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일에서 비롯되며, 천하의 큰일은 반드시 사소한 일에서 비롯된다. 일을 잘 다스리고자 한다면 반드시 그것이 작았을 때 해야 한다.
그러므로 ‘어려운 일은 쉬운 것에서부터 시작하고, 큰일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천 길이나 되는 제방도 개미구멍으로 무너지고, 백 척이나 되는 방도 굴뚝 사이의 불티로 재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백규(白圭)가 제방을 보수할 때 구멍을 막았으며, 장인(丈人)이 불을 진화할 때는 그 틈을 막았다. 그래서 백규 때는 수재가 없었으며, 장인 때는 화재가 없었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쉬운 일을 신중히 하여 어려움을 피하는 것이며, 작은 일을 잡도리하여 큰일을 멀리하는 것이다.(天下之難事必作於易, 天下之大事必作於細. 是以欲制物者於其細也. 故曰, 圖難於其易也, 爲大於其細也. 千丈之隄, 以螻蟻之穴潰. 百尺之室, 以突隙之烟焚. 故曰, 白圭之行隄也塞其穴, 丈人之愼火也塗其隙, 是以白圭無水難, 丈人無火患. 此皆愼易以避難, 敬細以遠大者也.)」
이 이야기는 《한비자(韓非子) 〈유노(喩老)〉》에 나오는데, 천 길이나 되는 제방도 개미구멍으로 무너진다는 말에서 유래하여, ‘제궤의혈’은 큰일을 하려면 작은 일부터 주의해야 한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한비는 이에 대한 예로 명의 편작(扁鵲)과 채(蔡)나라 환후(桓侯)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편작이 환공(桓公)을 보고 병이 피부에 있으니 치료하지 않으면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지만 환공은 자기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며 편작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닷새 뒤에 편작이 환후를 보고 병이 혈맥(血脈)에 들었으니 지금 치료하지 않으면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으나 환후는 역시 듣지 않았습니다. 다시 닷새 뒤에 찾아온 편작이 병이 위장에 들어 치료하지 않으면 병이 더 깊이 들게 될 것이라고 하였으나 환후는 이번에도 듣지 않았습니다.
또 닷새가 지나 편작은 환후를 뵙고는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다가 돌아갔습니다.
환후가 사람을 시켜 그 까닭을 묻자 편작이 대답했습니다. “피부에 든 병은 탕약과 바르는 약으로 고칠 수 있고, 혈맥에 든 병은 침석(鍼石)으로 고칠 수 있으며, 위장에 든 병은 화제(火劑)로 고칠 수 있으나, 골수까지 스며든 병은 운명을 관장하는 신도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환후의 병은 이제 골수에 들어갔습니다.”
환후는 닷새 뒤에 병이 나기 시작했는데, 사람을 보내 편작을 불렀으나 편작은 떠나고 없었고, 환후는 마침내 병으로 죽고 말았습니다.」《사기(史記) 〈편작창공열전(扁鵲倉公列傳)〉》
죽은 뒤에 약방문(藥方文)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지금 이 상황은 이미 늦었다고 보는데 아직도 미몽(迷夢)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참 측은합니다.
<‘조국흑서’의 공동 저자인 김경율 국민의힘 비대위원이 김건희 여사를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했다.
프랑스 왕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만큼 극적인 삶을 살다간 인물은 드물다. 세계적인 전기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는 “엄청난 운명의 수렁에 빠진 한 평범하기 그지없는 여인”으로 이 비극적 인물을 조명한다.
온갖 악덕, 타락, 사치, 방탕…. 그녀는 증오의 표적이었다. 물론 작가는 그녀의 경박하고 어리석은 짓에 대한 역사적 죄과도 분명히 지적했다. 사람들을 믿게 만든 ‘거짓의 탑’은 그냥 쌓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집권당의 공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 제3자 논평하듯 느닷없이 비극적 인물을 공개 소환한 것은 적절치 않았다. 무엇보다 일반인들로 하여금 과거와 현재의 두 여성을 오버랩시켜 불필요한 상상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다만 김 여사의 디올 백 사건이 감성의 문제라는 지적 자체는 짚어볼 필요가 있다.
용산은 이 사건의 본질은 함정 몰카, 정치 공작이라고 한다. 최근엔 문제의 목사가 김 여사 부친과의 친분을 내세워 접근했다는 해명도 내놓았다. 총선용 공작 냄새는 풀풀 난다. 그게 아니라면 왜 몰카 영상을 찍은 뒤 1년 이상 쥐고 있다가 총선 몇 개월도 안 남긴 시점에 ‘김건희 특검법’ 처리를 앞두고 폭로했겠나.
문제는 교묘하고 음험한 총선용 공작이라 해서 “근데 그걸 왜 받았느냐”는 일반인들의 의문이 해소되진 않는다는 점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과거 대통령 전용기 타고 인도 타지마할에 간 것과 비교하는 이들도 있다. 타지마할 전용기에 혀를 끌끌 찬 이들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디올 백 문제가 희석되진 않는다.
디올 백 사건은 엎질러진 물이다. 여야 진영에 얽매이지 않는 일반인들은 대통령 부부가 엎질러진 물을 어떻게 닦아낼지를 눈여겨봐 왔다. 용산은 처음엔 아무런 대응을 안 보이다 백을 포장도 뜯지 않은 채 대통령실 선물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새해 초 ‘김건희 특검’ 거부권 행사 때는 대통령비서실장이 제2부속실 설치, 특별감찰관 임명을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그뿐이었다. 제2부속실 설치 등은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여전히 격화소양 느낌이 드는 이유는 정작 사건의 당사자가 한 달 이상 관저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아무런 메시지도 내놓지 않고 있어서다. 그게 함정 몰카에 대한 분노 때문인지, 자괴감 때문인지, 또 다른 건이 나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인지 알 수는 없다.
사과를 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고 야권은 “대통령 물러나라”고 공세를 이어갈 것이므로 절대 사과를 하면 안 된다는 주장을 펴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엔 어느 쪽이든 명품백 이슈를 만든 이른바 작전세력은 속으로 쾌재를 부를 듯하다. 여권이 우왕좌왕하다 지나치게 방어에만 급급하며 점점 수렁에 빠져드는 꼴이란 얘기다.
조부, 증조부의 족보까지 파헤치고 낯 뜨거운 야담(野談)까지 끄집어내는 게 선거의 생리다. 감성을 자극하기 위해서다. 이번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지, 총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필자에겐 부차적인 이슈다.
최고 권력자 부부의 공적 처신과 책무가 이번 사건의 본질이란 얘기다. 영부인의 사적(私的) 행동이 촉발한 사건에 공적(公的) 역량이 얼마나 헛되이 소진되느냐의 문제다. 총선을 앞두고 가다듬을 정책, 국민에게 물어봐야 할 국가적 의제가 얼마나 많은가.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 ‘더 크라운’ 마지막 편에는 찰스 왕세자가 다이애나 비 사망 배후 의혹에 대해 수사관의 직접 신문을 받고 불편한 질문에 직접 대답하는 장면이 생생하게 나온다. 성격은 다르지만 명품백 문제에도 그런 식의 원칙과 법의 잣대를 적용할 순 없나.
당사자가 육성으로 정직하게 경위를 설명하고 사과할 건 사과하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합당한 처분을 받겠다고 하면 될 일 아닌가. 명품백 사건은 통치의 문제도 아니고 대통령 배우자의 사려 깊지 못한 행위, 보좌 기능 마비의 문제다. 이 단순한 문제 하나 풀지 못하고 ‘국민 걱정’을 언급한 한동훈 비대위원장과 용산이 정면충돌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으니 어이가 없다.
어떻게 하는 게 총선에 플러스가 되고 마이너스가 되느냐는 식의 접근은 여의도 문법일 뿐 일반 국민의 관심사가 아니다. “정직이 최상의 방책”이라는 경구가 새삼 떠오른다. 나아가 국가의 최고 리더는 팩트 못지않게 좋든 싫든 ‘국민 시선’에도 응대하고 설명할 의무가 있다.
그게 국민 신뢰를 얻고 국정의 힘을 확보하는 길이다. 공작에 당했다는 억울한 점이 있다 해도 자기 주변엔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모습, 국민은 그런 ‘의연한 태도’를 기대하고 있는데…. 그리 어려운 건가.>동아일보. 정용관 논설실장
출처 : 동아일보. 오피니언 정용관 칼럼, ‘함정 몰카’ 맞지만 그 얘길 듣고 싶은 게 아니다
김건희 여사가 공개 석상에서 모습을 감춘 지는 오래된 것 같습니다. 시점상 지난해 11월 유튜브 ‘서울의 소리’가 “김 여사가 윤 대통령 취임 후인 2022년 9월 13일 재미교포인 최재영 목사로부터 300만원 상당 디올 백을 선물 받았다”고 공개한 직후부터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해당 영상은 최 목사가 손목시계 몰래카메라로 촬영했고, 선물은 ‘서울의 소리’ 측이 준비했다고 합니다.
최근 김 여사 주변에선 “치밀하게 계획된 몰래카메라 범죄로, 이에 대한 선(先) 사과”를 요구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하는데, 최 목사 등이 가해자로, 이에 대한 사과가 먼저라는 취지인 것 같습니다.
여권에선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윤 대통령이나 김 여사가 진솔하게 입장을 밝히고, 사과나 유감 표명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고도 합니다. 상황 판단이 그렇게도 안 되는지 정말 궁금한데, 작정하고 함정을 만든 사람들이 무슨 사과를 하겠습니까? 그렇다고 경찰에서 이를 수사할 일입니까?
지금 이런 안일한 얘기들이 나오는 것을 보니 이선망입니다. 이번 선거가 폭 망할 것이 확실한데 그 책임은 전적으로 대통령과 대통령실에 있다고 봅니다.
정말 현실인식이 이 정도라면 더 기대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