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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콩나물국밥
비사벌 전주콩나물국밥
‘비사벌’은 백제시대 때 전주의 별칭이라고 한다. 따지고 보면 전주 전주콩나물국밥으로 역전 앞 같은 명칭인 것. 전주의 콩나물국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밥알 한 알 한 알에 국에 간을 더한 토렴 방식인 전주남부시장식이 있고, 팔팔 끓여내며 계란을 뚝배기에 넣어 제공하는 방식이 있다.
본래 전주 남문 밖 장터에서 시장 상인들이 새벽에 급하게 먹던 간이 음식이었기 때문에 너무 뜨겁지 않던 토렴 방식으로 먹었을 것이다. 비사벌 콩나물국밥 집은 대표적인 전주 콩나물국밥의 두 가지 방식이 혼용되어 있다. 팔팔 끓여 내지만 남부시장식처럼 수란을 따로 제공한다.
콩나물국은 대표적인 한국인의 해장 음식으로 잘 알려졌지만 의외로 해장 음식으로서의 역사는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1970년대 나이트클럽이 흥행하면서부터 술꾼의 해장국으로 변모했다고 한다.
국밥의 퀄리티를 많이 좌우하는 것 요소 중 하나가 밥이다. 뜨거운 국에 넣을 것이라 온도는 중요하지 않지만, 고슬고슬하게 지어졌는지가 중요하다. 이 집은 밥의 단단함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적당히 존재감을 뽐내면서도 국이 잘 배어드는 점성.
푸주옥에서 단지 가득 채워주었던 파처럼 이곳에서는 테이블마다 놓인 김통이 아주 든든하다. 얼마든지 넣어 먹으라는 넉넉한 인심과 “사장님~ 김 좀 더 주세요~” 더 달라는 요청을 받을 바에야 미리미리 넉넉히 채워 넣었을 면이 이 김통에 겹쳐 보인다.
김통을 열면 우주 같기도 하고 짙은 숲속 같기도 해서 잠시 김멍을 떄렸다. 핸드폰 바탕화면을 하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거의 김국을 먹었다. 앞서 소개한 설렁탕과 파의 오랜 역사처럼 콩나물국과 김의 조화는 천년의 역사라고 감히 미루어 짐작한다. 누군가 이 조합을 발명했다면 발명한 사람 상 줘야한다. 김 자체의 조미 정도가 강하지 않아서 많이 넣어도 짜지 않았으니 염분의 염려는 마시길.
메뉴판에 콩나물국밥과 모주 밖에 없다면 둘 다 먹어봐야 인지상정 아닌가. 언뜻 보면 믹스커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보면 좀 더 맑다. 막걸리에 계피, 생강, 감초, 한약재, 설탕을 넣었다는 설명처럼 은은한 계피향에 달달한 맛이 아주 포근하게 감긴다. 계피향 덕분에 와인에 계피와 과일들을 넣고 끓인 음료 뱅쇼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름하야 K-뱅쇼.
콩나물국에 대한 첫인상은 겨우 콩나물뿐이라 얕잡아 봤었다고 고백한다. 푸짐한 콩나물이 들어간 콩나물국에 쌀밥 그리고 밥만큼 들어갔던 김까지 더해 말아먹다 보니 완탕이 어려울 정도로 배가 불렀다. 만 원 이하의 이런 배부름이 허락되는 한 끼가 또 얼마나 더 있을까.
[3] 뼈해장국
풍년식당 뼈다귀해장국
코로나 이후로 24시간 영업, 늦은 시간까지 영업하는 곳들은 인기가 많다. 여기도 그렇다. 이웃 가게들은 슬슬 문을 닫는 평일 9시에도 줄을 서는 곳이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한파에 오늘은 사람이 없겠지 싶었던 날, 몸을 피할 심산으로 향했는데 그 추운 날씨에도 발을 동동거리며 가게 앞을 서성이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은 집이다.
“하면 된다”는 시선 강탈 액자 아래 사인과 낙서들이 그득하다. 줄 서고 들어온 보람이 괜히 있다. “오~ 맛있는 집인가 봐~” 자세히 들여다보면 유명한 듯 아닌 듯 아리송한 이름들이 있지만 코팅된 사인종이가 주는 괜한 믿음직스러움이 있다.
투가리(뚝배기)가 턱 하고 나오면 이 집 이름에 다시 눈이 간다. “아 이래서 풍년이구나.” 뚝배기 가득 풍년 그 자체를 보여주는 뼈다귀와 우거지의 산에 눈이 배부르다. 푸짐한 건더기에 비해 국물은 생각보다 존재감이 없는데 진하고 걸쭉한 맛이기 보다는 말간 닭도리탕 양념과 비슷한 맛이다. 한참 뼈를 발라내고 밥을 말아주면 한 수저에 고기 반 밥 반이다.
뼈다귀해장국이라고 하면 본래 소 뼈를 우려낸 해장국을 가리키는데, 요즘에는 돼지 등뼈를 쓰는 감자탕도 뼈다귀해장국이라고 많이 부른다. 풍년식당은 구황작물 감자를 넣지 않지만, 돼지 등뼈를 가리키는 감자를 썼다는 데에서 감자탕이라고 부를 수 있다.
문헌에 기록된 감자탕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지 않은데, 1899년 경인선 철도공사 때 많은 인부들이 철도공사에 동원되며 인부들을 먹이기 위한 저렴한 재료를 이용한 음식을 만들다 보니 돼지등뼈, 감자, 우거지 등이 재료로 사용된 감자탕이 탄생했다고 한다. 지금처럼 돼지 등뼈를 쓴 감자탕집이 많아진 것은 IMF 이후 가맹사업이 증가하며 통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반면 이 집은 1988년부터 이 자리를 지켜왔다고 하니, 돼지 등뼈를 다루는 집 중 유려한 역사를 자랑하는 곳임에 틀림없다.
이 깍두기로 말할 것 같으면, 넷플릭스 시리즈 <수리남>의 조우진이 떠오른다. 조연인 줄 알았더니 사실상 주연이었어. 무조건 다시 되돌려 보고 싶던 조우진 배우 장면처럼 무조건 리필할 수밖에 없는 맛이다. 극강의 시원함이 사이다를 씹어 먹는 맛인데 청량함이 이빨까지 전해진다. 이 표현이 말도 안 된다고 했던 동료는 며칠 후 이 집 깍두기를 맛보고는 왜 그렇게 말했는지 알겠다고 수긍했다. 이 집은 깍두기를 먹으러 가야 하는 곳이다.
각 국밥마다 음식사를 조금씩 살피다 보니 국밥이 얼마나 우리네 역사와 사회상을 깊게 관통하는 음식인지 새삼 깨닫는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쳐 일제강점기와 IMF까지 굵직한 역사 곁에서 국밥은 탄생하고 변모했다. 유구한 역사와 달리 대부분의 국밥집은 세월이 지나도 친절한 가격을 자랑한다. 저렴한 가격에 건강하고 든든하게 배가 부를 수 있는 이 음식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패스트푸드보다 빠른 K-국밥들이 더 다양하고 더 촘촘하게 우리 식생활에 스몄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