부는 최우수 작품 선정과 동시에 국방부장관 표창과 당시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던 30만원의 상금을 수여했다. 이후 국방부는 이 규칙을 기록한 책자를 만들어 공군을 넘어 육군, 해군에까지 이를 전파하였고, 당시 그 공놀이의 이름은 '발공치기'였다. 전(全) 군에 알려진 이 '발공치기'는 전역한 이들이 휴식시간을 이용해 이를 즐기며 전국으로 확산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필자는 여기서 족구의 규칙을 처음으로 창안한 두 인물, 정덕진님과 안택순님을 주목하였다. 과연 이 분들은 어떤 분들이었고, 이 분들이 족구의 규칙을 만들때의 비하인드 스토리등을 알아보기로 했다.

 

 이 두 분에 대해 조사하던 중 정덕진님이 1997년 5월, 제5대 대한족구협회 회장으로 취임하신 사실과 1998년 4월 12일 교통사고로 작고하신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리하여 대한족구협회 홈페이지를 찾았고 역대 회장을 보았지만 그 분의 이름은 없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다시 조사를 하던 중 협회가 중간에 없어졌다가 재 창립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리고, 안택순님은 전국족구연합회 고문으로 계셨다는 사실을 알고 전국족구연합회 홈페이지를 찾았지만 역시나 고문 명단에 그 분은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필자는 정덕진님께서 묻혀계시는 그 곳만이라도 찾길 바라며 이른 바 '맨땅의 헤딩'을 시도했다. 공군홈페이지를 시작해 11전투비행단 카페, 공군사관학교 홈페이지까지 최대한 뒤져보았지만 그 분의 기록은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포기하려고 하는 순간, 마지막 희망이 하나 생각났다. 그야말로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이었다. 군인 출신이신 그 분이 어쩌면 국립묘지에 묻히시진 않았을까?  결국 국립묘지안장시스템을 찾았고, 현충원 및 호국원 홈페이지에서 '안장자 검색'에 그 분의 이름을 입력했다, 그렇게 그 분께서 대전현충원에 묻혀 있음을 알게되었다. 정말 기뻤다. 혹시 동명이인이 아닐까하고 고인의 인적사항을 일일이 체크했다. 공군장교라는 사실, 사망일자가 1998년 4월 11일, 우리에게 알려진 4월 12일과 거의 일치하는 날짜였기에 동일인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하지만 '족구의 아버지'라고 불리어도 되실 만한 분을 이러게 힘들게 찾아야 하는 이 현실이 너무나 아쉬웠다. 당장이라도 찾아가고 싶었지만 이는 머지 않은 날로 미뤘다. 그저 현충원 홈페이지에서 가능한 '사이버 참배'나마 드릴 수 밖에 없었다.

 

 

 사이버공간으로나마 참배를 드리며 필자는 마음속으로 그 분께 말씀드렸다.

 '당신이 만드신 그 공놀이가 이제 전국의 80만명의 동호인을 보유한 종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족구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첫 걸음인 협회의 통합이 이루어졌습니다. 너무 먼 길을 돌아온 것 같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늦게 당신을 찾아 더욱 죄송합니다. 이제 우리 후배들은 당신이 만드신 그 공놀이를 세계에 전하려고 합니다. 힘든 여정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믿습니다. 한 사람의 꿈은 꿈에 지나지 않지만 많은 이들의 꿈은 현실이 된다는 것을요. 부디 하늘에서 도와주십시요. 그리고 저희는 당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후배들이 되겠습니다.'

 

 그 옛날 단재 신채호 선생께서는 '역사를 잊은 민족은 죽은 민족이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만큼 우리의 역사가 소중하다는 것이다. 역사가 있었기에 현재가 있고 그리고 미래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찬란한 미래만을 바라보며 우리 족구의 역사는 너무 소홀히 하지 않았는지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수십년 전의 자료까지 공유하고 선배의 뜻을 기리는 외국의 스포츠와는 달리 우리는 있는 역사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통합된 협회에서 이분의 묘지에 찾아가 참배드리고 이 분의 가족들을 찾아 협회차원에서 감사패라도 하나 전달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필자의 쓸떼없는 생각일까?

 

 안장자 명단에 안택순님은 계시지 않았다. 또한 그 분의 기록을 찾기 위해 전국족구연합회에 직접 전화까지 해보았지만 알아 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게다가 사진 한 장 구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작은 희망이 하나 생겼다. 어쩌면 생존해 계실지도 모른다는 희망말이다. 공사 14기이신 그 분의 현재 연세는 어림잡아 72세에서 75세 정도. 우리 동호인들이 모두 마음을 모아 그 분을 찾아 '정말 감사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이야기라도 한 번 할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되었으면 좋겠다. 이미 고인이 되신 정덕진님은 어쩔 수 없어도 안택순님께 직접 감사패를 전달하는 것은 가능한일 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어쩌면 머지 않은 미래에 불가능한 일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분들의 업적을 기리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우리 후배들의 몫이다. 통합된 협회는 물론 족구의 발전을 외치는 이들이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이렇게 우리 족구의 뿌리를 찾는 것이 아닐까 싶다.

 

 에필로그

 필자는 안택순님의 근황을 알아보기위해 전국족구연합회 사무처장이신 유재영 사무처장님과 통화를 시도했다. 필자의 이야기를 들으신 사무처장님은 안택순님과 가까이 지내신 분께 알아봐 주신다고 말씀하셨다. 다음 날 다시 통화가 된 사무처장님은 안택순님과의 연락은 아쉽게 끊겼지만 당시 정덕진, 안택순님과 함께 근무하셨고 함께 족구의 규칙을 창안하셨다는 이은귀님을 소개해 주셨다. 현재 그 분께서는 광주광역시에 거주하고 계시고 전남과학대 족구학과 강사로 활동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힘들겠지만 필자는 광주로 꼭 내려가 그 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계획이다. 여쭤보고 싶은게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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