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도 한번 썼지만, 우리나라는 미국과는 달리 스포츠 경기 영상자료를 구하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돈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자료 구할 방법 자체가 드뭅니다.
그런 면에서 한 개인 소장가(국대 경기 수집가)를 작년부터 알게되어 다시 90년대 남자농구 중국전 경기를 보는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이름을 밝히지 말라는 부탁이 있으셔서 언급은 못 합니다만, 감사드립니다.
’95년 ABC는 서울에서 열린 지라 지금 썬더스 홈구장에서 직접 가 보신 분이 많은 경기입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경기 회고를 하고자 합니다.
비디오에는 광고로 탤런트 박상원이 연미복 입고 당시에는 첨단이던 시티맨 핸드폰을 선전했습니다.
체육관에는 여학생들이 엄청나게 많아서 당시 열광적인 농구 열기를 실감나게 해주었습니다. 아나운서는 박영만 선생… 해설은 한창도 선생이 하셨습니다.
한국은 이인표 감독, 감동광, 최인선 코치가 중국은 장신콴 감독에 공루밍 코치였습니다.
경기 총평 : 한 마디로 ’99년 후쿠오카 ABC처럼 외곽슛이 너무 안 들어가서 졌습니다.
경기 운영 : 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처럼 경기 템포는 정상적으로 운영되었습니다. 즉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시종일관 접전 속에 역전 한 차례를 해 보고 12점에서 9점차 벽이 계속 유지되어 결국 9점차로 중국이 승리합니다.
한국은 스타팅이 정경호, 허재, 강동희, 문경은, 오성식이 중국은 아딜쟌, 순준, 후웨이동, 우나이퀸, 샨타오였습니다.
공격 : 이인표 감독은 스몰 포드에 문경은과 우지원을 번갈아 가며 기용했고, 잘 알려진 것처럼 허재와 강동희가 좌우 코너에서 베이스 라인을 타고 돌파 해 들어가다 킥 아웃해 만들어준 외곽슛 찬스에서 문은 전반에 3점슛을 6차례 던져 1번 성공하고 후반에도 4번 던져 다 안들어갔고, 우지원도 4번 던져 다 안들어갔습니다. 수비나 돌파를 애초부터 기대할 수 없는 문과 우를 기용한 이유는 3점일텐데… 답답함보다 벤치에 계속 앉아 있는 김영만을 보며 이인표 감독이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득점은 강동희와 허재의 3점… 강동희가 가로채면 허재가 속공 피니쉬… 아니면 허재와 강동희의 픽앤롤에 의한 골밑 득점…
중국은 전통적인 엔트리 패싱에 이은 샨타오(215cm)의 덩크 아니면 번갈아 나온 2m 파워 포드 3인방(우나이퀸, 공샤오빈, 류우동)의 피벗후 골밑슛 + 아딜쟌의 백업 포인트 가드인 우칭롱(187cm 배가 약간 나온 콧털 기른 아저씨)의 3점 5방에 후웨이동의 좌우 코너 3점슛 4방(에다 속공 덩크 한 방까지)였습니다.
아래 수비 편에서 후술합니다만, 공격 조직력 자체도 문제가 여전했습니다. ’80년대 이충희, 김현준,허재, 김유택 라인업 시절 남자농구 대표팀 체제가 세대 교체된 후 ’90년대부터 대두된 공격시의 문제점들.. 즉 외곽 슈터들에게 스크린 잘 안 걸어주기가 이 경기에도 계속 되었습니다. 전반 초 작전 타임 시간에 이인표 감독이 전희철과 현주엽에게 스크린 걸어주라고 야단쳤음에도 ’03년도 하얼빈 ABC 때 문경은의 3점슛 발사를 위한 창수형 같은 헌신적인 스크린 플레이가 별로 안 나와서 외곽슛이 그토록 안 들어가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수비 : 20점차 이상 대패한 ’93년 자카르타 ABC와 ’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중국전과는 달리, 더구나 김유택이 대표팀 은퇴하고 서장훈이 미국 유학 가버린 센터 없는 농구였는데도, 9점차로 패배한 것은, 90년대 한국 남자농구 대표팀의 고질병인 서서 농구하기가 아닌 움직이면서 협력 수비하기 이루어져 수비 조직력이 비교적 탄탄했고,
선수 전원의 적극적인 리바운드 가담이 압도적인 높이의 열세에도 제공권 면에서 KO패가 아닌 판정패 정도의 차이만 나게 했습니다.
단신팀이 장신팀 상대시, 몸싸움이 치열한 골밑일수록 소모전이 필수적인데, 이 경기에서 한국이 비교적 골밑 초토화가 덜 된 공은 소모전이 나온 덕입니다. 전희철과 조동기, 현주엽의 5반칙에 정경호, 정재근이 4반칙… 총력적인 육탄 방어였습니다.
얘기가 벗어나지만, 올해 카타르 도하에서 9월초 열리는 아시아선수권(ABC) 겸 06년 일본세계선수권 아시아 예선전에서도 야오밍의 중국에 이기려면 당연히 4명 이상 5반칙 퇴장 당할 각오를 하고 소모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95년으로 돌아오자면, 우리 대표팀은 구조적인 센터진의 높이 차이로 2-3 지역방어를 쓴 지라, 3점슛을 너무 많이 얻어 맞았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래서 프런트 코트의 장신화가 절실하다. 그래야 상대팀의 외곽슛에 취약한 2-3 지역방어를 안 써도 된다. 요즘 3점슛 못 넣는 나라는 없다. 특히 키 큰 유럽 대표팀들...)
중국은 전통적인 아시아 최강자답게 대인방어로 일관했고, 키 큰 포드들이 페이스 가드(밀착 방어)하는지라, 키 작은 우리 슈터들의 적중률이 당연히 떨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 두해 계속 된 일도 아니고… 조성원이나 조상현처럼 키 작은 슈터들의 레바논이나 중국전 기용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키는 조 브라더스들 보다 상대적으로 커도 방가의 난사는 반드시 고쳐야 하지만...
허재 : 74년 독일 월드컵 준우승 팀 MVP 요한 쿠루이프처럼, 준우승팀 최우수 선수답게... 아시아 역사상 최고 가드다웠습니다. 공수에서… 내외곽에서... 경기 지배력… 마크하던 순준과 후웨이동을 모두 5반칙 퇴장시켰습니다.
강동희 : 역시 중국 1번 아딜쟌과 우칭롱보다 한 수위였고, 이 때는 날씬해서 속공 레이업도 했지만, 팀은 졌습니다.
현주엽과 전희철 : 수비 리바운드와 몸빵 수비는 박수 보낼만 했습니다만, 전은 중거리 실패가 너무 많았고(전희철의 중국전 외곽슛은 90년대 후반부터 들어간다), 현은 강동희와 허재가 칼 같은 엔트리 패스 넣어줘도 골밑슛 하다 블락(샨타오와 류우동에게 각 1차례) 당하거나 공샤오빈의 수비를 너무 의식해 계속 실패했습니다.
오성식과 이상민: 오는 여전히 투명인간이었습니다. 이는 기용 자체가 안 되었고…
정재근 : 키가 작아 중국 2m 파워 포드들을 막는데 한계가 드러났지만, 현과는 달리 골밑슛은 미스 없이 잘 넣었습니다.
우칭롱과 후웨이동 : 3점포를 번갈아가며 터뜨리고… 후웨이동은 장신 슬래셔 답게 돌파해서 한국 수비 반칙을 잘 얻어냈습니다.
샨타오 : 느리지만, 유연성과 기본기를 바탕으로 전반만 뛰면서.. 골밑에서 존재감이 컸습니다. 다만, 서장훈과 대결이 아쉬었습니다. 샨타오는 서장훈과 대결에서 93년은 KO승 94년은 판정승을 하는 등 기량이 정점에서 내리막길로 접어든 시점이었던 반면 서는 95년경 절정이었는지라 완승은 힘들어도 대등하거나 신승할 시점이 아니었나 하는 점에서 말입니다.
물론 왕즈즈 對 서장훈 구도는 다르다고 봅니다. 왕즈즈는 샨타오의 유연성과 기본기 + 스피드와 3점슛인 선수인지라, 서장훈이 01년 상하이에서 다시 붙었다 해도 98년 완승과 99년 신승 구도가 뒤집힐 여건(왕은 샨타오와는 달리 01년에도 계속 기량이 발전 중이었다)은 아니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우나이퀸, 류우동, 공샤오빈 : 김유택보다는 한수 아래지만, 현주엽과 전희철보다는 한 수위 기량을 보였습니다. 특히 공샤오빈은 민첩한 피봇으로 여유있게 골밑 공략을 했습니다.
장신콴 : 머리를 장식용으로 달고 다니는 바보 감독 왕폐이와는 달리, 이 여우 같은 사람은 요령있게 한국 페이스다 싶으면 작전 타임이나 선수 교체로 맥을 잘도 잘라먹었습니다. 역시 명장…
아 정말 다시 그 경기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후웨이동의 압박은 늘 있어왔던 거지만, 이 경기에서도 정말 얄미울 정도로 강력했죠. 그리고 제가 본 중국 가드들 중 단연 최고였던 아딜쟌도 강동희보다는 한 수 아래였던 기억은 확실하네요.(이상민 오성식등은 아딜쟌에게 꼼짝도 못했었죠)
첫댓글 2002년 우리나라 이긴 이유도 왕페이의 도움이 컸죠. 막판 추격은 왠만한 감독이면 막을텐데 요놈은 무대책으로 하다가 패배.ㅋㅋㅋ 암튼 좋은글 잘 봤습니다.
잘봤습니다. ㅋ
앗...이글을 제 친구놈이 보면 조용하겠군요.95년때 쯔음에 국제경기할땐 무조건 이상민과 강동희 의 투가드 시스템이였다고 우기는 놈인디..
역시 우리 허재형님!ㅠ.ㅠ그리워요..
어떻게 100기가 자료실에 올릴 방법이 없나요 ㅠ.ㅠ 진짜 보고싶은데...
아 정말 다시 그 경기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후웨이동의 압박은 늘 있어왔던 거지만, 이 경기에서도 정말 얄미울 정도로 강력했죠. 그리고 제가 본 중국 가드들 중 단연 최고였던 아딜쟌도 강동희보다는 한 수 아래였던 기억은 확실하네요.(이상민 오성식등은 아딜쟌에게 꼼짝도 못했었죠)