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님, 침묵은 거짓을 진실로 만들기도 합니다. 왜 한마디를 그렇게 아끼십니까?” -엄상익(변호사)
나는 감옥에 있는 박근혜에게 편지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일주일에 천통씩 편지가 들어간다는 소리가 들렸다. 보지 않을 확률도 컸다. 그는 동생들의 면회도 거부하고 있었다. 유일하게 뜻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은 글 밖에 없었다. 나는 하얀 모니터를 앞에 놓고 영혼이 시키는 대로 키보드를 치기 시작했다. 존경하는 박근혜님께
지금 박근혜님의 고통에 절망에 공감하며 어떤 말도 위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힘드신 상황을 알지만 편지를 보내게 된 사연을 먼저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전 국정원장 이병호씨의 변호를 맡고 있습니다. 이병호씨는 저의 아파트 이웃집으로 또 같은 교회를 다니던 교우로 소박하게 살던 분이었습니다. 저는 퇴직금을 사기당한 그의 소송을 대리해 준 적이 있습니다. 당시 그는 변호비도 지급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제 사무실 앞에서 하늘을 향해 망연한 시선을 던지던 그의 뒷모습은 세상을 힘겨워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그가 칠십대 중반에 갑자기 국정원장이 됐다는 소식을 듣고 그것은 그의 인생에서 무슨 의미일까 생각해 보기도 했었습니다. 일본작가 소노아야코 여사는 늙어가는 법을 가르치는 책에서 육십이 넘으면 관직을 맡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그는 평생 정보기관에서 근무한 전문가였습니다. 그의 임명은 국정원을 순수한 정보기관으로 다시 탄생시키기 위한 박근혜 대통령의 선한 의지로 저는 생각했습니다. 오랫동안 이병호씨를 지켜보았습니다. 그는 정치적 야심도 물질적 탐욕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국정원장을 마친 그가 가진 전 재산은 소박한 연립주택 한 채와 통장에 든 약간의 현금이었습니다. 그게 노부부가 가진 전부였습니다. 그는 국정원장으로서 남은 특활비도 전부 반납하고 나온 청렴한 성품입니다. 그런 이병호씨가 지금 국정원 특수 활동비를 횡령해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뇌물로 바친 국고손실범이 되어 감옥에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이병호 국정원장이 공범이라는 것입니다. 이병호씨뿐만 아니라 법정에는 박근혜 정권의 다른 국정원장과 청와대 비서실장들이 함께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시대의 격류 속에서 이 사건은 그냥 유죄 쪽으로 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언론에 선동된 분노한 대중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 휘하의 국정원장들을 죽이라고 소리쳐 댑니다.
대통령의 눈과 귀가 되는 순수정보기관이라기 보다는 때로는 정적을 제압하는 몽둥이를 쥔 손과 발의 역할까지 수행한 것으로 압니다. 돈도 그렇습니다. 국가정보기관 내에 돈의 저수지를 구축해 두고 그 돈이 정치권등 여러 곳에 흘러가게 한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 후 전두환은 중정부장서리가 되었습니다. 세상은 그가 정보기관의 돈을 배경으로 정치권을 장악하고 당을 만들었다고 해석합니다. 정보기관의 돈이 정치판의 쌈지 돈이 되기도 하고 세월이 흐르면서 국민의 세금인 그 돈이 남용되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만든 정보기관은 탄생부터 그런 기형적인 구조를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정권은 그동안 관행같이 사용해 온 특활비 문제를 박근혜정권의 적폐로 만들어 도덕성에 타격을 가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리 적폐청산의 명분이 그럴 듯해도 한정된 몇 명만 골라 처벌하는 것이 정의인가에 의문을 가집니다. 목적이 정당해도 방법과 대상선정에 독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정치와 무관한 개인변호사로서 법정에서 원칙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법부가 정치나 혁명의 도구가 되지 말고 법대로 재판을 해야 합니다. 정치권력이 시스템화한 제도에 의해 제한되는 게 법치고 그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입니다.
그게 불명확한 데도 대통령의 국고손실을 추정하면서 일심 재판부는 이병호 전 국정원장에게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대통령이 국고를 손실했다는 증명이 없는데도 유죄판결이 선고된 것은 그런 배경에서 나온 소신 없는 결론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사건의 핵심은 간단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원 돈을 어떻게 인식했고 어디에다 어떻게 썼느냐 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그 한마디에 국정원장들과 청와대 비서실장들의 운명이 달려있습니다. 그러나 박근혜님의 그런 진술이 지금까지 기록의 어디에도 없습니다. 재판정의 판사나 검사 그리고 변호사들까지 박근혜님은 말을 할 리가 없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북에서는 죽여야 할 남측의 테러리스트가 되어있고 남에서는 대통령에게 뇌물을 상납한 파렴치범이 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노인인 그는 감옥 안에서 곧 죽을 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듭니다. 박근혜님 께서는 정년퇴직을 하고 평화롭게 살던 그를 왜 국정원장으로 임명하셨습니까? 죄인을 만들고 죽게 하려고 그러지는 않으셨겠죠. 제가 보기에는 나이든 다른 국정원장들이나 비서실장들의 모습도 비슷해 보입니다. 백발의 노인인 이원종 비서실장은 젊은 판사들 앞에서의 장시간 재판에 오줌이 마려워 피고인석에서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합니다.
법의 밥을 먹은 지 40년이 됩니다. 법의 해석은 정치상황에 따라 교활할 정도로 변하는 걸 봤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시절 권력에 굴복한 사법부의 정치재판이 많았습니다. 전두환 정권에서도 대법원장이 되고 싶어 정치권력과 야합한 대법관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훗날 그 대법관이 한강다리에서 떨어져 인생을 마감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습니다. 광주에서 벌어진 시위대가 폭도에서 시위군중으로 또다시 나중에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헌법기관으로 변하는 법해석도 보았습니다. 시위가 전두환 정권에서는 내란으로 노태우 정권에서는 민주화 운동으로 변하는 사법부의 이중성도 보았습니다. 저의 시각에서는 박근혜님의 정권도 검찰권력과 법을 이용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3년 전 자유 총연맹회장에 출마한 전직 경찰청장이 있었습니다. 청와대의 현직 비서관과 경합이 됐습니다. 선거 전날 검찰의 압수수색이 있었고 그는 구속이 됐습니다. 변호하러 간 저에게 담당검사가 뭐라고 말한 지 아십니까? 검사인 그가 하는 건 ‘정무’지 ‘수사’가 아니라는 겁니다. 매일저녁 상황을 청와대에 보고하고 그 지침을 받는다고 그 검사는 변호인인 제게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평범한 서민 변호사인 저는 분노했습니다. 청와대 민정수석의 잘못은 곧 박근혜님의 책임이었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몇 차례 칼럼을 통해 고발하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일도 있었습니다. 박근혜님의 정권 초에 KBS재단의 비리를 따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박근혜 대통령께 직접 진정을 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다 이상한 소리를 듣고 포기했습니다. 유력 일간지의 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호소하려면 문고리를 잡은 비서관에게 돈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일을 되면 성공보수도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믿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서민 변호사인 저에게 대통령은 깊은 궁궐 속에 들어있는 여왕 같은 존재였습니다. 이 사건 수사기록을 통해 비서관들의 행태를 일부 보았습니다. 비서관 중에는 사업가에게서 법인카드를 받아 사용한 사람도 있습니다. 고위 공무원 중에는 문고리 비서관을 만날 때 마다 돈을 준 사람도 있었습니다. 박근혜님을 오랫동안 수행한 비서관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제가 들었던 소문이 허황된 것 만은 아닐 수도 있다고 짐작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당시 저는 박근혜님도 역시 검찰 권력을 이용했다고 생각합니다.
박근혜님은 힘없는 사람들이 교만한 법에 의해 어떤 고통을 당하는지 아시는지요? 변호사를 하면서 억울하게 살인범으로 만들어지는 걸인을 보기도 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시절 고문을 당하고 죽어서 야산에 묻혀버린 사람도 보았습니다. 사법의 제단에 올려 진 것은 박근혜님이 처음이고 혼자만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세상은 그래왔습니다. 다만 필요한 것은 소크라테스의 독배나 예수님의 십자가같이 역사 앞에 남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동화에 나오는 소년같이 진실을 말하려고 애는 씁니다. 저는 박근혜 대통령이 돈에 있어서는 치사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나랏돈을 개인을 위해 착복할 분이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변호를 맡고 있는 이병호 전 국정원장도 국고를 손실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박근혜 님의 이런 한마디가 법정에서 꼭 필요합니다. “나는 돈에 대한 탐욕으로 공과 사를 구별 못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을 위해 국정수행은 했어도 국고를 손실하게 한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쉬운 한마디가 없습니다. 박근혜님 본인에 대한 재판을 거부하는 것은 자유일 것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에게 충성하고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이병호 전 국정원장에 대한 재판은 별개라는 생각입니다. 박근혜님은 침묵을 지켜서는 안 됩니다. 그 침묵이나 증언거부는 거짓을 진실로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국정원장과 비서실장들도 죽이고 있습니다. 왜 무의미한 동반자살을 원하시는 겁니까?
그러나 현실은 실망스러웠습니다. 저는 박근혜님의 심복이던 비서관에게 대통령이 개인 계좌에서 인출한 월급을 어디에 썼느냐고 물었습니다. 대통령이 사적으로 필요한 비용을 공금이 아닌 자신의 월급으로 사용한 사실을 입증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오랜 세월을 함께 해 온 수행비서를 통해 대통령의 인간성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몽둥이를 본 개처럼 그는 겁을 먹고 입을 다물었습니다. 나머지 비서관 두 사람은 증언을 거부했습니다. 비서관들 모두 배경에 겁먹고 말못할 사유를 짐작합니다. 그러나 수많은 선거를 함께 거치면서 이십년 세월의 주종관계가 이런 것인지 박근혜님께 되묻고 싶습니다.
그러나 관료주의에 길들여진 그들은 감히 그 런 요구를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변호사인 저는 박근혜님이 법정에 나와 진실을 말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실이 거짓으로 거짓이 진실이 되는 세상입니다. 침묵은 거짓을 진실로 만들기도 합니다. 왜 한마디를 그렇게 아끼십니까. 그 한마디만 있으면 감옥에서 죽어가고 있는 노인 이병호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이 법원의 다른 재판부에서도 박근혜가 증인으로 채택되었는데 안 나왔어요. 실효성이 없을 걸요.” 옆에 앉았던 변호사는 저에게 귓속말로 “박근혜 증인을 재판부에서 채택할 리가 없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오랜 세월 법정을 드나들면서 이런 경험을 종종 했습니다. 변호사는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에 대해 증인신청하는 게 의무이자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받아들이고 아니고는 판사의 책임입니다. 결정적인 증인을 거부하고 왜곡된 판결을 만든 법관이 있다면 그 가 그 불법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법정에 나와 진실을 말할 의무는 증인에게 있습니다. 그걸 회피해서 억울한 희생이 나오게 된다면 그건 증인의 양심이 담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재판장은 저의 고집을 받아들여 박근혜님을 증인으로 채택했습니다. 검찰도 체면을 의식했는지 이제야 공동증인으로 신청한다는 의사를 피력했습니다. 변호사가 신청을 하는데 입증책임을 진 검찰이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던 겁니다. 그렇게 해서 2018년10월19일 오후2시 증인신문일정이 잡혔습니다. 촉박한 일정입니다.
이건 부탁이 아닙니다. 박근혜님은 대통령으로서 대한민국의 헌법과 안보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던 분입니다. 법정에 나와서 진실을 말하셔야 합니다. 박근혜님께 충성하고 대한민국을 위해 김정은과 목숨을 걸고 싸운 이병호를 살리기 위해서 나오셔야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신 1979년 무렵 저는 법무장교로 서울지역의 군사법원에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내란죄로 군사법원에 끌려와 재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내란죄로 꾸민 정치적 모략이었습니다. 재판관들은 모두 허수아비였고 권력의 실세가 뒷방에서 그들을 원격조종하고 있었습니다. 모니터로 법정을 보면서 마네킹 같은 재판관들에게 수시로 쪽지를 보내 지시 하는 걸 저는 목격했습니다. 재판은 껍데기에 불과했습니다. 저는 김대중이라는 분이 군 검사가 작성한 조서의 끝에 쓴 글을 보고 놀랐습니다. 조서의 끝에 군 검사가 “마지막으로 할 말은 없나요?”라고 한 형식적인 질문에 예언 같은 말들을 또박또박한 글씨로 남겨놓은 걸 봤습니다. 저의 희미한 기억이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쓴 내용은 이렇습니다. ‘지금의 시대는 인정받지 못하겠지만 이십년이 흐르고 삼십년이 흐른 후 민주화가 오면 군사법원의 음침한 사무실에서 했던 나의 말들은 새로운 의미로 빛이 날 것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쓰레기 같은 모략조서라도 한자 한자 오탈자까지 직접 확인하고 자신의 손도장을 찍어두는 걸 보았습니다. 그 때 느꼈던 마음속의 울림이 육십대 중반이 넘은 지금도 저의 가슴속에서 파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수사나 법정에서의 말이나 글은 판사들만 보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관대하게 봐달라는 비굴한 호소도 아닙니다. 역사 앞에 영원히 살아있는 생생한 목소리입니다. 일제시대 악질 검사들이 독립 운동가를 조사한 수사기록은 지금 국립중앙도서관에 귀중한 자료로 남아있습니다. 당시 변호인들의 변론서는 역사적 유물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남긴 말이 세월이 흐르면 가장 귀한 보석이 됩니다. 5.16혁명재판소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신현확 장관도 가족이 오게 하여 자신의 말을 철저히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정치재판에서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재판장이라 할지라도 시간이 흐르면 역사 앞에서 더 큰 죄인이 되는 걸 저는 보았습니다.
대부분의 질문에 대해 박근혜 전 대통령은 몰랐다거나 기억이 없다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어떤 질문에 대해서는 “그렇게 말했을 수도 있다”라는 애매한 표현을 합니다. 검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현금을 최순실 에게 주어 의상비로 지급했다는 진술을 조서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현금이 대통령의 월급을 인출한 것인지 국정원의 공금을 사용한 것인지가 불분명합니다. 검찰은 이재만 비서관한테서 국정원에서 올라온 돈을 현찰로 대통령의 서재에 가져다 놓곤 했다는 진술을 확보해서 법정에 제출했습니다. 검찰의 조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의 세금으로 옷이나 해 입는 부패한 인물로 만든 것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조서의 끝부분에 검사가 “마지막으로 할 말이 없나요?”라고 묻자 박근혜님은 “없습니다”라고 간단하게 자필로 기재한 부분이 보였습니다. 정말 할 말이 없으셨습니까? 시대의 광풍이 불었습니다. 여성 대통령에 대한 더러운 소문이 황사처럼 세상을 덮었습니다. 그 소문은 시민들을 거리로 뛰쳐나오게 만들었습니다. 정말 할 말이 없으셨습니까? 누군가 신하가 대신 해줄 것 같습니까? 너희들과는 대화를 안 해, 라는 신분이 다르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신 건 아닙니까? 저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변호사로서 내가 맡은 한 노인의 누명을 벗겨줄 소명이 있고 박근혜님은 자신의 부하를 지켜줄 지도자로서의 의무가 있습니다. 증언에 응해 주셔야 합니다. 저는 박근혜님께 진실과 정의가 무엇인지를 물을 것입니다. 힘든 분에게 너무 말이 많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에 대해 조금 말씀을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가난한 집 아들이었던 저는 칠십년 대 초 고교시절 교련복을 입고 학생중대를 이끌고 학교 부근이었던 청와대 앞을 지나곤 했습니다. 청와대의 아치식 철문의 흰 창살 안쪽으로 파란 잔디가 보이곤 했습니다. 궁궐 같은 그 안에는 공주님이 살겠구나 상상하곤 했습니다. 그게 당시 여고에 다니던 박근혜님이었을 겁니다. 대학초년 시절 육영수여사가 불행을 맞이하셨습니다. 고지식하고 가난한 시민이었던 어머니는 국모가 돌아가셨다면서 청와대 앞으로 가서 대성통곡을 하셨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저 세상으로 가셨을 때도 어머니는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머니에게 박정희 대통령은 임금님이셨고 박근혜님은 신분이 다른 공주님이었습니다. 박근혜님이 대통령으로 된 이면에는 우리 어머니 같은 분들의 뒷받침이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졸업까지도 저의 숟가락은 미군야전병원에서 쓰던 것이었습니다. 방글라대시의 소년들을 소개한 영화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자라던 나의 모습이었습니다.
당시로서 저는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세월의 강물이 흐르고 대한민국은 부자나라가 됐습니다. 잘살아 보자면서 국민들을 한마음으로 묶어 번영을 이룬 박정희대통령의 공입니다. 수많은 국민들과 함께 저는 감사하고 있습니다.
금년에 나의 생업을 그만두기로 예정했었고 마지막손님이 이병호 전 국정원장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게 소시민인 저의 일생이었습니다. 저는 정치권력을 바란 적도 없고 부자가 되기를 꿈꾸지도 않았습니다. 서민의 아들로 타고난 작은 그릇대로 운명에 순응하고 주어진 직업에 충실하려고 노력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비슷한 나이인 박근혜님이 궁금해졌습니다.
저는 박근혜님에게 훌륭한 아버지가 남겨준 정신적 유산과 미처 다 못 이룬 청사진이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남긴 그 청사진 속에는 국민 한 사람 한사람이 억울한 눈물을 흘리지 않게 하는 따뜻한 민주주의가 있을 것이라고 소망했습니다. 시대조류가 강하게 소용돌이 치고 그 속에서 박근혜님은 지금 시대의 악으로까지 매도당하고 있습니다. 저는 시대의 책임이 한 사람의 지도자나 한 계급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박근혜님은 어떤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었습니까? 이제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박근혜님이 이 시대의 불시험을 통과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 캄캄한 밤을 지새우는 인내를 가지셨으면 합니다. 그래야 푸른 새벽의 여명을 보실 수 있을 것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 2019-02-25, 12:31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