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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르바이잔 개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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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명 |
아제르바이잔공화국(Republic of Azerbaijan(영어), Azərbaycan Respublikas(아제르바이잔어)) |
위치 |
서남아시아 카스피(Caspian) 해 서쪽 |
면적 |
8만 6600㎢(한반도의 40%) |
민족 |
아제르바이잔인 90.6%, 다게스탄인 2.2%, 러시아인 1.8%, 아르메니아인 1.5%, 기타 3.9%(2006년 기준) |
언어 |
아제르바이잔어(공용어), 러시아어(상용어) |
기후 |
건조(중서부), 아열대(남부), 대륙성(북부) |
인구 |
940만(2013년) |
수도 |
바쿠(Baku) |
국가형태 |
공화제 |
정부형태 |
대통령제(중임제, 임기 5년) |
의회 |
단원제(125석, 임기 5년) |
종교 |
이슬람교(93.4%), 러시아 정교(2.5%) |
국내총생산(GDP) |
67.3(단위: US$10억) |
화폐단위 |
아제르바이잔마나트(Azerbaijan Manat, AZN) |
성스러운 불의 수호자, 불의 민족
인구 |
이란 1,200만 명, 아제르바이잔 887만 명, 조지아 320만 명, 터키 244만 명 등(2014년 CIA World Factbook) |
지역 |
러시아와 이란 사이 카스피 해 연안에 위치 |
언어 |
아제리어, 페르시아어, 러시아어, 터키어 |
문화적 특징 |
튀르크, 페르시아, 러시아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인접국 아르메니아와 조지아와도 문화적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
아제르바이잔 지도
아제르바이잔인은 이란(전체인구 중 약 16%인 1,200만 명 이상)과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전체인구 중 91.6% 이상인 약 887만 명, CIA World Factbook) 등지에 거주하는 튀르크계 민족이다.
아제르바이잔 국기
아제르바이잔인은 아제르바이잔어를 주로 쓰며 페르시아어, 러시아어, 터키어, 아랍어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아제르바이잔인은 이란에 제일 많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란 북서부 지방(이란령인 동아제르바이잔 주와 서아제르바이잔 주)의 주민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다. 또한, 이란의 수도 테헤란 인구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인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은 아제르바이잔인이 두 번째로 많이 사는 나라이다. 아제르바이잔에는 아르메니아인, 조지아인, 러시아인, 이란인, 튀르크인, 유대인, 쿠르트인, 타타르인을 비롯하여 탈리시인, 아르바인, 샤으다으인, 레즈긴인, 우크라이아인, 타트인, 사쿠르인, 우디인 등 많은 소수민족이 거주하고 있으며 그 중 아제르바이잔인이 주 민족이다. 아제르바이잔인은 이란과 아제르바이잔 이외에도 터키, 러시아, 조지아, 아르메니아, 중앙아시아 등지에 거주한다.
'아제르바이잔인'이란 의미는 무엇일까? 이 민족이 이와 같은 이름을 얻게 된 이유와 그 기원에 관해서는 많은 주장이 있다. '아제르바이잔'이란 이름은 페르시아어로 불을 의미하는 아자르(Āzar)와 수호자의 의미를 가지는 파예간(Pāyegān)이 결합한 말에서 파생되었으며, 이는 조로아스터교가 성행했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아제르바이잔인들은 이슬람이 전파되기 이전에 조로아스터교를 믿었으므로, 이들이 불과 관련된 이름을 얻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메디아지역의 태수였던 아트로파테아제르바이잔이란 이름의 기원으로 알려진다.
무슬림이 페르시아제국을 점령한 후 페르시아어가 아랍어로 대체되기 시작했으며 이에 따라, 아자르파예간은 아랍어 음가표기에 따라 아제르바이잔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즉, 아제르바이잔인의 의미는 불의 수호자라는 말에서 기원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인 주장으로는 '아제르바이잔'이란 이름은 다리우스 3세 시절 그리고 이후 알렉산더 대왕까지 메디아 지역의 태수였던 페르시아인 아트로파테(그리스어 표기 Aτρoπάτης / 영어 표기 Atropates)와 그가 다스렸던 지역을 '아트로파테네'라고 불렀던 것에서 기원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아트로파테'라는 이름은 옛 페르시아어의 그리스 음역인데, 당시 메디아 지역 사람들은 그가 다스리는 지역을 그의 이름을 따서 아트로파테네 즉, 성스러운 불에 의한 보호(수호), 성스러운 불의 지역(땅)으로 불렀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후 수 세기를 거쳐 아투르파타칸(Āturpātākān, 신성한 불이 보존된 곳)에서 현재의 아제르바이잔(아제르바이잔어 표기 Azərbaycan / 영어 표기 Azerbaijan)으로 변했다고 본다. 아제르바이잔이란 말은 현대 페르시아어로 '불의 땅'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바쿠 근처의 야나르 다그(Yanar Dağ) : ‘불타는 산’이라는 의미로, 지하에서 새어나오는 천연가스 때문에 불이 끊임없이 타오르고 있다.
이처럼 아제르바이잔인이 지닌 의미와 그 기원은 불과 관련된 것이다. 현재 아제르바이잔인이 사는 나라, 아제르바이잔은 오드라르 유르두(Odlar Yurdu) 즉, 불의 땅이라고 표현되는데, 이는 옛 아제르바이잔인의 기원과 전통을 현재에도 그대로 계승하는 표현이다. 신앙적인 측면 이외에도 아제르바이잔인이 불과 관련된 뜻이라는 점은 아제르바이잔의 천연자원과도 관련이 있다.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 근처에는 야나르 다그(Yanar Dağ), 불타는 산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는데 지하에서 새어 나오는 천연가스 때문에 불이 끊임없이 타오르는 신기한 광경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요소들이 현재의 아제르바이잔인의 이름에 흔적으로 남아있다.
아제르바이잔인들이 사는 곳은 수 세기 동안 페르시아인, 그리스인, 아랍인, 튀르크인, 몽골인, 러시아인들과 같은 많은 민족과 권력이 교차하던 곳이었다. 예로부터 실크로드의 중요한 길목에 있던 아제르바이잔인과 이 지역에 살던 원주민들은 실크로드를 통해 막대한 부와 이득을 얻으며 풍요롭게 살았다.
사산 왕조가 A.D 3세기 이후에 아제르바이잔 지역을 통치하기 시작했으며 7세기에는 아랍인들이 남캅카스 지역을 지배하며 이슬람을 전파했다. 11세기 이후 튀르크계 민족이 이동하여 이 지역은 점차 튀르크화 되었다. 따라서 현재의 아제르바이잔인들은 서쪽으로 이주한 오우즈 튀르크족(튀르크인들 가운데, 중앙아시아에서 서남쪽으로 이주한 일파, 오우즈 튀르크족이 세운 나라로는 터키,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이 있다)이 캅카스 원주민들과 섞이며 형성되었다고 본다.
아제르바이잔인은 아라스 강을 경계로 북쪽의 러시아령과 남쪽의 이란령 두 쪽으로 갈라져있다.
이어 몽골이 13세기에 침입하면서 이 지역은 14세기 말에 티무르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다 16세기 초 이란의 사파비왕조의 영향권 아래 들어갔다. 그 후 오스만 튀르크 제국이 16세기 말부터 통치했으나 17세기에 이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잃게 되었다. 19세기에 이르러서 아제르바이잔은 러시아와 페르시아 제국이 통치하는 지역으로 갈리게 되는데, 제1차 이란-러시아전쟁의 전후 처리를 위해 체결한 강화조약인 굴리스탄 조약(1813년)과 투르크만차이 조약(1828년)에 의해 러시아제국이 아라스(아라크스) 강 북쪽의 통치권을 손에 넣었다.
이후 아제르바이잔인은 아라스 강을 경계로 북쪽의 러시아령과 남쪽의 이란령 두 쪽으로 갈라져 살게 되었다. 따라서 지금의 이란 북부에 거주하는 아제르바이잔인들과 아제르바이잔에 사는 아제르바이잔인은 같은 민족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아제르바이잔인의 나라,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은 국토가 울창한 산림으로 둘러싸인 지역이다. 5,000년 전 아시리아 연대기에는 아제르바이잔 지역이 풍요로움 그 자체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이 지역은 성경에 에덴동산이 존재했던 곳으로 주장 되는 곳 중 하나이다.
캅카스 산맥을 흐르는 쿠라 강 지역은 밀과 야채를 경작하기 좋으며, 카스피 해를 따라 펼쳐진 아열대 기후의 렌캐란 저지대 부근에서는 시트러스 계열 과일을 비롯하여 차와 쌀을 경작한다. 또한, 캅카스 산맥은 많은 포도원과 과수원으로 둘러싸여 있다. 아제르바이잔은 목화로도 유명한데, 우즈베키스탄 다음으로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많은 목화를 재배하고 있다. 튀르크족의 유목문화를 반영하듯 아제르바이잔에서는 축산업 또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Salam, necəsiniz? 쌀람, 네제씨니즈?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지요?
아제리어는 튀르크계 언어로 튀르크멘어, 현대 터키어와 함께 오우즈 튀르크어 그룹에 속한다. 현재의 아제리어는 11세기 무렵 아제르바이잔 지역에 유입된 서 오우즈 튀르크 언어에서 파생되었다고 보며, 페르시아어 영향을 많이 받았다. 초기 오우즈 언어는 구어체가 많이 발달하였으나, 13세기 이후로 문어체가 발달하기 시작했다. 아제르바이잔인들은 아제리어 이외에도 페르시아어와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경우가 많다.
아제르바이잔에는 전 세계 이슬람교도의 대다수인 수니파보다 시아파가 더 많다. 아제르바이잔인의 일상생활에서 종교가 차지하는 비중이 비교적 적다고 볼 수 있으나, 이란에 거주하는 무슬림 아제르바이잔인은 더 신실하고 보수적이며 종교적으로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할 수 있다. 아제르바이잔인들은 이슬람교 이외에도 조로아스터교, 불교, 기독교, 바하교를 믿는 이들도 있으며, 이슬람 이전의 튀르크 민간신앙의 하나였던 애니미즘을 믿는 이들도 있다.
역사적으로 튀르크계 민족이 유입되기 이전까지 아제르바이잔 문화는 페르시아 영향아래 있었다. 이후 오우즈 튀르크족이 유입되어 이제르바이잔은 페르시아어, 아랍어 대신 튀르크어를 구사하고 조로아스터교에서 이슬람교를 믿기 시작하는 튀르크 문화권 안으로 들어갔다. 따라서 아제르바이잔인은 같은 오우즈 튀르크 족이 주 민족인 터키와도 언어, 문화적으로 많은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인의 명절 풍경
그러나 전통신앙이나 풍습에는 여전히 페르시아적인 요소가 남아있다. 구소련 시절에는 아제르바이잔 문화에 러시아 문화가 대량 유입되었으며, 아제르바이잔인들 중에는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많다.
아제르바이잔인은 노래를 매우 좋아하는 민족으로 그들의 삶 속에 펼쳐진 다양한 경험들을 노래로 표현해왔다. 수백 년을 걸쳐 희로애락을 민요에 담아냈으며 이를 기반으로 아제르바이잔 전통음악이 탄생했다. 아제르바이잔 전통음악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무감(Muğam)이다. 무감은 지역 문화를 바탕으로 형성되었는데, 악기연주와 함께 즉흥시 혹은 전통시가 등이 구연되며 매우 복잡한 구성을 띄고 있다.
아제르바이잔 전통 민속음악인 무감
무감은 약 9-10세기 생겨나 14세기 중앙아시아, 중동지역에서 유행한 민속음악의 한 형태이다. 무감에서 연주되는 악기는 대개 발현악기 중 하나인 타르(tar), 바이올린과 비슷한 카만차(kamança), 관악기의 일종인 발라반(balaban), 타악기이며 탬버린과 비슷하게 생긴 데프(dəf) 그리고 북과 같이 두드려서 소리를 내는 고샤나가라(Qoşanağara)로 구성된다.
고샤나가라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아제르바이잔 수도인 바쿠와 아르메니아 동부와 아제르바이잔 남서부지역 사이에 있는 가라바그(Qarabağ), 아제르바이잔의 도시인 시르반(Şirvan)에 무감을 가르치는 학교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무감은 2003년에 유네스코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된 바 있다.
아제르바이젠 가수 사비나 바바예바
무감은 비단 전통음악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창조되고 재해석되고 있다. 세계 각지의 유명한 음악가들이 참석한 2009년 국제 무감 축제에서 아제르바이잔 음악이 널리 알려진 바 있다.
또한, 2012 유로비전 음악 경연대회(유럽방송연맹 회원국의 각 대표단이 노래, 춤 등을 보이고 이를 시청자가 투표를 하여 우열을 가리는 유럽지역 노래 경연대회)가 바쿠에서 열렸는데, 아제르바이잔 대표 사비나 바바예바(Səbinə Babayeva)라는 가수가 무감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When The Music Dies'를 불러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사비나 바바예바는 전통타악기와 무감의 창법을 가미하여 노래를 불렀으며, 이 노래에는 무감 음악의 최고봉이라 알려진 알림 가시모프(Alim Qasımov)를 비롯하여 아제르바이잔의 정상급 음악가들이 참여했다. 이러한 지속적인 노력과 홍보 덕분에 무감은 아제르바이잔인의 대표적인 음악장르로서 자리매김했다.
아제르바이잔 음식은 수 세기 동안 그 지역에서 생겨나고 지나갔던 제국과 민족의 영향을 받았다. 페르시아와 튀르크 그리고 러시아 음식문화의 영향을 받았으며, 아르메니아 음식문화와도 많은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아제르바이잔인의 음식문화는 원주민, 터키, 아랍, 중국과 인도의 영향을 받았으며 실크로드를 통해 더욱 다채롭게 발전했다.
아제르바이잔 음식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음식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것과 자연에서 얻은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16세기 지역 통치자였던 압둘라 칸(II Abdulla xan Şeybani) 시기 영국 여행가 앤터니 제닉슨(Anthony Jenickson)이 왕가의 만찬에 참석했던 기록을 통해 이를 엿볼 수 있다.
"바닥에 음식들이 차려졌다. (내가 아는) 모든 종류의 음식들이 놓였다. 음식들은 그 종류에 따라(밀가루요리, 샐러드, 수프, 고기요리, 돌마, 후식, 음료 등으로) 나뉜다고 한다. 내가 얼추 세어보니 약 140가지에 가까운 음식이 있었다. 음식을 먹고 난 얼마 후에 음식들이 치워졌고, 다시 새로운 음식이 차려졌다. 이번에는 150가지에 육박하는 디저트와 과일들이 있었다. 이렇게 나는 290가지의 음식을 맛볼 수가 있었다."
아제르바이잔인 식사
피티
물론, 이 기록에는 인상적인 요소가 더 많으며 지역 통치자의 식사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과장된 면이 있겠지만, 이를 통해 옛 아제르바이잔인의 음식문화가 얼마나 다채롭고 화려했는지를 느낄 수 있다.
풍요로운 땅에서 언제나 과일과 채소를 얻을 수 있는 환경이 아제르바이잔인의 식탁을 풍요롭게 했으며, 이와 함께 다양한 조리법과 조리기구가 발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제르바이잔인은 텐디르(Təndir)라고 불리는 화덕에서 만든 빵을 주식으로 하며, 아제르바이자인의 전통음식은 고기류, 채소류, 유제품, 밀가루를 사용한 음식과 플로프(plov, 밥의 일종) 그리고 수프로 나뉜다.
과일과 고기를 얹은 플로프
특히, 같은 종류의 음식을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데, 피망이나 고추, 가지 등의 채소 속을 파서 안을 채워 찌거나 구워 먹는 돌마(dolma) 종류는 30가지가 넘으며 다양한 곡류를 사용한 플로프의 종류는 100여 가지가 넘는다. 그 중 양고기, 생선, 닭고기, 말린 과일, 우유, 달걀 등을 사용한 플로프가 대표적이다. 아제르바이잔인이 주로 사용하는 향신료로는 소금, 후추, 옻, 사프란 등이 있다.
파클라와
아제르바이잔인들이 마시는 차
아제르바이잔인이 즐기는 디저트로는 페이스트리 일종인 파클라바(Paxlava)와 견과류, 각종 씨앗과 설탕 그리고 밀가루로 만드는 쉐키 할바(Sheki Halva) 등이 있다. 파클라와와 할바는 터키와 중동지역에서도 널리 사랑받는 디저트이다.
캐비어
음료로는 홍차를 많이 마시는데, 산딸기, 장미, 체리, 가지, 토마토, 수박, 호두 등으로 만든 쨈이나 초콜릿, 비스킷 류 등의 단것을 같이 곁들어 먹는다. 아제르바이잔이 위치한 카스피 해 연안에는 천연자원이 많이 매장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이곳은 철갑상어의 주 서식지이다. 이곳에서 잡은 철갑상어로 세계적 진미 중 하나인 캐비어(철갑상어의 알을 소금에 절인 식품)를 만드는데, 아제르바이잔은 캐비어의 대량 수출국 중 단연 으뜸으로, 캐비어의 천국이라고도 불린다. 아제르바이잔을 비롯하여 러시아, 이란 등이 캐비어를 주요 수출하는 나라다.
아제르바이잔이 사는 캅카스 지역은 수천 년의 긴 역사를 가진 곳으로 여러 민족이 거주했던 혹은 거쳐 갔던 민족의 통로다. 아제르바이잔인은 여러 문화권의 흥망성쇠를 함께 겪었으며, 여러 민족의 터전이었던 캅카스 연안에 터전을 잡았다. 그 주변으로 조지아와 아르메니아가 국가를 형성하였으며, 이 이외에 여러 소수민족이 자치공화국이나 자치주를 구성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많은 민족이 충돌하고 화합했던 것은 아제르바이잔 지역이 중요한 의미를 가졌기 때문이다.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의 도심지 : 과거 서구열강의 각축장이었던 이곳은 현재에도 국제정치와 석유자원의 요충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재 이곳은 동서 세력권이 충돌하는 국제정치의 전략적 요충지인 동시에 카스피 해의 석유자원과 동서 물류의 중심에 위치하여 경제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문화적으로도 아제르바이잔인들은 튀르크족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터키와 함께 튀르크 문화권의 핵심 축이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아제르바이잔인은 러시아와 페르시아의 문화적 요소도 두루 지니고 있으며, 종교적으로도 이슬람 문명과 기독교 문명이 교차하는 충돌지역이자 완충지대에 살아왔다.
이렇듯 아제르바이잔인은 과거 서구열강의 각축장이었으며 현재에도 강대국들이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기회의 땅에 사는 셈이다. 아제르바이잔이 국제 사회, 경제, 정치 그리고 종교에 있어서 수많은 외적 갈등과 내적 갈등을 넘어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 이바지하게 될 그 날을 기대해 본다.
출처
아제르바이잔① 프로메테우스가 선택한 풍요의 땅
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기사 입력일 : 2014/12/12 ]
쉐히들러 모스크와 플레임 타워(바쿠=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 있는 순교자 묘지 공원 인근의 쉐히들러 모스크와 플레임 타워의 이색적인 모습. dklim@yna.co.kr
(바쿠=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아제르바이잔은 ‘불의 나라’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전해준 죄로 쇠사슬에 매달렸던 곳이자 불을 숭상하는 조로아스터교가 성행했던 곳이다. 지금 이곳 ‘불의 땅’이 365일 활활 타오르며 빠르게 변모하고 있다. 신비로운 과거와 눈부신 현대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여행자에게 흥미로운 풍경을 선사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은 한국인에게 낯선 나라다. 올림픽 때 이름만 겨우 한두 번 들어봤을 정도였다. 그래서 떠나기 전 그곳이 도대체 지구상 어디에 있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해외여행객 1천500만 명 시대를 앞두고 있지만 아제르바이잔을 여행한 사람은 손으로 꼽을 정도였고, 여행 정보도 찾기 힘들었다. 카스피해 연안에 자리한 미지의 나라는 인간의 발길이 닿기 어려운 아프리카나 남미의 오지처럼 여겨졌다. 또 무슨 볼거리가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수도 바쿠에 발을 내디딘 순간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곳에는 아름다운 중세의 성과 마을, 멋스러운 고층 빌딩이 즐비한 세련된 유럽이 펼쳐져 있었다. 또 히잡을 가장 먼저 벗어던진 이슬람 국가의 사람들은 자유롭고 유쾌하며 친절했다. 예측을 여지없이 깨뜨린 그곳에서의 여정이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견고한 아름다움의 메이든 타워(바쿠=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아제르바이잔 구시가의 상징적인 건축물인 메이든 타워의 아름다운 외관. dklim@yna.co.kr
◇중세로 떠나는 구시가 도보 여행
‘바쿠’는 ‘Bagh-kuh’(신의 언덕)와 ‘Bad-kube’(바람의 도시)라는 페르시아어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산바람이 심하게 부는 곳’이란 뜻을 품고 있다. 실제 바쿠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세찬 바람이 자연스럽게 옷깃을 부여잡게 한다.
바쿠는 주요 명소가 구시가(Icheri Sheher)를 중심으로 모여 있기 때문에 걸어서 돌아보는 것이 좋다. 물론 가장 먼저 향할 곳은 도심 서쪽의 구시가다. 구시가는 22만㎡로 궁전과 대상들의 숙소, 모스크, 탑, 목욕탕 그리고 미로 같은 골목 등 중세도시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도보 여행의 출발점을 구시가 남동쪽 입구의 메이든 타워(Maiden’s Tower, 처녀의 탑)로 삼고 시계 방향으로 돌아보는 것이 좋다.
12세기에 기원전 6~7세기의 구조물 위에 세워진 메이든 타워는 높이 29.5m, 직경 16.5m에 벽의 두께가 5m로 견고하면서도 우아한 건축물이다. 조로아스터교의 사원 또는 방어용 건축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메이든 타워에는 흥미로운 전설이 전해진다. 바쿠의 통치자가 자신의 딸에게 구애를 하자 난처한 입장에 처한 딸은 영토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높은 탑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하지만 탑이 완성되자 딸은 탑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죽어버렸다. 이 탑은 현재 침범할 수 없는 성역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탑의 내부는 반드시 방문해야 한다. 계단을 통해 꼭대기까지 오를 수 있는데, 메이든 타워의 역사와 건축 기술, 유물 등이 층마다 전시돼 있다. 정상부에서는 중세의 건축물과 거미줄 같은 골목길, 세련된 도심의 거리, 카스피해의 시원스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아제르바이잔 건축의 진주' 쉬르반샤 궁전(바쿠=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쉬르반샤 궁전은 단아한 외관과 화려한 내부가 무척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dklim@yna.co.kr
◇우아한 세련미의 쉬르반샤 궁전
메이든 타워 옆의 아치가 우아한 17세기의 시장 광장을 본 후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지금은 식당으로 사용되고 있는 옛 낙타 대상들의 숙소(Karavanseray)를 만날 수 있다. 화려한 문양의 카펫과 각종 장신구, 기념품을 판매하는 노점상을 통과하고 북문에 이르면 견고한 성벽이 가로막고 선다. 성벽은 중세와 현대를 뛰어넘는 ‘타임 워프’(Time Warp)다.
구시가의 서쪽 끝에는 ‘아제르바이잔 건축의 진주’라고 불리는 쉬르반샤 궁전(Shirvanshah’s Palace)이 자리한다. 이 건물은 15세기에 이브라임 1세(Ibrahim Ⅰ)가 대지진으로 인해 수도를 샤마흐(S amaxi)에서 바쿠로 옮길 때 구시가의 가장 높은 언덕에 건축했다. 단순하게 회색빛 암석을 깎아 만들었지만 세련되고 미려한 기둥과 외관, 화려한 기하학 문양이 무척 우아하게 느껴진다. 궁전에는 왕족의 생활공간과 재판소, 회의실, 모스크, 목욕탕 등이 있다. 현재 궁전은 아제르바이잔의 역사를 설명하고, 카펫과 무기, 도자기, 보석 등의 유물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지금은 허물어져 형체를 알아보기 어렵지만 목욕 공간 26개가 있었다는 목욕탕의 규모에는 혀가 내둘러진다.
구시가의 길은 반들반들한 사각형 돌로 포장돼 있다. 이채로운 석조 건물을 감상하며 천천히 걷다 보면 중세의 어디쯤을 여행하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번화한 분수 광장과 화려한 거리
구시가를 돌아봤다면 이제 중세에서 빠져나와 현재의 모습을 돌아볼 차례다. 구시가를 벗어나자마자 파리나 프랑크푸르트처럼 분주한 도심 풍경이 펼쳐진다.
구시가에서 북문을 나서면 번화한 분수 광장(Fountain Square)이 나타난다. 바닥에는 매끄러운 대리석이 깔려 있고, 다양한 형태의 분수가 여기저기에서 물줄기를 내뿜고 있는 곳으로, 한쪽에는 초록빛 공원이, 다른 한쪽에는 명품 상점과 레스토랑이 분포해 있다.
특히 분수 광장을 가로지르면 나타나는 니자미(Nizami) 거리는 바쿠 최고의 번화가로 서울 명동을 방불케 할 정도의 인파로 북적인다. 패션, 스포츠, 전자 제품 등을 파는 매장과 레스토랑, 바, 찻집이 들어선 우아한 유럽풍의 건물이 곧게 뻗은 거리 양쪽으로 늘어서 있고, 중앙에는 가로등이 가지런하게 서 있다. 가로등 아래에는 길을 거닐다 쉬어갈 수 있도록 벤치도 마련돼 있다. 세련되고 유행에 민감한 바쿠의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이 거리는 구소련 시절 정부 청사 인근까지 이어진다.
바쿠 최대의 번화가인 니자미 거리(바쿠=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니자미 거리는 바쿠 최대의 번화가이다. 해션, 스포츠, 전자제품 등을 파는 매장과 레스토랑, 바, 찻집이 유럽풍 건물에 들어서 있다. dklim@yna.co.kr
◇카스피해 연안의 낭만적인 공원
바쿠에서 마지막으로 둘러볼 곳은 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수변 공원인 불바르(Bulvar, Boulevard)다. 불바르는 도심 동쪽의 구소련 정부 청사 맞은편부터 가로 70m, 세로 35m의 거대한 아제르바이잔 국기가 높이 162m의 깃대에서 펄럭이는 서남쪽의 플래그 광장(Flag Square) 인근까지 카스피해 연안을 따라 곡선을 그리며 4㎞ 길이로 뻗어 있다.
수변 공원은 물가 쪽으로 산책로가 마련돼 있고, 안쪽으로는 싱그러운 초록빛 숲이 우거져 있다. 5년여 전 수변 공원을 조성하며 수입한 희귀한 나무와 고급스런 소나무가 숲을 이루듯 즐비하다. 다양한 명품 상점과 식당, 갤러리가 있는 바쿠 최초의 현대식 백화점인 ‘파크 불바르’(Park Bulvar)도 이곳에 있다.
산책로에서는 시원스럽게 펼쳐진 잔잔한 카스피해와 중세와 현대가 뒤섞인 도심의 모습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산책로를 따라 가족, 연인, 관광객이 한가롭게 발걸음을 옮기거나 산책로 아래 스탠드나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평화로운 광경도 목격할 수 있다. 시간이 된다면 중간중간에 만날 수 있는 카페에서 쉬어가는 것도 좋다. 달달한 과자에 향기로운 홍차를 마시며 바쿠인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황홀한 모습의 바쿠 야경(바쿠=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바쿠는 밤의 도시이다. 해가 저물면 건물들이 조명을 밝혀 화려함을 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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