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Symphony No.25 in G minor, K.183
(모차르트 / 교향곡 제25번)
Mozart, Symphony No.25 in G minor, K.183
(Karl Böhm, conductor)
(Wiener Philharmonike )
모차르트의 교향곡 창작 이력은 상상 이상으로 길다.
그가 첫 교향곡을 작곡한 것은 여덟 살 때인 1764년
런던 체류 중의 일인데, 이것은 그보다 24세나 연상이었던
요제프 하이든보다 겨우 5년 늦은 출발이었다.
그 후 그의 교향곡 창작은 이른바 ‘3대 교향곡’으로 불리는
마지막 세 작품이 나오는 1788년 여름까지 이어진다.
그러니까 모차르트는 불과 35년 남짓한 생애 중에서
무려 25년간에 걸쳐 교향곡 창작을 이어나갔던 것이다.
그런데 그 25년 가운데
1773년 10월 초에서 1774년 4월 초에 이르는 6개월간은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시기에 모차르트의 교향곡 양식이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1773년 여름에 빈으로 여행을 다녀온 후 모차르트는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교향곡 두 편을 쓰게 된다.
이 작품들에서 그는 이전까지의 이탈리아 풍
"신포니아" 스타일에서 탈피하여 오스트리아적인 스타일로
전향했고, 나아가 자신만의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두 교향곡은 바로 알프레드 아인슈타인이
기적과도 같은 작품들’이라고 찬사를 보냈던
25번 G단조와 29번 A장조였다.
세 번째 빈 여행
1773년 3월, 세 번째 이탈리아 여행에서 돌아온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에 억류될 위기에 처했다. 주군인 콜로레도 대주교가
그에게 궁정악사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할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는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작곡을 해야 했고
궁정악단 수석 바이올린 주자로서 정기적으로 무대에 올라야 했다.
여느 음악가라면 그런 안정된 직장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겠지만,
모차르트에게 있어서 한 곳에, 그것도 잘츠부르크처럼 답답한 곳에
얽매인다는 것은 차라리 죽느니만 못한 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여름이 되자 솔깃한 정보가 들려왔다.
빈의 궁정악장인 플로리안 가스만이 중병에 걸렸다는 소식이었다.
레오폴트 모차르트는 그것이 아들에게 좋은 기회가 되리라고 생각했다.
즉, 가스만이 물러나 빈 궁정악단에 빈자리가 생기면
거기에 아들을 앉혀볼 심산이었던 것이다.
제국의 수도인 빈은 음악적인 환경에서 잘츠부르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풍요로운 도시였고, 무엇보다 아들이
그토록 바라마지 않는 오페라를 작곡할 기회가 많은 곳이었다.
그래서 대주교가 요양 차 자리를 비우는 틈을 타서
다시 한 번 휴가를 얻어 아들과 함께 빈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를 알현한 순간,
그들의 기대는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황후 폐하께서는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이 친절하셨소.
그러나 그뿐이었소.”
<
오스트리아 빈의 쇤부른 궁전
질풍노도 운동의 영향
비록 희망은 좌절되었지만 보상은 있었다.
당시 빈의 문화계에서는‘질풍노도’(Sturm und Drang)의 사조가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클롭슈토크, 레싱, 괴테의 문학작품들이 인기를 끌었고,
강렬한 기운과 비장한 색채를 내세운 가스만, 하이든, 글루크 등의
음악 작품들이 각광을 받았다.
그러한 빈의 분위기는 사춘기 소년 모차르트의 영감을 자극했고,
그는 거기서 거둔 예술적 수확을 바탕으로 잘츠부르크로 돌아온 직후에
자신의 첫 번째 단조 교향곡인 교향곡 25번 G단조를 작곡했던 것이다.
이 곡을 완성한 것은 1773년 10월 5일의 일이었다.
한편 그로부터 6개월 후 모차르트는 다시금 진일보한 교향곡을 선보인다.
이번에는 함께 잘츠부르크 궁정악단에 몸담고 있던
미하엘 하이든의 영향을 받았는데,
미하엘은 다름 아닌 요제프 하이든의 동생이었다.
모차르트는 형인 요제프보다 덜 유명하면서 시인 같은 풍모를 지닌
미하엘 하이든에게 남다른 친근감을 느꼈다.
그는 미하엘의 많은 작품들에 대해서 통째로 베껴볼 가치가 있을 정도로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가 1774년 4월 6일에 완성한 교향곡 29번 A장조도
미하엘의 A장조 교향곡과 많이 닮아 있다.
하지만 물론 세부의 처리에 있어서는 모차르트의 작품이
더 세련되고 뛰어나다.
영화 "아마데우스"의 오프닝 장면에 사용되어
유명세를 타기도 했던 이 작품은 흔히
모차르트의 첫 번째 걸작 교향곡’으로 거론된다.
큰 사단조 교향곡’으로 불리는
훗날의 교향곡 40번 G단조에 비하여
작은 사단조 교향곡’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강렬하고 격정적인 작품에는
모차르트가 빈 여행에서 접했던
질풍노도 양식’의 영향이 현저한데,
특히 하이든의 교향곡 39번 G단조와의 연관성이 발견된다.
두 곡은 조성과 주제의 성격이 유사하고,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4대의 호른을 사용한 점도 공통된다.
그런가 하면 아인슈타인은 당대의 ‘수난 교향곡’이
항상 단조로 작곡되었던 사실을 지적하면서도, 이 작품은
감람산이나 십자가에 대한 경건한 생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완전히 개인적인 고뇌의 체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겼다.
그의 견해에 따른다면 이 곡은 이탈리아 여행부터 빈 여행까지
연이어 인생의 쓴 맛을 보았던 모차르트 내면에서 우러난
작품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교향곡 25번 1악장 첫머리는 영화 <아마데우스>의
오프닝 신에 사용되었다. 이 곡에서 모차르트는
오랜만에 미뉴에트를 포함한 4악장 구성을 취했다.
1악장은 분노한 듯한 표정의 제1주제와 이와는 대조적으로
다소 장난스러운 느낌의 제2주제가 절묘한 균형을 이루며
치열하고 치밀하게 전개된다.
특히 제1주제는 긴박한 싱커페이션 리듬, 폭넓은 음정,
급속히 상승하는 선율선을 특징으로 하는 것으로
대단히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2악장은 바이올린과 파곳의 대화로 시작되는 우아하면서도
우수 어린느린 악장인데,
중간에 부파(buffa)적인 경쾌한 선율이 등장하는
다소 이질적인 부분이 삽입되어 있다.
3악장은 강약의 대비가 두드러지는 짧고 정연한 미뉴에트로,
중간에 밝고 부드러운 트리오가 나온다.
4악장에서는 다시 첫 악장의 분위기로 돌아가 다시금
긴장감 넘치는 흐름이 부각된다.
1악장에 사용되었던 싱커페이션 리듬이 다시 나타나고,
예리한 리듬과 각진 선율이 강렬한 파토스를 표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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