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떤 도둑이 있었다.
그는 아들에게 자기의 기술을 모두 가르쳐 주었다.'
조선 초기의 학자 강희맹(1444~1504)이 쓴 <도자설>의 서두이다.
이 글은 그가 아들을 훈계하기 위해
지은 '훈자 5설' 가운데의 하나이다.
여러 도둑들이 아들 도둑을 칭찬하자
그의 아비는 자만에 빠진 아들을
경계하기 위해
어느날 밤 아들을 데리고
어느 부잣집 곳간으로 가서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
그리곤 밖에서 문을 닫고
자물쇠를 잠가버렸다.
일부러 자물쇠를 잠그는 소리를 내어
주인에게 들리도록 했다.
주인은 쫓아나와 살펴보았으나
자물쇠가 그대로 있는 것을 확인하고
안으로 발길을 돌렸다.
곳간 속에 갇힌 아들은
빠져나올 도리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손톱으로 박박 긁으며
소리를 냈다.
"곳간에 쥐가 든 게 틀림 없다."며
주인이 곳간 자물쇠를 열고
막 들어가려는 찰나
그때를 기다렸던 아들은
잽싸개 빠져나와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가족들이 모두 나와 도둑을 쫓으니
그는 연못을 끼고 달리다가
연못 속에 커다란 돌을 던졌다.
그러자 사람들은 에워싸고 도둑을 찾았다. 그 틈에 이들은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아들이 아버지를 원망하자
그의 아버지가 말했다.
"이제 너는 틀림없이 세상에서
독보적인 도둑이 될 것이다."
기술로는 해결되지 않는 것이 있다.
막힌 곳에서 스스로 뚫고 나오는 지혜야말로 몸소 체득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화두를 참구하는 문무관의 수행자들도
또한 이와 다르지 않으리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