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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봉, 그 왼쪽은 중청봉, 끝청봉, 앞 오른쪽 아래는 곰배령
뒤를 보여 주고
앞을 보여 주며
떨어지는 잎
(裏を見せ表を見せて散るもみじ)
―― 료칸(良寬, 1758~1831, 에도시대 승려 시인)
▶ 산행일시 : 2017년 10월 14일(토), 맑음
▶ 산행인원 : 14명(영희언니, 모닥불, 악수, 대간거사, 산정무한, 인치성, 상고대, 두루,
향상, 신가이버, 해마, 해피~, 불문, 메아리)
▶ 산행거리 : 도상 19.9km
▶ 산행시간 : 12시간 02분
▶ 교 통 편 : 두메 님 24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가급적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0 : 30 - 동서울터미널 출발
02 : 46 - 진동리 쇠나드리 근처
05 : 00 - 산행시작
06 : 08 - 884.6m봉
06 : 43 - 902.1m봉
07 : 08 - 894.5m봉
07 : 53 - 990.5m봉
09 : 20 - 유리봉(△1,104.4m)
09 : 50 - 1,162.3m봉
10 : 11 - 호랑이코빼기(1,214.4m)
10 : 30 - 1,182.7m봉
11 : 00 - 오작골(五作谷) 진입
11 : 52 ~ 12 : 28 - 신평동, 점심
13 : 30 - 964.1m봉
14 : 14 - 가칠봉(加漆峰, △1,165.0m)
14 : 53 - 1,093.0m봉
15 : 53 - 813.9m봉
16 : 27 - △762.3m봉
17 : 02 - 번이터(番伊垈), 진동3교
17 : 55 ~ 19 : 50 - 홍천, 목욕, 저녁
21 : 45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 산행지도(1)
2. 산행지도(2)
3. 가칠봉 정상에서
4. 단풍나무
5-1. 가을을 헤치며
5-2. 산행종점 번이터로 내리기 직전 적송 숲
【고고종단(固高縱斷)이란?】
‘고고종단’은 경남 고성군 삼산면 봉화산에서 강원도 고성군 고성산까지 종단하는 산줄기이
다. 대간거사 님의 고고종단 1구간 때의 산행공지 헌사를 부연한다.
“고고종단(경남 고성에서 강원 고성까지)은 금홍횡단(강릉 금진나루에서 남양주 홍유릉까
지)과 더불어 상고대 님의 역작이자, 오지산행팀 줄긋기 실력의 정화를 보여주는 모범사례
라 하겠습니다. 단맥, 분맥, 지맥 등 정체불명의 개념이 횡행하여 우열과 옥석을 가리기 힘든
난세에, 본 횡단, 종단은 과거의 졸렬한 맥 잇기와는 당최 비교가 불가한 신개념 국토답사행
정이라고 생각됩니다. 쉬워 보이지만, 막상 어려운 게 발상의 전환입니다. 세계 어느 곳에서
도 맛볼 수 없는 산행의 묘미를 즐겨보시려면, 오지산행팀 고고종단 일정과 함께!”
▶ 유리봉(△1,104.4m), 호랑이코빼기(1,214.4m)
02시 46분. 우리 차는 쇠나드리교까지 540m를 남겨둔 삼거리 갓길에 주차하였다. 쇠나드리
(牛灘洞, 바람불이)는 마을 안에 있는 내(川)의 여울이 급하고 바람이 세어서 소가 건너다니
기 힘들다고 한다. 거기에서는 이 밤에도 물소리와 바람소리가 요란하여 잠을 설칠지 모른
다. 기상 예고는 04시 30분이다. 밤안개 자욱한 한밤중, 중천의 스무닷새 그믐달은 물을 잔
뜩 먹었다. 우리는 히터 뜨뜻하게 틀어놓고 잔다.
04시 36분 기상. 자욱하던 안개는 거짓말처럼 물러갔다. 길섶 풀숲에 내린 이슬이 헤드램프
불빛 비추면 흰 눈이 수북이 내린 것처럼 보인다. 산행 들머리를 쇠나드리교로 잡았지만 여
기도 등고선이 같은 동심원의 호(弧)라 바로 생사면 치고 오르자고 한다. 너른 갈대밭에 이
슬이 마치 비가 내린 것 같다. 흠뻑 젖었다. 누구라도 선뜻 앞장서서 키 넘는 갈대숲을 뚫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 언제나 그렇듯 메아리 대장님이 수범을 보인다. 줄줄이 그 뒤를 따른다.
이슬 헤친다. 차다. 해가 뜨면 자취 없이 사라질 이슬이다.
그래서 이슬은 하이쿠나 지세이(辭世)의 소재로 흔히 쓰였다.
승려 시인 료칸이 자신의 앞과 뒤를 전부 보여준 비구니 데이신(貞心)에게 죽음을 앞두고
받아 적게 한 하이쿠다.
삶은 이슬 같아서 텅 비고 덧없다
나의 세월이 가버렸으니
떨고 부서지며
나도 사라져야 하리
일세를 풍미한 시대의 풍운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6~1598)도 죽을 때는 진지
했다. 그의 지세이다.
이슬로 떨어져 露と落ち
이슬로 사라지는 露と消えぬる
이 몸일까 わが身かな
오사카의 영화도 꿈속의 꿈 浪花のことは夢のまた夢
갈대 숲 헤치고 이슬 헤치고, 잡목 숲 헤치며 가파른 생사면을 오른다. 한 사람의 발자국으로
여러 사람이 간다. 암벽과 마주친다. 이곳저곳 쑤셔보지만 용이하지 않다. 뒤로 물러나서 돌
아가야 한다. 뒤로 물러남이 하필 내 앞에서 멈춘다. 내가 앞장선다. 갈대숲이 쓰러진 데를
골라 딛는다. 갈대 숲 벗어나면 온 사면이 울창한 잡목 숲이다. 납작 엎드려 냅다 뚫는다.
일로직등. 팔 걷어붙이고 스틱 짚어 박차 오른다. 풀숲과 잡목 숲이 번갈아 나온다. 대간거사
님은 아니나 다를까 밤일에도 강했다. 망망하고 어두컴컴한 사면을 누비더니만 반딧불 같은
헤드램프 불빛을 비춰 통통한 더덕을 연속해서 세 수나 뽑아낸다. 나라고 무에 못 할 거야 하
고 풀숲에 대깍 덤벼들었다가 잡목에 귀싸대기 휘갈기고 쫓겨난다.
가파르던 오르막이 수그러들고 쇠나드리교에서 오르는 능선과 만난다. 오지산행에서는 9년
전인 2008년 봄날 두무터에서 가칠봉을 넘어 이 길을 지나 쇠나드리교로 갔었다. 그때가 벌
써 옛날이다. 인적 희미한 등로는 그때보다 조금도 더 나아지지 않았다. 884.6m봉에서 휴식
한다. 잘 익은 덕산 명주 탁주로 목 추긴다.
오르내리는 굴곡은 봉봉 수효만큼 잦지만 완만하다. 여명은 장려했다. 대형 산불이 번지는
듯 긴 산릉 너머로 붉은 기운이 치솟는다. 숲속이라 수렴(樹簾)에 가리겠지만 해가 뜨려면
아직 멀었다는데도 믿지 못하여 열 걸음에 아홉 걸음은 뒤돌아본다. 눈이 어질어질해진다.
해는 902.1m봉 정상을 막 오를 때 눈부시게 솟았다.
6. 동은 트고 등로는 한층 고적하고
7. 대청봉
8. 수리취(떡취)
9. 유리봉(△1,104.4m) 오르는 도중 바라본 무명봉
10. 단풍나무
894.5m봉 넘으며 비로소 확신하게 되었다. 봉봉이 근래 드물었던 명산이다는 것을. 가는 걸
음에 너도나도 만리까지 방향 은은한 손맛을 본다. 전에도 그랬지만 오늘도 동원농산종묘 더
덕 씨를 3만원어치나 사왔다. 아울러 낙엽 들추고 파종한다. 새삼 떳떳한 기분이 든다. 990.5
m봉이 첨봉인데 힘 드는지 모르고 모른다.
중추가절이다. 아침 햇살이 울창한 숲속 속속들이 퍼지고 등로는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더욱
화려하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은 긴 오르막이라서 보다는 가도 가도 단풍 그 홍염에 둘러
싸였기 때문이다. 얼굴이 벌개져서 △1,104.4m봉을 오른다. 가시덤불이 무성한 너른 헬기장
이다. 김형수는 『韓國400山行記』에서 ‘유리봉’이라고 표시하였다. 또한 적지 않은 산꾼들
이 ‘유리봉’이라 부르고 있다. 삼각점은 ‘설악 316, 2005 재설’이다.
비슷한 표고의 봉봉을 넘는다. 1,162.3m봉에서 곰배령 가는 법정 탐방로와 만난다. 설피밭
점봉산 생태관리센터에서 오는 길이다. 등로 양쪽에 굵은 밧줄로 금줄을 쳤다. 갑자기 우리
발걸음이 신중해진다. 우선 말소리부터 죽인다. 혹시 공단직원을 만나 우리더러 어디서 오는
길이냐고 묻거든 당연히 생태관리센터에서 오는 길이라는 일치된 답변을 하자고 모의한다.
곰배령을 가려면 산림청 홈페이지나 진동리 지역 민박집에 예약을 하여야 한다. 1일 탐방인
원은 각각 300명으로 제한되며, 1인이 월 1회만 예약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조차 나중에 알
았다. 곰배령까지 1.2km나 남았는데도 공단직원에게 들킬까 불안하여 말소리 발소리 숨소
리 죽여 가며 주릉 오르기 전 안부에서 왼쪽의 펑퍼짐한 사면을 질러간다.
1,214.4m봉이 호랑이코빼기다. 교대로 나무숲 헤치고 발돋움하여 점봉산, 작은점봉산 그 아
래 아늑한 곰배령을 들여다본다. 점봉산은 스산한 게 이미 가을이 지나갔다. 등로는 묵은 고
랭지밭 같다. 사방 펑퍼짐하여 능선 마루금을 찾기가 어렵다. 1,182.7m봉에서 잠시 휴식한
다. 우리는 신포동으로 내리려고 한다. 여기서 가칠봉은 1.4km로 잠깐이겠지만 우리는 신포
동으로 내려 가칠봉 서릉을 오르려는 것이다. 산행거리는 도상 5.3km로 늘어난다.
첫발자국부터 방향착오다. 오작골(五作谷) 오른쪽 능선을 잡으려다 놓치고 말았다. 급전직
하하여 떨어진다. 대번에 고도 250m을 내린다. 1급 슬로프 코너링을 하도 자주 돌다 보니 어
지럽다. 그리고 오작골 최상류다. 이끼 낀 너덜 지나고 밀림의 덩굴 숲을 헤친다. 계류는 너
덜 사이로 잴잴 흐른다. 이쪽 산자락 헤집다 그나마 막히면 계류 건너 저쪽 산자락 더듬기를
반복한다.
오작골 2km를 내리는 데 50분이나 걸린다. 평지 2km이면 보통 30분이 걸린다. 가까스로 길
이 풀리자마자 신포동 마을이 가까웠다. 그 윗녘에 공단초소가 있다며 오른쪽 산자락을 크게
돌아내린다. 두메 님이 하산지점 정확히 농로 갓길에 주차하였다. 여태 휴식할 때마다 주전
부리하였지만 점심밥은 별개다. 아무렴 등산은 한껏 부른 뱃심에서 나온다.
11. 점봉산, 이미 가을이 다녀갔다
12. 단풍나무
13. 가리봉
14. 귀때기청봉
15. 단풍나무
16. 가리봉, 오른쪽 뒤는 안산, 왼쪽은 삼형제봉
17. 귀때기청봉, 오늘 전망의 한계치다
18. 대청봉
19. 멀리 가운데는 홍천 가리산
20. 앞 사진의 가리산을 확대하였다
▶ 가칠봉(加漆峰, △1,165.0m)
농로 덕분에 깊은 계곡을 수월히 건너고 콩밭 지나고 밭두렁 두른 그물 넘어 산자락에 붙는
다. 수직사면이다. 멀리서 바라볼 때도 그랬다. 964.1m봉이 대단한 첨봉이다. 대간거사 님이
앞장서서 낸 발자국계단을 따라 오른다. 이런 가파른 오르막에서는 예전에 간벌한 나뭇가지
를 비켜 가는 것이 아주 된 고역이다. 식후 부른 배에 힘을 주니 옆구리가 결린다. 오늘 산행
의 하이라이트라고 할만하다.
964.1m봉을 넘자 등로는 한결 부드러워진다. 비로소 고개 들어 어디 조망이 없을까 두루 살
핀다. 가리봉, 그 너머 안산, 귀때기청봉이 나뭇가지에 가려 감질나게 보일뿐이다. 등로 벗어
나 사면으로 내려 산 첩첩한 조망이 트일만한 데를 찾아보지만 별무소득이다. 저 앞 봉우리
는 어떨까 서둘러 가보면 이 역시 그 턱이다.
이제 가칠봉 정상까지 한 피치. 절벽이다. 오른쪽 사면으로 돌아서 올라도 별로 나아지지 않
는다. 긴다. 게거품 물고서야 가칠봉 정상이다. 정상 표지석 대신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서
있다. 이 정상에 구태여 출입금지 팻말을 세운 건 이 사실을 알았으니 앞으로는 올라오지 말
라는 뜻이리라. 삼각점은 ‘설악 315, 2005 복구’다. 사방 나무숲 둘러 조망은 시원찮고 땡볕
이 가득하여 그늘에서 휴식하다 단체 기념사진만 얼른 찍고 물러난다.
가칠봉의 이름은 이 산을 인접한 동리마다 그 유래를 달리한다. 귀둔리에서는 옻나무가 많이
있었다 하여, 방동리에서는 산이 높아 거칠게 보인다 하여, 진동리에서는 눈이 아물아물할
정도로 높다 하여 가칠봉이라 한다(국토지리정보원). 한자 새김으로 보아서는 귀둔리가 맞
다.
가칠봉 남릉을 내린다. 우선 180m 정도 동진하여 가칠봉 동봉을 올랐다가 남쪽으로 방향 꺾
는다. 1,093.0m봉은 능선이 세 갈래로 뻗어내려 독도주의 구간이다. 맨 오른쪽 능선 잡아 내
린다. 쭉쭉 내린다. 하늘 가린 숲속이다. 고개 들어 조망할 일이 없으니 그저 줄달음이다. 다
만 눈에 밟히는 더덕 중 실한 것을 고르느라 이따금 잠시 주춤할 뿐이다.
유일하게 하늘 트이는 특고압 송전탑을 지나고 약간 내렸다가 한 피치 오르면 813.9m봉이
다. 조경동 주변의 준봉들을 일람하고 다시 쏟아져 내린다. 우리는 번이터 진동3교 쪽으로
내리기로 했다. △762.3m봉 정상과 삼각점은 우리 등로에서 살짝 벗어났다. 해마 님이 후미
도우미로 갈림길에서 교통정리하며 기다려주고 나만 △762.3m봉 정상을 들른다. 풀숲에 묻
혀 있는 삼각점은 ‘현리 414, 2005 재설’이다.
진동리 방태천 쪽에서는 △762.3m봉이 숫제 침봉이다. 겁나게 떨어진다. 인적이 흐릿하여
우리가 새로 내는 길이 더 탄탄하다. 암릉이 아니어도 이리 가파른데 암릉 그 너머는 틀림없
이 절벽일 것이라 미리 오른쪽 사면으로 살금살금 돌아내린다. 울창한 아름드리 적송 숲이
나온다. 보기 좋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면 대부분 밑동 근처에 깊은 송진채취 상
흔을 안고 있다. 일제(日帝) 또 욕해준다.
어스름한 모색의 적송 숲 우러르며 내리면 418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번이터 진동3교 앞이
다. 오늘도 무사산행을 자축하는 하이파이브 힘차게 나눈다.
21. 가칠봉 정상에서
22. 쪽동백나무
23. 단풍나무
24. 가을을 헤치고
25. 인제는 웬만큼 높이만으로는 산 이름을 얻기 어렵다. 조경동 근처 1,037.5m봉
26. 삼형제봉
27. 가리봉과 삼형제봉
28. 산행종점 번이터로 내리기 직전 적송 숲
첫댓글 우연히 만난 신경수씨에게 약초꾼 아니냐고 물은 것은 어이없는 일이었네요. 뭐 눈에는 뭐 만 보인 격이었어유. ㅠㅠ.
신경수씨 산행기에 거사님일행 만났다는 글을 썼더군요
그래서 이차저차 아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신경수님을 만났군요~ 대충 근처를 돌아본 곳이네요~
날씨가 맑아 조망이 끝내줬을텐데, 그놈의 조망터가 나오질 않아 형님의 애가 많이도 끓었겠어요...그래도 간간이 보이는 조망이 훌륭합니다. 수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