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설마 하던 일이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지구상 유래가 없는 현상이 지금 한국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바로 초 저출산율입니다.지난해 4분기 합계 출산율이 사상 처음 0.6명대로 떨어지며 '초저출산'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것을 보면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65를 기록하며 사상 처음으로 0.6명대를 기록한 것입니다. 가임기 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합계출산율은 0.65명으로, 전년 동기대비 0.05명 감소했습니다. 출생아 수는 줄고, 고령화로 사망자 수가 늘어나며 분기별 자연 감소도 처음으로 4만명을 넘어섰습니다.
지구상에 사는 동식물 그리고 곤충들도 개체수를 이루는데 주변 환경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습니다. 주변환경이 열악하면 개체수를 줄이고 환경이 좋아지면 출산을 확산하는 것입니다. 인간도 마찬가집니다. 아이를 키울 환경이 좋지 않으면 아이를 낳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은 아이를 낳고 키울 환경이 아주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저런 이유가 많겠지만 하여튼 한국의 젊은이들은 지금 정치 사회 경제적 현실이 아이를 낳기에 적합하지도 괜찮지도 않다고 판단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학자와 전문가들은 한국이 왜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초저출산율을 보일까에 대한 원인을 분석했습니다. 사교육비가 상상을 초월해서, 아파트값이 턱없이 비싸서,경쟁이 너무 심해서, 갈등이 너무 심해서 등등을 주요 이유로 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경쟁이 심하고 갈등이 심하고 아파트값이 비싸고 교육비가 비싼 나라가 한두개가 아닐텐데 유독 한국이 초저출산율을 보일까 의문이 들 때가 많습니다.
한국의 초저출산율에 대해 세계가 관심을 가지고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소멸할 나라로 한국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번에 한국이 또 다시 초저출산율을 갱신한데 대해 영국의 유명한 공영방송인 BBC가 한국의 저출산 상황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나섰습니다. 상당히 부끄럽고 자괴감이 들지만 한국인이 아닌 영국인의 시각에서 어떻게 보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해당 기사문은 BBC 서울 특파원이 작성한 것으로, 기사 상단에 "한국의 저출산 정책 입안자들이 정작 청년들과 여성의 필요는 듣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어 지난 1년간 전국을 다니며 한국 여성을 인터뷰했다"고 사족을 달았습니다. 한국의 정책 입안자들이 출산과 가장 직접적인 대상인 젊은이들 특히 여성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비꼼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BBC 특파원은 30대 여성의 경우 집안일과 육아를 똑같이 분담할 남자를 찾기 어렵고 저녁 8시에 퇴근하니 아이를 키울 시간이 나지 않고 자기 계발을 하지 않으면 낙오자가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자신을 더 힘들게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또 아이를 낳으면 직장을 떠나야 한다는 암묵적인 압박이 있다며 실제로 주변에서 아이 육아때문에 퇴사한 사람이 여럿 있다면서 육아휴직을 쓰면 해고되거나 승진에서 누락되곤 한다고 호소하는 인터뷰를 보도하고 있습니다.
또한 BBC는 출산율 감소의 주된 문제에 대해 한국 경제가 지난 50년간 고속 성장하면서 여성을 고등 교육과 일터로 밀어 넣고 야망을 키워줬지만, 정작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은 같은 속도로 발전하지 못했다면서 자신은 학창시절 남녀가 평등하다고 배웠지만 출산 후 사회적 경제적 압박을 받게 됐고 남편은 도와주지 않았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교육비가 한국에 존재하는 독특한 문화라면서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4세부터 수학, 영어 등의 비싼 수업을 받는데, 이는 한국 사회가 '아이를 실패하게 만들면 안 된다'라는 생각에서 비롯한 폐해라고 말하면서 한국은 아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즐겁지도 않고 아이도 행복하지도 않은 곳에서 아이를 낳는 것이 더 이상한 것 아니냐는 분석입니다.
실제로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나라로 손꼽힙니다. 삶의 만족도에서 OECD국가 가운데 최하위에 놓여 있습니다. 아무리 경제력이 높아져도 한국의 삶의 만족도는 밑바닥을 맴돌고 있습니다. 만족감이 없고 스스로 불행하다고 판단하는데 개체수를 늘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제 세계에서 가장 먼저 소멸하는 국가가 한국이라는 뉴스에 놀라는 사람도 없습니다. 너무도 익숙하고 당연한 일처럼 느껴집니다. 경각심도 사라진지 오래됐습니다. 의료분쟁에 핵심에 있는 의사들이 인구수는 급감하고 인공지능이 의사를 상당부분 대체하는 시점에서 의사수만 늘려서 무슨 효과가 있겠느냐는 주장이 그렇게 허언같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바로 이때문입니다.
2024년 2월 29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