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는데도
딸넘은 어지간하면 주말마다 친정에 와서 비빈다.
사위도 이젠 자기집보다 잠이 더 잘온다고 하는 터,
성심을 다하여 받들어주던 할미가 새벽같이
1박으로 거제도 여행을 떠난 이번 토요일은
독거노인같이 혼자있는 할비 밖에 없으니 제발 오지말거라~
노골적으로 말했었다.
안국동에 가족 볼 일이 있다기에
볼 일 마치고 그냥 귀가하라 했건만
불안한 예상대로 오후 늦게 우루르 몰려들었다.
어찌저찌 있던 밥으로 적당히 저녁을 때우고
요즘 온갖 게임에 빠져있는 큰손주와 체스를 한 판 두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일요일 아침.
초등학교 입학 2주차인 손주가 일찍 거실로 나온다.
오늘은 뒷동산 산책하고 도서관가서 책이나 볼까?
뒷동산은 힘들어서 싫다는 답이 바로 나온다.
예전에는 무조건 할비 말에 좋다고 따라나서던 녀석인데
이젠 좋고 싫고 의사표현이 너무 냉정하다.ㅜ
다음 공략대상인 둘째손주가 어리광을 부리며
엄마품에 안겨 나와 내게로 옮겨 온다.
저번에 본 도룡농알이 많이 자랐는데 우리 그거 보러 가자하니
신이나서 가자하는데 큰녀석은 옆에서 안간다며 집에 혼자 있겠단다.
리모컨 두개를 집어들며 이거 숨겨 놓을거니
다시 잘 생각하라며 안방에 들어갔다 나오니
큰녀석도 심드렁한 표정으로 이미 옷을 갈아 입고 있었다.
모처럼 딸넘도 닥달하여 네식구를 내보내고 나니 집안이 조용하다.
이제 서너시간은 문제없다.^^
한 시간정도 지난 후에
고구마 두개를 굽고 옥수수를 다시 쪄서 물병과 함께
작은 가방에 넣고 부지런히 꿈의 숲에 도착하니
멀리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들이 보인다.
두 어 시간을 즐겁게 놀고
지난 번 봤던 도룡농 알을 보러 집으로 가는 길에
숲길로 들어서서 둘째 손주 손을 꼭 잡고 걷는데
조금 가파른 길을 오르면서 '벽이다~' 소리친다.
무심결에 대답도 않고 다시 걷는데 길옆 가파르게 넓다란 바위를 보더니
또, '벽이다~' 외친다.
말이 워낙 늦게 터서 아직도 또래보다 발음이 명확치 않은 녀석이
가파른 길만 보면 '벽이다'를 외치는데
그 가파른 길이며 길옆 바위가 손주의 눈에는 벽같이 보였던 거란걸
순간 깨닫게 됐다.
다리를 구부리고 손주의 눈높이로 힘들게 몇 걸음 걸어보니
평소에 눈높이를 맟추지 못하고 대하던 내 모습이 생각나며
갑자기 내 자신에게 부끄러워졌다.
할비로서의 무조건적인 사랑보다
사랑으로 포장한 편협한 훈육이 앞선 것은 아닌지
눈높이를 맞춰 이해하려 해 본 적은 있었는지.....
도룡농알을 보고 조그만 손을 꼭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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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손주들과 보내는 시간은 마냥 즐겁고
그들의 시각에 놀라기도 하지요.
이들이 자라면 할비 할미는 안중에도
없겠지만요 ^^
어제 관악산에 갔는데, 아직 봄은
멀어서 추웠습니다. 고향 친구들과
과천에서 올랐습니다
바람이 제법 차갑더라구요~
산 위는 추웠을겁니다.^^
이제 한동안은 햇살은 따사롭고 그늘은 추운 날들이겠지요?~^^
어머나~~
이 글이 제 글인줄 착각했습니다.
주말마다 딸네 네 식구가 몰려야
집을 초토화 시키고 떠나거든요.
제발 제발~
저는 너무 힘들답니다.
울 큰손주도 초2
작은녀석 6살.
이 번잡함이 기운없는 할매는
너무 버겁습니다.
그래도
훗날 그리운 추억이 되겠지요?ㅋㅋ
ㅎㅎㅎ
우리 집 할미 힘센 김장군도 버거워 합니다.
아들네도 손주 나오면 봐줘야할텐데...걱정하면서요~^^
체력관리 잘하소서~~^^
우리집엔 자주 오지 않습니다.
내가 노골적으로 불편한 표정을 짓거든요.
누군가는 '악역' 을 해야 기강이 선다고
생각해요 ㅋ~ 실화입니다.
@앵커리지 내색했다가 마나님한테 역정들었습니다.
"할비가 하는 게 무어있냐고?~" ㅜㅜ
(자기 힘들까봐 그런건데..말도 못하고 ㅋ)
@앵커리지
잘 하셨어요.
사모님이 고마워하실 거예요.
저희도 뭔가
수를 내기는 해야될 것 같아요.
주말마다 우루루 몰려와 자고가는
딸가족. ㅎㅎ
행복한 풍경이 그려집니다.
손주와 눈높이를 맞추어 주시는
할아버지, 그 높이에 길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ㅎ
다행히 사위녀석이 할미표현으로 궁둥이가 가벼워서
이리 저리 도와주긴 하는데요~
성질머리 할비가 가끔 따끔하게 손주들 군기를 잡네요~^^
"바른자세!!" 하면서요~ㅜ
사실 아이들한테 잘해줘봤자 그들은 심드렁하고 안중에도 없습니다. 올때마다 바리바리 사다가 혹시 외벌이들이 필요할까봐 주는데 어느때보면 아들차 트렁크에 그냥 있답니다. 괜한 부모 짝사랑이죠..
단 둘이 남았는데 이상하게 생활비가 별로 줄지 않더군요~^^
어제는 할미없는 집에 딸넘과 사위가 저도 모르는 먹거리들을
척척 찾아서 해먹더라구요~ㅎ
그래도 나이들어가니 누구든 찾아오는 사람이 반갑데요.
아~~네^^
그 정도 나이 들면 아마 자주 안오겠지요?^^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는
참 다양합니다.
어느 집은 아들이 장가 안가서 손주 없어서 걱정이지요.
다복하십니다.
사실 손자 봐 줄수 있는 때가 좋은 시절이니요.
좋은 고생입니다.^^
네~집사람 생각이 그러한가 봅니다.^^
많이 받지 못했던 친정엄마의 사랑을 자식에겐
힘 닿는데 까지는 해주고 싶다는 데에는 할 말이 없더라구요^^
손주의 눈에는 바위가 벽처럼
느껴졌나 봅니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요.
이젠 자식들 오는 것도 귀찮아요.ㅎ
밥해 먹이는 것도 귀찮고요.
살아가는 이야기가 비슷비슷 한 것
같아요.
둥실 님 댁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어쩜 결혼한 딸들은 그리도 비슷한지요~ㅎ
없는 주말 약속 잡고 슬슬 피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