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水滸傳•제 209편
우리 국구는 군주 경영을 선봉으로 삼아 먼저 보내고, 자신은 대군을 거느리고 뒤따라가기로 하였다. 경영은 꽃다운 나이 16세였으며, 용모도 꽃처럼 아름다운 처녀였다. 경영은 원래 우리의 친딸이 아니었다. 그녀의 친아버지 이름은 구신이며, 조상 때부터 분양부 개휴현의 면상이란 곳에 살았다. 그곳은 춘추시대에 진문공(晉文公)이 개자추(介子推)를 찾으러 왔다가, 그가 죽자 사당을 세운 곳이었다.
구신은 가산이 제법 있었으나, 나이 50이 되도록 대를 이을 아들이 없었다. 그리고 아내마저 죽자, 평요현 송유열의 딸을 후처로 맞이하여 경영을 낳았다. 경영이 열 살 때 송유열이 죽어, 송씨는 남편 구신과 함께 부친상을 치르러 가게 되었다. 평요현은 개휴현과 거리가 70여 리 떨어져 있었다. 송씨는 갑작스레 먼 길을 떠나게 되어, 경영을 집에 남겨두고 집사인 섭청 부부에게 잘 보살피라고 분부하였다. 그런데 송씨와 남편 구신이 도중에 강도를 만나, 구신은 죽고 송씨는 납치를 당했다.
도망쳐 온 장객들이 섭청에게 알렸다. 섭청은 비록 집사였지만, 의기가 있고 창봉을 잘 다루었다. 그 아내 안씨도 성실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 섭청은 구씨 친족들에게 그 일을 알리고 관아에도 보고하여, 강도들을 체포하고 주인의 시신을 장례 지냈다. 구씨 친족들은 양자를 세워 가업을 계승하게 하고, 섭청 부부에게 경영을 맡아 돌보게 하였다.
그로부터 1년 뒤에 전호가 반란을 일으켜 위승을 점거하고, 우리를 계휴현 면상으로 보내 재물을 약탈하고 사람들을 붙잡아오게 하였다. 그때 구씨의 양자는 병사들에게 살해당하고, 섭청 부부는 경영과 함께 붙잡혀 갔다. 우리는 자식이 없었는데, 경영의 용모가 깨끗하고 빼어난 것을 보고 아내 예씨에게 데리고 갔다. 자식을 낳지 못했던 예씨는 경영을 보자마자 사랑하게 되어 친딸처럼 여기며 보살펴 주었다.
경영은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영리하여, 그곳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아무리 둘러보아도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경영은 예씨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보고, 예씨에게 말해 섭청의 아내 안씨를 데려오게 하였다. 그리하여 안씨는 경영의 곁에서 잠시도 떠나지 않고 보살펴 주었다.
섭청은 붙잡혀 올 때에는 탈출하려고 마음먹었었는데, 아내가 경영과 함께 살게 되자 다시 생각했다.
“경영은 아직 나이가 어리고, 주인의 유일한 혈육이다. 만약 내가 가버리면, 그녀의 생사는 알 수 없게 될 것이다. 다행히 아내가 경영과 함께 있게 되었으니, 만약 기회가 온다면 함께 환난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되면 주인께서는 구천(九泉)에 계시더라도 편안히 눈을 감으실 수 있을 것이다.”
섭청은 우리에게 순종했고, 전쟁에 나가 공을 세우기도 했다. 우리는 안씨를 섭청에게 돌려주었다. 그때부터 안씨는 우리의 집을 출입하면서 경영에게 소식을 전해 주었다. 우리는 전호에게 아뢰어 섭청을 총관으로 봉했다.
섭청은 우리의 명을 받아 석실산으로 나무와 돌을 캐러 간 적이 있었다. 군사 하나가 산언덕 아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에 아름다운 돌이 하나 있는데, 눈처럼 새하얗고 흠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곳 주민들이 그 돌을 캐려고 했는데, 갑자기 벼락이 쳐서 돌을 캐던 사람들이 놀라 자빠졌다가 한참 후에야 깨어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손가락을 깨물며 서로 경계하여, 아무도 감히 가까이 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섭청은 그 말을 듣고 군사와 함께 언덕 아래로 가 보았다. 그때 사람들이 함성을 지르며 소리쳤다.
“기괴하다! 조금 전엔 분명히 흰 돌이었는데, 어떻게 부인의 시체로 변했을까?”
섭청이 다가가 자세히 보니, 놀랍게도 예전 주인이었던 송씨의 시신이었다. 얼굴은 생시와 똑같은데, 머리가 깨진 것으로 보아 언덕에서 굴러 떨어져 죽은 것 같았다. 섭청이 눈물을 흘리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전호 수하에서 말을 길렀던 한 군졸이 송씨가 붙잡혀 끌려오다가 죽게 된 경위를 자세히 얘기해 주었다.
“예전에 대왕께서 처음 군사를 일으켰을 때, 개휴현에서 저 여인을 붙잡아 부인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저 여인은 대왕의 뜻을 받아들일 듯하여 포박을 풀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와서 갑자기 언덕 위에서 몸을 던져 죽었습니다. 대왕은 여인이 죽은 것을 보고, 저에게 아래로 내려가서 의복과 장식품을 벗겨 오라고 명하였습니다. 저는 저 여인을 말에 태워 주기도 하고 의복을 벗기기도 했기 때문에, 그 얼굴을 잘 압니다. 틀림없이 그 여인입니다. 그런데 이미 3년이 넘게 지났는데, 시신이 어찌 이렇게 생생할까요?”
섭청은 그 말을 듣고 한없이 눈물을 흘리며 군사에게 말했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이 사람은 예전에 내 이웃에 살던 송씨네 딸이다.”
섭청이 군사들에게 시신을 흙으로 덮게 하였다. 그런데 흙으로 덮자 다시 흰 돌로 변했다. 사람들은 모두 놀라고 탄식하면서 돌을 캐러 갔다.
일을 끝내고 위승으로 돌아온 섭청은, 전호가 구신을 죽이고 송씨를 납치하였으며 송씨는 절개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택했다는 것을 안씨를 통해 경영에게 몰래 알려주었다.
경영은 부모의 죽음에 대해 알게 되자, 마치 수만 개의 화살이 가슴을 꿰뚫는 것만 같았다. 밤낮으로 소리를 삼키고 눈물을 흘렸으며, 부모의 원수를 갚겠다는 생각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날부터 밤에 잠이 들면 꿈속에 신인(神人)이 나타나서 말했다.
“네가 부모의 원수를 갚으려면 나에게 무예를 배워야 한다.”
경영은 총명하여 잠에서 깨어난 후에도 꿈에서 배운 것을 기억할 수 있었다. 그녀는 방문을 닫고 방안에서 봉술을 연습했다. 그로부터 날이 갈수록 경영의 무예는 능숙해졌다.
선화 4년 겨울 어느 날이었다. 경영이 저녁에 책상에 엎드려 졸고 있었는데, 문득 한 줄기 바람이 일어나면서 이상한 향기가 코를 찔렀다. 홀연 접힌 두건을 머리에 쓴 선비가 푸른 전포를 입은 젊은 장수를 데리고 와서 경영에게 돌 던지는 법을 가르치게 하였다. 그리고 선비가 경영에게 말했다.
“내가 고평에 가서 천첩성(天捷星)을 모셔왔다. 너에게 기이한 술법을 가르쳐 호랑이 굴에서 너를 구하고 부모의 원수를 갚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 장군은 너와 전생에 혼인의 인연이 있느니라.”
경영은 ‘전생에 혼인의 인연이 있다.’는 말을 듣고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졌다. 황급히 소매로 얼굴을 가리다가, 탁자 위의 가위가 소매에 걸려 떨어지면서 ‘쨍’하는 소리가 울리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났다. 차가운 달빛 아래 등불이 깜빡이고 있는데, 꿈속에서 본 것이 마치 그대로 눈앞에 있는 듯하여 꿈인지 아닌지 분간할 수 없었다. 경영은 자리에 앉아 한동안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 날, 경영은 돌 던지는 법을 기억해냈다. 담장 아래에서 달걀만한 둥근 돌을 골라 지붕의 치미를 향해 던졌다. 돌은 치미를 정통으로 맞혀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나면서 치미가 박살이 나서 기와조각들이 어지럽게 분분히 떨어졌다. 깜짝 놀란 예씨가 황망히 달려와 무슨 일인지 묻자, 경영은 교묘하게 얼버무려 말했다.
“어젯밤 꿈에 신인이 나타나서 말하기를, ‘너의 부친은 왕후가 될 운수가 있으니, 특별히 너에게 기이한 무예를 가르쳐 주러 왔노라. 너는 부친을 도와 공을 이루도록 해라.’라고 하였습니다. 조금 전에 시험 삼아 돌을 던져 보았더니, 생각지도 않게 치미에 적중하였습니다.”
예씨는 깜짝 놀라 그 말을 그대로 우리에게 전하였다. 우리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어, 즉시 경영을 불러 창·칼·봉 등등 여러 무기를 다루어 보게 했는데, 과연 익숙하게 잘 다루었다. 또 돌을 던져 보게 했더니, 백발백중이었다. 우리는 크게 놀라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정말 왕후가 될 복이 있어, 하늘이 이인(異人)을 보내 나를 돕는 모양이다.”
그날부터 우리는 경영에게 말 타기와 검술 등을 매일 가르쳤다. 경영의 무예 실력이 위승 성중을 떠들썩하게 했고, 사람들은 경영을 ‘경시족’이라 불렀다. 우리가 좋은 사윗감을 골라 경영을 혼인시키려고 하자, 경영이 예씨에게 말했다.
“만약 배필을 구해주시려면, 반드시 돌을 잘 던지는 사람을 골라 주세요. 다른 사람에게 시집보내면 저는 차라리 죽어 버릴 거예요.”
예씨가 그 말을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