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제가 2018년부터 작성해 온 글로써, 매년 조금씩 교정하여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종교라고 하면 기독교, 불교, 이런 것들이지만 교회 내에서 "종교"라고 하면 마음과 상관없이 행동만 하는 것(= 위선적인 행동)을 말하는데, 우리 주님이 그것을 얼마나 싫어하셨는지 복음서를 잠깐만 읽어봐도 여러 군데에 등장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종교가 아닌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입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교회를 다닌 뒤로 더 위선적인 사람이 됐다고 느끼는 분은 없으십니까? 종교는 위선을 낳게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는 그러한 위선과 가식에 지쳤기 때문에 더 갈급한 마음으로 진리를 찾게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오래전 부모님을 모시고 호주-뉴질랜드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같이 간 팀 중에 장로님, 권사님 부부가 둘이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장로님, 권사님 부부는 새벽 내내 싸우는 소리가 호텔에 쩌렁쩌렁하게 울렸고 또 다른 장로님은 세상 율법적인 분이었습니다. 우리 팀에 엄마랑 같이 온 미국 유학 중인 젊은 여자애가 하나 있었는데 그 아이의 옷차림을 볼 때마나 눈살을 찌푸리며 쯔쯔쯔 소리를 아주 크게 내며 지나갔고 권사님은 그런 남편을 어쩔 줄 몰라 하며 따라가던 모습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정말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나는 장면이 하나 있는데 우리 팀이 뉴질랜드 퀸스타운에 도착했을 때였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에 다들 넋을 잃고 황홀해하고 있었을 때, 젊은 뉴질랜드 남자 하나가 다가오더니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려 했습니다. 그때 같이 모여있던 사람들이 모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 제가 그 남자에게 우리 모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 했더니 그 남자도 아주 기뻐하면서 잠깐 얘기를 나누다 떠났습니다. 저도 그런 관광지에서 젊은 남자가 복음을 전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나 기뻤고, 그 사람이 복음을 전하려 했다는 얘길 장로님, 권사님 부부에게 전달해 드렸더니 맨날 밤마다 싸우던 장로님 권사님 부부도, 젊은 여자애 옷차림이 너무 거슬렸던 율법적인 그 장로님도 진심으로 기뻐하셨습니다. 그 순간 뭔가, 그 아름다운 퀸스타운의 저녁놀처럼, 우리들 가운데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그분들의 기쁨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분들도 주님을 사랑하고 복음이 전해지는 것을 기뻐했지만 복음으로 인해 자유케 되지 못한 부분이 있었기에 부부가 둘만 남으면 밤새 싸우거나 세상적인 사람을 보면 눈살을 찌푸리거나 했던 것이었지요.
이분들은 복음을 들었지만 복음의 핵심(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과 그분 안에 있는 정체성)을 깨닫지 못해, 주님을 사랑하면서도 변화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위선으로 가장해야만 했던 분들입니다.
(요 8: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지금 돌아보면, 그분들을 향한 사랑과 긍휼을 느끼며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차라리 장로, 권사가 되지 않았다면 위선으로 가장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
그 두 부부의 모습이 대충 우리 한국교회의 일반적인 모습이라는 사실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장로, 권사가 밤새 싸우기나 하다니”, “젊은 여자애의 옷차림에 나이 먹은 장로가 그렇게까지 반응할 게 뭐람?” 하면서 그분들을 정죄하고 비난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그분들의 한계가 느껴져서 한국교회 성도들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더욱 커지는 것 같습니다.
정말 우리 한국교회 성도들만큼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도 없는데 복음의 핵심(그리스도께서 이미 다 이루셨다는 사실)을 몰라서 가장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 서로 싸우고 위선으로 가장할 수밖에 없는 내 나라, 내 조국의 형제자매들에게 어쩌면 저는 큰 빚을 지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 때문에 계속 사역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요.
(나의 기도)
오, 주님.
저에게 사랑으로 찾아오셔서 복음의 진리로 저를 자유케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진리를 어떻게 전해야 제대로 전하는 것인지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그럴 때마다 당신의 조건 없는 사랑 안에서 안식하기를 선택하겠습니다.
내가 약할 때 주께서 강하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것도 아직 잘 모르겠지만
자신은 쇠하고 주님은 흥하길 기도했던 세례 요한처럼,
제 안에서 주님이 더욱 흥하시고 저의 육신과 옛사람의 흔적은 쇠하여지길 기도합니다.
저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주셔서 두려움 없이 아버지와 사귀게 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을 더 알기 원하고 주님의 사랑을 더 알기 원합니다.
저와 이 기도를 읽는 모든 분들께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주님의 사랑을 열어 보여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